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 시절부터 사회인인 지금까지 경제학을 접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저, 고등학교 시절 정경이라는 과목에서 조금 배운 것과 신문 및 방송에서 들어 익힌 것들,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서 직접 접한 금융권과 세금 및 연말정산 관련 업무들, 이런 것들이 그나마 지금 정도의 경제에 대한 상식 수준의 지식을 제공한 전부이다. 발전보다도 분배에 조금 더 관심이 있고, 효율보다는 사회적 정의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성향은 그런 경제 지식과는 무관한 일종의 정치적 성향이었고, 세상에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외의 사회 시스템인 북유럽의 스웨덴, 핀란드로 대표되는 사회민주주의 정도의 절충이 있을 뿐이라 생각해 왔다. 이런 배경을 이야기하는 것도 어찌 보면 사족에 불과해 보인다. 어렸을 적에 추운 겨울 날, 동네 길에 누워 있는 걸인 한 분께 집안의 옷을 가져다 준 경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나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단순하고 아이다운 의문. 이런 저런 정보의 과잉 속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고 계속되는,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의문 “왜 나라는 발전하고 생활의 수준은 높아만 가는데, 주위에 가난에 찌든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까?” 아마도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고민과 지식과 경험이 쌓여가면서,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들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정상적인 성인으로의 성장 과정이었다. 헌데 정말 무엇 때문일까? 조금이나마 진지한 고민을 해보는 시간은, TV에서 인간 극장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뿐인, 생활 속에 함몰되어 가는 대한민국의 사회인이 되어가면서, 그런 어렴풋한 인지 과정도 그리 실감나게는 느껴지지 않게 되어 간다. 그런 정상적인(?) 대한민국의 사회인이 되어 가는 필자가 유시민 전 장관의 『청춘의 독서』에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파생 독서의 일환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1879년에 완결된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단순한 의문, 즉 “왜 나라는 발전하고 생활의 수준은 높아만 가는데, 주위에 가난에 찌든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까?” 에서 시작된다. 120년 전에 뉴욕의 사치와 빈곤의 공존을 보면서 이런 고민을 치열하게 하였던 헨리 조지는 이 책에서 그 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사회주의와 같이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혁명적인 변화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자본주의라는, 혼자 놔두면 필연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에 제시한다. 이미 이론으로서의 순수 자본주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즉 복지나 분배와 같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에 역행하는 수정 자본주의로서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헨리 조지가 이 책에서 역설한 해결책은 정말이지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오죽했으면 제 3의 이데올로기라 하였을까? 먼저,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간략히 살펴 보자. 지공주의, 즉 토지는 자연이 션물한 인간이 사유할 수 없는 공동의 재산이라는 명제가 해결책의 사상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공기와 햇빛과 같은 자연의 선물인 토지가, 경제학적으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건물이나 공장의 기반가 되므로 인간의 사유가 이루어졌고, 부를 창출하는 3가지 요소인 지대(토지 임대료), 이자(자본의 이익), 임금(노동의 이익)중에,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지대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높이게 되어 임금과 이자라는 부의 창출에 상한선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경제학에 일천한 필자가 보아도 참으로 이치에 맞는 말이다. 고로, 전체 부에서 지대가 차지하는 비율을 낮추는 것이 노동자가 임금으로, 자본가가 자본으로 노력을 통해 부를 더욱 효율적으로 창출하는 방도라 말한다. 또한, 헨리 조지는 사유한 토지를 이용하여 지대를 받아 생기는 소득은 일종의 불로 소득이라고 보는 사회 정의적 측면에서도, 위의 논리를 더욱 발전시킨다. 이와 같은 명제는 자연스럽게 토지의 사유화 금지라는 급진적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데, 헨리 조지는 1800년대 말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실현 될 가능성이 그나마 제일 높은 대안을 제시한다. 지대조세제라고 부르는 세금 제도인데, 근로소득세, 재산세 심지어 상속세와 같은 여타의 다른 세금을 폐지하고, 오직 토지임대 이익을 전액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주장이다. 당연히, 노동자나 자본가가 부담하여야 할 세금을 줄여 주고 물가를 낮추어 정당한 노동에 대한 부를 더욱 창출하여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사회적 바탕을 견고히 한다는 생각이다. 처음 이와 같은 주장을 접하였을때, 이런 저런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럼, 누가 토지를 소유하고자 할까? 결국 토지 가격의 하락으로 국가의 세원이 바닥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인간이 모여 살면서 산업의 효율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산업의 효율이 높아지는 토지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불가능하다면 경제 발전의 속도는 현저히 늦어지는 것이 아닐까? 흥미롭게도 헨리 조지는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런 상상을 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책의 후반부에 이런 논리에 대한 자신의 반론을 이성적으로 적어 놓았다. 그의 반론을 리뷰에서 전부 나열하는 것은 책의 핵심적 내용을 나열하는 것이 되어 피해 가야겠다. 필자는 최소한 이런 류의 대안이라도 내놓을 생각을 한 헨리 조지가 존경스럽다. 그의 일생을 보면 경제적인 부를 거머쥐고 편한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검소함을 잃지 않았으며 지대조제의 실현을 위한 운동가로서 자신의 일생을 바친다. 그의 일생을 바친, 한자지 아이러니에 대한 그의 집착은, 사람을 아끼는 가장 인간적인 그의 고충의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 단지, 한가지만 그의 주장을 전하고 싶다. 노예제의 폐지가 제기되었던 시기의 미국에서 "그렇게 되면 농업이 망한다. 경제가 망한다"와 같은 기우가 만연하였고 노예를 사유재산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유 재산제라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발상이라는 반론들이 만만치 않았는데 결국, 폐지 이후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노예제 폐지가 당연한 상식이 되어가는 것과 같이, 토지 사유제를 지대 조세제로 무력화 시키는 것도, 현재의 반론들에서 궁극적으로는 상식적으로 비추어 보아도 자유로워 질 것이라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그런 류의 생각을 발전시켜 "결국 토지 사유제는 노예제와 같은 비상식적인 제도다" 라고 단언한다.
토지 공개념이 민정당 정권(사람들을 보면 거의 지금의 한나라당의 전신이다) 시절이었던 노태우 정권에서 이야기되었던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이지만, 그 정도로 토지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회의 발전과 빈곤의 공존이 함께 하는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는 정치 집단이 있는지 궁금해 진다. 노무현 정권의 토지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하였다는 헨리 조지의 "지공주의". 작금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이성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할, 사고 전환의 보석 같은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최소한 현재의 빈곤 및 토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번 쯤을 또 다시 치열하게 고민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고민이 없으면 알지 못하게 되고 알지 못하며 진정한 발전이 있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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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님의 청춘의 독서를 읽으면서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이란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경제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현 시대의 나같은 사람에게까지 공감을 갖게하는 책을 썼고 또,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몇번이고 고심을 하고 썼다는 그 책이 너무 궁금했기에 원문으로 접해보고자 이 책을 주문했었다. 근데.. 이건 헨리조지의 일대기 요약과 그의 진보와 빈곤이란 저서에 대한 분석과 평가에 관련된 책이지 내가 원했던 진보와 빈곤, 헨리조지가 썼던 원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간 중간 중략이란 말로 생략되어버린 글들과 진보와 빈곤이 아닌 다른 저서들로 섞여버린 이 책을 보며 혼자 얼마나 허탈함과 분노에 휩싸였던지... 난 정말 원본을 읽고 싶었을 뿐인데 어찌 이런 책을 골랐을까...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은 거 간신히 참았다. 헨리조지의 원본을 읽고 싶은 분은 이 책을 사지 말고 조세지대제의 개념이나 그의 경제관념을 착실히 분석하고 평가해 놓은 책을 원한 사람은 이 책을 사도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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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이루어지는데도 '빈곤'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헨리 조지는 진보하는 지역에서 생산력이 증대하는데도 임금과 이자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불평등한 부의 분배, 즉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지주가 지대를 차지하는 토지사유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구가 증가하면 토지가치가 상승하기때문에 인구증가와 기술의 개선으로 부가 증가하면 지대의 절대총액 뿐만 아니라 총생산에서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증가한다.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3요소가 생산한 부는 각각 지대, 임금, 이자로 분배되며, 이들은 서로 배타적이기 때문에(72쪽, 그림2 참조),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져도 지대가 같은 정도로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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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토지를 공유하자는 '지공주의'를 주장했고, 이미 토지사유화가 관습화된 사회에서 토지를 공유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해마다 정부가 지대를 환수해 사회가 공유하고 그 대신 다른 조세를 면제하자는 지대조세제를 제안했다.(111쪽, 그림3 참조) 지대세는 가격전가의 효과가 없으며 생계비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때문에 지대를 환수하여 공공목적으로 사용하면 새로운 고용기회가 창출되고 임금이 상승하므로 임금노동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성경에도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써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25:23)" 우리는 이 땅위에 잠시 사는 거류민에 불과한데 어찌 그 땅에 대한 권리를 대를 이어 독점할 수 있겠는가.
![]() 헨리 조지는 정식교육을 14세에 마쳤고, 아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했을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5달러를 구걸할 정도로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온 힘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책의 저작권과 강의료만이 수입원이었음에도 책의 가격을 낮춰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저자의 인세를 낮추고 노동자들을 위해서 무료강의를 했다. 강연과 집필로 몸이 쇠약해지고 뇌출혈 증세가 있어서 절대안정을 해야 하지만 지공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뉴욕시장에 출마했다가 선거기간 중 운명했다. 그는 진정 "불의와 싸우고, 여론을 계몽하고, 수많은 사람을 타락과 참담속으로 몰아넣는 저주받은 제도를 깨뜨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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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고 열흘이 흘렀다. 다른 때보다 유독 후유증이 큰 탓에 아직도 그 허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TV의 뉴스를 보지 못할뿐더러 소설 같은 가벼운 읽을거리에는 손대기가 힘들다. 다른 때보다 충격이 큰 것은 아무래도 이번 당선자의 뿌리 탓일 게다. 진리나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를 둔 그녀, 혈연 관계를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이 땅에서 그녀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것은 지금 이땅의 대중들이 얼마나 진리나 정의와 거리를 두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너무나 확연한 바로미터이고,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더욱 큰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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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비슷한 시대를 살면서 물질적 풍요가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빈곤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보며, 불평등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 한 이가 헨리 조지라는 사람입니다. Marx가 생산수단(토지, 기계 등)의 사유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해체를 설명했다면, 헨리 조지는 자본주의의 근간은 그대로 두고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세금으로 환수하고 노동임금이나 자본의 이익으로부터는 과세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책의 제목만 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은 빈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걸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진보적 사고를 가로막는다는 내용인가 하는 추측을 했지요. 하지만, 물질적인 진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에도 빈곤으로부터 해방이 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저자가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물질적으로 매우 풍족해졌음에도, 대부분의 삶이 나아지지 않고 비참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유를, 헨리 조지는 생산요소 중에서 '토지'에 있다고 봅니다. 흔히 생산의 3요소라고 하는, 토지, 노동, 자본 중에서 실질적으로 생산에 이바지 하는 게 없는 토지가 대부분의 생산물을 걷어가는 것에서 빈곤의 원인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대조세제'라고 하는 획기적인 제안을 합니다. 노동과 자본으로 얻어지는 것에는 과세하지 말고, 토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득을 세금으로 걷으면 빈곤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입니다.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없애자는 그의 말은, 오늘날 온 나라가 땅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확실한 이윤을 보장한다는 것으로 생산에 투여되어야 할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그 뛰는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헉헉거리며 뛰는 땅값, 집값을 쫓아가느라 소비의 여력이 없습니다. 토지로부터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없게 하는 정책, 더 나아가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자금이 얻는 이익을 모두 세금으로 환수한다면 아마도 경기의 선순환과 복지정책을 위한 제정마련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현 상황에서 모든 토지로부터 얻는 이익을 환수하겠다는 정책을 시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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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차액지대론,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지대가 결정된다는 차액지대론 이미 그 수명을 다한지 오래된 지금, 특정한 토지가 상업 및 경제중심지에 얼마나 근접해 있고, 그로 인한 부가가치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지대가 결정된다는 “헨리조지”식 차액지대론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왜 그는 이러한 이론을 주장했는지, 또한 57세 짧은 생애동안 토지단일세를 도입하기 위하여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고 뉴욕시장 선거 유세기간 중 사망한 그의 이론이 정말 우월한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우연한 기회에 “토지공개념”이라는 주제에 관한 강연을 접했고, 강연 내용중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비주류 경제학자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이 인용되는 것을 보고, 책의 내용과 저자의 삶이 궁금해졌다. 저자가 40세에 쓴 이 책에 대하여 어떤 이는 19세기 이후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비문학 도서라고 추켜 세우기도 한다. 헨리조지(1839~1897)는 남북 전쟁이 일어나고 대륙횡단 철도가 건설되는 등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선원, 인쇄공, 출판사 사원과 같이 낮은 임금을 받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극심한 가난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한 신문사의 뉴욕지사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뉴욕이라 는 도시의 눈부신 발전과 진보, 그 이면의 대중적 가난과 궁핍이 상존하는 현실을 눈으로 보게 되자, 사회와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는데도 대중적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싶은 소명감을 바탕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이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신과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지구표면, 토지에 대한 사용권과 선량한 관리 의무, 토지에 대한 공익 추구 목적의 공동체적 이용 의무를 무시한 일부 사람들이 토지를 구분하여 사유화 하는 것 자체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신념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토지를 제외한 경제영역에 관하여는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지식이었지만 토지문제에 있어서만은 그가 살던 당시 사회가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진보적이고 과격한 이론 및 견해의 소유자였으며, 이 책을 한 장씩 넘길 때 마다 저자가 살던 동 시대의 사회가, 토지에 관한 자신의 과격한 주장을 수용하여 줄 것을 바라는 듯, 강한 어조로 일관되게 지공주의와 토지단일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류가 경제활동과 사적 토지이용을 적극적으로 해온 세월이 얼마인데, 19세기에 들어와서, 그것도 미국이란 나라에서 이런 과격한 이론과 주장을 전개하는 것인지 궁금하였기에 이 책에 더욱 몰입하였지만, 오늘날, 토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다른 나라보다 크고, 토지 사유화의 정당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저자의 신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자가 주장한 이 과격한 이론이 만약 현실로 실현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우리 대한민국 후손들은 토지와 주거 문제에 있어서 좀 더 적은 부담으로 더 자유로워 질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꿈을 꿀 수 있었다. 헨리조지는 토지단일세 도입을 통한 사회적 평등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아 일생을 통해 열정적인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50년이 지난 오늘날 그의 주장을 추종하는 일부 사람들만 그의 이러한 사상을 계승하여 전개하는 미약한 종적만을 남긴 것 외에는 아직도 그 노력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통하여 저자가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당시 사회진보, 특히 미국사회와 경제 발전의 모든 과실은 토지소유자에게로만 돌아가고 있는 동시에 모든 사회악과 대중적 빈곤의 원인이 토지 사유화와 임대료에 있다는 것과, 이는 신과 자연이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 준 혜택을 일부 사람들이 독점한다는 것,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처방으로 토지단일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 과격한 이론의 전개에 대한 독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군데군데 문학적인 가치와 표현을 섞어놓은 것은 저자의 책을 읽게 되는 대중들이 자신의 주장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받아들여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57세의 비교적 적은 나이에 일찍 사망하였으며 전혀 누구에게도 주류 경제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다방면의 경제학 분야에 있어서 박식했던 경제 이론가로서, 토지단일세의 홍보와 제도적로서의 채택을 위하여 뉴욕시장 선거에 출마하기까지 한 저자의 일생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의미가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저자 자신이 살고 있었던 동 시대의 사회가 토지사유화로 인해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였다고 생각하였으며 그 속에서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았던 대중들을 위하여 그가 가진 종교적인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해보고 싶었던 저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으며 토지 경제학과 관련된 또 하나의 색다른 이론을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또한 당시 번화한 뉴욕의 한 조각 토지를 소유한 지주에 비해 노동 소득만을 가진 노동자는 점점 더 안정된 생활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연민으로 뉴욕의 빈민구호소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을 저자의 마음을 이 책을 통하여 공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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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조지는 미국의 10대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서 이 분을 알기 까지는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진보와 빈곤]은 이 땅의 소유에 대해서 잘못된 사회구조를 낱낱이 파 헤쳤다. 경제적으로 더 많은 좋아지고 발달 되지만 빈곤은 퇴치 못 하는 이유를 말한다. 헨리조지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지만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을 받아드리고 개선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헨리조지는 종교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 헨리조지의 어록에는 이런 글이 있다.
그리스트교가 가르치는 것은 인간은 평등하며 신은 아버지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 형제라는 것이다. 그 가르침은 문명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무서운 폭력적 체제에 타격을 가했다.
노예들의 쇠사슬을 끊고 또 소수의 사람들이 대중의 노동 위에 거만하게 앉아 온갖 사치에 빠지고 노동계급으로부터 그 땀의 결정을 빼앗는 부조리의 사슬도 끊었다.
초기 그리스트교가박해를 받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또 그 가르침을 박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때 지배 계급이 일단 그것을 받아들인 뒤 그 뼈대를 제거해버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트교는 겉으로는 번성하였으나 초기 그리스트교와 같은 진정한 그리스트교가 아니라 부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만것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만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퇴색함도
잘 지적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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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 <목요 시민 책마당>이 지난 2011.1.6(목) 저녁 7시에 대구중앙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2011년을 여는 첫 토론도서는 『진보와 빈곤』(헨리조지 저, 김윤상 역, 비봉출판사)이었습니다. 지공주의 토지공개념 개념으로 저작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경북대 행정학과 김윤상 교수를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고 토론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일 7시였지만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먼저 강연자의 개괄적인 저자 및 도서소개와 여러 이론적 개념소개후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 책은 헨리 조지가 40살 때 무명에서 일약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책인데, 마르크스처럼 본래 빈부격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 차이보다는 자기 것을 제대로 못 찾아먹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발생한다고 이 사람은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주 소박한 상식이지만 현실에서는 토지를 가진 사람이 아무노력 없이 지대를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토지란 것은 지금 소유자가 만든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맬서스(『인구론』의 저자)는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한정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간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실제 결과는 농업혁명 등을 통해 인간이 그것을 극복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를 가졌던 맬서스는 목사였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으로 맬서스는 당시 스타가 되었는데, 당시 기독교인 부유층의 맘이 편해졌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가난한 사람이 많았는데, 부자들의 맘의 불편함이 많이 덜어졌다는 것이지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맬서스의 이론에는 허점이 많다고 합니다.
생산에 참여하지도 않은 사람이 ‘부’(富)를 가져가는 것은 잘못된 제도라고 말합니다. 노동하는 사람이 대가를 찾아 가는 것은 당연하며, 자본에 투자한 사람이 자본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토지는 그렇지가 않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그린 영화중 『파 앤드 어웨이』(론 하워드 감독, 톰 크루즈(조셉 도넬리), 니콜 키드먼(샤론 크리스티)주연)라는 영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영화는 1892년 서부 아일랜드(Western Ireland, 1892). 억압과 가난에 허덕이던 소작농(tenant farmers)들이 부당하고, 잔인한 지주(landlords)들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을 그린 영화입니다. 또 헨리 조지 시절에는 땅을 공짜로 가져가기도 했는데(땅이 풍부했고, 내가 농사지을 만큼 점유했음), 요즘은 땅은 거래로 사고판다고 말합니다. 토지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산적 노력도 안하고 또 미국의 토지담보부증권같은 금융기법의 발전으로 투기가 발생하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투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고, 지급 불능상태가 발생하여 현재와 같은 지경에 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헨리 조지의 이 책에서는 그것까지 예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때문에 사회전체가 망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헨리 조지는 “Make the land common weath”(토지를 우리 모두 공동의 것으로 만들자)란 슬로건을 말했다고 하며, 우파 경제학자들은 공유주의를 비판합니다. 헨리 조지는 현재 토지 소유자는 인정하고 단지 토지 보유세만 강력히 하자고 주장합니다. 그 계산법은 연간 임대가치를 구하는 것인데, 토지단일세제도를 도입하고 토지세를 올리고, 다른 세금은 내리면 토지임대가치가 늘어나 토지 소유자들에 보상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금의 공평성과 효율성 입장에서 토지 보유세 만큼 좋은 세금은 없다고 말합니다. 세금으로 경제가 나빠지면 어떻게 하느냐란 종부세 논란이 있지만 교과서에서 가장 효율적 세금은 토지보유세다고하는 이론이 있다고 말합니다. 유시민은 80학번 정도될 것인데 그의책 『청춘의 독서』에 헨리조지의『진보와 빈곤』소개가 나온다고 말합니다. 유시민은 그의 책에서 “그 무렵 말로만 듣던,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었다. 축약본이 었고, 내가 20대에 마지막 읽은 고전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헨리 조지의 토지 임대가치를 다 걷어 들인다면 토지의 거래가치는 ‘0’이 됩니다. 적어도 투기, 불로 소득은 없도록 하고, 토지 소유에 따른 원금과 이자는 두고, 토지 가격인상분만큼 걷어 들이고, 땅값이 떨어지면 보상해주자고 말합니다. 이제도만 일단 새행된다해도 부당한 분배와 불로소득, 토지 투기가 없어지고 투기로 인한 금융위기, 경제손실이 해소될 것이라 말합니다. 토지소유 때문에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무척 크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보유세는 우리나라의 10배정도 되며, 네덜란드에서는 토지정의당의 연정집권으로 3~4년 만에 경제가 아주 잘 성장했던 좋은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강연후 김윤상교수와 참가자들 간의 질의응답 및 간략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이론적이고 고차원적인 제도에 대한 논의라,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의 도서내용에 대한 이해와 지공주의에 대한 오해 등으로 약간의 부연 설명적 이야기들이 더러 오고 간 듯 합니다. 가장이상적인 것은 이 같은 토지공개념에 대한 이론적 무장과 학습이 충실히된 상태에서 높은 수준의 토론과 담화가 오가야 하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새로운 토지공개념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각성 및 간단한 이해정도로 마무리가 된듯합니다.
『목요시민책마당』의 특징은 일반 여타 독서토론회와는 달리 해당분야의 저자나 역자, 전문가, 교수 등 해당도서의 내용에 대한 충실한 지식과 정보를 발표하고 이야기 들려줄 수 있는 강연자를 매달 초빙해서 강연하는 큰 장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반독서토론회의 경우 해당도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벌어진다하더라고 그 수준은 비전문가,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대화와 이야기의 틀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반면, 이 모임은 그와 같은 한계를 전문가의 참여와 강연으로 해소하고 있습니다.
강연후 토론시간부분은 자유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아쉬운 점은 참여자가 많기는 하지만, 모두 한명씩 돌아가며 각자 약 3분정도씩 시간제한을 두고 질의응답, 발언기회를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어떤 시민 참가자는 자신의 의견과 질의응답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점유해보리기도 했고, 어떤 참가자는 내용이해를 위해 수차례나 질의응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발언기회를 가지려고 했으나 발언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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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만 9천여 평당 킬로미터.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토지 면적이다. 그러나 이 중 실제 소유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모든 사람들의 꿈이 내 집 마련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나 토지 소유에 대한 소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사유 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고대 시절부터 이어진 토지 소유에 대한 열망은 어린 시절 즐겨하던 땅따먹기라는 놀이에서도 엿볼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의 인식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토지 사유제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헨리 조지는 이 책에서 토지사유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그렇다고 그가 토지공유제를 주장하는 것 또한 아니다. 토지사유제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이끄는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주장과는 또 다른 제3의 이데올로기를 주창한다. 토지는 공유하면서 자본은 사유화하여 자본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개인이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에 당연시 되고 있는 자본주의 아래서 토지의 사유화는 부의 상징이며 재테크의 수단으로써의 성격을 정당화 시킨다. 그러나 토지를 사유화하게 되면서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지대가 같은 정도로 높아진다면 임금이나 이자율의 상승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생산과 분배의 법칙에서 토지가 절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생산의 한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대가인 지대선에 따라 임금과 이자의 분배가 나뉘기도 한다. 이러한 토지의 절대력을 통한 폐해를 없애고자 그는 지공주의를 기초로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의 개념을 도입한다. 지대조세제는 해마다 토지의 연간 임대가치인 지대를 정부가 환수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지공주의를 바로 도입하기를 원했다. 이론적으로는 토지를 공유화함으로써 형평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자본은 사유화된 상태로 놓아둠으로써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토지의 사유로 인하여 심각해진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으며 토지 투기 또한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가 사유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도입을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는 정책은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이다. 일정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진세율을 적용하여 재산세 이외에 추가로 부담하는 과세이다. 처음 이 정책이 도입될 때에도 그러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적용 대상과 범위에 대한 논쟁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추가적으로 토지를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는 의사를 보인다. 종부세를 더욱 강화하여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저자의 지공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토지는 어느 순간 생산 및 생활의 공간이 아닌 투기와 재테크의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변화된 토지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불로소득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일하지 않고도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므로 종부세의 대상과 세율을 더욱 높여야 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