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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쓴다’는 제목을 보고는 산문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제목 옆에 작게 ‘소설집’이라 써 있는 걸 보고, 그제야 소설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읽었다. 요즘 소설이 계속 땡겨서 이거저거 찾아 읽는 중인지라. 부산 곳곳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라기에 ‘지역문학’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소설책을 잡았을 땐 엎드리거나 누워서 볼 때가 많다. 텔레비전이나 만화책을 볼 때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그러니까 주로, 하릴없이 가는 시간을 붙잡아 주는 몫을 소설한테 맡길 때가 많다는 말씀. 이 책도 시작은 엎드린 자세였다. 그러다가 저절로 몸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건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찌르르해서는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한 순간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 이별한다는 것,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 짧은 글마다 나를,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이어졌다. 단편소설집을 한 번에 죽 읽어낼 필요는 굳이 없건만,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마지막 장까지 한 번에 내달렸다.
“그곳엔 우체국이 없어서 이 편지를 부칠 수가 없습니다. 담에 이 세상 삶 다 산 후에 내가 직접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있어요. 당신의 아내가.” (21쪽)
“저 보라색은, 하고 신영은 생각했다. 윤재가 좋아하는 색인데. 이런, 또, 하고 신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 그런데 나는 아직…. 왜 이럴까, 윤재야.” (111쪽)
“그가 떠나던 날, 나는 마음을 추슬러 공항으로 나갔고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 주었다. 그의 부담을 좀 덜어 주고 싶었고 내 몫으로 주어진 감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감당해 내고 의연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128쪽)
사별 또는 이별.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 흔하디흔한 삶이자 이야기들일 수 있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 있다고 했던가. 가슴속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을 법한 삶의 단면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목소리들이 내 마음을 애잔하게 울린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꼭 겪었을 일인 듯도 하고, 나도 언젠간 맞닥뜨리게 될 시간인 것도 같고. 어쩌면 이미 겪은 일일 수도 있고.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가지는 의미는 부여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지 본래부터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거죠. 아무리 사소한 사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추억과 낭만이 깃들여 있다면, 소중한 사물이 되는 것이겠죠.” (172쪽)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억의 고통은 가슴속에서 살아 퍼덕이기에 더 깊다. 하지만 그 고통이 있어 살아낼 힘도 솟아난다.” (264쪽)
어떤 이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아픔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공간. 그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건, 그것이 비록 가상으로 쓴 글일지라도, 나에게도 추억이자 아픔이자 행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보며 깨닫는다. 책 앞쪽 발간사에 나오는, ‘장소의 혼과 구체적인 삶의 진실을 찾아서’라는 조금 어려운 듯한 제목이 그제야 내 것으로 다가온다. 다른 이의 삶을 통해 내 삶의 진실을 흐릿하게도, 또렷하게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되새김질하도록 도와주는 것. 소설이 지닌 크나큰 힘이 아닐까. 소설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이런 말을 다 쓰게 되는구나. 내 마음을 조용하게 보듬어 준 이 책 덕에.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오늘…. 기대해도 괜찮을까?” (131쪽)
이 책에는 실린 단편소설은 모두 스물여덟 편이다. 그 가운데 굳이 해피엔딩이라고 내밀 만한 글은 몇 편 되지 않는다. ‘삶’은 현재 진행형이므로 ‘엔딩’이라는 말과는 모순이 되니 소설이라고 해서 해피엔딩이니 새드엔딩 같은 결말이 꼭 필요한 법은 아닐 터다. 소설은 ‘현실’과 ‘삶의 진실’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공간이므로. 내가 숨 쉬는 바로 지금 이 순간과 공간을 기쁘게 맞이할 희망을 조금이라도 안겨 준다면, 그것으로 소설은 제 몫을 다하는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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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부산. 23년동안 살고있는 부산.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과도 다르고. 그렇다고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그런 도시도 아닌, 아주 딱 중간에서 위아래의 조율을 잘 하고 있는 도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름부터 포근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이 책은 부산의 장소에 관련된 단편 소설집이다. 일단, 장편이 아니라서 길지 않아서 좋고. 둘째, 장소마다 아련한 추억들을 기록해둬서 내가 그 장소에 갔을 때, 소설의 내용이 떠오를 것 같은 느낌. 셋째. 소설가들의 특성이 소설마다 드러나있어 좋다. 한 번 손에 쥐면, 쭉 - 읽게 되는 책. 오랜만에 이런 책을 접해봤다. 그리고 나의 고향인 부산을 배경으로 쓰여져 더 좋은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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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고, 군 생활마저 부산에서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이 좋아하라 한 나로서는 한 번쯤은 부산을 다룬 작품집을 만나보고 싶었다. 난 운이 좋은 녀석이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최근에 나온 '부산을 쓴다'가 그런 책이다. 부산이란 공간을 무려 28명의 작가가 제각기의 개성을 듬뿍 담아 글로 풀어냈다.
그들에게 그 장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과거를 흐릿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오랜 후에는 사랑의 놀음조차 잊게도 만든다면, 장소는 그 반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소는 사람을 과거로 희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박향, '연인', 96쪽)
'부산을 쓴다'에는 28곳의 장소가 등장한다. 외부인에게도 잘 알려진 해운대와 태종대 외에도 토박이들에게도 생소한 두구동 연꽃소류지, 삼락공원이 소설의 배경으로 나온다. 박향 작가의 말처럼 장소는 사람을 과러로 회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가 본 장소에서의 기억과 소설 속의 활자가 겹쳐지며 애잔한 감동을 느꼈다.
한편, 28인의 문인 다수가 중견작가라서 최근에 내가 읽은 젊은 작가들의 글과는 다른 감성을 만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의 글쓰기는 유쾌하며 즐겁지만 때로는 '인생 뭐 있어?' 정도의 느낌인데, 이 소설집에서 그런 작품은 굳이 꼽자면 '야구장에서 돼지를 사냥하다'. 사별한 엣 아내를 추억하는 남편의 모습이나 영도다리 아래에서 옛 첫사랑을 떠올리며 포장마차에서 거하게 한 잔 하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중년의 여성/남성이 가지는 인생에 대한 감상이 소설집을 장식한다. 젊은이에게는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순애보'의 감정 말이다.
여하튼 기획 의도가 괜찮은 소설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