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판단 이론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최근 한나 아렌트에 관한 독자층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중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문화에 대한 관심에 정치 이론을 연결해내는 점은 흥미로운 데가 있다. 이 책은 판단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들과 개념을 둘러싼 해석들, 제기될 수 있는 의문점들에 대한 저자의 해명, 그리고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과의 대비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미학적인 개념인 칸트의〈판단력 비판〉의 논지를 정치에 적용하여 합리적 이성을 극복하려고 한 한나 아렌트의 판단 이론을 총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저자는 공통감각을 통해 예술에 대한 판단을 공유할 수 있듯이 인간은 정치적인 것에서도 공통감각을 통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개념과 이 개념에 대한 여러 반론들을 차근차근 해명함으로써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하버마스가 합리적 이성의 대안으로 내놓은 의사소통적 이성이 한나 아렌트의 판단이론과 지니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명해 아렌트의 독창성을 밝히고 있다. 이런 점들은 대체로 아렌트의 판단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5장과 6장에서 아렌트의 이론을 문화와 시민 사회에 적용하는 점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논쟁거리가 될만한 점은 문화권 간의 소통 가능성에 관한 설명일 것이다. 행위자와 관찰자의 역할을 나눠서 관찰이 정치적 행위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아렌트는 공연 연극의 비유를 통해 정치가는 배우이고, 관객은 시민이라고 하며 정치가는 시민의 관찰을 의식하며 행위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시민의 관찰도 중요한 정치적 행위라는 적극적인 의미 부여를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아렌트의 정치에 관한 이론을 문화 담론에서도 적용하고자 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문화권 사이의 차이는 대화를 통해 공동 이해를 확보할 수 없고,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하버마스의 한계를 아렌트의 이론이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한나 아렌트의 이론에 따르면 문화는 예증적 타당성, 즉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 끊임없이 의견을 소통하는 과정에서 문화적인 가치를 형성해 왔다고 한다. 각각의 문화권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가치들이 그 문화권의 공통감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저자의 해석은 이러한 문화권들의 공통감각은 소통을 통해 지구적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공통감각이 지구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근거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성에 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렌트의 이론에 따르면 세계 관찰자로서의 시민이 내는 의견은 상호성을 형성하여 지구적으로 소통되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서 일반적인 독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비유에 따르면 정치가는 연극 배우처럼 시민들의 관찰을 의식한다. 연극의 경우 배우들은 관객들의 마음에 들어야 명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고, 특정 정치 공동체 내에서 정치가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정치 공동체에 속해 있는 세계 관찰자와 특정 행위자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구체적 고리가 없다.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논외로 한다면 어떻게 지구적 소통이 가능할 것인지 설명이 안 되고 있다. 저자에 의해서도 이런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일반적인 독자가 읽기에는 이런 경우 상호 소통이 어렵다기보다는 일방적 소통에 의한 불균형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선진국 국민과 비선진국 국민으로 나눠서 그들의 문화적 소통 양상을 비교해 볼 때,선진국 국민들은 비선진국 국민들의 관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데 반해, 비선진국 국민들은 그들의 관찰을 의식할 수 있다. 그것은 비선진국 국민들에게 선진국 국민의 문화는 모범적인 것이라는 선입견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진국의 투자 혹은 관광을 유치하기 위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줘야 한다는 구체적 매개 고리가 여기서는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 이론에서 이런 문화권간의 편향된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독자들은 차라리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문화권간의 적당한 타협은 어쩌면 이성적 합의가 어려운 부분을 성급히 결론내리지 않고 해답을 지연시킴으로서 장기적으로는 다른 문화권의 가치를 관찰하는 각 문화권의 구성원들이 문화권 내부적인, 좀더 적절한 공통감각에 호소하는 소통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권 간의 소통 방식에 관해서는 하버마스의 이론과 한나 아렌트의 이론의 두 경우에 대해 좀더 자세한 논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