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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행복한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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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밀레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는 굉장히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가 하면,고통을 이기지 못해 두통의 원인이 혹 자신의 치아때문인가 싶어 치과에 가서 이를 뽑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의사는 치아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음에도 그는 너무도 심한 두통으로 인해 멀쩡한 치아를 몇개 뽑았다고 한다. 그 고통 가히 상상히 가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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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밀레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는 굉장히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가 하면,고통을 이기지 못해 두통의 원인이 혹 자신의 치아때문인가 싶어 치과에 가서 이를 뽑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의사는 치아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음에도 그는 너무도 심한 두통으로 인해 멀쩡한 치아를 몇개 뽑았다고 한다. 그 고통 가히 상상히 가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나는 치명적인 담배연기를 무방비로 몇시간을 받아내야했다. 컨디션도 물론 좋지 않았지만,나중엔 담배연기에도 사람이 취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했다.

어쨋든,그렇게 힘든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굉장히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문득 밀레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쩌면 덜 아픈것일지도 몰라...그렇게 고통을 잊을 요량으로 나 보다 더 아팠을 밀레할아버지를 계속 생각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두통의 고통이 사라지더라는...

 

<행복한 인문학>이란 책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어제의 나의 일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인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끊임없이 묻지만 딱히 무엇이라 규정 할 수 없는 그런 학문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 인문학이란 거창하게 생각 할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었다. 책이든,영화든,공연 등을 보면서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내게 하는 힘,그 힘의 근간들이 인문학적인것이라 생각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인문학적인 행동이고 실천을 하는 과정이라 생각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금더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실천하는인문학'정도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

그러니까 인문학이란 단어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그 발견한 모습을 긍정적으로 혹은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면 되는 거였다.

책을 처음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인문학에 발을 담그고 싶다는 이유가있었다.왜냐하면 나는 인문학과 친하고 싶은데,늘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론 잘 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실제 인문학을 배우며 실천하려고 혹은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었기때문이다.

당장은 가난해서 혹은 무엇인가로 부터 고통을 받고 있더라도 마음 한 가운데 인문의 힘이 단단하게 지탱을 하고 있다면,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지원군을 하나 얻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w*******i 2009.02.19.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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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행복해지는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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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은 무슨 뜻일까? 인문학을 하면 행복해진다? 아니면 인문학은 의당 인간의 행복에 복무해야한다. 그것도 아니면 인문학은 당연히 행복학이다? 아마 다 맞는 말일 것이다.그런데 지금 까지 인문학은 인간의 보편적 행복에 기여해오지 못했는가? 아마도 이책은 그점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대중인문학 강연의 성과물일 것이다. 지금까지 인문학이, 아니 일반 학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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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은 무슨 뜻일까? 인문학을 하면 행복해진다? 아니면 인문학은 의당 인간의 행복에 복무해야한다. 그것도 아니면 인문학은 당연히 행복학이다? 아마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까지 인문학은 인간의 보편적 행복에 기여해오지 못했는가? 아마도 이책은 그점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대중인문학 강연의 성과물일 것이다. 지금까지 인문학이, 아니 일반 학문과 지식이 인간 개개인의 행복과 인류공동체의 선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역할하거나, 학자 개인의 지적 교양적 수단 혹은 생계 수단에 불과했던 측면이 있다. 그래서 '지식소매상'이라는 자조가 학자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오고, 인문학 무용론을 넘어 '인문학의 종말론'까지 회자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진 특수성에 기인 한 바도 크다.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급속히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전통적 인문학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고, 급조해서 수입한 서구의 인문학은 아직 내재화되지 못한 이런 상태에서 오직 경제성장, 경제대국의 길로 매진해온 우리에게 '인문학'은 거의 말라붙은 개뼈다귀 취급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몇년전부터 갑자기 '인문학강좌'붐이 일었다. 2006년 '가난한 이를 위한 희망수업'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방한 즈음해서 한국에도 인문학 강좌가 종교단체나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개설되었다. 2010년 현재는 이곳 경북 봉화군까지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었다는 플랭카드가 거리에 걸려 있을 정도이니 이는 필시 전국적인 현상일거다. 그런데 왜 지금 인문학일까?

막연히 드는 두요인은 서로 상극적이다. 우리사회가 언제부턴가 일정하게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어 이제 인간의 가치, 삶의 질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일정한 경제성장을 뒤이어 국가부도사태라는 IMF와 양극화의 심화가 인간 개개인의 행복과 삶의 안정성을 근본으로부터 흔들어 놓았다. 바로 이 두 요인이 부딧는 자리에 인문학이 개입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고고한 인문학이 천박한 시장거리에서 '무식한'대중을 만나 소통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않다. 인문학이 고작 자본주의체제의 패해를 뒤치닥거리함으로써 체제 안정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해도 좋은가, 오갈데 없는 고학력 실업자들 푼돈벌이 시켜주기 위한 수단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사실 이런 부정적 의문을 해소하는 길은 인문학이 복지를 강화하고 경쟁을 완화하여 인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제도화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줄 수 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런 의문의 이면에는 최근의 '인문학 강좌'를  이전의 소위 '의식화'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의식화'가 체제저항적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개인을 변혁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학습과정이었다면, 인문학강좌는 체제 내적 인간 개인의 정신적 만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체제에 순치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갈라지는 의견은 봉합하기란 쉽지않다. 근본적인 인식의 기반, 가치 기반 자체가 다를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를 진전시키는 일은 쉽지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래서 [인문학강좌]가 무의미하던가 유해한가 하는 의문에만 답하고 싶다.  모든 시대, 모든 국면에서 근본주의 기획이 항상 올바른 선택, 최고의 지고지순한 도적적 결정으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이 가로 막힌 지점에서 상처받은 체제내적 인간의 개인적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진보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제도화하고 보편화 함으로써 인간 삶의 가능성을 한단계 끌어올리냐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사회밖으로 내팽겨치진 '하류인간'을 사회와 다시 소통할 수 있게하는 매개로서의 인문학,
'인간'의 무리에서 이탈한 무리를 다시 인간으로 복귀시키는 치유의 인문학을 통해 "일상화된 모욕사회"를 극복하고 인간 개개인이 주체의식을 회복함으로써 얼 숄리스가 제안한 윤리적 민주주의의 구현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처방이 어디있겠는가?
사실 다운그레이도와 귀농, 자발적 가난이 유행인 것만치 체제는 간고하고 개인은 무력하다. 지금 반체제가 아니라 탈체제하는 개인이 늘어나지만 언젠가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살아야되는 개개인 삶의 소중함은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 소중함을 찾는데 인문학이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단연 인문학은 행복학일 수 있을 것이다.
 
이책 [희망의 인문학]을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 인문학 강의에 참가한 학자들의 글 중간중간에 게제된 수강생의 글을 읽는 데에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공감과 애틋한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이들 글들이 "희망의 인문학 강좌"를 통해 나같은 필부도 공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YES마니아 : 골드 h****1 2010.03.12.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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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지우(知己之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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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 및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지만 진(晉)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달인 백아가 있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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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 및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지만 진(晉)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달인 백아가 있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라고 하고,

큰 강을 나타내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강 같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였다.

 

또 두 사람이 놀러 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이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다.

백아는 동굴에서 빗소리에 맞추어 거문고를 당겼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곡조인 임우지곡(霖雨之曲)을,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곡조인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하였다.

종자기는 그때마다 그 곡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조금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알아 맞혔다.

이렇듯 종자기는 백아가 무엇을 표현하려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백아와는 거문고를 매개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음악 세계가

일치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伯牙絶絃]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고 한다.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거문고 줄을 끊은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친구를 사귀거나 친구를 배신하는 현대 사회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진실한 우정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성어이다.

또한 깊은 속마음까지 서로를 알아주고 위하는 완벽한 우정을 비유할 때 인용된다.

줄여서 절현이라고도 하며, 백아파금(伯牙破琴)이라고도 한다.

비슷한말은 지음(知音), 고산유수(高山流水:높은 산과 그곳에 흐르는 물이라는 말로,

아주 미묘한 음악, 특히 거문고 소리를 이르거나 知己를 비유하는 뜻),

지기지우(知己之友) 등이다.

 

이때부터 지음(知音)은 "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친한 친구"를 뜻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이런 지음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읽어내고, 영혼을 읽어내는 친구,

부부나 연인을 뛰어 넘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사람

벗과 우정을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이 지음(知音)이다.

그 벗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서로의 지음이 되도록 승화하는 것이다.

 

입에서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도 마음의 소리, 영혼의 소리를 읽어내고,

"힘내세요!" “용기를 가져라” 하며 밝은 미소를 건네는 친구에게서

혹은 동료에게서 진정한 지음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마음도 지음이 될수있게, 배려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백아와 종자기 같은 친구 하나 있다면 우리 인생의 여행길이

참 행복하리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사랑과 우정과 사이의 갈등을 한다.

하지만. 1개만 택하라고 한다면 본인은 우정을 택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부터 사랑보다 우정이 더 소중하고 중요한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사랑은 이별이란 아픔으로 뒤돌아설 수 있지만

우정은 영원하다

우정에서 사랑으로 변할 수는 있어도

사랑이 우정으론 변할 수는 없다

사랑은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친구로 남자며

우정으로 포장시키려 한다.

사랑은 깨질 수 있지만, 우정은 깨지지가 않는다.

 

사랑이 울면 달래주지만, 우정은 울면 함께 울어주고

사랑은 할 땐 우정을 돌보지 쉽지 않지만,

우정 안에서는 사랑을 허락한다.

사랑은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감싸져 있지만,

우정은 그렇지 않아도 아름답다.

 

사랑에는 가끔씩 변명과 거짓이나 선한거짓이 필요하지만,

우정은 아무런 말이 없이 통해서 변명과 거짓이 들통나기도 하지만

우정은 대부분 그것을 용서를 한다.

이것이 사랑보다 우정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이유이다.

솔직히, 우정도 깨질 순 있지만 그렇게 쉽게 안 깨지며,

가끔은 영원히 깨져서 못 할 수도 있지만,

하지만 깨져도 다시 회복을 쉽게 할 수 있다.

 

다시 화해를 잘 할 순 있는데, 사랑은 잘 못해서 그게 단점이다.

그리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진 않지만 진정한 우정,

또는 첫우정은 쉽게 깨지진 않아서 대부분이 영원히 간다.

대부분 사랑보다 우정을 택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랑보다 우정이 더 아프다. 우정이 더 아프다.

우정.... 영원히 변치말기를 바랄뿐이다.

 

만약, 진정한 친구가 있으면....진짜로 세상이 날 다 내려다봐도

그친구라도 날 믿어주고 이해를 하는 진짜 그런 친구가 있다면,

잘해주세요....행복하게 해 주세요...

이유는...

그렇게 까지 친해지는게 시간이 참 많이 걸리지만,

사라지는건 한 순간 이다. 그러니까, 잘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친구는 만들기가 쉽지가 않다.

나의 속마음까지 서로를 알아주고 위하는 완벽한 우정을 위하여....

h*****k 2013.01.0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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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행복한 인문학-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 내용보기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노숙자 등 우리사회에서 격리되어 있거나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과 재개발구역세입자, 임대아파트 거주민 등 저소득층 주민으로서 한 번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못하고 오직 생활고 속에서 살아가기 급급했던 사람들이 인문학 수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게 되고,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한 놀라운 책이었다.
"행복한 인문학-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 내용보기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노숙자 등 우리사회에서 격리되어 있거나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과 재개발구역세입자, 임대아파트 거주민 등 저소득층 주민으로서 한 번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못하고 오직 생활고 속에서 살아가기 급급했던 사람들이 인문학 수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게 되고,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한 놀라운 책이었다.

 

따뜻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고, 그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정치를 바꾸고, 사회제도 개혁을 통해 복지를 확대하고, 서민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각종 법안과 제도에 반대하는 활동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다소 관념적인 생각이었음을 <행복한 인문학>알게 해주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사람들이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일상에 파묻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고있는지도 모르고 살던사람들이 결국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인문학의 위대함을 느꼈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오던 나로서 내가 모르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한 좋은 책이었다. 앞으로 더욱 확대되고 발전할 <실천인문학>을 기대하며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고 싶다. 

h****9 2010.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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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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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가 극심화되는 이 사회에서 양극화를 줄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몇몇이서 모여 고민하다가 인문학 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활후견기관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에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오만한 생각이었다. 대학에서 몇 년동안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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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가 극심화되는 이 사회에서 양극화를 줄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몇몇이서 모여 고민하다가 인문학 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활후견기관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에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오만한 생각이었다. 대학에서 몇 년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던 생각만 하고 잘 가르쳐보겠다고 생각한 것인데 오히려 내가 선생님들에게 인생을 배우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참여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친밀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서로 간에 공감대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대안 역사교육은 인문학의 발전이 우리 사회의 극단적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는 기본 인식하에 확대시켜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우리들이 진행하고 있는 저소득층 대상의 인문학 교육이라고 본다.

 

실천 인문학 역사교육에서 참여자 선생님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이며 어떤 강의 주제를 선정하느냐는 인문학 역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할애하고 부끄러움을 극복하면서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자들의 배움의 욕구를 반영하고 역사교육의 본질적 접근을 함께 이끌지 않으면 실천인문학 역사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참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위주로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기초를 배우고자 하는 초보자들에게 우리 역사를 가장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시대사를 기반으로 하여 특정의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덧붙여 진행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판단했다.

 

무신정권의 우두머리였던 최충헌의 노비 만적이 왜 평등사회를 꿈꾸고 정변을 일으켰는 지와 대몽항쟁 기간 중 귀족과 군일들보다 백성들이 나서서 30여년 동안 몽고와 싸운 이야기는 선생님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결국 역사의 주인은 바로 자신들과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역사 속의 이름 없는 민중들의 삶이 곧 역사의 주체이듯, 오늘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이 바로 역사의 주인임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3년 동안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선생님들은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보다는 조선시대 이후의 역사와 한국근현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극을 통해 익숙한 조선시대의 역사가 더 받아들이기 쉬웠기 때문이다.

 

실천인문학 역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수들의 강의 태도다. 특히 역사교육은 다른 교육과는 그 형태가 다르고 특정 주제가 아닌 반만년의 시대사를 강의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교수법이 필요하다.

 

일단 올바른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참여자들과 정신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선생님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선생님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의 시간 안에서 ‘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의에는 반드시 흥밋거리를 첨가해야 한다. 시사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5년간의 군대 생활의 상처가 6개월 간의 인문학 교육으로 해소되었다” 5.18 광주항쟁 당시 진압군 중대장, 삼청교육대 중대장으로 5공화국 시절,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시절의 현장에 있던 가해자가 토로한 말이다.

 

1894년 농민전쟁에서 집강소를 설치하고 백성이 주도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는 이야기에는 박수를 칠 정도였다. 이는 그만큼 자신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주인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인의식은 자신을 변화시켜 평생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인간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힘을 갖게 할 것이다.

 

실천 인문학의 역사 강좌 속에서 만난 학생들은 일반 대학에서 진행되었던 교양 강좌의 역사학을 오히려 자신들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체득한 경험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곳에 있는 분들은 가정이 해체된 뒤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서 이곳 쉼터에서 생활하는 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쉼터에서나 그분들 스스로 홈리스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 노숙은 그야말로 길에서 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 어디에도 자신이 의지할 집이 없을 뿐이지 노숙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저소득층 가정의 여성분들을 학생으로 한 강의에서는 1960년대의 사회상을 담은 비디오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비디오는 1960년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사회적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었는데 비디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있었다. 비디오를 보고 옛날 자신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2008년인 지금 들여다보면 서민들의 일상 대부분이 퍽퍽하기만 했던 삶이고,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유년기에 해당하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그처럼 어려웠던 성장기 속에서 원하는 만큼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그러한 환경이 발목을 잡아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의견은 강의실에서 행해지는 역사학 강의와 아울러 현장 체험인 답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요구였다. 두 번째 의견은 심화 학습에 대한 요구였다.

 

인문학은 사람에 관한 학문이다. 사람 개인에 관한 학문이고, 그 개인들이 타인과 만나 만들어내는 사회에 관한 학문이고, 사람이 자연과 이루어내는 조화에 관한 학문이다. 이처럼 인문학은 인간 본연의 학문이기 때문에 아주 오랜 기간을 이어 인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인문학은 학문의 존재마저 위협받고 있다. 산업 사회의 금전적 가치를 잣대로 삼을 때 인문학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학문으로 전락한다. 어쩌면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위협을 드러내는 사회적 지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천 인문학을 통해 내가 만난 학생들은 위협에 노출된 사회적 실체일 것이다.(194)

 

밤 늦은 시간 분명히 낮동안의 피곤했을 몸을 이끌고 와서도 강의에 대한 열의를 보여주었던 학생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인문학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이 나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강의를 하게끔 추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역사 연구와 일반인이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통로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경제력도 잃고 가족도 잃은 사람들에게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내쳐진 삶의 밑바닥에서 일어서려 할 때 자신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존엄을 깨닫게 되는 것이 그 사람들의 힘겨운 발걸음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197)

 

인문학을 회복할 수 있는 열쇠는 결국 시민이라는 일반 대중과 소통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t****b 2013.04.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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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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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를 위하여 인디언의 말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없다고 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사랑이란 표현하는 것이기에 말로 할 필요가 없어서라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못하고 산다. 안한다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니 못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사랑하는 것과 거리가 먼 행동들은 아닐 것이다.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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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를 위하여

인디언의 말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없다고 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사랑이란 표현하는 것이기에 말로 할 필요가 없어서라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못하고 산다. 안한다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니 못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사랑하는 것과 거리가 먼 행동들은 아닐 것이다.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세탁을 하고 장을 보는 것들이 모두 기계적으로 하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언속에 담겨있고 눈빛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행복이란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늘 행복해 하며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 가까이에 늘 있는 게 아닐까?

 

'행복한 인문학'을 읽으면서 행복은 내 가까이에 있었다. 어렵고도 멀게만 느껴졌던 인문학을 소외되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 교수들과 뜻있는 사람들의 희망을 심어주고자 한 말짓이 보였고 힘들게 산 사람들이 시를 역사를 예술을 몸안으로 받아들이는 몸짓도 보였다. 나도 시집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게 되었다. '육탁'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도 다시 바닥에 부딛히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면서 이것이 책읽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시'라는 걸 가까이 접하기 어려웠던 사람들, 역사는 가끔 보는 사극 드라마속의 내용이 전부이었을 사람들이 시와 역사와 예술을 접하면서 느꼈을 행복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시와 예술과 역사는 어떠했던가. 표현법을 외우고 작가와 작품을 외우고 연도와 사실을 나열하여 외우기에 급급했던 과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개인의 역사가 곧 우리전체의 역사이고 우리의 삶이 곧 예술이며 시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하드 커버의 두꺼운 책 속에, 교수의 현란한 언어에 갇혀 있던 인문학이 뚜벅뚜벅 걸어나와 노숙자들에게 또한 감옥의 수감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눈물이 되었다. '시'가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 모두를 만나게 하고 소통케하는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얼마전에 아이들과 '행복한 청소부'란 그림책을 보았다. 예술가들이 사는 거리를 청소하는 파란 작업복의 한 청소부가 어느날 무심코 지나치던 예술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간판을 닦다가 흥미를 가지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고 찾고 공부하고 관람하고 감상하다가 전문가 뺨치는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가 가는 곳마다 그가 알고 있는 예술가 이야기들을 들으러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로 인하여 유명해져 강연회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게 되었다는 , 결국은 한 대학에서 교수로 초빙되었으나 거절했다는 이야기인데, 그는 여전히 파란 작업복을 입고 여전히 그 거리를 청소할 것이며 여전히 예술을 좋아하고 찾아다니며 관람하고, 감상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나왔던 파란 작업복의 청소부와 겉모습은 같지만 나중에 변화된 청소부는 이전의 청소부가 아니다. 그는 아마도 힘든 하루일을 음악을 통해 그림을 통해 위로받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할 것이다. 예술을 좋아한다고 모두가 예술가가 될수는 없으나 예술을 즐길 자격은 충분하다.

 

인간은 삶의 현장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땅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하늘의 존재이다. 빵만으로도 살 수도 없고 영혼만으로도 살 수 없다.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것인가가 우리가 항상 우리 스스로에게 내밀어서 답을 얻어야 할 질문이다.

 

책은 만남의 장이다. 만남의 자격은 물론 읽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모든 선입견이나 고정관념들은 모두 접어두고 책을 통해 열려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나는 책을 읽을 것이고 그것이 행복한 내 삶의 비결이고 빵만으로는 해결 안될 양식이다.

b****m 2009.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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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소통하는 아름다운 손짓- '행복한 인문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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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 운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가히 ‘인문학의 열풍’이라 할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대학 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앞다투어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특히 기업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기존의 경영이론이나 성장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모양이다. 경영자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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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 운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가히 ‘인문학의 열풍’이라 할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대학 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앞다투어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특히 기업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기존의 경영이론이나 성장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모양이다. 경영자나 CEO들은 한결같이 “인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고갈된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경영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할 소재를 배우기 위해서” 등을 수강 이유로 말하고 있다.


인문학 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신문에 소개됐던 사례하나. 어느 저녁 자리에서 미국 유통업체의 임원과 한국인 지사장은 둘 다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미국인 임원은 반가운 마음에 ‘제임스 조이스’ ‘존 업다이크’ 등 평소 즐겨읽는 작가에 대해 얘기를 꺼냈지만 한국인 지사장은 아무런 맞장구도 못 쳤고 결국 계약에 실패했다고 한다. 제임스 조이스가 지은 『율리시스』만 읽었더라도 5,000만 달러어치의 수출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날린 셈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책 『행복한 인문학』은 왜 우리가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면서 소외 계층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만든 얼 쇼리스의 사례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타자와 소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자존감을 확보하는 것이며, 인문학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인문학을 통해 자존과 정치적 삶을 회복해 ‘위험한 시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궁극적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책은 그런 문제의식과 배경으로 출발한 한국형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의 중간보고서라고 할만하다. 교도소 수용자, 자활 근로자, 노숙인 등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강사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1부 행복한 삶 쓰기, 2부 세상살이 인문학과 삶의 철학, 3부 역사와 소통하는 인문학으로 구성돼 있으며, 부록으로 시인 도종환의「시에서 배우는 역설의 진리」와 함께 수강생들의 글모음으로 갈무리 되어 있다. 비록 맞춤법이 틀리고 논리도 엉성할지라도 생애 처음으로 인문학 수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첫걸음을 뗀 감동이 날것 그대로 묻어난다. 관념으로 꾸며진 글이 아니고 구체적인 삶의 경험을 통해 길어올린 글이기에 자연스럽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한 여자 수강생은 너무나 학교가 가고 싶어서 집 앞에 있는 대학교 교정을 매일 새벽마다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서른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수강한 인문학 공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고 공부할수 있는 문이 열렸노라 고백한다. (250쪽, 서른아홉에 받는 졸업장)


이책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교도소 수용자, 자활 근로자, 노숙인 등 우리사회의 소외계층까지 인문학의 열기가 구석구석 퍼져나가고 있는 현장을 보여 줌으로써, 단순히 앎에 머무르지 않고 지식나눔을 넘어 ‘시민인문학’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음이다. 그래서 ‘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장미’를 함께 전하는 일에 대한 애초의 우려와 세간의 의심을 떨쳐 버리게 해준다.


또 이책에서 저자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말한다. 정말 수업은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 자도 따로 있지 않으며, 양자 간에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오히려 강사들 본인이 성장하고 배웠다는 한결같은 고백을 들으면서 400여년 전 중국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이탁오의 말이 생각났다.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행복한 인문학』은 돈을 버는 법이 아니라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움으로써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문학 과정 참여자들의 가슴 벅찬 고백록이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일상으로서의 인문학’ ‘실천으로서의 인문학’으로의 동참을 권유한다. 그래서 이책을 덮을때 쯤이면 기꺼이 그러겠노라 다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끝-(20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