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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년대를 강인하게 살아온 이에 대한 기대였을까 신뢰였을까. 조금은 다소 뭉게어진듯한 그녀의 의지 앞에서도 나는 그다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녀가 살아가면서 터득했던 많은 것들이 이 책 한권에 녹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은 표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에는 현실과의 타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장취업과 성고문 고발, 노동인권회관 건립 등 그녀와 어울린다고 여겨졌던 것들로부터 멀어져 이제는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학자가 되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으로서의 이념적인 것들과 현실로서의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던 내 모습은 386세대들의 외도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학생운동의 경험을 하나의 경력삼아 정치권에 진출해버린 이들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통과의례로서 그 모든 것을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듯한 지난 시절의 투사들의 모습. 하지만 그녀에게서 그러한 거추장스럽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난 그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사람은 이념만으로 살아갈 순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조금은 가벼워보이고 소탈해보이는 그녀만의 스타일 속에 녹아있는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세상사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교수가 되어 여성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여전히 모국어 아닌 영어 때문에 주눅 들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택한 여성학이라는 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진 체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은 풀이 꺾인 386세대 라기 보다는 당당함 그 자체였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에 의해 구속받고 다른 이들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관심의 대상이 되며 살아가기 보다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문열의 ‘선택’을 읽으며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선택이 될 수 있단 말인가’의 질문만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것에 비하면 이 책은 말 그대로 ‘선택’ 그 자체들로 가득차 있다. 미국으로 이민간 것, 여성학을 공부하는 것 등, 그 모든 인생의 과정 속에는 그녀가 내린 선택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 변론하는 것들, 그 역시 여성으로서의 그녀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부모님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자신의 딸에 대한 각별한 사랑 속에서 그녀는 노동운동가이기 보다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다시 태어난 듯 해 보였다. 제 2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도 내 일상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떠한 선택을 내리고 있으며,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무엇인지,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주체일 수 있으며, 나의 선택을 내림에 있어서 나의 의지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 책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기분 좋은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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