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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구피 결혼식 때 보고 못 봤으니까 5년 넘게 연락을 못하고 살았네. 한 번뿐인 인생에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정신없이 사는지... 마음을 좀 추스르고 주변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워낙 힘든 세상이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네. 나는 이렇게 사는데 자네는 어떻게 지내는지....
가까이에서 교제하는 지인 한 사람이 베들레헴으로 떠나게 됐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먼저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였네. 툭하면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 지역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탄생지라는 것.
나는 사실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네. 아마도 지난 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잡는다고 레바논을 공격할 무렵부터 생긴 감정이 아닌가 싶네. 그때 이스라엘 아이들이 전쟁을 찬양하고 승리를 기원하는 낙서를 미사일에 써놓은 사진을 봤거든. 그게 날아가서 애꿋은 사람을 수도 없이 죽일텐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 어린 아이들이 말이야... 어쨌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게 아이들조차도 사람 죽이는 일을 예사로 아는 종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네.
하지만 베들레헴은 나에게 예수님의 탄생지이기도 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종교생활을 유별나게 하지 않는가? 나로서는 아는 사람이 예수님의 탄생지로 간다는 사실이 부럽게만 느껴졌네. 대화중에 그런 심중이 비쳐졌는지 출국준비에 바쁜 그가 책을 한 권 던져주더군. 『라피끄-팔레스타인과 나』라고 하는 책인데 워낙 최근 책이라 자네는 모를지도 모르겠군. 요 며칠 바쁜 가운데도 이 책을 읽었는데 나에게는 참 낯선 책이었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 지역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발견했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곳에 대해서 배운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나는 그곳을 항상 이스라엘 땅이라고만 생각했지 팔레스타인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어찌 보면 한 번도 그렇게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우리의 학창시절이라는 게 항상 미국을 동경하고 그와 더불어서 이스라엘을 미화시키는 그런 내용 아니었는가? 말도 안 되는 국가 공동체를 가르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비상사태에서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는지... 아마 지금도 그런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야.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그곳은 이스라엘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이더군. 마음 한 구석이 허탈했네. 학교를 통해서 배운 게 뭔가 싶어서 말이야.
한국 땅에서 나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이 책은 팔레스타인을 소개하는데 이스라엘 건국역사에서부터 글을 풀어가고 있네. 굳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거주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시오니스트들의 계획이 있고, 은근히 그것을 배후에서 밀어주던 영국의 지지가 팔레스타인 비극의 시작이었더군. 내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국가 없는 유대인들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국가 없이 세계를 떠돌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족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남아서 결국에는 잃어버린 조상들의 땅을 차지했다는 이야기로 들은 것 같네. 옛날 선생님들이 그 지역을 얼마나 알고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분들은 그들의 저력과 뛰어난 민족성을 꽤나 높이셨던 것 같아.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나는 그게 사실일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네. 하지만 알고 보니까 그들은 2천 년 전 성서에 나오는 그 유대인들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더군. 성서를 따르는 나에게는 많이 충격적인 사실이었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이스라엘은 시오니스트들의 정치적인 승리였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의 힘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시작보다도 나를 더 화나게 만든 건 그 다음이었네. 책 2부에서 소개하고 있는 현재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 때문이었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몇 조각으로 쪼개서 관리하고 있더군. 뉴스에서 가끔 나오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로 말이야. 서로 오가지도 못하게 하고 각 지역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물자와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네. 먹을 양식은 물론이고 마실 물을 포함해서 생활필수품까지. 베들레헴으로 들어간다는 내 지인이 그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 같은 울타리를 보여주었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떠오른 게 뭐였는지 아는가? <28주 후>였던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네만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높이 쌓아올린 방어벽이 나오는 어떤 좀비영화. 그게 생각났네. 이스라엘에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런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로 보였나 싶었지.
그곳의 출입구 역할을 하는 체크포인트(Check Point)라고 하는 곳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네.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이 무슨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되는 게 아니고 엿장수 가위질이라니까. 사람을 이렇게 가둬놓고 짐승취급하면 누구라도 총을 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이래도 저래도 죽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보이니까.
얼마 전에 가자 지구를 다녀온 김재명 씨의 글이 프레시안에 올라온 걸 봤네. 가자에는 비밀 땅굴이 2천 개나 된다는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땅굴을 통해서 생필품을 공급받는다고 하는데 그 글을 보니까 땅굴의 비밀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땅굴을 잡겠다고 지난번에 가자 지구를 폭격했지?
책에는 이 외에도 분쟁의 배후에 어떤 국가와 세력들이 있는지, 그들이 어떤 악을 행해왔고 또 지금도 행하고 있는지,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팔레스타인과 접촉할 수 있는지 등이 잘 정리되어 있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소리를 간간이 소개하기도 하고.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충격 받고 생각하게 된 것을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을 것 같군. 사실 요즘에 두꺼운 하드커버로 나오는 큼지막한 책들에 비하면 이 책은 분량이 거의 소책자 수준밖에 안되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책을 통해서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되돌아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네. 그래서 그 내용을 다 소개할라치면 아마 읽은 책보다 더 많이 적어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 그래서 말주변 없는 내가 시시콜콜 얘기하는 것보다 자네가 직접 이 책을 읽는 게 백번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물론 먹고 살기 힘든 요즘 같은 시기에 한가하게 이런 이야기나 읽고 앉아있을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러게 자네에게 읽어보라고 권해도 일부러 그걸 사러 서점에까지 가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책을 한 권 샀네. 자네 몫으로. 눈앞에 있으면 그래도 읽어보지 않을까 싶어서....
용산에서 여러 사람이 죽었네.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는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안겨줄만한 소식뿐이더군. 이럴 때 분노와 억울한 심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돌이라도 던지고 싶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보니까 그 어느 때보다 연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야기가 남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 자네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그때 들었지.
우리에게도 자유와 정의를 토론하던 때가 있었지? 이제는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런 걸 보면 우리도 이제 나이를 꽤 먹었나 보네. 어느 사이에 먹고 사는 것 좇는 것도 힘들어 하는 기성세대가 되어 버렸으니까. 언제 한 번 만나서 진하게 회포를 풀어봐야 할텐데...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잘 지내기를 바라고 보내는 책은 바쁘더라도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라네.
수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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