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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갑작스럽게 '사드'가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됐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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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에 관한 책이에요. <사드>가 살았던 시대를 풍경 삼아 그 속을 비추어 보듯 <사드의 삶>과 <그의 작품세계>를 탐구해 본 책이다.
사드가 살던 당시에는 낭만주의가 남았던 시대이고, 또 계몽주의가 꿈틀대던 시대였다. 다시 말해, 귀족들이 마지막으로 활개를 치던 시대였으며, 그런 귀족들이 한순간에 몰락해야만 했던 시대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귀족으로 태어난 사드는 귀족적인 면모를 갖추었으면서도 혁명가들에게 미움 받지 않을 정도로 당시 지식인 흉내를 낼 줄 알았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사드의 방탕한 짓거리만으로 충분히 사형에 처할 인물이었고, 단두대에서 고깃덩이 신세로 전락하고도 남을 위인이었으나 용케 피해하고 살아 남은 것을 보니 말이다. 아무튼 사드는 교묘히 귀족의 특권을 누리면서도 혁명의 시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유연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이래저래 가장 의아스러운 점은 그가 만든 작품들이 하나 같이 '지독히 외설스럽고 끔찍할' 따름인데도, 당대의 지식인들은 물론 후대의 지식인들도 그의 작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 내려 하고, 그 <무엇>을 끄집어 내서는 하나 같이 <뭔가가 있다>라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그에게서 <자유>란 그 무엇에게도 걸리적거릴 것이 없는 '완벽한 자유'를 엿볼 수 있으며, 그에게서 <본성>이란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한 '이성'의 정반대를 찾아볼 수 있단다. 좋다. <학문적인 대상>으로써 '사드'를 탐구할 만한 인물이라고 치자. 여기에 대해서는 내 허섭한 지적 깜냥이 파고들만한 틈이 없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적어도 이런 장르의 책은 [19금 딱지]를 붙여야 하지 않나? 대중 예술로 내놓을 수도 없고, 역사학 강의의 소재로 삼기에도 곤란한 그의 작품을 <인용>하여 '교양'이랍시고 내놓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게다. 뒤친이(역자)도 수없이 이야기한다. "사드의 작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말이다. 쉽게 예를 들면, 사드의 작품의 상당수는 오늘날 '포르노그래피'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적나라한 작품들이다. 이런 적나라한 작품들 속에 잔잔히 깔린 위트와 블랙코미디가 있다손치더라도 점잖은 교양인이 즐기기에는 그닥 점잖치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단 말이다. 물론 <에로티시즘>에 입각해서 '우리 몸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자유로운 성(性)생활'을 외친다고 하더라도 이는 은밀하게 제한된 장소에서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허용되어야 할 만한 것들이다. 단적으로 말해,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시리즈로 내놓아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버젓이 공개되어야 할 만 것들이 아니란 말이다. 난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시리즈는 교양인은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을 만큼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앞선 <하룻밤 지식인> 시리즈도 충분히 그럴만 했다. 그런데 <사드>라는 인물을 낭만주의자로, 계몽주의자로, 또 몇몇 지식인들의 소견에 따라 초현실주의자로 소개할 만큼 우리 사회가 <성개방>되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 데도, 이런 종류의 책이 [19금 딱지]가 없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책에 아무도 이렇다할 '지침'해주는 이조차 없다는 게다.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유통된 <포르노그래피>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흔히 <야동>으로 불리는 것들이 청소년들에게 아무런 제재도 없이 '보여 진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교육현장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은커녕 '피임법'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것을 꺼린다. 이런 현실에서 <낙태금지법>도 문제가 되고, <경구피임약>을 '편의점'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현실은 끔찍한 문제를 불러올 뿐일게다. <콘돔>은 지하철 화장실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두서 없는 글이 되고 말았는 데, 우쨌든 <사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아직 <사드>의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사드>를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긍정적인 인물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 현실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에 볼 수 없다고 본다.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될 작품들'을 통해 <17~18세기 당시의 프랑스와 유럽 역사>를 볼 수는 있을지언정 결국 밀실에서 제한된 채 탐구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포르노>를 보면서 사회문화역사를 공부하라는 셈이다. 사드의 표현을 빌자면, 단단해진 바닐라를 붙잡고 흔들며 철학을 논하라는 격인데, 글쎄? 그게 당신이나 가능하지 평범한 나로서는 눈이 시뻘개지고 두 볼은 발갛게 달아오르며 숨은 가빠지고 거칠어져서 당최 철학할 기분이 나지 않을 테니 말이얌. 차라리 당신이 마 교수처럼 <야릇한 성을 양성화해서 차라리 건전하게 즐기자>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내 감성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헐떡여 주겠는데, 이건 뭐 오르가슴의 순간에도 오롯이 이성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철학하자고 달려드는 당신의 논리에는 쉽게 공감할 수는 없다고~아무리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얌(") 그래도 한 가지 설득되기 쉬운 문장이 있었다. '그 순간보다 더 열정적인 순간은 없다. 그 열정이야말로 순수 그 자체다' 그래도 그런 열정은 너무나 순간적이어서, 또 말초적이어서 철학적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아무리 '자연 그래도의 순수한 상태'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하여도 사람이 매순간 그짓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루소가 사드를 베꼈는지, 사드가 루소를 베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당신은 연구대상감인 것 만큼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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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사드. 존 필립스. 웅진지식하우스. 아무리 내가 성격이 이상하다지만, 타인에게 “소돔 120일”부터 소개할 만큼 성격이 망가지지는 않았다. 진짜다. 남편에게는 ‘그러나 죄인은 용과 춤춘다“ 7권부터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그건 남편이니까 가능한 거고.
그리하여 도서관에서 사드를 검색하다, 이 책을 챙겨 두었다. 보통은 입문서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입문서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사드 작품을 진지하게 읽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다. 프랑스 혁명. 대 격변기에 살았던 사람. 사드는 혁명에 몸을 담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드 본인은 귀족이었다. 정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본래 사드가 속했던 진영의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버리는 걸 보며, 사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프랑스 혁명기. 이 모든 참상에도 구원은 없다. 참상만 끝없이 되풀이될 뿐. 만약 신이 있다면 이 참상에서 이 악다구니 속에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지 않았을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도 무의미하다. 인간을 구속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무가치하다. 그러니 사람이여.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그 모든 걸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가라. 성에 대한 가학적인 묘사. 신과 도덕에 대한 잔혹한 난도질. 이 키워드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사드의 작품을 분석하고 동시에 사드의 인생과 당시 사회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분석을 통해, 사드의 작품을 어떻게든 양지로 끌어낸다. 다만 거기까지. 저자도 딱히 사드를 읽으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사드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제시할 뿐이지. 저자가 묘사하는 사드를 읽으며, 나는 마광수 교수를 떠올렸다. 윤동주를 다시 발굴한 천재 교수. 하지만 즐거운 사라 이후 제대로 몰락해 버린 사람. 그는 단지, 본인에게 솔직했을 뿐이다. 다만 그 솔직함이 타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었을 뿐.
사드와 관련된 책 중, 그나마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읽으라고 권할 수 있는 책. 문제되는 부분들은 거의 인용하지 않은데다, 사드 본인의 서간문 등, 사드라는 인간 자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여러 키워드도 준비하고 있으니. 사드를 이해하는데 나름 도움이 될지도. 읽으라는 말은 안 하겠지만, 흥미가 있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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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지식하우스에서 출간한 How to read 시리즈 가운데 ‘사드’를 읽었다. 시리즈에 포함된 다른 책도 몇 권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지만 ‘사드’에 대한 서평을 굳이 쓰게 된 이유가 뭘까? 자신에 물어보니 ‘이런 책을 쓴 사람에 대해 서양의 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은 연구하고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라는 자답 때문이다. 사드가 쓴 원문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에 소개된 일부 내용만 읽어도 독서의 불편함은 심각하다. 과연 이런 내용이 책으로 가능하기 전에 인간의 사고로 가능한가 그리고 이런 생각을 다시 구성하고 책으로 출판한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How to read 시리즈는 시리즈를 출간한 목표를 정확하게 하고 있고 독자들에게 독서의 의미와 해석의 중요성 그리고 연구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그야말로 어떻게 읽을 것이냐는 진지한 고민을 다시 하게 한다. 극단적 쾌락주의로 보이던 그의 모든 책이 ‘현실에서 1% 미만의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는 극단적인 권위와 근본적인 신분질서 그리고 神 본위의 서양사고체계에 대한 최악의 반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How to read 사드>를 쓴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존 필립스 교수는 이 책의 뒷부분에 이렇게 정리한다. ‘사드의 영속적 유산은 그의 성적으로 폭력적인 시나리오나 그의 리베르탱들의 허무주의적이고 우상파괴적인 철학보다는 그의 사상의 중앙부 핵심, 신 중심적인 정신주의에서 인간 중심적인 유물론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며 그렇게 함으로써 낡은 신정(神政)질서의 해로운 미신을 없애버리고 모든 절대주의를 의혹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근대의 지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그의 사상에 있다’(179쪽) 사드의 소설들이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지 않지만, 학자와 연구자들은 사드의 소설을 통해 당시 시대를 분석하고 앞으로 미래에 준 영향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정권을 비판하고 기존 질서에 ‘아니오’라고 말만 해도 모두 ‘빨갱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황당한 이 시대 문화에서 만일 ‘사드’ 같은 극단적인 반골이 탄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드의 소설을 찾아서 읽을까 말까 고민 중이다. 그의 작품 <소돔 120일>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19금으로 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