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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고대 국가, 예를 들어 서양의 바빌로니아나 그리스, 로마, 동양의 고대r중국에서 유목민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미지의 괴물이거나 야만인, 또는 미개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독특한 유목민의 문명을 이루고, 문화를 향유했었다. 보통 고대의 유물은 의복이나 음식류, 식물 등 유기물은 모두 부식되어 사라지고, 석기나 토기, 또는 금속기 등 무기물이 발견된다. 따라서 고대 문명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심대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고, 연구 결과의 많은 부분이 때로는 오류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문명이 자신들의 기록물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오류는 더 심할 것이다. 유목민의 역사가 바로 그랬다. 때문에 유목민들이 어떤 수준의 문명을 건설하고, 문화를 영위했는지는 알 수 없었고, 정주민 역사에 비해 낮은 문명과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편견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편견을 한 방에 날려버린 대단한 발견이 있었다. 1990년대 약 4년간 러시아 연구팀은 알타이 산악 지역의 우코크 고원의 파지릭에서 고대 유목민이 남긴 무덤을 발굴했는데, 이때 무덤 속 영구동토층에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미이라와 유기물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유목민의 역사를 다시 해석해야 할 만큼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것을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은 이들 고분의 발굴 과정의 기록과 유물에 대한 해설을 종합적으로 발표한 결과물이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알타이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초원대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류 초기부터 동양의 몽골인과 서양의 인도-유럽인이 만나던 접점이었다.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미이라를 보면, 파지릭인들이 몽골인에 치우친 몽골인과 인도-유럽인의 혼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유물을 분석해보면 그들의 문화는 이란의 것과 더 가깝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목민들은 사시사철 초원을 떠돌며 정착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파지릭문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무덤방을 만들 때 쓴 목재를 보면 그들이 생전에 살던 집의 목재를 뜯어서 만들었다는 흔적이 보이는데, 바로 이것이 그들도 일정한 정착 생활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또 고대 유목민들은 주로 모피나 털옷만 걸쳤을 것 같지만, 그들 무덤에서 비단이 발견된 것을 보면 물론 상위 계층의 소수만이 입을 수 있었겠지만, 비단옷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비단이 무역을 통해서 수입된 것이며, 따라서 고대 유목민들이 농업 기반 정착민들과 일정한 교류를 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물을 근거로 그들의 복장을 복원한 그림을 보여주는데, 그들이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얼마나 세련되고, 우아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치장을 하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고대 유목민들은 결코 괴물도 아니었고, 야만인이나 미개인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도 수준높은 문명인, 문화인이었다. 최근 연구 결과 파지릭 고분이 대략 서기전 4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때가 서양에서는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통일하고 페르시아를 무찌른 후 헬레니즘 문화가 융성할 때이고, 동양에서는 전국시대가 한창 진행되던 때이다. 서양에서는 고대 유목민의 무덤을 ‘쿠르간’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이것을 ‘적석목곽분’이라고 한다. 땅을 파고 목곽으로 만든 후 사체와 부장품을 묻고, 그 위에 돌로 쌓는 형식의 무덤이다. 파지릭 고문도 모두 쿠르간이다. 그런데 천마총이 대표하는 신라의 김씨 왕조 초기의 무덤이 바로 ‘적석목곽분’이다. 비록 파지릭문화와 4,5백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신라와 그들의 관계가 결코 무관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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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알타이는 사실, 언어에 있어 우리 한국어가 속한다는 학설로 인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투르크어, 몽고어, 만주·퉁구스어를 포함하는 알타이어족, 또는 우랄알타이어족에 대해 들어봤다면 알타이 지방에 대해 친숙함을 안고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알타이 지역은 북방 유라시아 고고학의 최대 이슈 중 하나라고 한다. 유라시아 초원의 중심이라는 알타이 고원 지역에, 그 지역의 문화에 대한 모든 것을 아우른 연구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단순히 고대사 연구 결과를 나열한 고고학 서적을 넘어서 과학까지 담고 있는 듯한 이 책은 다양한 사진을 제시해주어 보다 생생하게 역사를 느끼게 해 준다.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 지역에 대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실감나게 제시해준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해 온 알타이 지역을 대상으로, 이 책은 파지리크 문화를 주로 서술한다. 파지리크 제1∼5호분, 시베 고분, 베렐 고분 등 고분으로 유명한 파지리크 문화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리가 되어 있다. 알타이 우코크 고원은 얼음과 추위라는 천연 냉동고 덕분에 지금까지 옛날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고 한다. 특히 알타이의 얼음공주라는 우코크 고원 출토 여성 미라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알타이 문명전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직접 체험해본 것은 아니나, 책을 통해 그들의 매장 문화, 고분, 의복과 생활상 등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현재 이 지역의 유물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였고, 또한 문명 전체가 위기에 있다라는 것이었다. 늦기 전에 생생한 체험을 통해 또 하나의 역사를 이해하는 시간이 많은 이들에게도 주어졌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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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2500년의 잠에서 깨어난 얼음공주와 미라전사들 N.V 폴로스막 이렇게 제대로된 고고학 도서는 처음 본 것 같다. 책의 두께와 책 안의 수많은 유적의 사진들. 역사에 대해서만 생각해 봤을 뿐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이제 고고학에 빠져들것만 같다. 산악 알타이 지역은 아래쪽으로는 중국 위쪽으로는 러시아에 인접한 몽골지역이다. 중앙아시아는 같은 아시아 지역이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문화권이라 볼 수 있다. 한때 몽골이라는 나라는 중국의 전체를 지배할 정도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아크-알라하 강가에서 파지릭 고분을 발견하면서 알타이 문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유적은 1990년에 발견 되었으니 20년도 안된 유적지이기 때문에 아마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1, 2호 고분은 파지릭 문화이며 3호 고분은 투르크 시기라고 하니 많은 고고학적 의미를 담고 있겠다. 몽골에서 말은 분신과도 같았기 때문에 이 고분에서도 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말들은 마구와 장식을 한 채로 매장되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는 알타이 유적들은 여태껏 본적이 없었던 유물의 형태였다. 알타이 문화의 장식은 말을 통해서 많이 드러난 것 같다. 2호고분에서는 어린아이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마 1호 고분과 친족관계였다고도 추정된다. 하나의 고분을 작업하는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작은 유물 하나하나 붓질을 해가며 꺼내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음 통나무 안에서 발견된 미이라는 춥고 고원지대여서 그런지 미라가 거의 혼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하게도 손가락 끝까지 문신이 되어 있었는데 아마 이 시대의 유행이었을 지도 모른다. 알타이 유적들에는 나무로 된 목제 장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투구처럼 생긴 모자는 비슷한 형태로 유라시아 유목민들 사이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모자 장식에 말의 전신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말과 평생 살아야 하는 유목민이기 때문에 말을 숭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지릭인들 사이에는 눈과 눈썹이 강조되게 화장을 한다. 양쪽 눈썹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화장을 하는 것이다. 투르판의 여인들은 속눈썹과 눈썹을 강조 하는데 몽골인의 특징과 이란인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파지릭인들은 투르크- 몽골계통이 아니라 인도-아리안 계통이라고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발견된 것이다. 시베리아는 공룡의 뼈도 자주 발견되는 곳이라고 한다. 시베리아 고고학이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귀한 책을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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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고원은 시베리아 남서부에 위칠해 있으며 해발 고도 2000m의 높은 곳의 삼림과 평탄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일년 평균 기온이
영하 17도의 추운 툰드라 초원 지대에 있으며, 지리학적 위치상 외부의 침입이 거의 없기에 고고학자들의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곳에 있는 고분과 그 안에 미라들이 2000년전 그때의 실제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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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언어의 기원이 우랄 알타이 계통이라는 사실은 이미 학창시절을 통해 지리적으로는 4개국에 걸쳐 있는 알타이 산맥의 고원지대를 뜻하며 북위48도에서 세계의 역사는 아직까지 숨겨진 채 발굴의 시간을 기다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발굴에 있어 다양한 변수와 어려움이 존재하고 위험 역시 상존하지만 고고학에대한 25년간의 발굴과정을 통해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분석의 공정성을 느끼게 파지릭 문화에서 출토된 미이라와 문화적 부장품들은 전사와 사제 집단을 보유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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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쓰는 한글은 기본적으로 알타이어족이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어왔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알타이족이 어떤 일을 했던 종족이지? 라는 의문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된 사실인 듯 합니다. 그만큼 알타이족을 듣기만 하고 직접 본적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한반도에서 동이족으로 불렸습니다. 동이족이라는 말은 동쪽 오랑캐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사실 동이족에서 이를 보면 夷 자에서 중간에 큰 활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큰 사람이지만 활을 귀신같이 잘 썼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지금의 정설입니다. 사실 지금 올림픽에서 양궁이 큰 수확을 거두는 것도 이런 민족의 피가 흘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반도 민족의 근원이 되었던 북부 알타이족은 어떤 민족이였을지 이 책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했었습니다. 이 책은 스키타이 기마병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했던 책입니다. 사실 스키타이족이라고 하면 로마인이야기에서나 가끔볼 그런 민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마병의 근원이 바로 알타이족이라는 사실은 저도 역사를 공부했었습니다만 생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고 최근 비석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입니다만 흉노라고 불렸던 기마민족의 후예가 신라의 왕족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알타이족은 우리 민족과도 직결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책은 1990년대부터 시작하여 25여년에 걸쳐시 진행된 발굴을 토대로 객관적인 자료와 그리고 그 분석으로 책을 펴냈기에 더더욱 신뢰가 가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알 수 있던 사실은 바로 비과학적일지어도? 절대 금기시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후문입니다만 이 유적의 조사를 위해서 발굴된 미라가 그 자리를 이탈하자 알타이 부근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우리가 어떤 신성 시 되는 물건을 함부로 옮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 바로 이런 사례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로 사마리칸트에서는 예전 고구려무사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개마무사로 유명한 고구려는 아마 이런 북방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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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래되어 기억으로 남겨지지 않은 오래된 부분을 우리는 남겨진 유물을 통해 추리하곤 한다. 우리는 때론 유물이 남겨지기 어려운 유기체라는 생각을 뒤로 하고 전하는 유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문명 발달의 정도를 생각하는 우매함을 갖기도 한다. 정착민보다 유목민의 생활이 덜 발전된 문명이라는 생각도 이러한 비논리성에 기인한다. 과거의 역사에 접근하려면 철저한 고증과 빈틈이 있는지 여부를 생각해야겠다. 유물은 또다른 존재가 변형되어서 집약된 표시이며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면 열려 있는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 의례 연구의 다양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그 문화에 속해 있어야 해석이 가능하다. 문화의 물질적 특징에서 의례적 상징을 찾고 이를 비교 연구하는 과정에서 문화의 독특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세계 문명의 두 축인 유럽과 중국 문명 사이에서 이동하며 꽃피었던 파지릭 문화를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분석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의복과 토기, 펠트, 발삼, 문신, 여성에 대한 태도, 약초학, 자연 자원, 생계 경제에 대한 여러 요소를 종합 연구한다. 이를 전후의 시대와 지리적 분포와 비교하여 우코크 고원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파지릭 문화에 대해 살펴 나간다. 과거의 유물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된 기적 같은 일. 도굴되지 않은 채 얼음 속에서 발견된 놀라운 유물복합체 덕택으로 과거의 문화를 여러 학문적 도움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유물 출토지역과 동일 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지리적 장소가 오늘날의 유목지 분포와 유사하다는 사실에 문화적 원형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계속 같은 자리에 있어왔다는 사실은 경이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의 존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손톱만한 사료로부터 이어붙이기를 통해 나아가는 선대 문화의 원형에 대한 탐구의 노력은 경이로움 부분이지만 죽음이 살아생전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문명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같은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안타까운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모든 지구상의 인류가 영생을 꿈꿔서 생전의 모습과 환경을 무덤 안에 갖추고 있는 것일까? 그 자체가 새로운 의례로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소망이 투영된 것 아닐까 하는 물음을 뒤로 한 채 여전히 남은 실제 생활의 모습 재현에 대한 문제들을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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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2500년의 잠에서 깨어난 얼음공주와 미라전사들-N.V. 폴로스막 "한 시대의 얼굴은 죽음의 모습에 반영된다." 이 책은 북방 유라시아 고고학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알타이 우코크 고원의 파지릭문화 고분'과 '미라연구'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각 장에는 고고학은 물론 병리학, 신화학, 화학, 생물학 등 다양한 연구를 종합한 결과를 풍부한 사진과 일반적인 고고학 자료에서는 얻기 어려운 다양한 유기물자료와 미라를 통하여 2500년전 알타이 초원을 지배했던 유목민들의 삶과 죽음을 정리한 저서로 1990~96년 사이에 우코크고원의 파지릭문화를 조사하여 얻어진 새로운 자료들을 담고 있다. 우코크의 파지릭문화 무덤 중에는 도굴되지 않은 채 ‘얼음 속에 갇혀 있는 얼음공주’ ‘얼음 속에서’ 발견된 놀라운 여성의 미라는 산악지대의 얼음과 추위 덕분에 몸에 새겨진 문신은 물론, 옷, 생활용품, 마구 일괄, 식물 그리고 음식들이 지금까지 잘 남아있었다. 이러한 신비한 고대 파지릭 문화에 대한 지견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죽음의 도시에서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2500년 전 알타이 고원지대를 다스리던 사제 겸 부족장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속해있던 집단을 어떤 사람들은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라고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월지’라고도 했다. 그녀는 외형상 뚜렷한 이란계통과 토착 몽골인의 혼혈이었고 어려서부터 골수염을 심하게 앓아서 말을 타고 초원을 다니는 정상적인 유목민의 삶을 살기 어려웠다. 정상적인 여인으로 살기 어려웠던 그녀는 의례를 주재하고 신과 맞닿는 삶, 독신으로 살았으며 20대 중반에는 유방암에 걸려 몸은 점차로 쇠약해져갔다. 그녀 생애의 마지막 가을에는 겨울 목초지로 이동하던 중 말에서 낙마해서 뼈가 골절되는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이후 침상에 몇 달간 누운 채 투병을 하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녀가 죽었을 때는 아직 동절기로 땅이 녹아 무덤을 만들 수 있는 초여름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 자신들의 앞날을 예언하고 축복했던 여사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람들은 몇 달간 그녀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하여 염습을 했다. 먼저 그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목제 숟가락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머릿속의 뇌수를 뽑아냈다. 내장의 빈 자리는 부패를 방지하는 약초들을 채우고 다시 꿰매서 원형을 유지시켰다. 피부에도 부패를 방지하는 약초를 바르고 시신이 베던 베개와 주변에는 고수풀 같은 강한 향과 항균작용을 하는 풀들로 덮었다. 염습이 완료된 후에도 그녀의 시신은 원래 입었던 옷 그대로 평소에 누워있던 침상에 그대로 놓여졌다. 사람들도 정기적으로 그녀의 천막을 찾아와서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듯 그녀에게 예를 갖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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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N.V. 폴로스막 지음│강인옥 옮김│주류성 刊
우리 말은 우랄 알타이어 계열이라 배웠다. 그래선지 '알타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마민
오래 전에 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알타이 문명전에서 얼음공주'를 봤었다면 좋았을 걸.
첨단을 가는 현대문명의 파급의 와중에서 우리는 태고적 무덤이나 파헤치고 동토의 초
유라시아 고고학의 최대 이슈라 할 수 있는 알타이 우코크 고원의 얼음과 추위라는 천
1995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알타이 문명전은 우코크 고원에서 출토된 '얼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