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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끌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 장면임과 동시에 <벤허>라는 단어를 들음과 동시에 누구나가 떠올리는 장면이다. 분명 이 장면은 그 유명한 영화 <벤허>의 가장 대표적인 명장면임과 동시에 이 소설 <벤허>에서 스토리의 전개상 그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는 반증일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벤허>는 그리스도의 이야기라고 한다. 사실 벤허는 어릴 적 토요일 TV를 통해 토요명화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흑백 영화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내용을 여전히 잘 파악하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이렇게 방대한 양의 소설을 겁없이 들기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후의 명작으로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를 알아야 하겠기에 과감히 책을 펼쳐 들었다. 성경을 읽고 늘 그 내용을 세기는 교인이 아니기에 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들을 뒤로하고 집중하지만 사실 그것 역시 내 욕심임을 다시한 번 느끼게 된 책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지식을 가지지 않은 독자는 그만큼 어려움을 호소할 책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어렵사리 읽어내려간 전체적으로 내용은 주인공 벤허가 절친한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그 배신에 대한 복수의 방법으로 전차 경주라는 것을 택하게 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가 벤허를 떠올릴 때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됨을 인식하게 된다. 물론 이 책이 그리스도의 이야기인 이유를 알 수 있는 부분은 이렇게 복수의 마음을 현실로 옮기는 벤허가 결국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만나게 되면서 새롭게 변화를 하게 된다는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갈구한다. 그래서 성경이 불변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와 같이 이 책 역시도 그러한가 보다 싶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정녕 이 영화가 자신이 만든 것이냐고 했다고 한다. 이런 불후의 작품을 온전히 끝까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꼭 한 번은 봐야겠다는 의무감마저 느끼게 되는 책이다. 어떻든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세계사에 어둡고, 종교에 어두운 나로서는 읽어야 할 책이지만 어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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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에서
온 세명의 현자 그리스인 가스파르,인도인 멜키오르, 이집트인 벨타사르, 이 세사람은 유대인의 땅 예루살렘의 헤롯왕을 찾아가
새로운 유대왕이 나타날 거리고 예언을 한다. 헤롯왕은 자신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세명의 현자의 말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극진히 대접을 하고 돌려 보낸다. 그렇게 세명의 현자는 헤롯왕의 만나고 성밖을 나서던 도중 한 아기를 안고 있는 마리아를
보게 된다. 그 아기가 바로 세명의 현자가 예언했던 유대왕이며, 그 예언을 마리아에게 전달하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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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주일학교에서 준비한 성극과 찬양으로 성탄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tv에서는 성탄절 특집으로 [벤허],모세가 주인공인 [십계], 유대의 선지자 삼손의 이야기인 [삼손과 데릴라] 등 기독교 관련영화를 방영해주었다. 평소라면 9시에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시절이었지만 크리스마스에는 밤늦게까지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벤허가 복수가 이글대는 눈으로 노를 젓는 모습이나 메살라의 비열한 반칙에도 멋지게 마차를 몰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만화방 한 구석에서 발견한 명작만화시리즈가 있었다. 일본만화를 말 주머니만 한글로 바꾸어 출판했던 해적판 만화책이었다. 그 중 [벤허] [쿼바디스] [암굴왕] 등은 몇 번이나 읽어보았는데 그 때 읽었던 명작만화책들이 나를 문학의 세계로 인도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벤허]는 강열한 이미지와 함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완역본으로 읽은 [벤허]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만큼 서정적으로 시작된다. 서론에 등장하는 세 명의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얼마나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지 이 책이 [벤허] 이야기가 맞나 다시 한 번 뒤적이게 된다. 사막이 눈앞에 펼쳐진 듯 문장의 유려함과 생동감 넘치는 인물의 묘사들은 영화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알게 해준다. 성경의 등장인물과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들이 어울려 이야기를 이끈다. 당시 로마와 유대의 관계, 로마의 폭정과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절박함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성경책을 7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만큼 성경적인 지식의 해박할 뿐 아니라 그리스로마신화와 이집트 신화 등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표현에 감탄하게 된다. 주인공 벤허의 일생을 통해 예수그리스의 구원과 부활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소설을 읽다보니 어떤 설교말씀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640쪽이 넘는 소설이지만 총 8부로 나누어져 있고 내용이 전환될 때마다 장으로 나뉘고 각 장마다 소제목이 있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목차가 생략되어 있어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을 찾기 위해 책을 좀 더 뒤적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원했을지 모르겠다. 좀 더 오래 뒤적여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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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많은 어르신 세대에게는 (요즘 말로) "인생 영화"나 마찬가지인 작품이 1959년작 <벤허>일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여튼 청교도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받들어지는 미국에서는 크게 흥행에 성공하고 격찬 받은 게 이상할 것도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 신도 인구가 절대 다수라고는 할 수 없는 한국에서까지 그만큼 호응이 좋았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런데 이미 만들어진 지 반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관람해도, "과연 그럴 만하다"는 게 세대를 초월한 보편적 반응일 것입니다. 확실히 저 고전 영화는, 감동적인 주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부각시키는 매우 영리한 전개를 취합니다만, 그런 기술적 분석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신비스러운 스토리텔링의 마력"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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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벤허」하면 전차를 끄는 장면을 연상하곤하는데 나 역시 책을 만나기전엔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의 나이쯤? 됐을 때 한밤중에 흘러나오던 오래된 영상만 잔상으로 남아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 못했었다. 어린 기억에 그저 옛날 영화라고만 생각하고 관심도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주변 지인들한테 물어보니 나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재미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은 그런 느낌의 종류가 아니어서 가볍게 읽을 수가 없었다. 현재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많이 힘들었던 시절 길지는 않지만 교회를 열심히 다닌적이 있었더랬다. 성경책도 열심히 보고 목사님 설교도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책을 낯설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잘 모르는 종교 이야기지만 평소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교회를 다니며 성탄절 준비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격하게 공감할만한 동방박사와 예수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한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역사적 상황과 배경지식을 이해할 수 있었고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묘사는 마치 지금 내가 그곳을 같이 걸어가고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생소하고 얕은 지식배경으로 이해하고 읽어내려가기에 다소 시간이 걸리긴하였지만 영화를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생생함들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자료수집에 열정적이었을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하였는데 도입부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다 읽어갈 무렵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동방박사와 아기예수 탄생까지 좀 더디게 읽혔다면 유다와 메살라가 등장하는 이후부터는 책을 읽는 속도에 가속도가 조금씩 붙기 시작한다. 어릴적엔 한없이 친했지만 유대인과 로마인이라는 벽에 걸려 생각하는 것부터 많은 차이를 보이며 삐걱대던 둘은 유다의 노예전락으로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혀졌고 여러가지의 사건들을 겪으며 초반에 나왔던 동방박사들이 열망하던 신의 대한 믿음에 대해 인간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나약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벤허」는 한번 읽고 덮어버릴 책이 아닌 여러번 음미하듯 읽어야 될 책임은 맞는 것 같다. 인간과 신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 신을 믿지는 않지만 여운이 꽤나 오랫동안 남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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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영화를 본적도 없다.
그러나 늘 벤허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전차경주 장면이다.
명절이나 연휴에 TV에서 영화를 했던것도 같은데 기억나는 장면은 단지 그 장면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만나면서도 전혀 아는것이 없이 집어들었다.
그런데...
부제가 [그리스도 이야기] 이다.
어. 종교에 관련된 책인가?
그랬다 내가 이리도 무지했다.
워낙 영화로 유명하기에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하긴 했지만. 솔직히 두께를 보고 깜짝 놀랬다.
640페이지.
삽화하나 없이 빽빽한 책을 펼치면서 내가 이 책을 다 읽기나 할까? 하는 걱정부터 가득했다.
사실 나는 성경도 읽어보려고 도전을 했다가 실패를 했었다.
종교가 다른 입장에서 성경을 읽는것도 참 힘든 일이였는데.
벤허도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동방박사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러가는 과정은 나에게도 큰 산이였다.
배경지식이 별로 없어서 이해를 하기도 힘들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더 알기 힘들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책장을 꾸준히 넘겼다.
그러다 문득 저자소개 부분을 다시 읽고는 깜짝 놀랬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1880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30년전의 일이다.
번역이 잘 되어서 그렇겠지만. 문장을 읽어내려가는데 거부감은 없었다.
어떤 책들은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기가 힘든 경우가 있었는데. 쉽게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서 우선은 쉽게 읽었지만.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바로바로 아래에 설명이 되어있어서 이해하기 수월했다.
비기독교인으로 내용을 이해하는데 덜커덕덜커덕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옮기이의 말에 따르면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완역판이 있을꺼라고 생각하는데 이제서야 완역판이 나왔다고 했다.
온전히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마도 중간에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벤허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어서 조금은 이해하기 쉬운 장면들도 있었다.
그 옛날도 사람 살아가는 모양새는 비슷하구나.
어느 시대라도 사람들은 참 치열하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유명한 장면인 전차경주 장면이다.
워낙 영화장면이 각인이 되어서 그런지 글을 읽는데도 그 장면이 떠올라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책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바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래도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해를 하기 힘든 부분도 있어서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왠지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온전히 벤허를 내것으로 만들려면 몇번은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에 후루룩 읽고 벤허를 읽었다고 어디가서 이야기를 하진 못할듯하다.
어쩌면 성경을 다시읽어보는 기회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영화의 장면이 너무 강렬해서 책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지만. 올해 영화가 다시 만들어져서 개봉이 된다고 한다.
두꺼운 책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영화도 추천해주고 싶다.
출처 - 다음영화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꼭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와는 다른 책만의 맛을 느껴보길 바란다.
저는 위 도서를 추천하면서 현대문화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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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이 흐른 후 스크린을 통해 다시 우리 곁에 찾아온 최고의 베스트셀러 "벤허 2016" 영화와 함께 완역판으로 출간된 "벤허 - 그리스도 이야기" 세계명작시리즈이면서 필독서이기도 한 벤허를 만나보았다 작가는 루이스 월리스 Lewis Wallace 5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벤허는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었고, 영화를 통해서 더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었다 성탄절 시즌이면 TV에서 특선영화로 벤허를 방영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바로 위 그림에 나온 전차 경주 씬이다 로마 귀족 장군의 아들이었지만 벤허 유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기왓장이 총독 머리에 맞는 사고로 억울하게 함선 노예가 된다 형제와도 같은 메살라의 배신... 벤허가 노예로 있던 함선이 해적의 공격을 받는 중 함장인 아리우스를 구해 그의 양자가 된다 '섹스투스 아리우스' 로 다시 태어난 그는 복수를 위해 예루살렘을 찾고 메살라와 전차 경주를 벌이게 된다 ![]()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는 종교 소설이다 동방박사들의 만남, 예수님의 탄생 그리고 벤허 유다와 메살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절망에 빠진 유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계획했던 모든 복수와 군사적 열망이 용서와 사랑이라는 고귀한 가치로 변화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성경이 아닌 소설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한 번쯤 꼭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읽고 싶었는데 아직은 글밥이 많아 좀 더 크면 읽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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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성탄절 특선 명화 으로 나왔던 벤허... 사실 선명하게 기억을 잘 나지는 않지만 너무 오래 시간 잊고 지냈던 내 다짐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우선 디테일하게 보고 나중에 영화를 볼 예정이기에..
책은 역사적 종교 소설로 동방박사의 만남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시작으로 벤허 유다와 메살라의 이야기로, 아리우스를 만나는 과정에서의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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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종교는 모두 세 가지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점은 왜 중요할까?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의 후손이란 의미다. 하나님께 선택된 인간! 이만한 삶의 명분이 또 있을까. 그래서 이들에게 ‘누구의 아들’이란 이름은 살아야할 명분 그 자체다. 벤허는 ‘허의 아들’이란 뜻이다. ‘허’(Huh)는 성경에 등장하는 ‘훌’의 영어식 발음이다. 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말렉이라는 이방 민족과 전쟁할 때 모세를 도왔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임에 분명하지만 우스꽝스럽게 전개된다. 모세가 팔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지만, 내리면 진다. 훌은 아론과 함께 모세의 팔을 떠받쳤다. 소설 벤허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계시받은 동방박사 세 사람의 신비로운 만남 장면에서 시작한다. 벤허는 예수가 태어난 로마시대를 살고 있다. 모세와 허의 관계처럼 그리스도와 벤허 또한 만나게 될까? 만난다면 언제 어디서 일까? 이방인과의 싸움터일까? 로마는 아말렉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구약의 그리스도로 불리는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다투어 이겼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한 민족이다. 하나님과 싸워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가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했다면, 그건 분명 하나님께서 일부러 싸움에서 져주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이스라엘은 곧 하나님의 배려요, 용서하심의 증거자로 이 땅에 존재한다. 벤허도 마찬가지다. 자기이름 없이 그저 누군가의 아들로 불린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처럼 그도 누군가의 배려와 용서를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벤허의 삶은 그야말로 한 순간 우연한 사건을 통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스라엘의 명문 귀족 집안의 도련님에서 사랑하는 어머니, 아직 어린 여동생은 고사하고 자기 몸조차 보호할 수 없는 노예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비극은 로마 총독 머리 위로 떨어진 기와 조각에서 비롯되었다. 어쩌면 인간의 비극적 운명이란 중력이 만든 우연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켈리선의 노예. 노예는 배가 움직이도록 노를 젓는다. 그러나 배가 어딜 향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북소리에 맞춰 같은 노동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매일 같은 노동을 한다. 그러나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른다. 같은 면이 있다면 모두 죽음 앞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왜 죽어야만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만을 질문하다가 결국 죽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은 자로 태어난다. 노예는 죽은 자의 근육이다. 죽은 자의 근육에 불과한 노예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은 노예가 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노예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지 않는다. 거저 준다. 계산하지 않는다. 이런 사랑만이 진정한 자유를 만든다. 문둥병은 인간이 본래 죽은 자로 태어남을 보여준다. 하늘로부터 버려진 존재. 그래서 땅의 노예로 살면서 하늘을 그리워하는 인간.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 가장 솔직하고 건강한 몸, 그것이 문둥병자다. 벤허는 어머니와 동생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절망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죄 없이 대신 죽는 하나님의 피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영혼의 구원자마저 속세의 억압을 타파할 전략적 대상으로 삼는 인간.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죽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 버려진 자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자신의 몸 안에 넣어 구원한다. 진짜 인간은 자기 몸을 열어젖힌 사랑으로 창조된다. 반면,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을 필요치 않는다. 모세의 팔은 훌이 떠받쳐야만 버틸 수 있었을까? 모세의 팔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모세의 팔이 땅으로 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만의 승리가 꽃처럼 피었으리라. 벤허가 영화인 줄만 알았다. 영화사에서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전차경기는 더 이상 짜릿하고 황홀한 승리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복수하려는 인간 본성이 문둥병마저 치료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대비를 이룬다. 피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큰 승리를 거머쥐어도 인간은 언제나 문둥병자에 불과하다.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다. 이 책은 상세한 풍광과 인물 묘사까지 놓치지 않고 번역해 원작의 완성도를 그대로 전달했다. 소설 벤허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사랑과 복수 사이에서 문둥병처럼 감출 수 없는 죄악이 어떻게 치료되고 용서받는지 느꼈다. 인간은 믿지 못할 존재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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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품격 있는 불후의 명작 『벤허』 위의 내용만봐도 누구나 알수 있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영화로 보고서 책으로 보긴 처음입니다.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 “신이시여, 이 영화를 정녕 제가 만들었단 말입니까”라는 감독의 수상소감으로 유명한 <벤허> 1959년에 제작되어 전 세계를 감동시킨 영화 벤허는 저보다 열살이 많군요..ㅎ 그 오랜세월 우리나라에서만도 7번이나 영화를 재개봉 했다고 합니다. 영화는 티비를 통해 여러번 봤지만...책은 처음이라 기대만땅입니다. 사실 벤허는 성경이야기예요..그리스도 이야기랍니다. 교회를 다녀본 사람이나 성경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쉬울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려울수 있어요. 그리스도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역사까지 알아야 하니 말이죠.
어릴적부터 교회를 다니며 지금도 종교로 믿으며 살고 있음에도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은 아닌거 같아요.. 이해를 하면서 읽으려니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됩니다. 그냥 후다닥 읽기에는 왠지 아까워요? 그 정도로 이 책은 명작이거든요. 성경다음으로 꼼꼼하게 읽어야 되는 책처럼 검색하며 왕조를 알고 왕을 알고 시대족 배경이나 분위기를 알아갔어요. 책은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비중은 극히 적답니다. 주인공 벤허를 통해 그리스도를 느끼게 하지요. 벤허는 복수를 위해 분노하다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를 하게 됩니다. 벤허를 통한 당시 로마와 이스라엘의 역사적 이야기..그 부분을 이해한다면 어렵지 않을거 같아요. 전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벤허를 보면서 성경을 한번 더 읽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세례를 받기 위해 읽은 한번이 전부라서말이죠.ㅜ
역사상 가장 품격있는 불흐의 명작<벤허> 동방박스 세명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느끼고 만나러 가며 시작한 책은 신약성경을 읽는 느낌이였어요. 로마의 속국 유대와 노예가 된 벤허, 전차경기장까지..영화보다 책이 더 화려할수 있음을 느꼈어요. 전차경주를 이용해서 말이죠. 그렇게 복수를 끝내고 가족을 만나고,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를 만나고... 책을 읽다보니 영화도 한번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