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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촛불이 중심에 있었을때 나는 정말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그런데 어느사이 촛불은 미약해졌고,나 역시 언제 내가 그랬는가 싶을정도로 무덤덤해져 있었다. 그러다 며칠전 아직도 촛불시위가 촛불데이트라는 문화로 수요일마다 덕수궁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촛불'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었다. 지난해 촛불시위를 보면서 그리고 간혹 참여하면서 느꼈던 일들을 다시금 책으로 확인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도 결코 잊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이 들고 말았다.
책을 읽는 사이 나도 모르게 몸은 전율했고,우울했고,즐거웠다. 그리고 당시에 고민하지 못했던 혹은 스스로 답을 내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비폭력과 폭력의 관계,명박산성을 넘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귀를 막은 저들에게 그들이 지칠때까지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었는지... 사실 지난해 촛불의시위를 보면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이렇게 촛불을 드는 것이 정말 의미는 있는 것일까 그런 마음도 들었었다.
이 책은 지난 일년의 우리들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일기같았다. 조금 더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 보게 되기도 했다. 지금 힘들고,우리가 당장 무언가를 바꿀 수 없더라도, 우리 마음 속에 2008년 촛불을 들 때의 첫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조금 느리고 힘들고 더디더라도 우리는 변화 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저 명제를 나는 믿고 싶다.
이 책의 수익금 일부는 촛불집회 참여로 탄압받고 있는 이들과 촛불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공익단체를 위해서 쓰여진다는 ...사실도 이 책을 구입하게 한 동기 중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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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는 말이 없다. 급작스러운 소식에 사람들은 당황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밀려드는 그리움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우매한 민중이 한 인물을 영웅화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치 않는 자만은 아니다. 자유롭게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던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 보다 많은 것을 기대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아 느껴야 했던 비애.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사람들은 매일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소위 촛불시위와 관련된 기록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촛불을 처음 든 것은 한미FTA,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둘러싼 문제가 부각되면서부터였다. 좀더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에는 광우병의 위험에 관한 어떠한 언질도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식량 주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루어낸(?)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개방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 일으킬지를 우려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부의 목소리에 반대하는 의사 표명은 과거에도 있어왔다. 그러나 누군가가 주도하고 나머지는 따르는 일사 분란한 형태의 시위와는 다른 형태의 움직임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을 택했다. 촛불 하나는 그저 제 주변을 밝힐 뿐이다. 하지만 미약함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함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장관도 이룰 수 있다. 2008년에 창조된 촛불은 그래서 아름다웠다. 지난 날과 같은 처절함은 존재치 않았지만 자발적이었기에 또 흥겨웠다. 모두가 거리에 쏟아져 나와 제각각 자신이 원하는 바를 외칠 수 있는, 진정 민주화된 사회에서만 가능한 일이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비록 세련된 구호로 정리되진 못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방식이라 하여 모두 버려져야 하는 건 아니다. 하나하나 목소리는 모두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것이었다. 부동산 투기를 용인하는 각종 규제완화, 귀족중학교라는 별칭이 더 유명한 '국제중학교' 추진, 재벌기업의 은행소유까지 허용할 금산분리 완화, 재벌신문사의 방송사 겸업 허용 등 사람들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우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는 이 우려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했고 연일 촛불을 높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와 나의 아이에게 광우병의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 외치는 어머니는 아동학대죄에 해당한다. 불과 다섯 살배기 아이도 촛불을 들면 시위를 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이를 전진에 반하는 역진이라고 정의한다. 현 정부는 나와 아이들 입에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들어오든, 산을 넘고 다리를 부수면서 대운하를 파든, 건강보험이 사유화되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책임을 포기하든, 이 모든 것을 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정상 취급 받을 수 있다고 만천하에 천명하는 것으로 대화와 타협을 거부했다. 자발적인 움직임, 피플파워가 주사파와 북쪽에 연결된 세력에 의한 것이라는 색깔론도 고개를 든 지 오래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금 당장 움직임이 꺾인다 하여 그게 곧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어마어마한 희생을 낳은 지난 80년의 광주가 머지 않은 훗날 민주화라는 고귀한 싹을 틔운 것처럼, 지금의 촛불도 언젠가는 찬란한 밝음으로 변모될 것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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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된 촛불집회 현장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은 함께지만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함에 늘 미안하고 고마웠다.
우연히 들른 오프라인 서점에서 발견하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지만, yes24를 통해 구매해 다시 읽고 있다.
촛불의 시작이 어디인지, 막연히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알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솔직한 "무서움"의 마음에 함께 하지 못함에 너무나 미안했다.
'내 일', '니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생각하고 함께 촛불로 뭉친 그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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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출판에서 펴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참여연대와 참여사회연구소에서 2008년 '촛불'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촛불시위가 진행된 과정을 '전조, 파도, 직접, 폭발, 광장, 민심, 진화, 역진, 공명, 계속' 등 10개 부분으로 나누어 2008년 촛불을 '기록'하고, 또 '기억'하기 위하여 송경재교수, 한홍구교수 등 12사람이 나누어 글을 쓰고 한겨레신문의 사진기자들이 당시 찍은 사진과 박재동화백의 그림을 곁들인 책입니다. 참여연대 박영선기획위원장은 이 책의 머릿글에서 "몇 사람들이 얼기설기 얽힌 기억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촛불을 기록해 보자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 그리 유다른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기록의 목적은 망각을 피하자는 것이겠지요. 기억이 모든 이들의 의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으나, 솔직히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라고 적고 있습니다.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촛불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기록 작업이 ‘기억의 낭만화“를 피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면서도 책의 전반에 걸쳐서 촛불시위가 평화롭고 낭만적이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시위대는 촛불을 들고 미국소는 광우병소라고 외쳤는데, 국가에서는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바람에 자위을 위하여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지로 보입니다. 화보구성 역시 시위대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경찰은 시위대를 힘으로 밀어붙이고 물대포를 쏘고 피를 흘리는 채로 끌려가는 시위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사에서 편집한 <촛불, 그 65일의 기록>은 지난 해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발간하면서 당시 보도된 경향신문의 기사를 중심으로 기록하였다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지난 해의 기억을 되살려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거나 알고 싶지 않은 부분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선일보에서 펴낸 <거짓과 광기의 100일> 역시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해 촛불시위가 시작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진보 아니면 보수로 나뉘어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는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중도적 입장에 자리를 내주지 않고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양분해서 편을 갈라야 속이 후련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진보나 보수 역시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는 식의 편 가르기에 익숙해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저는 요즈음 지난 해 촛불시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러한 어설픈 편가르기 판에서 일방적으로 한편으로 밀려 서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양쪽의 주장을 살피고 근거가 확실한 것인지 문제는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돌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지난 해 촛불시위에서 MBC 그리고 5월 2일 청계광장이 모여든 청년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고 인수위시절부터 발표되어온 0교시학습, 자사고문제, 영어몰입교육 등의 교육개혁안에 대하여 쌓여가던 학생들의 불만이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인데, 여기에 인기연예인들이 한 몫을 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정 연예인을 광우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연예계는 최근 기획사의 철저한 계산에 따라 연예인의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기획사에서는 자사 연예인들을 띄울 수 있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제기될 당시 이를 이용해 팬들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기자에게 흘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송경재교수는 시민들이 네트워크를 통하여 식견을 얻어가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관한 것은 과학적 접근을 통하여 결론을 내렸어야 하는 사항이었습니다. 일부 전문가임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위험성이 과연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 치열한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어야 하는데, 토론의 장보다는 진보성향의 언론을 통하여 위험을 확대 재생산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결국은 네트워크를 통하여 과학적 근거가 약한 내용들이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이를 전해들은 네티즌들의 불안감은 고조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시위사태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작용했던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네티즌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내가 몰랐던, 내게 있는 권리를 깨닫다”를 보면, “저희 카페 같은 경우는 누가 주도한 게 아니라 대선 전부터 이병박 대통령 후보에 대한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게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 같아요.”라고 발언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선거과정에서 후보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고 국민의 선택을 얻은 사람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당선된 사람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 사람을 선택한 다수의 국민의 뜻을 멋대로 바꾸려하는 짓입니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것은 선거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임기동안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여 집행하고 그 결과를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해 우리사회를 혼란으로 내몰은 사태는 보수진영의 주장대로 대선에서 패배한 진보진영의 몸짓이었다는 평가가 옳지않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 소개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선언문 <대통령의 힘과 교만함을 탄식함>은 마태복음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만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나?”(마태 7,15) 이 말씀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국민들에게 거짓을 고했는가 하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것입니다. 이 책의 부제 <2008 촛불의 기록>과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이 책은 그 작은 시작입니다.”라는 기획취지처럼 우리 국민들이 2008년 우리를 혼란에 빠트렸던 촛불시위의 원인이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과학적 평가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 지켜볼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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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망각' 없다면 어떤 삶일까?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을 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말처럼 망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편 중 하나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망각보다는 '기억'으로 영원히 자리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든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까지 100여 일간 켜졌던 ‘촛불’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우리의 경험이다. 이 경험을 망각이 아니라 영원한 기억으로 되살리기 위한 책이 나왔다.
<한겨레> 사진부 기자들이 찍은 10만 컷 사진 중 가려뽑고 봅은 115컷과 촛불시민으로 함께 했던 11명이 자신이 경험한 촛불 영원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펴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다.
책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직후의 경북 경주 근교 우시장의 한적한 풍경으로 시작하여 7월 12일 밤 비오는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가족의 활짝 피어난 웃음으로 맺음하하면서 전조 ․ 파도 ․ 직접 ․ 폭발 ․ 광장 ․ 민심 ․ 진화 ․ 역진 ․ 공명 ․ 계속으로 나누어 각 국면을 한 사람씩 써 내려갔다. 책상과 머리에서 나온 사진과 글들이 아니기에 사진 한 장, 글 한 편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지난 해 그 뜨거웠던 경험을 망각이 아니라 기억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경험을 한다.
또한 115 컷 사진뿐만 아니라 107쪽-110쪽 박재동 화백의 촛불집회 현장 스케치와 캐리커처는 집회 기간 내내 넘쳐났던 촛불소녀와 시민, 386과 유모차 부대의 창조적 유희, 생명권을 되찾기 위한 저항을 사진과 다른 시선으로 기억하게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없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다. 신이 만든 창조질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권까지 짓밟았던 축산자본과 대한민국 정치권력은 '어둠'이었다. 인간 생명권까지 짓밟아버린 축산자본과 정치권력에 저항했던 촛불은 '빛'이었다.
하지만 촛불 발화 원인은 축산 자본과 이명박 정권의 생명권 파괴 이전에 영어 몰입교육과 강부자 내각 파동, 출범 초기 각종 규제완화 조처와 학교자율화, 대운하 논란 따위를 거치며 누적된 시민사회의 불만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라는 '스파크'를 만나면서 '주류 시스템이 가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발화되었다고 글쓴이들은 적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만 생명권 파괴가 아니라 영어몰입교육과 대운하 같은 모두가 인간 기본권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었음을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 촛불 배후는 ‘이명박 정권’이었다. 자신들이 배후이자, 원인이면서 그들은 배후세력 운운했다. 10대 소녀들로 시작된 촛불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와 아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운동화’ 신고 뛰었던 386세대, 나이 지극힌 어르신까지 모았다 윤형근(사단법인 한살림 상무)은 “이들이 가진 ‘생명의 위기에 대한 본능’과 ‘우정과 환대. 돌봄의 감수성’은 일정 시점까지 촛불집회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생명의 위기에 대한 본능으로 시작된 촛불은 드디어 파도가 되어 울렁대기 시작했다. 촛불소녀들은 기존 집회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 의견을 표출했다.
그들은 '되고 송'을 불렀고, '뻔한 코스'가 아닌 발길 닫는 곳으로 갔다. "나는 안 찍었어!"를 외쳤으며, 일산 하는 한 고3 여학생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나라 걱정으로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하면서 촛불을 들었다.
퇴계로를 막으면 서울역으로 돌아가면 되는 촛불시민들을 향하여 결국 경찰은 "운동권보다 무서운 놈들이 나타났다!"는 탄식을 자아냈다.
고3학생이 수능보다는 나라 걱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 명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촛불은 헌법 1조를 무시한, 인간 생명권과 기본권을 저버려 어둠이 되어버린 청와대로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소통'을 원했지만 '차벽'과 '명박산성'으로 '불통'해버렸다. 왜 이명박 정권은 차벽과 명박산성으로 불통해버렸을까? 박영선(참여연대기획위원장)은 "어쩌면 국민의 건강권이나 행복추구권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촛불시민들에게는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가 보루였으나, 이 보루는 오만한 대통령과 무지막지한 검경에 의해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는 미국산 쇠고기와 영어몰입교육, 이름만 바뀐 4대강 정비 사업과 함께 용산철거민참사에서도 어김없이 파괴되고 있다. 파괴되어 가고 있는 인간 기본권 보루를 촛불이 과연 살릴 수 있을까?
희망은 있다. 이유는 지난해 촛불은 신진욱(중앙대 교수) 말처럼 "촛불의 힘은 시민들 간 이음, 나눔, 모임에서 생겨났다. 인구 1,200만의 세계적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시민들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성별과 연령, 직업과 계층을 달리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 행동했으며, 또한 모두를 위해 각장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헌신했"기 때문이다.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인민을 폭도와 불법폭력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명박산성과 거대한 차벽으로 막았지만 시민들은 하나 된 공동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생명과 민주주의 소중함이라는 큰 메시지를 던졌으나 2008년 촛불은 현실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못했다. 그 반증이 재벌방송과 조중동방송, 금산분리완화, 2%를 위한 감세 정책와 용산철거민참사 같은 비극이다.
여기 우리 과제가 있다. 촛불은 계속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 주권은 바로 우리, 국민으로터 나온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똑바로 국정을 운영하라!"는 외침을 끝임없이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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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것 같지만 역시 나라 전체를 뒤흔든 촛불시위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협상 결과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 촛불시위는 정부와의 소통 문제를 넘어서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변해갔다. 수많은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로 불타올라 한반도를 밝게 비추었던 촛불의 기억이 어느새 과거의 일로 희미해질 무렵 처음 촛불이 타오른 순간부터 촛불이 꺼지기까지의 과정을 알려지면서 일반 시민들이 참가하는 집회의 성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MBC의 PD수첩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국민들의 광우병 공포는 극에 달했고 쇠고기 재협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 더욱 분노한 국민들은 삼삼오오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작년 내내 한반도를 뒤흔들며 국민들의 힘을 보여주었다. 국민들과 정부는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한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정부가 쇠고기 추가협상이란 카드로 겨우 성난 민심을 진정시켜 촛불시위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기관인 국회가 이를 추궁하고 시정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그야말로 식물국회라 할 수 있었다. 결국 참다 못한 국민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 바로 촛불시위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은 직접민주주의에 비해 시간적, 물리적인 비용소모를 줄이고 전문성 등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사를 직접 반영해서 정책을 결정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표자들을 통해서 이를 행하는데 대표자들이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거나 대변할 생각이 지금의 모습은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촛불시위를 하는 건 그야말로 국력의 낭비이자 소모라 할 것이다. 한다고 주장하는데 일응 동감하는 면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존의 제도로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옳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안 그래도 불황으로 인해 모두들 힘든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들이 국민들을 걱정시키니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촛불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무기력한 대의기관들에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그야말로 촛불시위의 생생한 기록이라 할 만 했다. 하지만 깊이 있는 분석과 앞으로의 개선방향 등을 제시하는 데는 미비했고, 아무래도 참여연대 등 특정 시민단체 인사 등이 주도가 되어 만든 책이어서 다양한 관점이나 시각을 담아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작년 봄과 여름을 환하게 밝혔던 촛불의 기억을 다시 되살리면서 우리의 민주주의와 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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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촛불의 기록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이 책은 그 작은 시작입니다.
이 책은 한겨레와 참여연대를 중심으로해서 발행된 책이다. 이 책은 2008년 5월 1일 전부터 7월 6일 이후까지의 광우병 반대 촛불 시위에 대한 기록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 한 계절을 뜨겁게 다루었던 광우병 반대 촛불 시위에 대해 다시 한번 그 때의 감동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서 손에 땀이 나고 가슴에 불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너무 먼 과거의 일 같이 까마득하게 잃혀져가고 있는데, 아직 1년도 지난 일이 아닌데, 정말 부제와 같이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참여연대 실무진 위주로 각 챕터별로 한 작가씩 분야를 맞아서 작성하는 형식으로 되었있고, 각 챕터가 길지 않고, 또한 시선이 일정하고 일관적으로 되어있다. 내용자체가 자극적이고 선동적이지 않고, 비교적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진 역시 그 상황에 대표하는 사진으로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고, 경찰의 폭행이나, 물대포 맞는 장면이 빠질 수는 없겠지만 역시 선동적이고 자극적이지 않다.
촛불에 대한 평가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다른 것 같다. 시민이 참여하고, 특히 사회적인 약자인 여중고생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주부등의 지지를 받았다는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의 시위 형태와는 달리 비폭력이고 축제 형태의 시위 문화가 된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부정적으로는 그 에너지를 쏟아 놓고 무엇을 얻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청화스님의 시국법어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한눈으로 보면 촛불만 보이지만 두 눈으로 보면 촛불속의 영혼까지 보입니다
씽씽 바람이 되는 이여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있는 촛불은 폭풍도 끄지 못한다는 것을
이 촛불 앞에서 두눈으로 보면 안 보이던 종달새의 노래 소리도 다 보이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한눈을 감고 두 뿔로 들이받는 쇠괴신을 보지 못하면서 안 보이는 금송아지 꼬리만 보인다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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