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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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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즈음 젊은이들은 배움터를 마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해 안달이다. 나라밖으로 배우러 갔다오고, 토플이나 토익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온갖 일을 배웠지만, 뽑아주는 일터가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배움터에서 무엇을 배웠든 도서관에서 공무원이 되려고 밤낮 애를 쓰는 이들도 많다.  이들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가슴이 아프고, 이들의 아픔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도
"제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오발탄]" 내용보기

1.

요즈음 젊은이들은 배움터를 마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해 안달이다. 나라밖으로 배우러 갔다오고,

토플이나 토익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온갖 일을 배웠지만, 뽑아주는 일터가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배움터에서 무엇을 배웠든 도서관에서 공무원이 되려고 밤낮 애를 쓰는 이들도 많다. 

이들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가슴이 아프고, 이들의 아픔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도 편치가 않다.

 

유현목 감독이 1961년에 만든 <오발탄 The Aimless Bullet>은

요즈음보다 더 힘든 때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마음이 꺾여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영화다.

우리네 어버이들이 그 시절에 겪었을 일들을 영화 속에서 보고 있으면 가슴이 시려온다.

 

2.

요즈음의 공인회계사인 계리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송철호(김진규)는 사는 게 괴롭다.

그나마 아침이면 집에서 나와 일할 곳이 있으니 좋아해야 하는데,

품삯은 얼마 되지 않고, 딸린 피붙이는 많다.

 

어머니는 머리가 살짝 돌아 늘 고향에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나타나는 듯 "가자! 어서 가자!"만 외친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된 아내(문정숙)는 못 먹고 집안 일만 해서 골골거리고,

어린 딸 혜옥은 아비의 벌이가 어떻게 되는 줄도 모른채 졸라댄다. "나일론 치마 사줘! 고무신 사줘!"

 

바로 밑의 아우 영호(최무룡)는 군대를 마쳤지만 두 해째 일할 곳이 없어 빈둥거린다.

같이 군대에서 지내던 사내들과 선술집이나 찻집에서 어울리지만 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 아래 누이 명숙은 오빠 영호의 동무이자 중대장으로 군대를 다녀온 경식과 좋아하는 사이다.

그런데 경식은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는 터라 일하러 오라는 데가 없다.

그러니 같이 살자고 명숙이 졸라도 경식은 "나중에..." 하며 몸을 뒤로 숨긴다.

명숙도 일자리가 없고 경식도 돈벌이가 안 되니 같이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서로 바라보는 것도 어렵다.

 

막내 아우인 민호가 돈을 보태려 신문을 팔러 다닐 뿐, 피붙이 가운데 아무도 철호를 도우는 이가 없다.

사랑니가 아파 뽑아야 하지만, 치과에도 갈 형편이 못된다.

그러니 달삯을 받은 날 다른 데 놀러가는 건 꿈도 못 꾼다.

그야말로 입에 풀질 하기가 어려워 다른 건 생각도 못하고 살아가는 삶이다.

 

3.

젊은 몸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데가 없는 세상.

사랑해서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돈이 없어 같이 살 수 없는 세상.

죽자고 일을 해도 쥐꼬리만큼 벌고 늘 허덕이는 탓에 살맛이 안 나는 세상.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

그저 나오는 게 한숨이고, 하늘을 볼 낯이 없어 늘 고개를 숙여 다녀야 하고,

날밤을 새며 머리를 굴려보았자 달라지는 게 없다.

 

아내나 아이들한테 잘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고,

날마다 헛소리를 하는 어머니를 어떻게 할 수도 없어 철호마저 돌아버릴 판이다.

 

명숙은 같이 살 수 없는 사랑하는 사내를 버리고 코쟁이들한테 몸을 파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고,

영호는 군대에 있을 때 알고 지낸 오설희 중위를 만나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아픔으로 이어지고,

좋아했던 사람이지만 이젠 영화 배우가 되어버린 고미리한테 떳떳한 모습을 보여줄 길이 없어 마냥 헤맨다.

 

모두가 갈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아무 데나 날아가는 '오발탄'이 되어버렸다.

온 힘을 다 해 바르게 살아가는 철호마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어디로 가야 하나?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할까, 아우가 있는 경찰서로 갈까, 어머니와 아이가 있는 집으로 갈까...

등에 진 피붙이 짐짝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해방촌'으로 가고 싶겠지...

 

이들의 아픈 마음을 다독거리고 새살이 돋아나도록 달래줄 말이 있을까?

감독은 해줄 말이 없는 탓인지 입을 다물고 그들의 아픔만 늘어놓는다.

기껏해서 허수아비를 무서워하지 않는 까마귀만한 용기를 갖자고 할 뿐...

 

힘들게 살지만 이를 악물고 견디면서 힘을 내면 나중에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왜 말하지 못할까?

사람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런 꿈을 보여주지 못하면 어떻게 아픔을 견디어내나? 그저 안타깝다.

 

4.

세상의 아픔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해서 군사정권 때는 이 영화를 보여주지 못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모습과 잘난 삶만이 세상에 있는 건 아닐 테고, 어둡고 차가운 구석도 비출 건 비추어야 한다.

 

어깨를 짓누르는 피붙이 짐짝들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철호를 맡은 김진규는

허허로운 웃음 한 번 내비치지 못하는 모습을 빼어나게 보여준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에 지친 얼굴은 다른 이가 따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요즈음은 볼 수 없는 구경거리나 말들이 많다.

요즈음은 '형수'라 하지만 영화 속의 영호는 '아주머니'라 부르고,

시간을 말 할 때 늙은이는 새벽 '서너점'이라 하며, 사환이 끓인 보리차를 따라주는 모습이나,

왕대포라 적힌 선술집이나 건물의 꼭대기에 붙은 '오리온 캬라멜'은 푸근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잘 된 영화이지만, 몇 가지는 아쉽다.

말이 아니라 글을 읊어대는 곳이 몇 군데 나온다. 좋은 말을 보여주려 한 것일 테지만, 영화는 책이 아니다.

 

또 오설희가 사는 곳은 5층 꼭대기 방인데, 침대가 놓여 있고 가운데는 탁자가 있는 서양 방이다. 

영화를 보는 서양 사람들은 눈에 익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아주 낯설다.

우리네야 그 때는 온돌방에 살았지, 서양의 침대방에 살지는 않았다. 무대를 너무 꾸몄다.

 

게다가 오설희와 송영호가 나누는 말도 웃긴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 아니다.

"플리즈..." "컴 인" "송, 싯 다운" "굿 바이" "굿 바이"...멋을 부린답시고 한 것이겠지만, 안 어울린다.

 

5.

본디 필름을 잃어버려서 샌프랜시스코 영화제에 내었던 것을 찾아 디브이디로 만들었다.

그래서 영어로 옮겨놓은 말이 밑에 나오고, 오래된 탓에 알아듣지 못할까봐 우리말도 위에 적어 놓았다.

화면도 흐릴 때가 많다. 만든지 아직 50년도 안 지났는데 잘 챙겨놓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런데 디브이디를 뒤에 만든 덕분에 보너스는 나름대로 볼만 하다.

서현석 교수가 영화를 보면서 풀어 이야기 해주고, 유현목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b******g 2009.12.13. 신고 공감 0 댓글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