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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간된 '일본인의 조선관'은 재일 사학자 금병동 씨의 칼럼을 책으로 엮어 낸 것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래의 총 57명의 일본인들을 뽑아 일본인들의 조선관을 소개, 평가하고 있다. 히데요시를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까지의 일본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저자가 고대나 중세보다는 근대 이후의 일본인들의 조선관을 보다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전공이 재일 일본인이나 위안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히데요시 이전의 일본인들의 한국관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57인의 일본인들 중 대부분은 조선에 대해 모멸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침공의 기억은 무사들 사이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메이지 유신 당시의 인물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또한 그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실제 당시 조선의 상태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던 상호아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들의 그러한 인식 역시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조 사후 반 세기 넘게 세도 정치와 수탈로 황폐화된 조선과 에도 말의 발달한 상업과 사회 인프라를 기반으로 개화를 시작한 일본과는 이미 국력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조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 인물도 적지 않았다. 양심적으로 관동 대학살을 비판하거나 조선 합병을 비난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 역시 단순한 동정에 그치거나 중간에 뜻을 꺾은 이들도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렇게 긍정적으로 본 인물들은 대부분 정부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이들이거나 사회적으로 주류를 차지하지 못한 이들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역시 당시 일본의 대세는 한국에 대한 멸시관과 합병 찬성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일본의 정치적, 사회적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이 한국에 대한 동정을 표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예외라고 한다면 구 막부의 고관이었던 가츠 카이슈의 경우가 거의 유일하달까.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책은 근대 일본인들의 조선관을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는 사실 단점이 좀더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번역이 너무 어설프다. 일본어를 직역한 말투는 지금까지 본 책 중 십이국기 이상으로 심해, 한 페이지만 읽어도 일본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역자는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온 엘리트인데, 역시 번역의 질과 역자의 학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내용 파악엔 무리가 없으나(일부 이상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색한 표현이 너무 많아 읽는 데 거부감이 든다.
또한 순수 학술서적이 아니라 신문 연재 칼럼을 모은 것이라 감정적인 표현이 많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남겼더라도 조선에 대해 조금이라도 모멸적인 시각을 보이면 바로 혹독한 비난이 이어지고, 어느 정도 긍정적인 시각만 보여도 훌륭한 인격자라는 칭송이 이어진다. 반대로 시각을 바꾼 경우에도 '이것이 그의 한계였다'등등의 비난이 쏟아진다. 저자는 사람을 조선을 보는 시각 하나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보기에 일본에서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남겼어도 조선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가졌다면 그리 볼 수 있겠지만, 이는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된다. 흑백양면론적인 논법은 이 책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 없게 한다. 저자도 이를 인식한 듯 후기에서 이를 수습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기에, 곧이어 출간될 '조선인의 일본관'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사라졌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