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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 3] 치열한 논쟁을 엿보며, 사고의 씨앗을 발견하다
"[히스토리아 대논쟁 3] 치열한 논쟁을 엿보며, 사고의 씨앗을 발견하다" 내용보기
# '실용'이 강조되는 시기, 그래서 더욱 절실한 토론과 논쟁.          경제가 힘들다. 앞으로 적어도 일년은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년 뒤에 꼭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불안의 시대, 생존과 힘겨움은 더욱 '실용'을 강조하게 만든다. 무엇이 옳고 좋은지 따지는 시간을 줄이고,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실용'은 보기에는 매혹적이지만, 씨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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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용'이 강조되는 시기, 그래서 더욱 절실한 토론과 논쟁.

 

    
   경제가 힘들다. 앞으로 적어도 일년은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년 뒤에 꼭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불안의 시대, 생존과 힘겨움은 더욱 '실용'을 강조하게 만든다. 무엇이 옳고 좋은지 따지는 시간을 줄이고,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실용'은 보기에는 매혹적이지만, 씨없는 수박처럼, 먹고난 후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가 힘들고, 어려울수록, 국민통합을 강조한다. 취직을 못하면 힘드니까, 힘들어도 '비정규직'으로 버티면, 나중에 경제상황이 좋아지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니가 조금만 참으면, 다 잘되는거야. 지금의 문제의 원인도, 니가 참고 견디면 돼. 옛날처럼 말이야.

 

  박정희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성장'의 시대, 중화학공업과 제조업 발전은 중앙집중적인 선택으로 재벌이 만들어지고, 지금의 경제발전력의 원동력이 되었다. 빛의 강렬한 만큼, 인권침해와 정치적자유의 한계, 무엇보다 소수자들의 권리와 이익의 침해가 너무나 심했다. 힘들어지면, 그때의 힘겨웠던 잔인했던 기억들은 뭉개버리고, 그때는 취직이 잘되었는데, 경제로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하며, 뛰어난 지도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뛰어난 지도자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세상을 행복하게 바라보면서 살 수 있는 시대로 가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를 돌이켜 봐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를 유지하는 체제의 장점과 문제점을 알아야 한다. 좋은 사회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점검하고, 그것을 최소화 한다. 후진사회일수록,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많고, 그것도 대충 눈가림일 뿐, 다시 똑같이 문제가 되풀이 되기 일쑤이다.

 

 '용산 참사' , '화재' '전국적인 가뭄', '실업 대란' 문제는 많이 발생하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해법은 잘 도출되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주는 대책이 많아지고,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일방통행식, 나를 따르라가 만연하고 있다.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무능력해서 설득할 능력이 없다는 말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론을 하려고 보니, 많이 모르고 놓쳐가고 있다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 직접행동, 불복종, 기본적인 단어는 알고 있지만, 사회현상에서 이것이 어떻게 해석되는 것이 바른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분분하다. 촛불시위와 대의민주주의 혐오와 촛불시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불복종 운동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이야기하려고 보니, 좋은 게 좋은것이다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문제점을 발견하기에는 논쟁보다 좋은 것이 없다. 저자가 문제제기한 논쟁에 푹 빠져버렸다.

 

   
# 지적사고를 높여주는 흥미로운 논쟁.

 

    
  민주주의, 직접행동이 낯선 이들이 용어의 개념부터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논쟁이라는 형식을 빌어,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비판, 그리고 대안 등이 민주주의 논쟁을 주도했던 학자들의 이름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저자가 사회자로 등장해서, 양측의 입장에 대한 장점과 단점, 토론을 잘 주도해내고 있다고 할까.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는 대의민주주의가 다수결의 횡포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더라도, 사회적 강자에 의해 유리한 제도라는 한계와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권력의 집중현상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문제 등 어느 한쪽의 편이 아닌, 양쪽에 담긴 깊이있는 주장과 반례를 들을 수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 각 사안에 찬성인지 반대인지 자연스럽게 결정을 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나의 위치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자신의 정치적 위치의 방향을 확인 할 수 있다. 논쟁으로 각 사안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지식 넓히기를 통해, 논쟁의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깊이 들을 수 있고, 원문 읽기를 통해 좀 더 각자의 주장의 내용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 한 사안에 대한 깊이있는 내용을 기대하는 이 보다는, TV나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는 앵무새가 아닌, 스스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이가, 입문서로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좋은 책은 내용을 세세히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에 의해 많이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정치상황으로 되어있는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게 해결해 갈 것인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 책이었다. 사회의 성숙도에 맞게 그 사회의 정체가 구성되어진다고 믿는다. 따스한 감성이 풍부하고, 정치에 대한 열망이 크면서도, 정치인들을 혐오하는 지금 현 상황에서 어떻게 모두가 함께 서로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촛불 시위'의 한계와 의미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모바일과 인터넷을 어떻게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좋은 대안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것인가.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다.

 

 

7******e 2009.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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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복종으로 우리의 기본권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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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만 푹푹 들린다. 인터넷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미네르바’는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되고,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된 용산 철거민들은 부당함을 호소하다 화재로 인해 귀한 생명을 잃었다. 이쯤 되면 반성이라도 해야 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다. 그런데 여전히 묵묵부답, 안하무인이다. 반성은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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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만 푹푹 들린다. 인터넷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미네르바’는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되고,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된 용산 철거민들은 부당함을 호소하다 화재로 인해 귀한 생명을 잃었다. 이쯤 되면 반성이라도 해야 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다. 그런데 여전히 묵묵부답, 안하무인이다. 반성은커녕 국민들이 테러리스트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인터넷이고 언론이고 여론을 막아버릴 족쇄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이것이 바로 2009년 2월 현재 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던 현 정부는 이미 한 2~30년은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김대중 정부 이후 조금씩 쌓아올린 민주적 기반들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를 두고 ‘현 시국은 독재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리기까지 했다. 국민의 자유권이 심하게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작년 광우병 문제로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였던 국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있다. 20년 전 민주화운동 시절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민주화운동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단지 기억에 남는 건 매일 같이 바람에 실려 오던 최루탄 냄새였다. 다행히 그 이후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 등의 시행으로 국민 참정권이 확대되고, 민주적 질서를 찾으려는 노력들로 인해 비민주적인 요소들이 많이 제거되었다. 그런데 현 정부가 이러한 결실을 역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재적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빼앗기고 있는 우리의 권리는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가? 이번에 읽은 <히스토리아 대논쟁 3(민주주의 & 시민 불복종)>(서해문집, 2008년)은 최근의 상황을 떠올리며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히스토리아 대논쟁은 시리즈는 “우리가 스스로의 머리와 가슴으로 문제를 의식하고 분석하며 해결 방향을 모색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 ‘등에’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집필되었다”고 한다. 그 중 3권은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참다운 자유와 민주주의로 가는 여정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민주주의 키워드에서는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라는 논제를 바탕으로 보비오, 잉그리드, 카터가 논쟁을 벌인다. 대의제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보비오와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잉그리드의 논쟁은 팽팽한 접전을 이룬다. 지금처럼 인구가 많은 상황에서는 대표를 뽑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게 하고, 소수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대의제가 이상적이라는 보비오의 의견은 일견 옳은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돈과 언론을 지닌 이들이 권력을 움켜쥘 수밖에 없고, 노동자와 서민의 의사는 계속 무시될 수밖에 없기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2009년 대한민국의 국회를 한번 보라. 다수당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는가?

 

두 번째 논쟁은 ‘시민의 불복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시민의 불복종은 “완전히 정의롭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 정의로운 민주 체제에서 법률이나 정책 또는 명령이 정의의 원칙을 어겼을 경우에 사회협동 체제의 조건들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항거자가 다수자의 정의감에 호소하는 정치적 행위”(96쪽)라고 하는데 헨리 데이빗 소로에 의해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민의 불복종에 대해 롤스는 “합의된 정의관 안에서 부정의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경우 이제 대해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정의의 근본 원칙까지 훼손하면서까지 우리가 부정의를 감수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대해 켈젠은 “도덕이나 사회 여론만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말하지 말고, 법체계 내에서 법 규범에 근거하여 정당성을 말하라”(110쪽)고 주장한다. 오직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만 잘못된 법과 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 역시 권력자들이기 때문에 독재체제라 할지라도 일단 수긍해야 한다는 크나큰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법과 제도에 의해 제한되더라도 그 법을 고치지 않는 한 영영 기본적인 자유조차도 누릴 수 없게 된다. 한편 시민 불복종을 합의된 정의관 내에서,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할 것을 주장하는 롤스에 대해 싱어는 협소한 개념의 시민 불복종이라며 롤스의 한계를 지적한다. 롤스가 말하는 식으로 하면 정치를 포함한 다른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시민 불복종을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싱어는 롤스의 시민 불복종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를 한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인 개념의 시민 불복종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견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에 <히스토리아 대논쟁 3(민주주의 & 시민 불복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시민 불복종’의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 불복종은 부정의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민주주의의 표현방식이다. 롤스의 주장이 조금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시민 불복종이 롤스의 개념대로만 이용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롤스의 개념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 사회라면 민주주의 이상이 어느 정도 현실화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롤스의 개념대로라면 그런 기반이 되는 사회로 가기까지 필요한 절차 또한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직접행동이 될 수도 있고, 롤스의 시민 불복종 개념을 확대한 싱어의 개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논쟁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건전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또한 합리적인 절차와 제도를 만들어가기보다는 폭압적인 방식으로 국민들의 기본권과 민주적 참여를 막는 현 정부의 독재상황이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시민 불복종이든, 직접 행동이든 부정의를 만들어내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과 참여의 목소리가 절실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by 꽃다지, 2009년 2월 5일

l*******g 2009.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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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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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주의   요즘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고 그와 관련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절감하는 때가 많다.   이 책 <히스토리아 대논쟁 3>은 보비오와 잉그라오, 카터의 민주주의 논쟁, 롤스와 켈젠, 싱어의 시민 불복종 논쟁이 담겨 있다. 저자 박홍순 선생이 '박쌤'이라는 닉네임으로 간혹 중재를 하고 진행을 돕거나 저자 자신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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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주의

 

요즘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고 그와 관련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절감하는 때가 많다.

 

이 책 <히스토리아 대논쟁 3>은 보비오와 잉그라오, 카터의 민주주의 논쟁, 롤스와 켈젠, 싱어의 시민 불복종 논쟁이 담겨 있다.

저자 박홍순 선생이 '박쌤'이라는 닉네임으로 간혹 중재를 하고 진행을 돕거나 저자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한다.

먼저 민주주의 논쟁에서는 주로 대의민주주의냐 직접민주주의냐를 두고 보비오와 잉그라오, 보비오와 카터가 설전을 벌인다.

 

먼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초등학교 다닐 적부터 숱하게 들었지만 독재에 대응하는 측면, 그리고 '국민에게 국가의 주권이 있는 제도'를 넘어서 구체적인 요건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내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렇게 딱 꼬집어 명확히 말할 수 없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민주주의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지만,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에 대해서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현대에 벌어진 민주주의 논쟁 가운데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게 바로 '보비오 논쟁'이다.

보비오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상당수 시민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될 것.

둘째, 다수결의 원리 같은 절차적 규칙이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

셋째, 결정권자나 결정권자를 선출하는 사람들 앞에 실질적인 선택 대안들이 주어져야 하며, 이 대안들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을 위해선 여론 형성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이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자유주의 국가의 초기부터 그 토대가 되었던 권리로 법치국가의 기본 교의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 안에서 이어지는 보비오와 잉그라오, 보비오와 카터의 논쟁은 이 기본 요건을 전제로 이뤄진다.

보비오는 앞서 말한 그 요건들을 전제로 현대 사회가 발전하는 노정을 새로운 민주주의 유형의 출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대의민주주의처럼 전통적인 민주주의 유형이 이제껏 계급 제도나 관료 조직에 의해 장악되었던 공간들에 침투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대의민주주의의 복안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출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거대한 현대 국가에서 모든 사람이 일일이 결정에 참여할 도리가 없으니 '누가' 결정할 것인가보다는 '어디에' 투표를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민주주의의 형식은 전통 그대로 두고 내용을 개선할 생각을 먼저 하자는 거다.

그런데 형식상의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잉그라오와 카터의 말처럼, 직접민주주의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자는 게 전 국민이 광장에 모여 안건 하나하나 결정권을 발휘하자는 것도 아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처럼, 보비오가 말한 민주주의 요건 가운데 세 번째 사안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직접 참여, 직접 행동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박쌤은 우리 실정에 맞게 잘 설명을 해주었는데, 현재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무능하거나 부패했을 적에 몇 년 후 다시 뽑으면 된다는 식으로 자조하고 넘기기엔 그동안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많은 사람이 피흘려 싸운 보람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언제' 투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민주주의의 대답은 '언제든지'여야 한다는 뜻을 전한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대통령 탄핵이나 국회의원 경질 서명운동이 벌어지지만 강제력은 전혀 없다.

이를 위해선 소환제도, 국민발안제도, 주민투표제처럼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지닌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 전까지는 (그런 장치가 마련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직접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2. 시민 불복종

 

'시민 불복종' 이란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데이빗 소로다.

그는 "우리는 모두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며 노예제도 반대 운동, 반전을 근거로 세금을 미납하는 등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이다가 옥살이를 하고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책을 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는 시민 불복종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해 각각 롤스와 켈젠, 롤스와 싱어가 논쟁한다.

먼저 롤스는 시민 불복종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완전히 정의롭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 정의로운 민주 체제에서 법률이나 정책 또는 명령이 정의의 원칙을 어겼을 경우에 사회 협동 체제의 조건들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항거자가 다수자의 정의감에 호소하는 정치적 행위"

즉, 롤스는 정의에 위배되는 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시민 불복종을 인정한다. 소수자가 다수자의 정의감에 호소해 정의의 원칙에 따라 법을 바꾸도록 하는 행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에 켈젠은 반기를 든다.

'정의'라는 상대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법의 문제를 설명하면 금방 허물어질 모래 위에 고층 건물을 짓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는 거다.

그는 법은 정치적 편견 없이 실증주의적인 방법으로 순수하게 접근해야 하며, 어떤 행위에 대한 법적 정당성은 법 내부에 의해 규정되어야지 법 외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가치판단에 근거해선 안 된다고 역설한다. 즉, 법이 정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그 법 자체를 위헌법률심판 청구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바꿔야지 법 외의 행동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이 이야기도 일견 타당한 측면이 없진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 실제 자기 권익이 잘못된 법으로 인해 침탈당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켈젠의 '순수 법학'이론은 대학 다닐 적에 배운 적이 있어서 익숙하다. 그때는 '법 체제' 안에서 그 이론을 접했기에 여느 학자들의 이론에 비해 탁월하고 완벽해 보였는데 시민 불복종 논쟁 안에서 보니 너무 합리성에만 갖힌 논리로 보인다.

롤스와 켈젠의 논쟁에서는 롤스의 말이 맞는 듯하다. 그런데 롤스는 시민 불복종이 정당성을 갖는 한계 범위를 너무 좁게 잡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박하는 건 싱어다.

롤스의 논리대로라면 '종교적 교리에 의한 집총 거부'는 시민 불복종 행위가 아니다. 여기서 롤스 이론의 맹점이 있는 듯하다.

즉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목적 안에만 시민 불복종의 정당성을 가둬, 행위 그 자체가 가지는 다의성을 무시하게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집총 거부 행위는 그 행위 자체로도 평가되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집총 거부'가 의미하는 바를 알려면 '집총'이 의미하는 바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집총은 결국 전쟁을 준비하는 거다. 이를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건 그게 자기 개인적인 양심 문제든 종교 문제든 결국 광범위한 의미로 '반전주의'를 토대로 한다. 전쟁을 국가의 존립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볼 것인지, 그래서 반전 운동을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으로 볼 것인지, 그리고 어느 쪽이 전체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 만한 '정의'인지를 먼저 가늠해 보는 게 순서 아닐까 싶다.

어차피 롤스도 시민 불복종이 '어느 정도' 정의로운 사회를 전제로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로운 사회가 보다 정의롭게 되도록 노력하는 모든 행위를 시민 불복종에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게다가 시민 불복종은 행위자가 처벌이나 체포를 감수하는 행동이지 시민 불복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해서 형량이 감형되는 것도 아닌 이상에야 좀더 넓게 봐도 좋지 않나 싶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부분, 생각지 못했던 데에까지 머리를 굴려볼 수 있어서 좋았고 여러 훌륭한 학자들의 논쟁 틈에 나 또한 속으로나마 한마디씩 거들거나 반박해가면서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이런저런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민주주의가 죽어간다고 하지만, 보비오의 말처럼 민주주의가 비민주적인 사회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 정부의 행태, 특히 대통령의 다채로운 뻘짓과 이를 일사분란하게 뒷받침해주는 수뇌부들의 행태를 지켜보노라면 이건 비단 한 인물이나 집권당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생각이 꽂힌다.

그 당으로 하여금 집권하게 한 것도, 그 인물을 대통령직에 오르게 한 것도 다 이 나라 국민들이다.

즉, 그네들은 외계에서 뚝 떨어진 게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손수 만들어낸 괴물이다.

희망은 있을까? 어떤 결론을 내려 그대로 정할 만한 힘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겐 없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틈날 때마다 생각을 거듭하고 그 생각을 함께 나눠 이 사회가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z******7 2009.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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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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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제목만 보면 나의 고정관념속에는 딱딱하고 왠지 지루하고 어려운 책 일 것 같아 책의 첫장을 넘기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대화식의 책의 구성을 통해 마치 100분 토론을 보는 것 처럼 책을 읽어나갔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복잡해지지만 마음을 비우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많이 들어 알고 있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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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제목만 보면 나의 고정관념속에는 딱딱하고 왠지 지루하고 어려운 책 일 것 같아 책의 첫장을 넘기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대화식의 책의 구성을 통해 마치 100분 토론을 보는 것 처럼 책을 읽어나갔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복잡해지지만 마음을 비우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많이 들어 알고 있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헌법의 명시로 인해 익히 들어왔다. 그냥 크게 보자면 자본주의 vs 공산주의 아니면 민주주의 vs 사회주의로 나누어서 그 차이점을 비교하는 것은 많이 공부했지만. 민주주의 속에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구분들이 뭔지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워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정의를 확인하고 책을 읽었다.

 

대의민주주의는 국회의원을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여 그 국회의원들이나 정치가들이 법을 만들고 제정하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대다수 나라에서 실시하는 민주주의라 볼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직접민주주의는  정치적 활동을 모든 국민들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책에서도 촛불시위현장이 언급되지만, 나 또한 촛불시위에 참여했었고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과연 민주주의가 맞는지, 2008년부터 우리는 어쩌면 민주주의를 역행하고 있진않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소고기 문제라던지, FTA라던지 물론 우리가 모르는 나라의 이해관계부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국민을 위한거라면 국민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선택권도 어느정도 존중이 되어져야하는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한국의 민주주의 논쟁에서 대의제를 강화해야한다는 모 정치학자의 의견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사람의 의견도 그 사람 기준에서는 틀린건 아니겠지만 정치적 기준이나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기때문에 어느정도의 선을 긋기보다는 둘다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을 해 나가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시민불복종은 주로 사회문제, 인권운동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사람에 따라 권위(?)에 따라 그 기준은 달라 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불복종은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는 필요한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받고 어려울 수록 더욱 그러하다. 시민불복종에 대한 정의는 학자들 마다 다르지만 폭력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정당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요구조건이 어느정도 받아들여질 수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뉴스를 보면서, 자꾸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와 현실은 멀게만 느껴진다.

어느것이 맞다 그르다 정의 하기도 어렵고, 어느정도의 허용선을 두어야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적절하게, 통념적으로 암묵적인 조건을 걸고 우리는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그냥 넘어가면서 때로는 과감히 법적처리를 해버리고, 그래서 어느것이 맞는건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책에도 나오듯이 논쟁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내 의견만 있다면 그것은 독재밖에 되지 않는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끊임없는 논쟁들 속에서 타협을 한다. 나는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동생도 읽어보라고 할 것 이고, 친구에게도 읽어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 나와 달라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대신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 끝에 타협을 해야한다.

 

h******2 2009.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논리와 논리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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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 민주주의&시민불복종   3권에서는 1부로 보비오와 잉그라오, 카터의 민주주의 논쟁이라는 주제와 2부로 롤스와 켈젠, 싱어의 시민 불복종 논쟁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논점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다. 마치 [지식의 충돌-개마고원]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서로 다른 지식과 철학이 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서로 충돌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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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 민주주의&시민불복종

 

3권에서는 1부로 보비오와 잉그라오, 카터의 민주주의 논쟁이라는 주제와

2부로 롤스와 켈젠, 싱어의 시민 불복종 논쟁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논점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다. 마치 [지식의 충돌-개마고원]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서로 다른 지식과 철학이 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서로 충돌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이 시대의 토론문화를 보게 된다.

 

1부를 보면 민주주의 논쟁에 있어서 대의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가 충돌을 한다. 먼저 문제는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를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민주주의에 관한 의미있는 논의는오직 진주주의를 다음과같이 파악하는 것에서 가능하다. 즉 민주주의를 누가 종합적인 정책결정권을 행사하는 가의 문제와 그것을 어떤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인가의 문제를 규정하고 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목표와 목적은 같을 지라도 기술적인 부분에서 서로의 충돌이 생긴다. 보비오의 주장을 보면 현대사회가 거대해 지고 전문화된 사회적인 환경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를 통해서 효율적인 기능을 발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더 발전하여 잉그라오는 대의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 형식으로 보완될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작은 부분의 단위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커다란 부분에서는 대의제와 결합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카터는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직접행동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의 퇴화를 막을 수 있는 것도 모든 사람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은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대신 논쟁을 통해서 살펴보면 민주주의의 원래 가지고 있던 기본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학자들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시민불복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소크라테스를 보면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법을 존중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의 논쟁은 개인과 국가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민주화된 세상속에서도 부당하고 나쁜 법이 제정될 수 있으면 단견적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형태로 법이 집행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적극적인 저항의 방법으로 시민 불복종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본다.

 

롤스는 민주주의에서 시민 불복종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한정된다. 시민 불복종은 다수자의 정의감을 호소하는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명확하고 실질적으로 정의를 침해한 경우에 국한 되어야 한다고 본다. 대신 켈젠은 순수법학을 연구한 사람처럼 시민 불복종을 정당화하면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게 됨으로 그것을 인정하기 않고 있다. 싱어는 많은 비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형태의 정부와 양립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한 제한된 의미의 불복종은 정당한 저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한 사람의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맞는 듯하고 또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맞는 것 처럼 보인다. 이것이 한계이다.

 

책을 보면서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나는 이 부분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내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m****0 2009.02.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