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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 독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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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대한 저작을 읽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본문만 900쪽이 넘는 책이지만 분량 얘기만은 아니다. 현대사를 핏빛으로 물들인 두 독재자, 히틀러와 스탈린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도 도전이며, 그들이 만든 체제를 전면적으로 마주하는 것도 도전이다.   리처드 오버리는 ‘독재자들’이라고 하여, 두 희대의 독재자들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정작은 이 두 독재자들이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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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저작을 읽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본문만 900쪽이 넘는 책이지만 분량 얘기만은 아니다. 현대사를 핏빛으로 물들인 독재자, 히틀러와 스탈린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도 도전이며, 그들이 만든 체제를 전면적으로 마주하는 것도 도전이다.

 

리처드 오버리는 독재자들이라고 하여, 희대의 독재자들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정작은 독재자들이 만든, 혹은 독재자들을 만든 나라, 체제를 분석하고 있다. 분석은 총괄적이며, 전면적이며, 세부적이다. 흥미로운 히틀러와 스탈린 개인에 관한 얘기와 그들의 정권 장악과 독재의 기술에 관한 내용에서 시작해서, 개인 숭배, 그들 국가의 성격(당이 지배하고, 테러로 건설되고 유지된 국가), 그들과 그들 추종자들이 만들려고 했던 유토피아의 성격, 그들이 내세운 윤리와 윤리에 기반을 동지와 적의 구분, 그리고 이후의 중국 문화 혁명을 무색케 하는 문화에 대한 폭력적 간섭, 그들의 경제적 성격과 경제가 추구한 군사 대국화, 그리고 전쟁(『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에서 자세히 다룬), 전쟁 이전과 전쟁 중에 극에 다다른 민족, 혹은 종족에 관한 차별과 절멸 정책, 그리고 그들이 만든 수용소의 성격까지. 이처럼 그들 국가의 거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것은 도전이 아닐 수가 없다.

 

저자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독재 체제를 비교할 있는가? 그리고 비교해야만 하는가?

독재 체제, 독재자의 유사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전체주의라는 체제의 실제적인 차이를 제거해버리고, 체제가 가졌던 역사적, 문화적 기반을 무시해버리는 약점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히틀러와 스탈린이 미치광이처럼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그래서 같은 놈이다, 라는 감정적 분석을 넘어서 있는 객관적으로 사람과 국가, 국가 기관을 분석하여 유사성과 차이점을 바라보려 시도가 바로 책이다.

 

책의 기본적 시각은 비록 독재자가 나쁜사람이지만(이런 표현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체제가 독재라는 것은 부인할 없지만, 독재 체제가 주민들의 승인, 혹은 협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공포만으로 유지된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독일, 러시아인들이 보기에는 기분이 나쁘고,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는(나아가 논란은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가진 우리로서도 내키지 않는) 시각이지만, 체제를 다양하게 충실히 복원하면서 그런 사실이 분명해졌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하여 체제가 정통성이 있다거나 인정받아야 요인이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독재자만을 비난하여 체제가 괴물 같은 역사적 변종으로 간주하고 싶은 유혹은 간절하지만, 그런 독재 체제가 특정한 역사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감정적 흥분과 의도적 무시에서 벗어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독재 체제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스탈린은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사회주의적 미래를 꿈꾸었으며, 히틀러는 자신이 속한 종족의 세계 지배를 꿈꾸었다. 그들은 독재를 위해서 그런 미래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유토피아를 꿈꾸었으며, 유토피아를 위하여 독재 체제를 수립했다. 그런 근본적인 차이로 말미암아 놀라울 정도로 닮은 체제가 같은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16세기의 가톨릭 교회 프로테스탄트만큼이나 확연히 다른 체제였다.

그래서 책은 체제의 유사성과 차이를 수도 없이 오가고 있다(읽다가 얘기가 독일에 대한 얘기인지, 소련에 대한 얘기인지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수백 번은 되었을 거다). 그러나 그런 분석을 통하여 도달하는 종착역은 다시 유사성인데, 유사성은 체제의 성격과 모습의 유사성이 아니라, 독재 체제가 , 그곳에서 출현했는지에 대한 설명에 대한 답이다.

 

유사 과학(이를 테면, 사회적 진화론, 근대경제학과 사회과학의 응용에 입각한 마르크스의 작업 ) 얘기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고, 국가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과 자유주의의 진보라는 이상을 거부하는 뿌리 깊은 경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고 있다(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도 다시 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타적이며, 포괄적이고,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국가, 세계를 건설하려고 했다. 또한 그런 독재 권력은 가혹했는데, 그건 실제로는 허약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리처드 오버리는 쓰고 있다. 두려움과 불확실성에 대한 반응이 바로 폭력이었다는 것이다(역시 인정할 밖에 없지 않은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상주의적 확신과 도덕적 확신이 결합하고, 자신들이 설정한(혹은 실제적인) 적에 대한 증오, 그리고 두려움과 불확실성에 대한 반응으로 극단적인 이분법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면서 독재 체제는 말할 없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세계를 만들었고, 파괴적인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유토피아, 혹은 이상주의의 폭력성을 보게 된다. 이상주의는 인류가 버릴 없는 것이겠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데서 나아가 남들에게 강요하는 데서 오는 폭력을 우리는 무수하게 보아 왔다. 그럼에도 그것이 통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상이기 때문이고, 그래야 팍팍한 현실을 살아갈 있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때문에 그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희대의 독재 체제를 통해서도 배울 있다. 또한 그런 이상주의가 만들어내는, 또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바로 이분법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든) 둘로 나눌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진심이든, 장난이든, 혹은 단순화를 위한 방편이든. 그러나 그런 이분법의 편의성은 결국에는 배제의 원리로 작용하고, 나아가서는 폭력의 근거가 되어 버린다. 독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16.06.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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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파괴적인 두 독재자, 히틀러 대 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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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 그들이 간 지 64년(히틀러 1945년), 56년(스탈린 1953년)이 지났지만 경험한 사람이든 아니든, 두 사람을 수천만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독재자로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 둘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툴 것이다. 알듯이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 떼어놓을 수 없다. 물론 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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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 그들이 간 지 64년(히틀러 1945년), 56년(스탈린 1953년)이 지났지만 경험한 사람이든 아니든, 두 사람을 수천만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독재자로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 둘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툴 것이다. 알듯이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 떼어놓을 수 없다. 물론 스탈린은 승자였고, 히틀러는 패자였다.

 

이 둘을 책 한 권으로 추적한 책이 있다. <독재자들>(THE DICTATORS)이다. <독재자들>을 쓴 리처드 오버리는 학자로서 언제나 논쟁의 최전선에서 물러섬 없이 "신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오버리는 < Russia's War > <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 따위 책을 펴내 2001년 전쟁사 연구자들의 국제적 모임인 미국 군사사학회에서 수여하는 '새뮤얼 엘리엇 모리슨 상'을 받았고 2004년에는 <독재자들>로 그해 영국에서 출간된 가장 탁월한 역사 저술에 수여하는 '울프슨 역사상'을 받았을 정도로 전쟁사 연구에 조예가 깊다.

 

<독재자들>은 20세기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재 체제를 수립했던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을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문헌과 치밀한 연구를 통하여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치적 전기이면서 한 편으로는 두 독재자들 만든 체제와 그 체제 속에서 살았던 인민들 함께 분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 연구가 답다.  

 

우리도 경험했듯이 독재자들이 인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지만 그를 추앙한다. 오버리는 바깥 세상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을 보면 전무후무한 독재자이지만 두 독재자와 인민들이 왜 그토록 강력하게 묶였는지 살핀다. 이 하나됨은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되는 과정을 명쾌하게 답해준다.

 

오버리는 스탈린과 히틀러 두 독재자를 비교분석한 것 중 흥미를 끈 점은 리더십 분석이다. 그는 스탈린 체제와 히틀러 체제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는데는 스탈린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히틀러는 자기 역량을 과신하고, 인종편견으로 인하여 결국 2차대전에서 승자와 패자로 갈랐다고 분석하고 있다.

 

알고있듯이 스탈린과 히틀러는 독재자로서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2차대전은 적으로 싸웠다. 둘은 1941년 동부전선에서 맞붙었다. 동부전선에서 소련은 전사자 867만명을 포함 사상자가 1140여만, 독일은 600만의 병력을 동부전선에서 잃었다. 스탈린이 이겼다. 2차대전 발발 당시 스탈린은 경제력이나 무기 수준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히틀러보다 뒤떨어졌다. 그럼 왜 히틀러는 졌을까?

 

자신을 과신한 히틀러, 능력을 한계를 인정한 스탈린

 

"두 적대국 사이의 전투력 균형을 바꾼 요인은 소련이 전선에 공급한 무기 수량의 급증과 무기배치 및 이용 방식의 대폭적인 개선에 있었다."(734쪽).  

 

즉, 소련은 전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십만 문의 포를 생산했지만 독일은 수만 문에 그쳤다. 전차 생산도 1942과 43년을 지나면서 소련 쪽이 독일을 따라잡았으며, 미국이 보내준 수십만 대의 지프와 트럭이 함께 하면서 '인민'이 아니라 한층 증가했던 현대전 무기들이 소련 아니 스탈린이 히틀러를 이긴 원인라고 오버리는 말한다.

 

하지만 현대식 무기만 아니다. 오버리는 전쟁 최고사령관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업무집행 방식 차이가 승패를 가른 또 다른 요인으로 꼽는다.

 

"스탈린은 국방위원회와 최고사령부(스타프카) 활동을 크레믈 사령부로 통합하였다.  스탈린은 정기적으로 최고위급 해결사들을 파견해 전쟁수행 노력을 감시했고 직접 보고받았고, 장군이나 관료들에게 직접 전화하여 지시를 내리거나 임무수행을 독려했다.(738쪽)

 

히틀러도 자신의 사령부에서 전쟁수행 노력을 지휘했으나 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전선을 직접 감독하는 일은 드물었고, 밀사나 대리인을 내려보내지도 않았다. 전쟁기간 중 최고사령관이 진쟁 진행 사항을 통합하고, 살피는 것과 한 번 내린 지시 이후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다면 승패는 뻔하다.

 

특히 스탈린은 소련군 최고 명령권자이지만 자신이 군사전략가로서 한계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같은 뛰어난 군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최고 명령권자라 할지라도, 군사전략가는 아님을 인정함으로써 군 지휘관들과 현장 지휘관들의 신임을 얻었다. 군사전력은 뛰어난 군인들에게 맞기고, 스탈린 자신은 국내경제와 노동력 동원에 집중하였다. 이유는 국내경제와 노동력 동원에는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점점 더 자신이 군사전략가로 탁월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내가 군사적인 문제 온 정신을 쏟는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그 문제에서 나보다 더 잘 해낼 사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741쪽)

 

군사전략가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는 "중요한 결정은 전부" 자신이 직접 내리겠다고 고집까지 했으며, 지휘관을 신뢰할 수 없었던 그는 전쟁 막바지 가장 작은 단위 부대 배치까지 직접 명령했다. 작전상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던 히틀러가 이렇게 고집을 피웠으니 지휘관을 신뢰했던 스탈린을 이길 수 없었다.

 

2차대전 승패만으로 스탈린을 부각시킬 수 없다. 둘 다 민주주의에 반한 자들이었고, 인민을 무참히 짓밟은 독재자였다. 우리는 <독재자들>을 읽어가면서 소름끼치도록 섬뜩한 두 체제를 발견하게 된다.

 

항상 독재자들은 자신들을 선한 자라 말하고,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이들을 반체제, 반국가로 몰아간다. 그런데도 인민들은 자신들을 살해하는 이들을 추앙한다. 히틀러와 스탈린도 마찬가지다. 오버리는 <독재자들>을 통하여 왜 인민들이 자신들을 살해하려는 그들을 추앙했는지 원인을 밝히고 있다.

 

"역사가의 책임은 두 사람 중 누가 더 악하고 더 정신이 나갔는지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두 독재체제로 하여금 그토록 엄청난 규모의 살인을 저지르게 한,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과 정신 상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29쪽)

k****e 2009.03.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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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세비키즘의 영악한 사이코패스, 극단적 민족주의의 광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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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란 표현은 어쩌면 매우 기만적이고 책임전가적 표현일 수 있다. 독재자를 단순히 폭군, 사이코패스, 도살자, 살인마로만 묘사하는 것은 본질을 오히려 못 볼 수 있다. 한 개인이 생사여탈권을 포함한 전권을 휘두르는 이미지는 신의 권위와 통치에 가깝다. 다만 이 신이 악마나 괴물로 불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전체주의는 ‘정치 종교’ 라는 말로 묘사되고 악의 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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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란 표현은 어쩌면 매우 기만적이고 책임전가적 표현일 수 있다. 독재자를 단순히 폭군, 사이코패스, 도살자, 살인마로만 묘사하는 것은 본질을 오히려 못 볼 수 있다. 한 개인이 생사여탈권을 포함한 전권을 휘두르는 이미지는 신의 권위와 통치에 가깝다. 다만 이 신이 악마나 괴물로 불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전체주의는 ‘정치 종교’ 라는 말로 묘사되고 악의 병리학의 연구대상이 된다. 저자 리처드 오버리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제3제국 연구로 유명한 역사학자이다. 그는[독재자들]에서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독재자 히틀러와 스탈린의 독재 시스템과 사회정치적 맥락을 연구하고 비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히틀러와 스탈린을 전체주의 도그마를 성공적으로 확립한 공통점에 주목할 뿐 양자의 차이점에 대해선 침묵한다. 통치자와 피치자의 관계는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저자는 두 체제가 공통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공유하는 반면 ‘서로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전체주의의 일반적 모델을 거부하고 독재 시스템의 특수성과 맥락을 강조한다. 독재 탄생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에서부터 개인 숭배, 대중 선동, 국가 테러, 총력전에 이르기까지 독재의 모든 층위를 속속들이 해부하여 보여준다.

 

“전체주의 정권의 이념형이나 전형적인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전체주의’로 분류된 체제들 사이의 실제적인 차이를 가려버린다. 전체주의라는 단어 자체는 권력과 억압의 기구를 일컫는 용어로서 체제의 폭넓은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포부를 무시하는데, 이런 야심이야말로 그 용어가1920년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질 때 원래 포함했던 것이다.”(27-8쪽)

 

그래도 차이점보다 전체주의로서의 공통점을 먼저 언급하는 편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1.00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에서 다루는 전체적인 내용도 양 체제의 유사성이 특수성을 압도한다. 히틀러와 스탈린 독재체제가 전체주의로서 갖는 공통점은 우선 초인 개념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고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과 숙청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식인에 대한 멸시와 경시도 공통점이다. 국가 보안기구의 성격이나 대규모 수용소의 이용, 문화적 생산물의 완벽한 통제, 시체 더미 위에 건설한 사회적 유토피아 등에서 명확한 유사성을 보인다. 그리고 매우 짧은 시간에 주민들의 가치와 사회적 열망을 변화시키고 막대한 사회적 에너지와 공포스런 폭력을 풀어놓은 혁명적 체제였다. 독일인과 러시아인들이 열광적으로 그들을 지지했고 그들이 대표한 가치를 옹호했다. 경제적으로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소련에서는 부르주아를 파멸시켜 혁명적 목적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독일에서는 모든 예금주들이 파산하면서 폭발한 분노가 훗날 히틀러식 민족주의가 등장하는 데 기여했다. 대외적으로는 소련과 독일 모두 왕따였다.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독일은 1914년 1차대전의 도의적 책임 때문에 천민취급을 당했다.

 

"두 체제에는 유럽의 자유주의와 인도주의 거부, 혁명적인 사회적 야심,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집단주의, 사회적 목표의 형성에서 과학이 수행한 중요한 역할 같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두 체제의 이데올로기는 명백하게 달랐는데, 이러한 차이 때문에 양자 간의 최종적인 헤게모니 전쟁이 벌어졌다. 소련 공산주의는 지금에 와서는 매우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인류의 진보를 위한 도구가 되려는 뜻에서 출발했고, 반면 국가사회주의는 성격상 특정한 민족의 진보를 위한 도구였다."(37쪽)

 

 

z***a 2010.12.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