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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유럽은 교회, 전쟁, 농노의 예속상태로 인해 안정기에 접어든다. 그러다가 도시의 구조가 바뀌면서 정치와 법과 사회의 변화를 이루면서 근대로 넘어간다. < 교회 > 중세는 신과 교회에 의해 지탱되었다. 종교는 유대인 박해의 기원이 되었고, 같은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도 잔인성과 야만성을 표출한 어두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신의 은총은 빛줄기를 통해 들어온다고 믿음으로 인해 조명이 발달했고 광학에 열광하여 13세기에 이미 안경이 발명되었다. 배움은 오로지 영적인 목적에 의해서만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교회에 의해 지식문화의 성장과 교육제도의 표준이 이루어진것은 커다란 성과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세속적 소유는 지양되었으므로 가난은 미덕의 핵심이었다. 중세후기에는 단순한 용맹에 신의 이름을 앞세워 기사도적 이상이 더해졌다. 즉 영웅적 자질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성함'이었다. < 전쟁 > 중세의 전력은 갑옷, 무기를 마련할 여유가 있는 지주에게 의존하였고, 귀족은 자신의 재산을 지기키 위해 전쟁하였으므로 귀족은 곧 전사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일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멀리서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할수있는 화약이 발명되었다. 이제 기사의 무용과 기술력은 무의미해졌으며, 대규모의 방어장치와 많은 병사가 필요해졌으므로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군주만이 전쟁을 치를수 있게 되었고, 병사는 자신을 지켜주는 지주에게 봉사하는 농민이 아니라 돈주고 고용하는 용병들로 대체되었다. 전쟁에서 용맹함이 필요없어지자 귀족은 칼과 창이 아니라 책과 미적인 감수성, 그리고 교육에 힘을 쏟아 교양을 갈고 닦는것으로 그들의 명예를 유지한다. 이것은 곧 유럽의 엘리트들을 위한 새로운 규범을 확립하게 된다. < 예속 > 토지를 경작하던 사람들과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 간의 예속관계는 그들은 하나로 결속시키는 원천이었다. 여기에는 거주이전의 금지까지 포함되었는데 바로 이것이 농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1340년 흑사병으로 인구가 대량감소하자 농노들이 도시로 이동하여 자유노동자가 되는 인구 대변동을 불러왔다. 이제 예속상태의 옛질서가 파괴되고, 노동, 토지가 상품으로 되어 임금으로 맺어지는 새로운 질서가 생겨났다 도시에 노동자가 많아지면서 산업화가 이루어지자 시장확대의 필요성이 생겼고 나침반의 발명은 이를 뒷받침해 대규모의 해외정복을 가능하게 했다. 농촌의 공동체가 깨지면서 그것을 지탱하던 신에대한 관심은 인간에게로 옮겨가게 되어 사회전반에 세속성이 나타난다. 정치에서는 권위의 행사와 신성함을 분리시키켜 권력은 중앙집중화가 되어가고 확실성을 추구하는 수학과 과학이 발달되었다. 모든 신자가 곧 사제이며, 모든 직업은 똑같이 고귀하다는 개신교는 고리대금업에 대한 비난을 없앰과 동시에 자본주의적 행동양식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 국가 > 전쟁을 위해서는 대규모 군대와 관리체계, 그리고 세금이 필요하여 행정조직은 관료화 되었다. 세력이 약해진 귀족들을 중앙의 행정직책을 내어줌으로써 군주의 편으로 만들었고, 시기적절하게 발생한 종교개혁은 교회의 권위를 약화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를 기점으로 본격화된 해외정복으로 커다란 부가 창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중앙집권 절대왕정을 가능하게 했다. '국가'가 성립된 것이다. 종교전쟁으로 시작해서 국가조약으로 끝난 30년 전쟁은 국제관계가 전통적인 화해형식이 아니라 법에의해 운영되는 국제적 체제에 의해서만 해결할수 있게 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종교적 열정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전쟁의 동기가 된 것이며 더불어 이시기에 일어난 과학혁명은 정확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종교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면서 그것을 대신할 확실성과 안정에 대한 갈망의 시대적 사고전환에 의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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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언제나 보다 나은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라고 했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대는 정체의 시기이자 반동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조금씩 늘어가던 중산층의 수가 줄어들고, 이성의 힘으로도 떨칠 수 없는 각종 질병들이 등장하는...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과거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역사가 지닌 힘이다. 단순한 과거라고 치부하기엔 역사는 그 의미가 방대하다. 현재의 우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들추어야만 한다. 그 안에 우리 자신의 뿌리가, 현재의 우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정당성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혼란 역시 마찬가지다. 평온의 시기도 물론 존재했으나 하나의 흐름이 저조해지고 또 하나의 흐름이 치고 올라오는 시기는 언제나 혼란스러웠음을 역사를 통해 우린 알 수 있다. 저자가 주목한 르네상스 역시 어찌 보면 일종의 과도기라 평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은 르네상스를 '풍요'의 이미지에 끼워 맞추려 든다. 그제껏 사회의 중심에 놓인 것은 바로 신, 종교의 힘이었다. 종교를 맹신하는 것이 얼마나 우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곳곳에서 자행된 끔찍했을 마녀사냥을 떠올릴 때마다 난 고개를 젓곤 한다. 그 무모함을 표면 아래로 사라지게 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믿음은 당연히 나로 하여금 르네상스를 이상적인 시기로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말한다. 르네상스 열풍도 시작이 있었기에 끝날 수밖에 없는 무언가였다고... 많은 이들은 하나의 현상을 언급할 때면 시작에 주목한다. 르네상스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어떠한 저작을 통해 어찌저찌해서 인문주의적 성향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유독 르네상스가 시들시들해지던 측면에 대한 말은 들리지가 않는다. 의도적인 외면이었던 것일까? 왜 우린 시작을 알면서 끝은 알지 못한단 말인가? 하나의 흐름이 주춤하던 시기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굳이 설명치 않아도 대개가 잘 알 것이다.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에는 기존의 인간에 대한 믿음들이 다른 것들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고대에 대해 사람들이 품었던 것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회의적 시선이 서서히 유포되기 시작한 것이다. 개개인의 힘 대신 사람들이 믿기 시작한 것은 '국가'라는, 새로이 등장한 세력의 힘이었다. 기존의 지방분권적인, 다분히 중세적일 수도 있는 권력 체계가 왕에게로 귀속되면서 점차 사회는 안정을 향하기 시작했다. 예술 분야에서도 이는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기존의 왕이 각종 무기로 치장한 위대한 군인의 형상으로 그려졌다면 이 시기의 왕은 평화의 수호자로서 찬양되기에 이르렀다. 온화한 이미지, 가정적인 모습 등 왕의 초상화가 풍기는 내음은 화가 자신의, 더 나아가 그 시대가 요구하던 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르네상스로부터 오늘날 우린 완전히 자유로운가? 불과 10여 년 전에 사회를 강타한 종말론을 난 기억한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사회가 망한다니, 이 얼마나 비참하고도 원통한 일인지,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믿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꾸만 치솟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가 없어 당시 난 괴로워했었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감정은 버리는, 오늘날 난무하는 수많은 잘못된 정책들 역시 어쩌면 과거 한 때를 풍미했던 르네상스적 흐름의 연속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살짝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