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치아노 베리오 : 코로(Coro) 쾰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쾰른 라디오 합창단(연주) 루치아노 베리오(지휘) (Brilliant Classics 2009 / Brilliant 9108) ‘코로’는 부연기법으로 이어진 베리오의 작곡 여정을 갈무리하는 작품이자 그 자신이 언급하듯 ‘열린 작품’을 위한 시도(open project)였다. 여기에는 그가 탐구해온 ‘열린 작품’을 구현하기 위한 ‘목소리’의 가능성이 집약되어 있다. 총 31개의 에피소드 안에서 문학 작품과 민요에 대한 관심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의 ‘대지에 살다(Residencia en la tierra)’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각지의 민요를 대비시키는 구도로 표현되었다. 역사적 사건 속에 담겨 있는 일상(네루다의 서사시)의 요소와 일상생활 자체(민요 텍스트)의 요소들을 구조적으로 엮는 시도는 ‘목소리’와 악기를 다루는 방식을 통해 확장된다. 민요로부터 가곡(Lied)으로, 아프리카의 ‘헤테로포니(heterophony, 동일한 선율을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동시에 연주하는 선율 유형)’으로부터 폴리포니(polyphony, 여러 개의 선율이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적으로 결함되는 선율 유형)로 확장된 기법들과의 조화로 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텍스트와 목소리, 악기라는 베리오 일생을 가름하는 요소들을 ‘조화’시킴으로써 그는 ‘열린 작품’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1976년 초연(1977년 개정판 초연)된 ‘코로’는 세 가지 음반이 있다. 베리오 자신이 지휘한 음반으로는 초연 당시 이끌었던 쾰른 심포니와 합창단의 1979년 녹음(LP, DGG 2531 270, 1980년 발매; DG 423-902-2, 1990년 CD로 재발매; DG 471587, 2002년 재발매; Brilliant 9018, 2009년 발매, DG 음반과 같은 음원)과 프랑크푸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와 바이에른 라디오 합창단(Bavarian Radio Chorus)의 녹음(Col Legno 20038, 2000년 발매)이 있다. 개정판의 초연을 맡은 레이프 세게르스탐(Leif Segerstam)의 녹음(빈 라디오 교향악단[ORF Radio Symphony Orchestra Vienna]과 합창단[ORF Vienna Radio Chorus] 연주, 1974년 8월/1977년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ORFEO 626041, 2005년 발매)에는 베리오의 첫 번째 부인인 캐시 버버리언이 참여하기도 했다. ‘코로’의 작곡자와 초연 멤버가 참여한 본 음반은 가뜩이나 적은 레퍼런스 가운데에서도 초심자가 선택하기에 가장 안정적인 음반이 될 것 같다. 밀라노 음악원 시절, 줄리니(Carlo Maria Giulini, 1914∼2005)에게 지휘를 배웠던 베리오의 능력은 (복잡하고 정교한) 자신의 작품을 지휘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연주는 전반적으로 생경하거나 차갑지 않다. ‘봄의 제전’에서 느낄 법한 원시의 소리는 분위기만 무질서하게 느껴질 뿐 짜임새 있게 움직이고 있다. 각각의 성부(목소리)는 매끄럽게 이미지들을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2번 트랙과 8번 트랙 초반의 파국(‘Venid a ver la sangre por las calles[Come and see the blood in the streets]’)이나 10번 트랙에서 수렁으로 빠져드는 모습(‘Mirad mi casa muerta[Look at my dead house]’)을 표현하는 목소리가 그러하다. 여러모로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를 닮은 곡이라 생각한다. 1번 트랙 초반(에피소드 1), 피아노 선율에 이은 여성 두 사람의 목소리는 과거 어떤 순간의 경험을 회상하는 계기를 이끌어낸다. ‘황무지’에 나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에서 나를 기다려 주나”) 2번 트랙(에피소드 2)이 시작되면서 파국은 시작된다. 이 때 등장하는 네루다의 시구(“와서 거리의 피를 보라”)는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라)”는 ‘황무지’의 한 대목과 닮아 있기도 하다. 4∼5번 트랙(에피소드 6∼8)에 등장하는 슬레이벨은 ‘황무지’의 마지막 단어인 ‘샨티(평화)’를 나지막이 읊조리는 것 같다. “이 단편들로 나는 내 폐허를 지탱해 왔다. / 분부대로 합죠 히에로니모는 다시 미쳤다. / 다다(주라, 동정하라). 다야드밤(공감하라). 담야타(자제하라). / 샨티 샨티 샨티(평화).”(‘황무지’ 마지막 부분)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베리오 역시 수많은 인용구들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연기(또는 가면)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룬 히에로니모처럼 두 사람 역시 수많은 단편들을 조합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단편’을 대하는 방식(동정과 공감과 절제)은 파국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샨티에 이를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코로’와 ‘황무지’를 맞물려 보는 것이 억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가 ‘열린 작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My point of view> ★★★★(4/5) 2014. 3. 28 草·畢 碩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