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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읽어 볼만한 책입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 놨어요.. 기계없이는 못 살고.. 에너지를 쉽게 사용하는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게 되었던 이야기들.. 우리가 꼭 알아야 하고.. 품고 살아야 하는 이야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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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일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다. 자가용을 타고 가서 런닝머신 위를 뛰는 사람들. 그것도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돈까지 내고.
책은 재미있었다. 영특한 청소년들이 본다면 비슷하게라도 발명품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다는데, 다른 힘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몸으로 가능한 에너지라는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살기 좋은 동네는, 기계의 힘보다 사람의 힘을 사용하는 범위 안에서 대부분의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고. 걸어다니는 경계 내에 기본 생활 시설이 다 있다거나, 적어도 자전거로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범위. 그 이상이 된다면, 사람의 몸을 이용하는 일이 부담이 될 정도로 확대된다면, 그건 별로 살기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고.
삶과 여행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도 가능하지만 여행이라고 하면 살고 있는 곳을 떠나는 일이니, 그것은 우리의 몸만으로는 어려울 듯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 보면 또 그때만큼 몸의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써야 하는 때도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집을 떠났으니, 집에서 쓰던 기계들로부터 떠났으니, 사소한 하나까지도 우리의 몸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기니까.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살기 좋아졌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얻은 만큼 잃은 것이 있다는 것이고, 세상은 시간이 흘렀다고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래 살게 된 만큼 병도 오래 앓게 되는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 있을 것인지 그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일이다.
걷는 일, 더 자주 해야 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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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비가 날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언덕, 그 위로 풍력발전의 프로펠러가 소리없이 돌아가고 있고 화면이 바뀌면 광활한 대지위를 까맣고 반짝이는 ‘모듈’의 집합체가 태양의 궤도에 눈을 맞춘다는 해바라기 처럼 군무로 움직임을 보인다. 뛰어 노는 아이들 주변으로 꽃과 날아다니는 나비, 날씬한 몸매의 남녀가 잘 가꾸어진 트랙위에서 땀을 흘리며 조깅을 하는 모습이 비춘다. 빌딩들의 조명이 켜지고 실내에선 TV와 게임기 안의 아이들. 컴퓨터로 뭔가에 열중인 아버지와 전기 오븐에서 잘 익은 요리를 꺼내는 엄마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가족 나들이를 위해 오르는 차는 충전을 마치고 플러그를 뽑자마자 소리 없이 속도를 높여 도로를 질주한다.
“풍요롭고 행복한 미래의 원동력. 녹색 에너지”라는 타이틀이 떠오르고 곧 화면이 어두워진다.
실재하는 광고의 이미지는 아니지만 여태껏의 미디어를 접한 정보들을 조합하면 누구나가 상상할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희망은 ‘신재생에너지’라 불리는 자연이 주는 힘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는데서 기인한다. 과연 그리 될 것인가 라는 의심보다는 어찌되었든 그들이 우리의 희망인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석유는 언제가 고갈될 것이고 일부국가는 생산량 감소세로 돌아선 요즈음, 연일 높아가는 유가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큰 소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별 근거없는 녹색성장을 보장하는 국가와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홍보와 보도자료를 통해 이미 우리의 미래도 보장되었다는 ‘조작’에 종속된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생필품과 운송수단, 가전제품, 공구들과 심지어는 먹는 농산물까지도 ‘석유의 소모’(보통 ‘탄소’로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가 필수불가결한 시대이고, 2차 생산물을 위한 탄소 소모량도 점차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2012년 탄소의무감축에 의무를 지게 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별 국가적 대책 없이 현 수준으로 탄소배출을 유지하며 다른 유력배출국들의 눈치를 보겠다는 것이 전략의 전부 라는데에 어이가 없는 지경이다. 대통령은 기껏 ‘가정의 절약’이 나라를 구한다는 메시지로 ‘또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나’라는 원성을 듣고 있고 결국 엄청난 탄소를 하천에 뿌릴 4대강사업은 강행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추세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석유없는 미래의 충격에 대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제로에너지 하우스부터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조리기, 빗물을 활용하는 설비등 개인적인 노력이 국가적 지원을 앞지르고 있는 요즈음에 실상 움직이는 모든 것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이 에너지의 근원이 대부분 ‘석유’라는 것이 문제인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태양광, 풍력, 조력, 지중온도차 발전 등을 전국의 공터마다 설치하여 펼쳐 놓는다면 지금 쓰는 수준의 에너지를 얻을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가 분명하다. 아마 몇십분의 일 수준이라면 몰라도 현재 탄소를 배출하면서 얻는 에너지의 엄청난 양을 감당하기엔 그들의 발전수준이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결론은 지금 쓰는 수준에서 현저히 적은 양의 탄소배출을 하는 생활습관을 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웬만하면 가공된 손실이 많은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것 보다 가공되지 않고 손실이 별로 없는 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촬영하면서 인간이 동력이 되는 것이 본인에게도 지구에게도 가장 적절하고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세계 곳곳의 실험적이며 진보적인 실천가들의 ‘기구’들을 소개하며 설득에 힘을 싣는다.
자전거로 시작할 수 잇는 실천은 비싼 에너지 들여가며 기계에 의존해 제자리뜀이나 하고 달리지 않는 싸이클로 근육을 키우는 헬스클럽의 시스템을 비웃는다. 두다리는 이동하기 위해 존재하고 세포는 이를 통해서 적절하게 몸의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한다라는 이치를 생각하면 보통 40킬로미터를 하루에 걸었던 선조들과 달리 기껏 500미터 정도를 이동하는 오늘날의 인간들이 심각한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퇴화하는 세포와 근육들이 장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각종 성인병으로 등장하여 죽음을 재촉하게 된다는 이론은 매우 설득력있게 들린다. 에너지 펑펑 써가며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그 ‘인간동력’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자는 것이 책이 가진 의도다. 홍콩의 ‘캘리포니아 피트니스센터’는 운동기구에 발전기를 달아서 전기를 만들고 이것으로 조명과 각자가 보는 TV의 전력을 조달한다. 조깅을 하고, 집에서 페달을 밟아 30분정도 운동하면 50W의 전기를 만들 수 있다. 뱃살로 음악을 듣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세탁기도 돌린다.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석유중독에서 벗어나 운동으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은, 당신 머릿속에 들어있는 당위적 에너지 절약의 개념이 체험적 실천으로 바뀌는 순간 체험하게 될 카타르시스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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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 그렇다. 21세기 초반인 지금 우리는 더 이상 화석연로에 의존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언제일지 모르나 석유 생산은 정점을 지나고,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아니, 이미 그 정점을 지났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위기가 올 것을 알고는 있었기 때문에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양력, 풍력, 지열 등 많은 신재생에너지는 아직도 생산 비용이 화석 연료보다 높아서 실용화의 길은 멀다. 그 대안으로 인간 동력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인류 역사에서는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경험이 두 번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데, 신석기 혁명과 산업혁명이 그것이다. 신석기 혁명 혹은 농업혁명이라고 불리는 혁명은 1만 년 전에 나타났다. 수렵 채집으로 생활을 영위하던 인간에게 농업은 정착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정착으로 인해 인구는 이전보다 증가하고 집단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산업혁명도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드디어 인간은 자신이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데 본격적으로 기계를 활용하게 시작했고, 이 기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연료가 필요했다. 석탄은 이전에 나무로 대표되던 에너지원을 대체했고, 이로 말미암아 산업혁명은 꽃을 피우게 되었다. 20세기에 시작된 석유 중심의 에너지 체제는 20세기 풍요로운 생활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는 법.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현대 문명은 그 한계에 달했다. 지구 온난화는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큰 두려움으로 자리하고 있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돌아가 보자. 인간의 힘으로 과연 에너지 위기를 돌파하고 화석연료로 쌓아올린 현대의 문명이 지속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이 이 책 <인간 동력, 당신이 에너지다>(김영사.2008년)안에 들어있다. 저자인 유진규는 어느 날 헬스클럽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5층 전체가 헬스클럽인 이 건물은 바깥에서도 안이 환하게 들어다 보일 정도로 밝은 빛으로 밝혀 있었고, 러닝머신이 수십 개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이 러닝머신에는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앞에 켜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저마다 운동에 열심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저자는 “전기세 많이 나오겠네..”하고 생각하였다. 그 후 이 장소를 지날 때마다 그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그 장소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고, 나아가 적개심까지 느끼게 되었다. “러닝머신의 소비전력을 확인했다. 1,300wh, 형광등 40개를 한 시간 동안 켜 놓는 것과 맞먹는 전력양이었다. 이 정도의 전력양이라면 제3세계의 한 학교 학생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의 혜택을 줄 수 있고 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을 운영할 수 있다.”(17쪽)라는 저자의 표현은 그 거부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그가 인간 동력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였다. 방송사의 PD인 저자는 인간 동력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한다.
인간 동력에 대한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고, 촬영계획을 수립한 후 드디어 취재에 나섰다. ‘인간 동력’하면 제일 먼 저 생각나는 것이 아마 자전거일 테다. 그의 첫 번째 취재 장소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였다. 그곳에는 자전거 페달로 동력장치를 만든 버스가 있는 곳이었다. 자전거로 북미대륙을 두 번이나 횡단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마틴 크리그는 14인승의 버스사이클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전거가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든다고 말할 만큼 자전거 애호가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다리로, 자신의 근육으로 직접 이동하게 되면 새로운 감각의 세계가 열립니다.”(42쪽)라고 말한다. 또 “자전거에는 평화와 사랑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 적개심과 폭력성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모두가 친구가 됩니다. 인간 동력에는 부유함이 있습니다.”(42쪽)라고 말하기 까지 한다. 그렇다면 14명의 사람이 페달을 밟아서 움직이는 이 버스사이클은 얼마만큼의 힘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저자의 계산에 따르면 이 버스는 2마력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자전거 페달 하나가 보통 100w의 힘을 가지고 있고, 페달이 14개이므로 1,400w, 700w가 1마력이므로 버스사이클은 2마력의 엔진을 달고 있다는 것이다. 1500cc의 배기량을 가지고 있는 승용차가 100마력 정도의 출력을 낸다고 하니, 버스사이클은 승용차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이 약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버스사이클은 인간 동력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48쪽)라고 적고 있다. 물론 인간의 힘은 기계장치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약하다. 그러나 19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모든 산업 활동생산에서 인간의 노동이 94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한다. 요즈음은 고작 8퍼센트 수준이라고 하니, 인간 동력은 거의 설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는 위에서 자동차와 버스사이클의 비교에서 보았듯이 출력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인간 동력의 가능성에 도전한 사례를 보도록 하자. 1972년 영국의 한 공군기지에서는 인간 동력비행기에 대한 시험비행이 있었다. 인간 동력비행기의 이름은 ‘주피터 Jupiter’였는데, 순수하게 인간의 근육만으로 이륙해서 1Km를 날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 동력은 페달을 밟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비행기를 순전히 인간 동력으로 날 수 있게 만들을 수 있다면 인간 동력으로 화석에너지를 어느정도는 대체할 수 있을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클라우드 팜(Croud Farm)이란 재미있는 단어가 나온다. 이는 지하철역이나 광장 같이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에서 군중의 발자국 충격을 바닥에서 흡수해 일종의 발전소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하철 동경 역에서는 2008년 초 실제로 이를 실험했다, 불과 90평방미터의 면적에 설치했지만, 발생하는 전기량은 500KWsec로 100W짜리 전구를 80분간 밝힐 수 있으며, 전철역 개찰구 하나를 하루 종일 운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저자는 신도림역에다가 이를 설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생각해본다. “서울 신도림역은 환승통로와 각 출구의 계단만 2천 평방미터, 하루 유통인구는 45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지금보다 효율이 1,000배 개선된 발전마루를 깔면 하루 2,600kwh의 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전동차 운영에 필요한 고압전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역내 전기는 승객들의 발걸음만으로 충당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252쪽)라는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렇게 인간의 발걸음의 압력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렇다면 좁은 공간에서 인간의 발걸음 활동이 더 활발한 곳이 있다. 바로 나이트클럽이다. 네덜란드의 로터담에는 세계 최초의 ‘발전형 댄스 클럽’이 2008년9월 오픈 했다고 한다. 이 클럽은 지하1층 지상3층의 대형 나이트클럽으로 1,500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하니 상당한 넓이를 가진 공간이다. 한사람이 댄스 클럽에서 춤을 추면 1인당 20~100W 까지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보고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매일 한 시간씩 인간 동력 운동기구로 운동하면 총 18.2 K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4,300리터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만약 서울 시민 모두가 하루 한 시간씩 인간 동력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면 하루 30만Kwh, 화력 발전소 1기분의 전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클라우드 팜, 지속가능한 댄스클럽, 그리고 인간 동력 헬스클럽은 인력발전에 말 그대로 ‘인해전술’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258쪽)라며 취재를 마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근육의 힘이라는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우리의 근육의 힘으로 세상을 돌려보도록 하자. 우리의 몸도 건강해질 것이고, 지구도 건강해질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과연 에너지 위기를 돌파하고 화석연료로 쌓아올린 현대의 문명이 지속될 수 있을까? 라는 처음의 질문에 이제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당연히 우리의 근육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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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동력, 당신이 에너지다 – 저에너지 사회의 하이테크
이 책의 프롤로그는 매우 인상적이다. 석유 드럼통으로부터 이어진 여러 개의 호스가 러닝머신과 남자의 입에 꽂혀 있고, 남자는 열심히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피트니스 클럽에서 야밤에 환하게 불을 켜고 TV를 보면서 러닝머신을 달리는 남자. 이 모든 것은 석유 에너지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석유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형성된 살을 다시 석유를 소모하며 빼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의 본질이 마치 ‘소모’에 있는 것처럼 미친 듯이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현실을 비꼰 것이리라. 저자는 이른바 적정 기술, 혹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한 형태인 인간 동력의 가능성을 세계 곳곳에서의 사례를 발굴하여 예시한다. 버스사이클과 같이 몇몇은 홍보나 캠페인의 성격이 크고, 플레이펌프 같은 사례는 저자의 평가와 달리 실패한 사례로 유명하다. 페달보트나 스팀보트, 휴먼카 등은 백만장자나 은퇴한 공학자들의 각성과 여유의 산물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논리는 명료하다. 석유는 고갈될 것이며 고에너지 사회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에너지 사용과 개발은 국지적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근육을 사용하는 인간동력은 강력한 대안이다. 근육의 사용은 원시 인간의 추억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인간동력이야말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미래의 산업은 저에너지 기술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핵심에는 인간동력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되 불편하지 않은 장치와 기구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다. …… 인간동력은 “후기 산업사회의 하이테크”라고 말할 수 있겠다. p.270 ‘하이테크’ 외에도 인간동력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저자는 ‘펀 파워’를 들고 있다. 인간동력은 일종의 노동이 될 것이다. 물론 석유가 고갈되고 인간동력이 얼마 되지 않는 대안이라면 우리는 ‘의무적’으로라도 그 노역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인간동력이 우리 삶의 형식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호모 루덴스’의 감성에 호소해야 한다. 이 책은 올해 프로네시스의 첫 번째 독서토론 선정 도서였다. 이 책의 명료한 논리와 풍부한 사례들은 어린 과학도들의 순수한 감성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31기 중 누군가는 페달보트 제작을 여러 기수에 걸쳐 만들어 보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포부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고물 자전거도 구매했다. 물론 몇 달이 지나도 아직 고물자전거일 뿐이긴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미래학자나 공학자가 아닌 방송사 PD이다. 아직 미래학자나 공학자가 목소리를 보태지 않은 현실은 방송사 PD까 상대적으로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저에너지 사회가 도래하기 전에 우리는 하이테크로써, 펀 테크로써 인간동력을 삶의 형식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젊은 과학도들의 꿈과 열정, 노력에 그 미래가 달려 있을 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