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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기묘한 삶을 살다간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그를 데이비드 리비트는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으로 칭하고 있다. 앨런 튜링이 어떤 인물인지는 몇 가지의 업적 혹은 행적으로 설명된다. 우선 현대적인 컴퓨터의 원리를 제시한 인물.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비밀 암호 해독팀의 일원으로 독일의 암호체계 애니그마를 무력화시킴. 그러나 국가비밀로 취급되어 최근에야 그 업적인 인정됨. 그리고 동성애자. 그로 인해 화학적 거세를 당함(그런 시대에 살았다). 청산가리를 묻힌 사과를 먹고 자살. 앨런 튜링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베이즈의 정리’를 다룬 『불멸의 이론』을 읽으면서였다. 튜링이 애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하는데 베이즈의 정리를 이용하였다는 것이었는데, 그러고도 그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비극적 삶을 살다간 천재수학자의 삶이 궁금해졌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다룬 책은 많지 않았고, 결국 찾은 것이 바로 이 책 데이비드 리비트의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튜링이라는 한 천재 과학자의 삶을 보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의 삶이다. 인정받은 듯 하기도 하고, 그의 능력에 비해 너무 하찮은 대우를 받은 듯 하기도 한 것이 그의 삶이었다. 언제나 외톨이였지만, 시대와 국가의 부름에는 내빼지 않았던 것이 그의 삶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예견하고, 원리를 만들고 제작까지 시도했던 컴퓨터를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그런데, 데이비드 리비트는 그의 성적 취향, 즉 동성애에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거의 모든 상황에, 거의 모든 발언에 그의 성적 취향을 연결시키고 있는데, 읽으면서도 너무 지나친 연결이 아닌가 싶었다. 왜 그렇게 집착하나 싶었더니 그 사정은 맨 뒤의 ‘옮긴이의 글’(이런 때는 ‘옮긴이의 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에서 드러났다. 바로 데이비드 리비트가 동성애자라는 것이다. 당시에 인정받지 못했던(물론 지금도 부족한) 동성애라고 하는 하나의 성적 취향을 가졌고, 그로 인해 박해를 받았던 뛰어난 인물, 앨런 튜링에 자신을 이입시켰던 셈인데, 사정도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백설공주의 일곱 난장이>와 앨런 튜링의 죽음의 대비란!) 그런 동성애 코드에 대한 집착이 읽기에 불편하진 않았지만, 다소 생뚱맞은 대목을 만들었다면 좀 장황한 수학 이론과 튜링의 기계에 담긴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은 정작 읽기에 불편함을 만든다. 튜링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 수학과 컴퓨터의 원리였기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튜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듯싶다. 하지만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이해해야만 아인슈타인의 삶을 읽을 수 있거나, 혹은 그를 존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당연히 상대성 원리를 더 이해할수록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을 더 잘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튜링의 전부일 수도 있는 이론이지만, 어쩐지 삭막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앨런 튜링의 외로움과 탁월함 등이 책에서 지워지는 것은 아니니만큼 이 책으로 튜링이라는 인물을 비로소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가 앨런 튜링이 현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가장 재치있게 지적하고 있는 대목은 다음 부분이지 아닐까 싶다. “인터넷에서는 애플컴퓨터 회사의 로고가 튜링의 사과를 가리킨다는 소문이 떠돈다. 회사에서는 이를 부정하면서 오히려 이는 뉴턴의 사과를 암시한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왜 한 입 베어져 있을까?” (333쪽) 앨런 튜링, 그는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이기보다는 ‘너무 앞서간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 당시보다 지금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다. (2013.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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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들이 튜링에 대한 이야기보단 역자 리비트가 글을 잘썼다는데 촛점을 맞추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