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지금 요양병원의 한 병실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 촘촘이 놓인 병실 침대마다 병문안을 온 가족들로 분주하다. 살아있는자들의 피곤과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의 절망과 공포, 그 사이를 오가는 병원 관계자들의 평온함이 마치 수프처럼 뒤섞여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연출한다. 병상에 누인 환자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하루 종일 신음을 내뱉거나, 목 안에 고인 가래를 옅은 호흡으로 연신 밀어내거나, 수발을 드는 가족에게 분노의 눈초리를 쏘아보내거나, 알아 듣기 힘든 말을 하염없이 외치거나, 이미 목숨이 끊어진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죽음의 개별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살아갈 때 저마다의 삶은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감추어야 할 게 없는 까닭이다. 이곳은 마치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쯤에 속하는 듯 곳곳에 놓인 도구들이 마치 신기루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 아버지의 침대 옆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은 독일의 전문 사진작가인 발터 셸스와 저널리스트 베아테 라코타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23인의 환자들을 만난 기록들이다. 나는 이 책을 요양병원의 병실에서 읽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사람들 곁에서 삶의 마지막을 기록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잘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생뚱맞다. 적어도 나처럼 살아 있는 자에게는 그렇다. 그것은 마치 죽어가는 환자들을 비웃는 듯 보이기도 하고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책에서는 나란히 암에 걸린 엄마와 아들이 벌이는 힘겨운 투병과 아름다운 결별, 수없이 자살을 시도했던 한 여인이 마지막 순간에서야 미치도록 살고 싶다고 외치는 절규, 두 딸의 행복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하는 한 여인의 죽음, 친구의 두려움을 달래주려 매일같이 병원에서 파티를 열어주는 따뜻한 우정, 죽음도 변화로 받아들이며 즐거운 결말을 꿈꾸는 한 워커홀릭의 기다림 등 삶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다양한 죽음이 등장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다들 그렇게 죽어가겠지.' 생각한다. 그러나 보편적 삶은 있어도 보편적 죽음은 존재하지 않음을 이 요양병원의 풍경에서 깨달았다.
"죽음은 영원하지 않아요. 삶 역시 짧지요. 숨을 쉴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죽음을 향해 다가갑니다. 그리고 죽은 후 신에게로 가면 우리는 더 아름다워집니다. 마지막 순간이 결정합니다. 아직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요." (p.202)
아버지는 잠깐잠깐 잠들었고, 그러다가도 생각난 듯 문득 눈을 떴고, 이따금 여기가 어디냐 물었고, 답답한 듯 이따금 일어나 앉으려 했다. 코에 꼽은 산소호흡기줄과 아주 천천히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줄과 각종 검사를 위한 도구들이 발목에서부터 얼굴에 이르기까지 온몸을 옥죄고 있는 까닭에 돌아누울 때마다 신음을 내뱉곤 한다. 옆 침상에서는 간혹 환자 자신이 믿었거나 가족들의 부탁이 있었던 것인지 약식 종교행사가 열리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멀거니 천장만 응시하는 환자를 위한 게 아니라 환자의 가족들, 이를테면 산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책의 각 파트에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록과 함께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과 죽은 직후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실려 있다.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긴 듯한 죽음 이후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인다. 나의 아버지도 그럴까? 의학적 기록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짐작과는 관계없이 아주 천천히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급작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 과정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농촌 사람들은 60퍼센트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도시인은 90퍼센트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눈을 감는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낯선 의사와 간병인들에게 둘러싸여 죽는다는 뜻이다. 그들의 근무 일정표가 마지막 삶의 리듬을 강요하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 역시 울타리 밖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막연하고 순진한 꿈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가족, 친구의 육체적 몰락과 극적 부수현상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뿐인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위협으로 다가온다." (p.251~p.252)
하늘은 잔뜩 흐렸다. 병실 밖의 풍경은 단 한 번도 내가 속해보지 않았던 것처럼 낯설다. 바쁘게 드나드는 차량과 의례적인 인사를 하며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답답함이 느껴지는 병실 안의 풍경. 나는 또 삶의 현장으로 복귀할 테고 초조한 나날들이 흘러갈 것이다. |
|
죽음을 막연히 두려워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철모르던 어린 시절엔 딱 그 나이에 맞는 상상력이 보태져
어떤 영적인 것을 상상하며 두려워했고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후에는 생과 이별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 질병이 주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음이 더없이 무서웠었다. 죽는것에 대해서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어떤 교수의 책을 통해서 비로서
죽음도 나의 생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면 생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의
시간또한 내것이니 그 시간을 결코 헛으로 보내면 안되는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죽음 자체만을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죽음은
내것이 아닌것처럼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럼으로써 짧은 마지막, 귀한 시간을 소비해버린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은 생에 마지막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호스피스 병동의 사람들의
사연들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바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희노애락과 애증의 이야기이자
우리 자신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죽음앞에서 의연하려고 하지만 왜 나일까라는 인간적인
고뇌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절망감
시한부의 짧은 시간동안 인생의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바심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세상이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에야 비로서
아름답게 느껴지는데서 오는 아쉬움
죽음앞에서 작아지고 나약해지는 모습들은 내가 아니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모든것이 끝나기 전에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죽음또한 내 인생이니 내 마음대로 정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의식을 잃는 순간부터 그런 권리는 이미 내것이 아니다.
아직 의식이 있을때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것은
슬픈 일이면서도 기쁜 일이다.
내가 누을 관을 고르고, 부고장을 직접 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 파티를 하고.
생전의 모습은 번뇌에 시달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이었지만
눈을 감은 후의 평화로운 모습은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 갖는 행복함이다.
이쯤되면 죽는다는 것은 슬프지만 두려운것은 아니다.
축복속에 태어나고, 인생을 잘 살았다면,
죽는것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삶이 내것이듯 나에게 달린 일이다.
죽음앞에서 두려워지지 않기 위해 오늘의 삶은 더욱 가치있어야 한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건 내 죽음의 질을 결정하는 시간들이다.
왜 나여야할까라는 억울함,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단절감,
왜 이렇게 살았을까라는 후회 따위는 하지 않게
오늘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나의 시간들이 모두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
|
진정한 웰다잉의 의미를 찾아서..
마지막 사진 한 장은 독일의 전문 사진작가와 저널리스트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23인의 환자들을 만난 기록을 사진과 함께 엮어낸 책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움으로 멀게만 느끼며 살고 있지만 마지막 사진 한 장을 보며 가장 절실히 깨닫게 되었던 점은 죽음을 피하고 두려워하기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생길 일이고, 또 그 마지막을 내가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피하지 말고 용감히 생각하며 마주 대할수 있어야 한다. 호스피스 병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죽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얼마나 절망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일지.. 난 그렇게 생각했다. 남은 인생마저 다 포기해 버릴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아닐까? 죽음을 아는 사람들인데 맨 정신으로 어떻게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버틸지 의아하기도 했다. 호스피스 병원은 생명 연장 조치도 전혀 실시하지 않는다. 그 곳에는 인공호흡기도 없고, 소생술, 간단한 의료기기도 없다. 의료진은 흰 가운을 입지 않고 엑스레이나 컴퓨터 촬영도 하지 않고, 혈액도 뽑지 않는다. 그대신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랠수 있는 수단은 24시간 구비되어져 있다. 인생에서 죽음을 만난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없겠지만 호스피스 병원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병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삶을 정리할 시간도 갖는다. 자신의 삶이 곧 끝나게 되리란 사실을 알고 있으며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겠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자기 인생을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또는 죽음에 이를때까지 남은 시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물론 호스피스 병원에서 만났던 사람중에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 무엇도 위안이 되지 않았고, 죽음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워 헤매이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원이야말로 삶을 정확한 눈으로 되돌아보고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더 개선하고픈 희망과 죽음이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함으로 뭉친 희망의 장소였다. 호스피스 병원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부터 인생은 더 이상의 어떤 희망도 없고 슬프고, 절망적일 것이란 생각으로 책을 보기 시작했지만 의외로 호스피스 병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기 인생을 더 사랑하고,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곳이란 사실이 너무나 뜻밖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남은 생을 정리할 수 있는 그들의 마음이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죽음이란 단어만으로도 우린 살면서 한 번도 절실히, 그리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희망에 열심히 살 뿐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내 인생의 마지막 그 날...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한 번쯤 진지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살아야하는게 중요한 것처럼 잘 죽는것도 그만큼의 의미가 있고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태어난지 이제 얼마 지나지 않은 갓난쟁이, 어머니와 아들.. 참 많은 사연에 많은 아픔으로 내 눈에는 힘겹게만 보였던 그들이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23인의 모습을 살아서 찍어두었던 사진과 몇 일이 지나, 또는 몇 주가 흘러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사진을 한꺼번에 같이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 참 많은 생각이 오고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죽음을 맞이 한 후에 찍은 사진에서 모두 편안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산 그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내 인생.. 정말 죽을 각오로 살아보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죽는 것보다 힘든 일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
|
뇔커는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병원을 나선다. 그전에 그는 루트 글란더에게 코트찬이 죽기 2주 전인 1월의 어느 하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은 밤새도록 함박눈이 내렸다. 뇔커는 병원 문 앞에서 솜처럼 하얀 눈을 뭉쳐 큰 눈덩이를 만든 다음 허겁지겁 뛰어서 코트찬의 병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이 서서히 녹아 물이 되는 걸 지켜보며 물이 다시 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
죽음을 앞둔 시점에 입원하는 병원에 관한 책. 이런 독특한 소재는 내 개인적 경험과 함께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에겐 의지했고 서로를 이해했던 둘째 형에 관한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 형은 나를 세상에 남겨놓고 다른 세상으로 갔다. 그런 생각이 언제나 마음 속 어디선가 숨쉬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은 나에겐 과거의 생각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문제를 일깨우고 있다. 죽을 지도 모르는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평범과 영원한 질문을 이 책은 포기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살아서 나간 사람은 없었다 라는 자조 섞인 글에서 상징되는 죽음의 그림자는 이 책의 모든 것을 구성하고 있다.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혹은 환자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이미 결정됐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어온다. 그들에게 삶을 유지시킬 수 없단 생각을 갖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환자든, 환자 가족이나 친구든, 심지어 의사까지도. 어느 영화나 소설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이곳엔 없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것을 이 책은 대놓고 표현한다. 그래서 이 책의 질문은 다른 것임을 보여 준다. 멋있는 죽음은 있을까 책 저자와 사진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죽기 전에 사진 하나를, 그리고 죽은 후에 사진 하나를 남긴다. 그 시차는 일주일은 넘기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그런 사진들과 함께 작가는 환자들의 일상사와 그들의 과거, 혹은 인연과 관계들을 절제를 갖고 서술한다. 다양한 기억들로 채워진 그들의 이야기엔 죽음을 앞둔 자들의 슬픈, 기막힌, 그리고 안타까운 이야기들로 점철돼 있었다. 어린 딸의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심정에서부터 강인함으로 살아왔던 어떤 할머니의 마지막 간절한 부탁을 담은 이야기 등, 이 책은 막바지에 다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생생하게 풀어내놓고 있었다. 특히 아들과 어머니의 죽음이 한 순간에 일어난 사건은 무척 가슴이 아팠다. 이런 죽음에서도 서로간의 불신이 가득해서 따로 살게 된 어느 부부의 화해와 용서는 인간관계의 핵심과 복원, 그리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불신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슬픈 장면이기도 했다. 23명의 슬픈 인생을 갖고 있는 환자들은 한 명을 빼곤 죽기 전과 죽은 후의 사진을 갖고 있다. 그런 그들이면서도 이 중 한 명을 빼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고 죽음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강인하기 그지 없었던 할머니가 죽음에 임박해서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모습을 볼 때 인간의 나약함을 이해하게도 되었다. 또한 잘 나가던 광고업계의 중역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는 물론 그의 친구와 가족이 그렇게 피하려 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의지와 욕망, 그리고 현실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인간의 강인함은 어쩌면 위선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난 형의 죽음을 죽기 전까지 믿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생각났다. 아마 나의 그런 욕심이 형을 더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형은 우아하게도 행복하게도 떠나진 못한 것 같다. 아마 이 책의 목적은 행복한 관계로의 종결을 담아 내려 한 것인지 모른다.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온 환자들과 어떤 점에선 한가지는 포기했다.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런 마음 속에서 이 책이 주목한 것은 마지막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이며 그것을 찾는 노력의 결과가 이 책일 것이다. 죽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도 그 때까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인간적 삶과 행복을 마련하는 것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이 더 짧게 될 수도 있지만 진통제를 부과하고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려는 이 책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생의 의미와 나약함, 그리고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아마 누군가에게 찾아올 인간의 나약한 모습에 대해 우린 더 생각해 줄 수 있는 아량을 우리와 사회가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조그만 소망을 우아하면서도 슬프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
|
이 책을 손에 들면서부터 나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
글을 읽기 전에 책에 실린 사진들을 먼저 일람했다. 사람들의 죽기 전 얼굴과 죽고 나서의 얼굴을 비교하면서 나는 참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너무나 단순명쾌하게 정리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한없이 나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반드시 나이 순으로 죽는 것도 아니기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내가 죽을 수도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일이다. 책에 소개된 호스피스 병원 환자들의 삶에는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마지막 인사가 될까봐, 포기한다는 말로 들릴까봐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결국 하지 못한 남편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오래 잊히지가 않는다.
연말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반면 또 생에의 의지를 강력하게 붇돋는 힘을 가진 책이다.
당신은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할 권한이 없다. 마지막은 정말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것이다. 당신은 그저 오늘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다.
정말 훌륭한 책 한권을 연초에 만났다. |
|
독일의 전문 사진작가와 저널리스트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23인의 환자들을 만난 기록을 담은 책. 인생의 마침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풍경을 마지막 사진과 함께 전하며,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유럽 전역에 '웰다잉'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사진전의 모태가 된 책이다. ---------------------------------------------------------------------------------- 알라딘 중고서점안에서 돌아다니며 책 구경하던중에 눈에 띄어 집어들고 계산한책 제목만 봐도 대충 무슨내용이겠거니 짐작이 가능했지만, 직접 보니 생각보다 많은걸 느끼고 생각하고 배울수 있었다. 확실히 사람 죽은 사진같은것, 시체사진.. 동물사체사진.. 이런류의 사진을 잘 못보는데... 이 책의 사진은 뭔가 보면볼수록 울컥한게 느껴졌다.. 살아생전에 찍은 사진한장과 죽은후에 찍은 사진 한장이 나란히 있는데 불과 몇주 몇개월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아픈사람들이라 사진에서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살이 쫙 빠져있는 힘없는 그런 모습들.... 마지막을 기다리며 사이가 안좋았던 사람들과 화해도 하고 하고싶었던것도 하고 억울하다며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저런 스토리를 읽으면서 아직 멀었을지도 아니면 가까이 왔을지도 모르는 나의 죽음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런류의 책을 앞에두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아쉬웠던건 거의 마지막으로 가니.. 뭔가 지루하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었지만.. 책의 막바지여서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데?라는 생각이 들 무렵 책이 끝나버렸다.. 뭔가 책을 읽다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면 잠시 접고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면서 볼 만한 책인듯 싶다.. 무조건 한번에 끝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한번에 읽는 것보다 조금씩 나누면서 생각하면서 읽으면 참 내 미래에 대해서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호스피스에 대해 찾아봤는데 우리나라에도 호스피스가 있는걸 보고 놀랐다.. 확실히 여태껏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존재의 여부조차 몰랐던걸 이렇게 책을 통해 뭔가 하날 더 알아간다는 사실이 좋았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미루기 위해 병원에 누워 각종 의료기기에 몸을 연결해서 겨우겨우 하루하루 연명하는것보다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고 마음편하게 고통을 완화시키면서 그렇게 죽어가는게 어쩌면 더 나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환자로 재발견한다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와닿았던 그리고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 있게 된 책을 찾은것이 고맙고.. 이 책을 읽은 시간이 뜻깊었던것 같아서 좋다.. |
|
아주 지독한 기획서이다. 작가와 사진작가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 죽어가는 사람들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모습과 죽음 직후의 모습을 남기는 작업. 기획서가 넘치는 한국이지만 아마도 이런 기획은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 같다. 죽은 후의 모습을 남기는 작업을 한국의 유가족들은 찬성할 수 있을까 아니 본인은 찬성할 수 있을까? 자신이 죽은 후의 모습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독일이니까 가능했던 기획서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한 번도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나로서는 책장을 넘기기가 아주 힘든 책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의 사진이 나온 후 한 장만 넘기면 바로 나타나는 그의 사후의 모습.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책 장을 넘기는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두려움, 무서움, 죽음에 대한 회피… 아마도 그런 것이었으리라. 지상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을 남긴 사람들의 초상을 보며 느낀 것은 뭐랄까, 아, 죽으면 표정이 없어지는 거구나. 그런 거였다. 너무 단순하지만 너무나 마음 아픈 진실. 그리고 만약 스콧 니어링 할아버지처럼 집에서 우아하게 죽을 수 없다면 적어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으리라 결심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오면 사람들이 안락사를 원치 않는다는 말이 힘이 됐다. 죽음 직전의 구토와 호흡곤란의 공포가 완화치료라는 것 때문에 조금 줄어들었다. 적어도 죽는 순간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 이후에 대한 공포는 또 나중의 일이니까.
중세 사람들이 탄생시켰다는 <아르스 모리엔디 ars moriendi> 영혼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죽는 기술. 그때의 필요와는 확실히 다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기술이 아닐까 -때론 관심이 약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일상이 될 수는 있어도 절대 단련되지는 않는 법이다. -또 한번의 삶이 있을까 -삶을 떠나 죽음으로 가고 싶어. -부고는 그녀가 직접 작성할 생각이다. 맨 위에 들어가는 문구는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랑이다.’ -건강할 때 한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 품위있게 죽고 싶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것을 보았던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데 쓰고 싶다. -난 확신해. 정신의 세계는 죽지 않는 거라고. -늘 주기만 했지 받지는 못했습니다. 내게도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는데... -죽음은 영원하지 않다. 삶 역시 짧다. 숨을 쉴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 生中死 -그 후에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슬퍼할 이유가 없다.
|
|
![]()
사람은 죽게되어있다. 이 책은 호스피스요양원에 찾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환경이 그래서 인지 주위에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이 많다. 순서없이 찾아오게 되는 마지막...매일 사랑하고 매일 웃고...매일 나를 사랑하면서 시간을 먹어치워야겠다. "하지만 우리는 늘 여행을 다녔지. 여행은 정말 멋진 거야. 따지고 보면 인생도 여행이 아니겠어?" 들뜬 표정으로 그녀가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