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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독서동아리에서 세 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첫해이니만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문학 분야의 책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그 남자네 집>을 고른 분은 선생의 작품을 여럿 읽어왔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었습니다. 선생의 작품을 읽다보면 언젠가 읽은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드는 것은 해방 이후, 6.25동란을 지나는 신산한 시절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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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은 박완서 작가님의 자전적 소설 3부작의 완결편이다. 또한 그분 생전에 기록한 마지막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박적골에서 태어난 이후 지낸 어린 시절부터 20살까지의 삶을 그린것이라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꿈같던 20살 대학 생활을 막 시작하려던 때 일어난 6.25전쟁부터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남자네 집』은 전쟁 후 결혼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이다. 이로써 그 자로 시작하는 작가의 자전적 애기는 마무리가 된다. 저 그 자는 3인칭 대명사일까? 아니면 관형사일까 작가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다. 그 남자네 집의 주제는 첫사랑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그 남자네 집』은 작가의 첫사랑인 그 남자네 집을 뜻한다. 먼 외가친척뻘 되는 작가의 집 근처에 사는 그 남자. 시를 좋아하고 언제나 천진난만한 웃음을 입가에 짓고 있던 그 남자. 그와 누나 동생으로 사귀던 작가는 생활이 안정적일 것 같은 은행원과 결혼한다.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은행원은 촉망받는 직업인 듯하다. 은행원 하면 생각나는 정갈한 외모, 그리고 금융기관이 주는 신뢰, 생활의 안정 등을 상징한다. 어느시절의 결혼풍습이 응당 그러하겠지만 홀어머니에 외아들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문화와 문화의 충돌로 이어진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시집살이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네 어머니 세대의 애기들이 마치 세밀화를 보는 것처럼 상세히 묘사되어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세밀함과 마치 한편의 기록영화를 보는듯한 상세한 묘사는 이 책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결혼식에서 신혼여행, 신행으로 이어지는 전쟁 이후의 풍속, 오로지 아들 해 먹이는 것이 인생 최고의 낙으로 생각하고 아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어머니, 그리고 그 시대의 먹거리에 대한 묘사, 시집의 풍습과 미신에 의한 전통,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문화적인 갈등과 충돌로 인한 시집살이의 어려움, 전후 시대의 물가의 폭등으로 인해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대한 묘사, 그리고 재산을 늘리고, 집을 넓혀가며 느끼는 주부로써, 엄마로써의 보람등이 담담하게 묘사되어 간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이 책에선 그저 양념일 뿐이다. 이 책의 진짜 이야기는 첫사랑이다. 결혼 후 문득 들려온 첫사랑 그 남자에 대한 소식, 안정적인 생활을 찾아 그 남자를 내치고 난 후 그 남자가 거의 폐인이 되어간다는 소식에 죄책감을 느낀 작가는 그와의 재회를 가진다. 거기에 시집살이의 고달픔과 일상의 반복으로 인한 지루함을 탈피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한 첫사랑과의 재회. 그리고 이어지는 그와의 만남, 만남은 이어질수록 그 자체가 주는 내밀함과 희열, 그리고 안정을 찾아가는 그 남자를 향한 모성애적 발로를 넘어 일탈을 꿈꾸게 된다.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작가의 연배는 우리네 어머님들의 연배, 그리고 그의 자식들의 애기는 바로 내가 살아온 기억들이다. 자녀들의 성장, 그리고 이웃들과의 삶의 모습을 통해 전쟁이후 그런대로 온 나라가 먹고 살게 되기까지 우리네 부모들이 어떤 역경들을 헤치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애기와 애기들은 현실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문득문득 과거의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조그마한 계기로 시작한다. 그 추억의 자락을 잡아당기면 그 자락을 따라 과거의 기억들이 마치 고구마 줄기 엮어 나오듯 그렇게 끊임없이 엮어 나온다. 『그 남자네 집』은 그렇듯 엮어져 나온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기억들이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첫사랑! 누구나 가슴속에 간직한 가장 소중한 추억, 하지만 그 남자와의 하룻밤을 기대한 그날에 그 남자에게 닥친 불행, 그 남자와의 마지막 포옹과 결별, 그리고 그 남자의 부고. 마주보는 철길처럼 그렇게 맺어지지 못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인연이 아니라 길을 가다 문득문득 마주치는 교차로처럼 작가와 첫사랑과의 인연은 그렇듯 질기게 이어졌고, 그의 부음으로 그 모든 만남과 인연은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인연이 마무리되었다고 사랑도 끝난 것일까? 첫사랑은 반드시 과거의 사랑일까? 첫사랑은 있는데 왜 중간사랑과 마지막 사랑은 없는 것인가? 왜 과거의 사랑은 아름답고 현재의 사랑은 생활이고, 미래의 사랑은 다가가지 못하는 꿈일까? 시간이란 그걸 수평으로 놓고 볼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시간의 거리속에 존재하지만 그 시간의 막대를 수직으로 놓고 본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한순간이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감정의 유희도 어찌 보면 첫사랑도 중간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다 하나의 사랑이 아닌가? 그 사랑이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한 말이다. 작가는 남편도 사랑했고, 그 자녀들도 사랑했고, 그 부모도 사랑했고, 그 조카들도 사랑했다. 또한 그 첫사랑도 여전히 사랑했다. 이러한 모든 관계는 사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우린 첫사랑은 과거이니 추억이고, 지금의 사랑은 현실이니 그 현실을 위해서 과거의 사랑은 잊어버리라고, 첫사랑에 연연해하는 것은 죄악이고, 더군다나 가정을 가진 주부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일탈을 꿈꾸는 것은 비 현실적이라고 애기할수 있을까. 그 감정의 일탈과 연속을 불륜이라는 한마디 단어로 왜곡시켜 그 사랑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다 같은 사랑인데 말이다. 왜 다른 사랑은 한 마음속에 담아질 수 있지만 이성을 향한 사랑은 왜 한마음에 담아질 수 없을까? 아니 없는 게 아니라 우린 왜 용납하지 못할까 그래서였을까. 작가는 이 소설에서 약간의 왜곡을 가한다. 전작에서는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병환으로, 오빠는 6.25 전쟁때 총상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있었다. 실제로도 박완서 작가님의 이력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버지와 오빠 모두다 6.25 전쟁 때 이웃집의 고발로 인해 빨갱이로 몰려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애기를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닌데도 왜곡을 가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미군부대 PX 초상화부에서 일을 했던 작가는 이 소설에서는 그저 직원들의 출입을 통제했던 일을 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작가는 이전의 소설에서의 자신과 이 소설에서의 자신과 동일시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어쩌면 가장 하기 힘든 첫사랑으로 인한 일탈을 애기하면서 이 소설속의 주인공을 자신이 아닌 제 3자로 독자들이 인지해주기를 바랐을까? 자신의 애기를 풀어내면서도 독자가 이를 자신의 애기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자신의 치부라 생각하여 독자들의 질타를 피해가고 싶었을까? 물어보고 싶지만 그 작가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이 애석할 뿐이다. 얼마전 히트한 영화중 건축학 개론도 첫사랑을 소재로 다룬 영화였다. 그 영화관 관객중에는 여자보다 중년 남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당신도 한때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그 영화의 광고 문구가 말해주듯 우리네 가슴속 저 깊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는 첫사랑의 소중한 기억, 작가의 소설은 그 앙금을 휘저어 물위로 떠오르게 했다. 잊어버린 줄로 알았던 그 기억은 잊혀진것이 아니라 작가의 소설처럼 그 추억의 끄트머리를 누군가가 잡아당겨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을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그렇게 쓰셨나 보다. 어차피 삶에 있어서 시간이라는 의미를 제외한다면 과거도 곧 현재인 것을. 그리고 현재도 곧 과거인 것을.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버무러진 그저 그런 인생인 것을. 그리고 사랑이란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을. 어쩌면 첫사랑도, 지금 사랑도, 모두 다 우리의 기억속에 또아리를 틀고서 주저앉아 있는 기억이라면 그 기억의 주체인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는 것을 작가는 애기하고 싶은것을 아니었을까? 작가도 가고, 그 남자도 가고, 그럼 이 사랑은 끝난 것일까. 아니다. 이제 그 사랑은 우리의 기억속에 존재하고 또 작가의 작품속에 존재하는 한 그 사랑은 끝나지 않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사랑일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첫사랑이 영원히 남겨둘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에 그 기억을 우리들 가슴속에 남겨두어 영원한 기억으로 존재시킨건 아닐까. 기억이 존재하는 한 사랑은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기억을 다른 사람들 가슴속에 아로새겨 영원히 존재하고픈 그런 유혹에 이글을 쓴건 아니었을까? “사랑이란 그 흔적의 여운을 가슴에. 영혼에 아로새기는 것이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이라는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이제 그 사랑은 우리들 가슴에 새겨진 흔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우리의 첫사랑도. PS : 이 책을 읽고 10여일이 지나도록 그 모티브를 찾지 못해 마무리하지 못한 이 리뷰에 모티브를 제공해준 그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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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현대문학이 창간한 지 50주년을 맞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부터 그때에 맞춰 소설책을 한 권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략) 전후 최초의 문예지를 창간한 현대문학사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도 한번 근사하게 나타내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이 소설은 지지난해 문학과 사회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 ‘그 남자네 집’에 기초하고 있다. 단편으로 발표하고 나서 연작으로 몇 편을 더 이어 쓰고 싶은,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느꼈고, 그걸 이기지 못해 마침내 장편이 되었다. 이 책 ‘그 남자네 집’은 ‘친절한 복희씨’에 나온 ‘그 남자네 집’의 장편이다. 그땐 단편이군 하면서 읽었는데 장편을 읽으니 나 또한 그 분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첫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나의 첫사랑. 연예인이나 선생님이 아닌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좋아한 건 21살 때의 일이다. 알바하던 곳에서 만난 나보다 3살 많은 그 남자 (왠지 오빠라는 단어가 쑥스럽다) 오며 가며 눈인사를 하다 퇴근 후에 저녁을 먹다 보니 서로에게 정이 들게 되었다. 나를 예뻐해 주었고 어린 나이에 그와 결혼해야 하는지 알았다. 참 순진하다. 만나면 무조건 결혼하는지 알았다니. 그런데 한 순간 내 눈꺼풀 위에 있던 콩깍지가 사라지더니 그도 그냥 보통 남자처럼 보였고 미안하다며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반지. 지금은 그 반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그가 생각났고, 이제 그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싶다. 시대적인 배경이나 작가의 이력으로 봐서 왠지 그녀의 첫사랑을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후배의 이사로 내가 예전에 살던 그 동네에 찾아가 나의 집을 찾지만 지금은 너무도 변해버려 나의 옛집은 찾지 못한다. 그러나 그 남자네 집은 많은 양옥집 사이에 여전히 조선 기와집으로 남아있고 아무도 안 사는지 철문은 닫혀있고 빽빽하게 심어놓은 나무로 안을 볼 수 도 없어 섭섭해한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추억과 그녀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온 어머니의 외가 쪽 친척인 그 남자의 어머니. 자식들 챙기느라 헌 옷만 입고, 전쟁 후 홀로 월북했던 형은 다시 와서 처자식과 아버지를 데려가고 어머니 혼자 남아 그 남자를 기다리지만 넓적다리에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한 그 남자는 어머니를 구박한다. 전쟁 중에 가난하여 피난도 못 가고 여자들만 남아 고생하다 다섯 식구의 밥줄을 위해 이웃 아줌마의 소개로 미군부대에 다니게 되었지만 양공주는 아니어도 식구들은 치욕스러워한다. 물이 오른 나를 구슬 같다고 한 남자와 구슬 같은 겨울을 보낸다. 방이 많은 집으로 이사해 하숙을 치고, 의정부로 이사 가는 부대를 그만두고 군속으로 있던 우연히 시장에서 그 남자(현보)의 누나를 만나지만 그에 대한 우울한 소식과 내가 그의 첫사랑이었다는 말을 듣고 누나의 제안에 따라 간혹 그를 만나기로 한다. 그에게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어 꾸미고 나가고 장보는 시간 동안 그와의 데이트를 한다. 군것질도 하고 시장을 돌아다니고 ‘자유부인’ 유행하던 시절이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위로하며 그와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 그는 오지 않고 얇은 옷 탓에 감기만 걸린다. 그리고 하지만 상사병인줄 알았던 그는 뇌수술을 받는다. 아이를 넷 낳고 집을 늘려가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남편을 구박하기도 하고 시어머니의 먹거리에 여전히 불만인 삶이 이어진다. 달라진 그 남자를 만나지만 정을 떼는 말로 나의 첫사랑을 끝낸다. 너무나 다르게 살아온 시어머니, 엄마, 춘희 엄마, 그 남자의 어머니. 동생들 뒷바라지하며 스스로 몸을 버린 춘희. 애 넷 낳고 여전히 주급 받고 살림하며 푹 퍼져버린 나. 6명의 여인들의 삶이 무척 고단하게 느껴진다. 책을 덮으며 그래도 난 그들과 다른 환경에서 산다고 내가 더 낫다고 위로하지만 왠지 슬프다. 띠지는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추모하는 것도 좋지만 검은색 띠지라니. 헐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치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독거렸다. 102페이지 문화의 차이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아니라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내 것보다 저급한 것으로 얕보고 동화는 물론 이해까지도 거부하는 태도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153페이지 그것이 다 벌레의 짓이었을까. 내 젊음을 황홀하게 빛낸 그 기쁨의 시간이 다 벌레의 선물이었을까. 설마 처음부터 끝까지 다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우리들의 시간이고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벌레들의 시간이었을까. 200-201 페이지 나는 참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야단을 쳤다. (중략) 실은 그보다 훨씬 더 상스럽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야단 야단치다가 하던 깐은 있어서 설교도 잊지 않았다. 혼외정사보다는 아새끼를 야단치고 사람 되라고 설교하는 게 더 나에게 익숙한 정서가 되었다. 그 남자는 시력을 잃고 나는 귀여움을 잃었다. 나의 첫사랑은 이렇게 작살이 났다. 288-289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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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이룬 사람도 있겠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더 첫사랑 답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 더 아련하고 그립고 다시 꺼내 보아도 달콤하고 쌉쌀하고 오래도록 빛이 발하지 않고 그대로인듯 하다.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에서 '첫사랑'과 '남편'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가 미군부대에 다니던,집안의 기둥으로 알고 있던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갑자기 미성년자에서 한집안의 가장이 되어 경제력을 책임져야만 했던 시절,그녀는 등떠밀리듯 미군부대에 들어가게 되고 왠지 모르게 카탈을 부리던 자신을 닮은듯도 하고 안닮은듯도 한 '첫사랑'과의 만남으로 인해 어쩌면 그 시간을 좀더 슬기롭게 이겨내게 되지 않았을까.
사람의 운명은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저자가 만약에 '첫사랑'과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두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만든 그날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후로 둘은 완전히 다른 길을 된 것이 어쩌면 그 둘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자신 안에 고이 잠자고 있던 '첫사랑' 에 대한 그 슬프고도 쌉쌀한 추억을 고희가 넘어서 끄집어 내었다니 참으로 대단한듯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서 다 담아내지 못한 첫사랑과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생활,시집살이 등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내듯 재밌게 담아내어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그 이야기 늪속으로 자꾸면 빠져 들어가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처럼 연이어 읽게 되었다.
시를 줄줄이 외어 들려주고 음악을 좋아하여 섬세함으로 듣던 그와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은행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미군부대생활도 접고 홀시어머니와 함께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지만 음식솜씨가 남다른 시어머니 밑에서 장바구니 들고 나들이 가듯,자신의 현재의 삶에서 자유로운 탈출을 하듯 하는 삶을 과감없이 잘 그려냈다. 월급에서 주급을 받아가며 분명 시어머니와 자신은 비교도 되지 않는 헤택에서 장보기와 겹쳐 첫사랑 그와 만나는 시간은 한참 이슈이던 '자유부인'처럼 자신을 정당화 시켜 나가는 불륜 아니 로맨스를 꿈꾸는 시간처럼 자신을 변화시켰지만 첫사랑과 함께 하던 일탈의 꿈마져 산산이 부서져 버린 후 그가 뜻하지 않게 뇌수술을 받게 되고 실명및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뇌 속에 기생하던 '벌레'라는 생각에 첫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는 그녀,정말 상사병이 아닌 벌레들에 의한 그들의 재회였단 말인가.분명 그 밑바탕에는 서로에게 터 놓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자존심과 자만감이 강한 친정어머니와는 다른 시어머니의 생활과 모습,음식에 대하여 깐깐하고 홀로 외아들을 살려 낸 자신의 믿음에 강한 분,박수무당에게 의존하여 아들의 생을 좌지우지 당하고 계셨지만 그것이 시어머니의 믿음이고 또 어쩌면 그렇게 하여 남편이 살아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시어머니의 강단진 삶이 비교되기도 하고 그녀는 미군부대에서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 냈다면 그녀가 자리를 내면서 소개를 한 '춘희'라는 여성은 끝내 양공주로 타락하여 동생들을 모두 건사하고 가정을 일으켰지만 자신의 삶은 없는 쭉정이 같은 삶을 살아 온 그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삶이지 않을까. 그런가하면 친정어머니는 하숙으로 친정올케는 포목집으로 강단지게 집안을 일으켜 나가는 삶을 보면 전란의 힘든 시기를 일구어내고 일으켜 세운 것은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임을 인 여인네들의 삶처럼 아마도 여인네들의 힘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한국전쟁및 질곡의 시대를 거치면서 할아버지와 오빠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것은 '여인네들의 삶' 인듯 하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자들의 힘이 사라지고 나서 재건에 앞장선 것은 '여인네'들의 강인한 삶이다. 첫사랑마져 상이군인으로 뇌수술로 인해 실명으로 삶이 무너지는 듯 하지만 그녀도 올케도 비록 양공주로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지만 여인네들은 꿋꿋하게 생산과 삶을 강인하게 이어간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집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 할 수 있는 전란의 시대가 안긴 자신의 집에 대한 생각이 그녀 또한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집은 가정을 온전하게 지켜 주는 울타리처럼 한집안을 튼튼하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되어 준다. 집과 연결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그 속에서 첫사랑도 있고 동생들을 위하여 몸을 팔아야 되는 양공주가 사연도 있고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버리듯 한 허리가 기역자로 꼬부라진 노모의 이야기도 있고 남편이 먼저 갔지만 보따리 장사로 골목에 포목점으로 생을 튼실하게 일으켜 세운 여인네의 강인한 삶도 있고 자신 또한 배운것은 없었지만 음식과 자식에 대한 남다른 생각과 솜씨를 가진 시어머니로부터 배워 그녀 또한 똑부러진 삶을 이어나갈 생활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여인네의 삶을 보여준다.
집이 집으로 생명을 다하면 팔고 다른 집을 산다. 그 집은 다시 새로운 이들에 의해 생명을 찾듯 그 집에 맞는 삶으로 채워지고 사람들 또한 집과 함께 성장을 거듭하면서 첫사랑의 아픔도 잊고 자신의 삶에 안주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펼쳐 나갈 수 있는 듯 하다. 마지막 '춘희'의 취중진담처럼 이어진 이야기가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아 온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아닐까. 사람이나 물이나 어느 그릇에 담겨 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시간차를 두고 이어져서인지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고 수다쟁이 할머니가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도 나오고 격하게 할 말이 그냥 거침없이 쓰여지기도 하여 속 시원하게 읽었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첫사랑을 간직하고 결혼생활을 이어 나간 그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듯 하여 전란을 헤쳐 나온 그들의 삶이 그릇마다 다 다르게 담겨진 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듯 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첫사랑,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어쩌면 이렇게 담아 낼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참 용기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고 그는 그사람 나름대로 또 다른 삶을 잘 살아낸듯 하여 가슴 한 켠이 훈훈해지기도 하면서 아려오는 이야기.자신의 삶을 반추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데 그 모든 일들을 오롯이 참 잘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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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박완서 작가의 네번째 작품이다.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인상깊게 읽었다. 자신이 유부남인체로 우연히 다시 만난 동창생을 사랑한 한 의사와 그 주변의 여자들 이야기였다. 작가가 여자니까 당연히 여자들 이야기를 잘 쓰겠지만 <그 남자네 집>도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한 여자가 결혼을 했다. 결혼전에 연애도 했지만 결혼은 조건을 대충 맞춰보고 했다. 결혼 후에 시댁과 친정과의 문화차이에 힘겨워하고 살림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한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 여자와 연애했던 그 남자를 결혼 후에도 잠시 만나는 일탈을 하지만 결국 아이를 셋이나 낳고 남편과 무사히 결혼생활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 남자도 결국 다른 좋은 여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과 함께 잘 살고 있더란 이야기도 나온다.
공부도 잘한 이 여주인공은 참 현실적이고 요즘 여자와 닮아있다. 물론 이 책은 훨씬 이전의 시대를 배경에 두고 있지만 이 주인공이 당장 현실로 뛰어나온다고 해도 이 시대와 잘 어울릴 여성으로 보인다.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마도 남편의 사랑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사소한 것으로 다투었거나 아니면 내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자의식이 고개를 들었을 때일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부부가 그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닌 것 같다. 사랑을 바탕으로 지지해주고 격려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보살펴주고 아껴주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
이 책속에는 양공주가 나온다. 힘든 가정형편으로 미군부대에 일하다가 양공주가 되었고 동생들 먹이고 공부가르쳤는데 자신은 정작 결혼도 못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동생들 데려와 공부시켰는데 누나 덕분에 공부한 그 동생들이 이제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가슴아팠다.
우리 민족의 아픈 부분까지 살짝꿍 담고 있어서 이 소설은 무게감도 있는 것 같다.
시댁과 친정의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참 잘 그려냈다. 짜증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중에는 시댁의 문화에 익숙해져가고 더 좋아하게 되는 그녀의 모습에서 피식 웃고 말았다. 문화란 무엇일까? 거창하게 한 나라의 문화, 한 시대의 문화를 논하기 전에 개인의 삶과 밀접한 가정문화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가정의 문화, 아니 가풍은 그 집안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공기와도 같은 것 같다. 일상이기 때문에 다른 가풍과 만나면 놀라게 되고 다름을 느끼게 되고 거부감을 갖게도 된다. 같은 민족끼리도 그러한데 같은 지역에서도 그러한데 다른 민족과의 문화적 충돌은 어떠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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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하나쯤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추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첫사랑이건 끔찍했던 이별의 기억이건 세월이 지나고 나면 모두가 추억으로 남아 문득 문득 추억의 장소나 추억의 그 사람이 궁금해질때가 있다. 혹여 그 어디 근처에라도 가게 되면 괜히 추억의 장소를 더듬어 보게 되고 우연히라도 추억속에 존재하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련했던 추억이 빛바래 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이미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첫사랑 이야기란다. 그 처럼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전란의 시대를 거쳐온 사회상과 감정 표현이 섬세하고 무척 수다스러워서 왠지 그녀의 이야기를 코 앞에서 듣고 있는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다. 어느순간은 문득 그 시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자유부인이라는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옛 추억밖에 남지 않은 그 여자는 어느날 후배네 집들이를 간 동네가 아주 오래전 자신이 살았던 동네라는 것을 떠올리고 그때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네집을 찾게 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그녀의 첫사랑 이야기는 뭐 그렇게 달뜨지도 오글거리지도 않은 순수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시들해질 때쯤 그녀는 은행원을 만나 그와 결혼을 하기에 이르는데 손한번 잡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순결을 지켜주었던 그녀를 잃은 그남자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것도 모른채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며 그 남자에게 청첩장을 내민 그녀는 참으로 모질다. 부자집으로 시집을 가는 줄 알고 있던 그녀의 신혼은 그녀의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았으며 매달 얼마간의 생활비를 받아 써야하는 월급쟁이 주부가 되고는 답답증에 시달리기도 하는 그녀는 어쩌면 순수했던 첫사랑을 버리고 간 그 죄를 받는지도 모를일이다.
그녀의 시집살이는 철철이 맛깔스러운 음식을 장만하느라 외상을 져야하는 쪼들린 살림과 생각지도 못한 박수무당이라는 복병으로 인해 껄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좋게도 작용한다. 꼼꼼하기가 자린고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은행원 남편은 그런 아내의 속사정은 나몰라라 하고 어찌되었건 매달 주는 생활비로 지혜롭게 알뜰 살뜰 살아보라 하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살림을 살아가다보면 그만큼 지혜가 느는 법이라고 그녀 또한 장을 보는 요령을 익혀 더이상 외상을 지지 않아도 되었으며 우연히 그남자의 누나를 만나 사랑의 불씨가 고개를 내민다.
우연히 만나게 된 첫사랑 그 남자와 급작스럽게 시작된 바람은 거칠것이 없었으며 어느날은 그남자에게 이미 한번 버린몸을 줘버릴 생각까지 하지만 그날 약속이 깨어지고 그 남자가 갑작스럽게 뇌수술을 하고 눈이 멀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는데 어찌 보면 이미 남의 여자가 된 그녀를 탐한 그남자에게 내려진 벌인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보통의 소설에는 남자들이 바람을 피워 문제가 되곤 하는데 박완서 그녀는 참으로 솔직했다. 또 어느 하루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장님이 된 그 남자와 마주 하게 되지만 이제 그만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굴지 말고 철 좀 들라고 따끔히 충고하는 그녀는 정말 철들었다.
이 소설에는 전란이 휩쓸고간 그때에 미군부대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몸을 파는것과 같이 취급이 되어 가족을 부양하느라 돈 벌기에만 급급했던 그녀는 아무일 없이 그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뒤를 이어 그 자리로 소개해 들어가게 된 시집과 이웃이었던 춘희는 갈보가 되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이런 경우엔 사람이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듯 하다. 어쨌거나 춘희의 삶이 점 점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괜히 죄책감을 느끼곤 하는데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된 춘희의 신세한탄 같고 만담같은 전화 통화를 들을때는 세상은 참 요지경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첫사랑 그 남자를 만난 이야기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지게 된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인생살이에 있어 파란을 일으킬수도 있었을 첫사랑이 아름답게 남겨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 박완서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는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답기가 이를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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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대의 주거환경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기와집과 일본식 가옥과 양옥집에 이어 아파트까지. 집이란 인간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인간자체인 것이라는 것을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삶의 모습들, 의식주와 체면 사이를 방황하는 이중적 가치관들의 고뇌도 여실히 보여준다. 현대의 우리에게 얼마되지 않은 과거에 대해 알려주는 전달자 역할을 이 책은 충분히 하고 있다.
성매매의 사회적 문제, 전쟁에서 늘상 희생의 대상이 되어온 여자와 아이들의 고통도 잔잔하게 읽혀진다. 후에 다음 세대의 눈으로 다시 바라본 피해자 춘화의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 마데카솔에 새살 돋듯 쓰리듯간지럽게 공감됐다.
여성의 희생과 억척이 사회복원의 근원이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둘이 될 수 없고 남이 될 수 없는 남성와 남편에 대한 쓸쓸한 인생과 메마른 감정을 보여줌으로서 전쟁의 희생에는 결국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음을 느끼게 해 준다.
무거운 이념이나 사상같은 것을 많이 보여주지 않아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 짧게 느껴지는 여성주의와 평화에 대한 염원이 충분히 녹아있다. 그래서 감동적인 소설이다. 한 편의 소설로 내마음도 치유받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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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내가 아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작년 초 읽었던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산문집이 전부였다. 그 책을 읽을 당시만 해도 이것이 박완서 작가의 유작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작품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박완서 작가의 타계 소식이 들려왔다. 고작 작품 하나를 읽었을 뿐이지만 그 작품이 하필 산문집이라 나도 모르게 박완서 작가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소식은 충격적이었고 왠지 모를 허전함을 가져왔다. 그리고 얼마 뒤 우연히 박완서 작가 생전의 강의를 녹취한 내용을 듣고 박완서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이렇게나 유명한 작가인데 그 작가의 작품을 고작 하나 밖에 읽지 않았다니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명성에 걸맞게 워낙 주옥같은 작품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그 남자네 집'이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곳곳에 녹아있는 작가의 아련한 추억들이 마음을 울려왔다. 한 여인의 일생을 훔쳐보는 것 같기도 했던 이 이야기는 젊은 시절 애틋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첫사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떨림, 아득함,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이라는 것만으로도 벅차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말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 가지는 에너지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6.25라는 어두운 그림자와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을 때 사랑이라는 것은 주인공에게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선물한다. 그것은 현실에서의 도피이기도 했고, 가난 속에서 부릴 수 있는 최대의 사치이기도 했다. 이런 첫사랑은 주인공이 삶의 무료함과 답답함에 시달릴 때 불쑥 불쑥 찾아와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그것은 삶의 전체를 흔들듯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했고 몸을 불살라 버리고 싶은 욕망이기도 했다. 주인공은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 그림자를 쫓는다. 결혼은 했지만, 언제나 구슬 같은 소녀로 남고 싶은 주인공의 청춘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그렇게 첫사랑이 지난 간 후에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기억 때문에 그것을 과장하고 미화한다. 남자와 시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비위생적인 음식을 먹으면서도 시간에 쫓기며 조마조마한 밀회를 즐기면서도 주인공은 짜릿함을 느낀다. 나는 이런 주인공의 행복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단지 좁고 답답한 집안을 벗어나서 즐기는 아슬아슬한 만남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긴장감, 그리고 자신과 같이 불안한 시절을 누비고 사랑했던 첫사랑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와 함께 시절, 그 남자와 함께 나누었던 행복감, 그 남자 때문에 겪었던 희로애락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다시 만난 남자가 예전처럼 빛나지 않아도 주인공은 전혀 상관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와 상반되게 친정집에서 그 남자를 만났을 때 주인공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남자의 모습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보다 너무 세월을 지나쳐 온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남자는 어렸고 자신은 너무 세상을 알아버렸다. 시력을 잃은 남자와 귀여움을 잃은 자신을 보며 주인공은 이제 첫사랑이라는 그 감정이 지나가버린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감정인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의 손을 잡아주기 보다 이제는 누나의 입장에서 남자를 다그친다.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된 후 바라보는 첫사랑은 철없는 새색시가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고 돌아간다고 해도 소용없는 감정인 것이다. 그런 지나간 감정의 퇴색을 느낀 주인공은 그 남자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그 남자와 완벽하게 이별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그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이렇게 첫사랑이 가지는 복잡한 감정에 대해 너무나도 잘 묘사하고 있다. 설레는 감정부터 그런 감정이 퇴색되어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첫사랑을 떠올리면 그저 아련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때까지의 과정이 이 소설에는 잘 나타나있다. 첫사랑이 첫사랑이기에 가지는 힘은 여전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것을 소유하거나 움켜쥐려 하지 않고 그곳에 두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보다. 이런 작가의 첫사랑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6.25전후와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는 모습, 그리고 그 시대에 무너지고 굴복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내가 마치 그 시대를 살아낸 착각마저 들었다. 아직은 어려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나도 사랑과 결혼에 대해 알 수 없는 기대감을 간직한 나도 소설의 주인공처럼 저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이 정말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지도 모른다. 나와 맞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꿈을 포기해야 하고 시대는 나를 계속 구석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럴 때면 나도 첫사랑 같은 청춘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것을 잡아보려고도 하고 되찾아보려고도 하다가 진정한 인생과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인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삶의 위안을 얻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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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타계가 내게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국 문학사에서 그녀만큼이나 한국 문학을 빛낼 만한 인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한국문학의 소재보다도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탁월하고도 섬세한 묘사가 가능한건 바로 박완서가 그 시대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문학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 내면을 그려내는 다양함과 면밀함 때문이다.<그 남자네 집> 역시 책을 덮고 '역시 박완서'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기에 그만큼 그녀의 타계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아버지와 오빠는 북으로 떠나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미군부대에서 일하며 다달이 나오는 월급을 생활에 짬짬이 보태며 생활하던 중 먼 친척이 이웃집으로 이사오게 된다. 세월이 흘러 전쟁에 나갔다가 상이군인으로 돌아온 그 집의 막내와 나는 항상 붙어다니게 되지만 나는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고 그것으로 내 첫사랑은 단지 젊은 날의 풋내나는 사랑이었을 뿐 끝내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도 그와의 아슬아슬한 밀회를 즐기게 되지만 그에게 닥친 하나의 불행한 사고가 더 이상의 밀회를 허락하지 않게 된다. 세월이 흘러 그 남자 또한 결혼을 하고 이따금 만나도 그것은 더 이상 젊은 날의 감정과는 다른 담담함이 된다. 인간 내면의 포착을 어쩜 이렇게 유려하게 그려낼 수가 있는지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사랑이란 언제나 이렇듯 애틋한 것일까. 이루어지던 그렇지 않던 아마 첫사랑이란 누구에게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변함없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있고 추억할 수 있는 무엇이 있기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어딘가 모를 짠함이 내 속에서 차오르는 것 같다. 삶이란 참 단촐한 것 같아도 구슬 같이 빛나기 마련이라는 걸 박완서 문학을 통해 항상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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