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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작주의의 임시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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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로 하진 선생의 전작주의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멋진 추락>을 읽기 전에 <호랑이 싸움꾼>을 읽으려고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신간부터 먼저 읽게 됐다. 한가지 궁금한 점은 내가 위키피디아를 통해 조사한 바로는, 하진 선생의 단편선은 모두 4편으로 되어 있는데, 국내에 소개된 그의 단편선은 5편이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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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로 하진 선생의 전작주의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멋진 추락>을 읽기 전에 <호랑이 싸움꾼>을 읽으려고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신간부터 먼저 읽게 됐다. 한가지 궁금한 점은 내가 위키피디아를 통해 조사한 바로는, 하진 선생의 단편선은 모두 4편으로 되어 있는데, 국내에 소개된 그의 단편선은 5편이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모두 9편의 하진 선생의 책이 국내 독자를 만났는데, 그중에 <기다림>을 제외한 8편을 왕은철 교수가 번역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일관성 있게 번역자를 믿어준 두 출판사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같은 작가라도 역자가 달라질 경우, 전혀 다른 작가가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가.

 

역설적이게도 <멋진 추락>이 소개되기 전, 가장 먼저 발표된 <호랑이 싸움꾼>이 가장 늦게 한국의 독자를 찾았다. 개인적으로도 그의 작가적 시원을 볼 수 있는 그의 첫 작품을 가장 늦게 읽었다.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전, 중국 인민해방군에 복무했던 작가의 경력은 특히 <호랑이 싸움꾼>에 잘 나타나 있다. 모두 12개의 이야기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6편이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제스와 내전을 체험한 늙은 홍군 출신의 회상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을 처녀와 정분이 나서 군생활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도망간 탈영병의 이야기, 목소리만 듣고 사랑의 포로가 된 통신부대원의 공허한 러브 스토리, 어떤 혁명 과업보다도 인민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노병의 고백, 러시아와 일촉즉발의 위기였던 국경분쟁을 배경으로 한 포로기 그리고 소(小)군벌 용머리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물론 소설이 허구라는 점을 참작해야겠지만, 정말 하진 선생은 이런 다양한 글감의 원천을 모두 자신의 군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말인가!

 

<뉴욕에서 온 여자>는 서구사회를 동경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동화(同化)를 거부하는 중국의 이중적인 모습을 꼬집는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미국에서 4년간 생활하다 중국으로 돌아온 첸진리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두가 그녀가 미국에 정착하리라고 예상했지만, 그런 예상을 보기 좋게 깨며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가 돌아온 유일한 이유는 자신의 딸 단단을 보기 위해서지만 그녀의 시부모는 진리가 딸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슨 달콤한 말로 자신의 금지옥엽 같은 손녀딸을 꾀어 가려고 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 일한 바탕으로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진리의 노력은 미국에서 그녀의 생활에 대한 낭설로 무산된다. 그녀가 보통 중국인보다 훨씬 더 많은 재화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고향에서 그녀의 존재는 서방 자본주의에 물든 쁘띠 부르주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진 선생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는 타이틀작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에서 작렬한다.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이라는 고전극을 재현하기 위해, 진짜 호랑이와 격투를 벌인 배우 후핑은 계속되는 혹독한 촬영에 그만 정신줄을 놔버린다. 결국, 촬영팀은 길들지 않은 호랑이 대신 호랑이 가죽을 사람에게 뒤집어 씌워 촬영하자는 의견에 합의한다. 그 와중에 중국 의학계에서 보물로 여겨지는 호랑이 뼈가 달린 뒷다리가 실종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촬영에 나선 후핑은 너무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진짜 호랑이 싸움꾼이라 생각하고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대역배우를 그만 돌로 내려칠 뻔한 아찔한 순간을 연출한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촌극은 자본주의 탈을 쓰고,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는 중국의 이율배반적 모습에 대한 풍자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호랑이 싸움꾼>의 최고는 역시 <사전>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혁명의 연장선에서 조우웬과 대장 리앙밍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역을 앞둔 조우는 책벌레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동료와 상관은 늘 책만 읽어대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책을 읽기 위해 자신만의 조용한 장소를 찾던 조우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한 리앙 대장과 만나 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책읽기에 전념하게 된다. 국공내전 중에 상부에서 하달된 문서의 명령을 읽지 못해 전 중대원이 몰살당한 리앙 대장의 과거는 왜 혁명 과업을 위해 읽고 쓰는 능력이 우선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살아 있는 예로 제시된다.

 

<호랑이 싸움꾼>은 하진 선생 문학세계의 시원을 알리는 작품이다. 이제는 순화된 중국적 삶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작품을 관통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간결한 문체와 정치색을 가린 뚜렷한 비유의 진화 그리고 냉소적 블랙 유머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생활을 하며, 수많은 교정의 과정을 거친다는 선생의 작가론에 일필휘지로 글을 쓰는 이들은 모두 경청해야할 것이다. 타지에서 일가를 이룬 작가의 글은 그의 노력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도전을 열렬한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



h******1 2011.03.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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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을 향해 질주하는 문장
"핵심을 향해 질주하는 문장" 내용보기
하진 이라는 생소한 작가의 책을 아무 고민 없이 집어든 이유는 역시 그 제목 때문이었다.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 하진도 알고 있겠지. 좋은 책을 찾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힘들다는 사실을.1956년 중국 리아오닝에서 태어난 하진은 이십 대 후반까지 중국에서 살다가 영문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논문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 이제 고향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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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 이라는 생소한 작가의 책을 아무 고민 없이 집어든 이유는 역시 그 제목 때문이었다.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 하진도 알고 있겠지. 좋은 책을 찾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힘들다는 사실을.


1956년 중국 리아오닝에서 태어난 하진은 이십 대 후반까지 중국에서 살다가 영문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논문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볼까 하는 찰나 "톈안먼 사태'가 발생하고 말지. 학생 한 명이 거대한 탱크 앞을 가로 막고 선 그 유명한 사진을 낳은 '천안문 사태'. 2,000명이 넘는 죽음에 분노한 하진은 미국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런 결정을 한 순간 평생을 이고 갈 작품의 주제가 결정된 걸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긴 10편의 소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 비인간성과 비효율, 무지와 폭력 속에 빠져 허우적 대는 중국의 현대를 그린다. 쉽게 말해 공산주의의 최후를 그린다는 말이다.


당연히 중국은 하진을 싫어했고 미국은 좋아했다. 하진은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반중국적인 방식으로 미국 문학계에 스며들었다. 바로 영어로 소설을 쓴 것이다.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참으로 쩨쩨한 전략이로군 쌀과 반찬을 얻기 위해 모국어를 팔다니 하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한 작가에게 있어 모국어를 포기한다는 것은 한 남자에게 자신의 남성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강도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알아두시길. 물론 미국 문학계에 편입할 방법으로 작품 활동을 영어로 하는 것 이상의 것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로 중국과 미국이 세계 경제의 패권을 두고 옥신각신 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하진이 중국어로 작품을 썼다 하더라도 너무나 반중국적인 그 내용으로 인해 미국 사회의 관심을 끌 기회는 충분했을 것이다. 단순히 방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선택한 건 일종의 미학적 결정이 아니었을까? 사실 하진의 문장은 <전미도서상>, <플레너리오코너상>, <펜/헤밍웨이상>, <펜/포크너상>, <푸시카트상>, <칸 문학상>, <타운젠트상>, <아시아아메리칸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고, 두 차례에 걸쳐 <퓰리쳐상> 후보에 오른 작가의 것이라고 보기엔 거의 아무런 특색이 없다. 그의 문장은 매우 간략하고, 평범하고, 밋밋하다. 뉴스 보도도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엔 아주 고차원적인 전략이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건 수 많은 단어가 서로 종이 위를 차지 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는 말이다. 작가 입장에선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단어는 쓸데 없는 수식을 식객으로 들이고 문장은 그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느닷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너무 많이 알기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이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는 이같은 실수를 생략하게 만들어준다. 남자가 죽었다.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죽음이다. 이런 문장은 읽는 이를 거추장스러운 통관 없이 곧장 핵심으로 이끄는 위력을 발휘한다. 도정에 도정을 거듭한 쌀 한 톨이 최고의 사케로 변하듯 핵심을 향한 논스톱 질주가 우리를 묵직한 감정의 덩어리들과 충돌하게 만든다.


순도 높은 감정을 선사하기 위한 하진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적어도 스무 차례"에 걸친 교정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다. 작가에게 있어 가장 괴로운 순간은 어렵게 끝낸 글을 다시 꺼내 고쳐 쓰는 일이다. 퇴고를 거듭하는 작가의 고통은 가히 시지프스의 형벌과 비견할 만하다. 그러니 하진의 평범한 문장은 미학적 선택과 치열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의도된 산물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호랑이 사냥꾼은 찾기 힘들어>에는 10편의 소설이 있다. 인간의 허위와 허세, 자존심 때문에 벌어지는 촌극은 모파상의 단편을, 평범한 일상을 해학적으로 드러내는 점에선 안톤 체호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진은 두 위대한 작가가 쌓아 올린 현대 단편 소설의 초석 위에 자신의 작품을 올린다. 그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기도, 아주 슬픈 일이기도 하다. 나는 단편을 아주 사랑하는데, 그 단편은 이제 세계에서 밀려나 까마득히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s*******r 2016.05.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