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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이치 글은 한권의 책이 술술 읽어가게 물 흐르 듯 적는다. 그 만큼 유려한 필치를 가졌다는 것이겠지. 그러면서 묘하게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느낌도 들어 이 느낌은 뭐지 하는 의문도 든다. 그 역시 잘 적은 글 때문일까? 아님 영화를 많이 본 탓일까 소설은 주인공 아키히로의 눈을 통해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를 그려냈다. 아키히로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아니 나도 그런 면이 있으니까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교성 부족은 회사 안에서 약간의 고립감을 겪는다. 또 다른 주인공 미치루는 시각장애인으로 고립되게 된다. 아키히로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미치루의 집에 몰래 입성한다. 이때부터 아키히로는 미치루를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한다. 미치루 모르게 미치루를 돕게 되는 아키히로. 결국 관심은 미치루를 고립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통해 신뢰를 가지게 되는 미치루와 숨어지내는 아키히로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전개된다. 마지막 사건의 해결은 물론 작가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져 있었을테니 적절히 무리 없이 해결점을 만든다. 그리고 그이야기의 결말에서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내고자 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세상외톨이에게 위로의 말을 던진다. ‘한겨울이야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어 하지만 이제 곧 바깥은 따스해지겠지 차가운 공기 때문에 손과 발이 욱신욱신 시릴 일도 없어질 거야 공원의 나무들은 새싹의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내고 초록 잎을 틔우겠지’ 지금 계절은 봄이다. 주변에 꽃들이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한겨울 웅크리고 있은 우리 모두에게까지도 좋은 메시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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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주관적 서평임 어둠속의 기다림이라는 책은 기담,괴담,공포물은 아니다. 오츠이치라는 작가가 가지그 있는 블랙..즉 어둠을 가지고 또한편의 책을 집필했다. 인간은 어둠을 공포에 대상으로 본다.어둠이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라는 인간이 인식하지 못 할때 나타나는 인식의 부제가 아닐까?라고 생각 해 본다.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 아키히로와 미치루가 보여 주는 어둠은 인간이 가진 어둠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경찰에 쫓기는 남자가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의 집에 허락도 없이 숨어든다..그렇게 이 책은 시작된다. 두 주인공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주위 사람의 가치관이 점점 자기의 생각이나 상상을 침식하고 파괴하는 고통을 외톨이라는 가장 평화로움 방법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두명의 외톨이를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 미치루의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관계에서 스스로 한걸음을 내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변화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딛기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저자는 어둠이라는 것으로 두 주인공의 마음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어둠만이 내린 집안에서 두 주인공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간다.자기가 아닌 타인이 있다는 사실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다.서로가 서로를 없다고 속일수는 없었던 것이다. 즉,존재를 알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존재에 대한 무시를 했을지언정 이미 교류는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두사람의 교류는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타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표를 가지게 해 준다. ?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인간의 존재를 무시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 한 걸까? ?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오츠이치는 두 외톨이의 만남과 커다란 사건 없이도 밀폐된 좁은 공간의 어둠이라는 조건 속에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대화를 통하여 그 섬세함을 충분하게 독자에게 전해 준다. 또한 두번의 반전을 억지스럽게 만든 것이 아닌 일상에서 우리가 보이는 조그만한 인간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반전의 소재가 되는 역할을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어둠을 무서워한다... 다만 그 어둠속에서 조그만한 빛의 반짝거림을 줄수도 받을 수도 있다. 그 빛으로 인간이 민든 세상은 아직까지 파멸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라고 독서노트에 적어 본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누군가를 이유없이 사회,직장, 단체에서 혼자 만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지하철이나.. 철도를 기다릴 때 뒤를 조심하기 바란다...어둠은 언제나 당신 뒤에 당신이 만든 분노,사악함,공포만큼 가까이 와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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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모두 마음 속에 하나 정도의 어둠을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 어
둠이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나, 폭력과는 상관없이 그 어둠은 스스로의 마음에 남겨져
때로는 사람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의 끝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작
은 힘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어둠이라는 이름의 또 하나의 친구와 함께 긴 시간
을 함께 걸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어둠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언제나 존재하
기에 누군가를 향한 칼날이 되어 더욱 그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그
어둠을 벗어나는 순간, 물론 영원히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해도, 잠시의 벗어남을 통해
서 우리는 다시 세상을 조금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 어둠의 이야기를 작가
'오츠이치'는 이 작품 '어둠 속의 기다림'에서 펼쳐낸다.
이 작품의 두 명의 주인공은 각자의 어둠 속에서 세상을 살아간다. 한 명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시력을 잃어 진짜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사람들이 서로
에게 내뿜는 독이 어둠이 되어 그 사람을 집어 삼킨다. 그렇게 두 명의 주인공은 모두 각
자의 어둠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조금씩 그 어둠에 적응을 하면서 익숙해지고, 결국은
그 어둠을 편안한게 느끼면서 세상을 자신에게서 밀어낸다. 그렇게 세상을 밀어내고 자
신의 모든 주변까지도 자신이 갖고 살아가는 어둠 속으로 밀어넣을 때, 하나의 사건이 벌
어지고 각자의 어둠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서로의 존재를
알지만, 또한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척하면서 말이다. 그들의 기묘한 동거는 어쩌면 어둠
에 완전히 먹혀 세상을 밀어내기 시작했기에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묘
한 동거를 통해서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어둠을 치료하기 시작한다. 상처받지 않은 사람
은 결코 상처받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살아간 그들이기에 각자
의 어둠을 이해하고 서로를 치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서로의 어둠을 몰아내는 그 시간에
그들의 이야기는 마지막 결말을 향해서 달려간다.
작가 '오츠이치'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엇인가 하나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심리적인
부분이든, 아니면 실제의 물리적인 부분이든 말이다. 그리고 다른 캔디형의 캐릭터들과
는 다르게 '오츠이치'의 주인공들은 그 부족한 부분에 익숙해지고, 그 부족한 부분까지
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것이 조금은 잔혹한 운명으로 내몰리는 '오츠이치'의 주인공
들이 그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처럼 이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두 명의 주인공도 그 상황을 이겨낸다. 물론 여전히 그들의 마음을 먹어
가던 그 어둠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어둠을 간직하고 세상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첫번째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오츠이치'
의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
면서도 그 부족한 부분을 간직하는 그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람이 두려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어둠을 간직한 우리에게 보내는 작가 '오츠이치'의 위로가 아닐
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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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예전에, 특히 독서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때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설레지만 한편으로 불안한 일이기도 하다. 독서 경험이 전무했던 때엔 무심코 집어든 책이 뭐든 간에 감탄했을 확률이 높고, 또 그 작품을 하나의 독서 기준에 포함시킨 채 지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단순히 책을 두 번 읽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쩌면 굉장히 부끄러움을 수반하는 일일 수도 있다. <어둠 속의 기다림>은 겉보기엔 소름 돋는 설정의 소설일 것 같다. 시각장애인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살인용의자가 숨어 들어온다. 실제 시각장애인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는데 지금 보니 비할 수 없이 소름 돋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 전무후무한 동거는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저자 오츠이치는 뜻밖에 매우 감성적인 답을 진지하게 내놓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어둠 속의 기다림>은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이 등장하는 소설로써 내가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처음 읽을 당시인 8년 전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온 두 남녀 주인공의 심정에 퍽 공감이 가서 한껏 매료되기도 했다. 그때 적잖이 소름 돋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요번에 다시 읽으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는데, 일단 가장 적응이 안 된 건 작품에 녹아있는 감성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문장도 꽤 좋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잔재주 부리지 않아 평범하게 느껴지는 정도다. 감성에 대해 자세히 말하자면 언뜻 깊은 고민이 녹아든 라이트 노벨의 작풍이 느껴졌다. 지금 스스로 라이트 노벨의 작풍을 부정적인 의미로 언급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유독 정상적인 관계 형성에 서툰 주인공이 둘이나 등장하다 보니 묘사된 심리들에서 미숙한 느낌을 없지않아 받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저런 말을 쓴 것 같다. 아무튼 두 주인공의 미숙한 심리가, 이른바 아웃사이더의 모습이 이 작품의 개성이자 강점이지만 중반부에서 이 둘의 소통과 교류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뤄져 내심 전형적으로 관계 형성에 서툰 사람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보는 듯한 어색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대단히 관계 형성에 능숙한 사람인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말해 그건 절대 아니고;;; 다만 이 작품의 소름 끼치고 민감한 소재가, 시각장애인과 살인용의자의 동거를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한 게 보는 이에 따라선 그리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단 우려가 들어 굳이 '판타지'란 단어를 써가며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두 번 읽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전히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특히 중반부에서 둘이 조용히 스튜를 나눠 먹거나 후반부에서 같이 걷는 장면은 어지간한 로맨스 소설 뺨치게 아름답거니와 지금 봐도 멋진 장면이고 연출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미치루가 공감 능력이 남다른 걸 넘어 살인용의자 아키히로에게 일부 자애롭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니 이 역시 판타지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전근대적인 일본 특유의 무의적으로 존댓말하는 여자와 무의식적으로 반말하는 남자의 관계가 이 작품에서도 엿보였던 건 - 번역이 이상한 거야, 원래 이런 거야? - 아쉬웠다. 글쎄, 이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미치루와 아키히로가 말없이도 서로 척하면 척 통하는 데가 있어 역시 로맨스 소설도 넓게 보면 판타지구나 싶기도 했다. 추리소설로써의 <어둠 속의 기다림>은 내용에 비해 분량이 약간 긴 편이지만 돋보이는 설정을 준수하게 감당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결말에서의 반전은 비교적 쉽게 예측이 가능하고 개인적으로 결말의 연출도 약하다고 느껴졌지만 생각보다 꼼꼼한 복선과 더불어 초반에 언급한 시각장애인과 살인용의자의 동거란 전개는 몇 번을 생각해도 대담해서 만만히 볼 작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 입장에선 이런 걸 생각한 자신이 무척 뿌듯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나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막막했겠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이유는 전개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들이 잘 녹아든 점을 높이 사는 것에 있다. 처음엔 혼자 사는 시각장애인의 생활을 아웃사이더의 자발적인 고립이란 대목에 대입시킨 게 좀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회사 생활에서 겉돈 아키히로의 등장에 힘입어 주제의식이 심화돼 절묘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이렇게 연결시키네? 하고. 이건 작중의 상황이나 감성의 어색함으론 덮을 수 없는 지점이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는데, 내가 봤을 때 추리소설이 소설로써 보다 인상적이게 되는 순간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개입될 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의 소통 방식엔 판타지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자의든 타의든 여러 요인으로 인해 관계 형성의 벽에 막히거나 좌절한 사람들이 매우 순수하기 짝이 없지만 재도전을 하는 과정을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본작의 사건이나 전개가 꽤나 적합한 양상으로 이뤄졌다고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싶었다. 다시 읽다보니 이 작품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몰입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마주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초반엔 내가 옛날엔 뭘 보고 소름이 돋았었냐며 얼굴이 화끈해질 뻔했는데 끝까지 읽으니 소름이 돋을 만했던 부분이 나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실망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뿐만 아니라 근래 두 번째 접한 책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해줬다. 책 두 번 읽는 게 어떻게 보면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는데 이번처럼 생산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라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 p.s 이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볼 일만 남은 것인가. 처음 읽었을 때 영화도 꼭 봐야지 했는데 어떻게 8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못 본 건지... https://cafe.naver.com/mysteryjapan/16571 이건 옛날에 처음 읽었을 때 쓴 포스팅. 지금 읽으니 되게 민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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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너무 애정하는 작가인 '오츠이치'의 작품입니다.. 왠만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못 읽은게 많더라구요..ㅋㅋㅋㅋ 제목도 표지도 맘에 들어서 산 책인데.. 좀 읽다가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처음 읽는 책인데...왜 줄거리가 익숙하지? 혹시 재출간된 책인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말이지요.. 왜 내용이 익숙한지는 알았습니다...ㅋㅋㅋㅋㅋㅋ
2006년도에 '다나카 레나' 주연으로 개봉한 '웨이팅 오브 인더 다크' 바로 이 작품이 '오츠이치'의 작품이였더라구요 지난번에 '모모세'도 그랬지만 의외로 '오츠이치'의 작품이 영화로 된게 많더라구요
주인공인 '미치루'는 평범한 여대생이였습니다.. 그러나 횡단보도를 건너다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별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눈이 안보이기 시작합니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그녀는.. 아버지의 보험금으로..세상과 단절된채 살고.. 가끔 초등학교시절부터 동창인 '가즈에'가 그녀를 찾아올뿐 .. 누구와도 교류없이 홀로 외로히 살던 그녀에게...어느날 경찰이 찾아옵니다
경찰은 수상한 사람을 본적이 없냐고 물으며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벌여졌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요용의자가 근처에 있으며... 그녀가 시각장애인을 알고..그녀를 걱정하지요 그리고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사라집니다..
경찰이 돌아간후...'미치루'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삶을 포기한 그녀는 남자가 자신을 덮치면 혀를 깨물고 자살해야지 맘을 먹지만 그의 보이지 않는 행동들에서 배려를 느끼고 그가 나쁜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지요
'아키히로'는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이였습니다.. 그러나...일터에서 왕따당하고... 후배들에게까지 멸시당하는 가운데...왕따를 주동하는 사람이 선배인 '마츠나가'임을 알게 됩니다.
'아키히로'는 화가 난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하고 기차역에서 그를 보고 살의를 느낍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마츠나가'를 철도에서 밀고... 그모습을 본 '아키히로'는 자신이 주요용의자가 될것임을 알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전부터 지나치며 보아왔던 시각장애인 '미치루'의 집에 잠입을 하게 되지요
처음에는 숨을곳이 마땅치 않아 들어온 집이지만.. '아키히로'는 홀로 위태위태하게 지내는 '미치루'가 걱정되고 그녀를 지켜주려 합니다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동거는 계속되고 '미치루'는 '아키히로'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사건이 일어난 기차역의 '역무원'을 찾아가고 '아키히로'의 무죄를 증명하려 하지만.. 도리어...살인자의 표적이 되어버리지요....
영화도 재미있게 봤었는데요...책도 재미있었어요 영화에서 '다나카 레나'의 시각장애인연기는 정말 좋았었는데 말이지요 '미치루'의 배역을 정말 잘 선택했단 생각 들었던...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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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고 고른 책은 아니었건만 <어둠 속의 기다림>도 치유계 소설이었다. 하지만 오츠이치는 역시 치유계도 잘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어둠 속의 기다림>은 눈이 먼 혼다 미치루라는 여성과 역에서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상사를 밀어 범행을 의심받는 오이시 아키히로의 이야기다. 전개는 두 사람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데도, 서로 생각하는 것과 대하는 태도나 행동이 다르게 묘사된다. 무엇보다 아키히로는 미치루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알고 몰래 미치루의 집에 숨어들어와 생활하는데,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아키히로의 심정과 어둠으로 가득찬 집이 술렁임을 느끼는 미치루의 심정들이 교차하면서 한 공간 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같이 생활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긴장감과 함께 전혀 타인 같지 않은, 묘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아마 미치루와 아키히로가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점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는 집에서만 생활하며 밖의 세상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다. 아키히로는 회사에서 동료들과도 상사들과도 교류 없이, 혼자 있는게 더 편하다며 그저 묵묵히 일만 해왔다. 이 둘의 공통점은 타인과의 관계를 전부 부정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한 점이었다. 눈 먼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 카즈에는 늘 집에만 있는 미치루가 걱정되어 밖으로 나가보라지만, 눈 먼 자신에겐 너무나 무서운 밖의 세계에 미치루는 거절한다. 그녀에게 있어선 어둠에 휩싸인 이 집은 아늑하고 상처받을 필요도 없고 편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끝내 카즈에와 틀어진 미치루는 그녀와의 관계마저도 끊어내려 마음 먹지만, 이내 아키히로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살아갈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아키히로 역시 미치루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교복을 입고 학교 있었던 학생 시절에도,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회사에서도 아키히로는 늘 불편했다. 소속감을 느낄 수도 없었고 동료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상사든 부하든 자기의 험담을 하는 건 화가 났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자신이 동료나 상사들과 친하게 지내고 살갑게 굴었더라면 험담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섞여들 수 없는 아키히로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갈수록 염증을 느낀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그는 정말로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장소는 있을까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필요했던 건 학교나 회사와 같은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집에 숨어들어 몰래 생활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존재 자체를 허용해준 미치루의 마음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다름아닌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인정해주는 '허용'과 같은 것이었다. 오치이치는 이렇게 미치루와 아키히로 두 사람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와 삶 그리고 고독과 함께 하는 행복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멋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미스터리와 반전은 그칠 줄 모른다. 그게 바로 오츠이치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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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면 영락없는 추리소설,공포소설, 탐정소설 중 하나의 장르가 아닐까하고 짐작하게 된다. 거무튀튀한 옆의 붉은 색에 가까운 어두운 핑크빛 제목.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회색빛 햇살. 이 모든 것이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찬란한 착각이었음은 곧 밝혀진다. 전혀 그런 장르와는 동떨어져있다. 아키히로는 출근 길에 작은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그 실수는 큰 구멍이 되어 그의 인생에 검은 점을 남겨 버렸다. 그는 도망가 버렸다. 살해현장에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전국민에게 수배범으로 알려져 버렸다. 사실 그는 마츠가나를 죽이지 않았다. 목격자일 뿐이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겨난 것일까. 아키히로는 사회부적응자였다. 학창시절부터 그는 왕따소년이었고, 직장에서는 선배뿐만 아니라 후배에게까지 치이는 그런 인물이었다. 특히 선배 마츠나가는 남을 상처입히면서 즐거워하는 인간의 전형이었고 후배 와카기와 더불어 그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화를 낼 수 없는 인간이 아니다보니 아키히로는 와카기에게 "죽여버리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오해의 도화선이 되어 마츠나기를 죽인 범인으로 오인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늘 같은 전철을 타고 다니던 마츠나가가 선로에 떨어져 죽는 아침 아키히로가 현장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꽤 가까운 거리에. 사실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긴 했다. 당황한 나머지 현장에서 도망친 아키히로는 곧 혼마 미치루의 집으로 숨어든다. 혼마 미치루. 그녀는 3년전 시력이변으로 완전히 앞을 볼 수 없으며 어린 시절 이혼한 어머니와는 연락두절에다가 작년 6월에 뇌졸중으로 아버지가 사망했기 때문에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이었다. 보이지 않는 여성의 집에서의 칩거 생활. 남과 어울려 살아가기 부적합한 인간 둘이서 매일매일 함께 한 공간에 거주하는 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끼는 여자와 들키지 않아야 하기에 숨죽인 남자. 어느 한 순간 서로의 존재를 서툴게 확인하면서 그들은 당황하기 보다는 함께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건이 해결되고 아키히로가 범인이 아님이 증명되었지만 그 둘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사회 속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변하려는 희망이 엿보인다면 그건 바로 그들이 노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키히로는 미치루의 눈이 되어주고자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고, 미치루는 혼자서도 밖을 나다닐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오츠이치가 전달하는 감동은 의외성에 있다. 잔인하거나 슬프지 않으면서도 애잔하게 만드는 주인공들과 급해피엔딩으로 치닫지 않는 현실감 있는 결말. 살아가면서 어느 것이 더 나쁜가를 생각하던 사고방식을 어느 것이 더 나은가로 바꿀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내재된 소설과의 만남이라 더 의미가 깊었다고 전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싶어했던 친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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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둠은 영원히 계속된다. 미치루는 그 사실을 그리 비관하지 않았다. 어둠은 따스했다. 그 어둠에 감싸여 있으면 세상에는 미치루밖에 없는 것 같았다. - p 15中
미치루는 교통사고로 인해 점차 시력을 잃게 되었다. 서서히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고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차면서 미치루는 오히려 그 상황을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나서 완전히 혼자 남게 되었을 때에도 미치루는 오히려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그 혼자만의 어둠 속에 웅크린 채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 수 있음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원래 사람들과의 관계에 익숙치 않아했고, 소심하고 겁많은 성격의 그녀였기에, 오히려 사람들과 부대끼며 작은 일에도 상처입고, 남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보다 완전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렇게 조용히, 어둠 속에 녹아들어 살다가 조용히 잠자듯 숨을 거두는 그런 평화로운 죽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끔 찾아와 함께 장을 봐주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 카에데 말고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말을 섞을 사람도 없이 미치루는 그렇게 조용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어느 날,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미치루의 집 앞에 있는 역 플랫폼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뒤 그 사건의 용의자인 아키히로가 미치루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숨을 장소로 미치루의 집을 택했던 것. 아키히로는 어떤 면에서는 미치루와 닮아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치 못하고, 그래서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취직한 인쇄 회사에서도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회사에서 모두의 씹을거리가 되었고 나중에 들어온 후임조차 아키히로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런 아키히로를 낄낄대며 놀리다가 '그 녀석은 대체 뭘 하며 사는지 한 번 미행해보자' 라는 심한 말을 회사 사람들 모두의 앞에서 한 상사 마츠나가에게 아키히로는 큰 분노와 함께 살의마저 느끼게 된다. 사건 용의자로 아키히로가 떠오르면서 아키히로는 미치루의 집에서 숨죽여 하루하루를 보낸다. 천성이 악하지는 않은 그였기에 미치루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치루의 사생활을 최대한 침해하지 않기 위해 소리없는 노력을 하면서 지내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밖을 두려워하며 안에 틀어박혀 있는 미치루의 모습들에 안쓰러움을 느끼게 된다.
미치루가 아키히로의 존재를 눈치채면서 조용한 긴장감이 흐르다가 예기치 않은 일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조금씩 교류를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미치루가 위험하지 않도록 돌봐주는 아키히로, 그런 아키히로에게 매 끼니를 챙겨주는 미치루.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한 그들이었지만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가게 되는 과정을 이 책에서는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따뜻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어둠'이 이렇게나 따뜻한 것인지,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겁많고 서투른 미치루와 아키히로가, 자신만의 어둠을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첫 발을 내딛을 때에는 정말이지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올랐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바로 조금 전인지, 아니면 스튜를 처음 만들어 주었을 때인지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줄곧 따스한 마음으로 그와 침묵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부엌 바닥에 멀거니 서서 깨달았다.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 p 195中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함을 느끼며 상처받아도 그것을 극복해나가며 신뢰와 사랑을 그 위에 더 쌓아가며 '함께'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오츠 이치'를 처음 접한 것은 다소 엽기적인 소설이었던 <암흑동화>였다. 첫인상이 이래서 중요하다고, 그래서인지 내게 오츠 이치는 무섭고 끔찍하고 온갖 어두운 것들에 대해서만 다루는 작가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읽었던 <미처 죽지 못한 파랑>에서도 조금 무섭고 우울한 분위기이긴 했지만 소심한 소년이 부당한 것들에 맞서는 모습들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었고, 이번에 읽은 <어둠 속의 기다림>에서도 표지만 보고 정말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내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오츠 이치'에 대한 첫인상을 바꿔야 할 때인 것 같다.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사랑스러움. 이 책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을 찾을 수가 없다.
한겨울이야. 추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어. 하지만 이제 곧 바깥은 따스해지겠지. 차가운 공기 때문에 손과 발이 욱신욱신 시릴 일도 없어질 거야. 공원 나무들은 새싹의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내고 초록빛 잎사귀를 틔우겠지. - p 295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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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도 같은 오츠이치의 글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바로 집어들어 읽기 시작한 다른 책 때문에 감상문 못 쓰고 지나갈 것 같아 부랴부랴 블로그를 켰다. 역시 그의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소재 자체가 독특하고 인상적인 글이고, 처음 읽은 오츠이치의 장편소설이다. 지난 번 글에서 과연 장편에서도 나를 매료시킬 수 있을 것인가ㅡ 따위의 의문을 제시했었는데, 아직까지는 오츠이치의 연승이다. 제목인 <어둠 속의 기다림>은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보여주는 심플 그 자체의 타이틀. 참고로 이 책을 읽을 계획인 분이라면 이 글은 아예 안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딱히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할 생각은 없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는 것이 더 즐거운 책에 속한다, 이 소설은. 사실 이 부분은 늘 고민이 되는데, 책이건 영화건 드라마건 감상문을 쓸 때 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 공개를 해야 되는가ㅡ 라는 거다. 언젠간 자세히 이 고민에 대해 쓸 날이 오겠지.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후기에 의하면 이 책은 '경찰에 쫓기는 남자가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의 집에 허락도 없이 몰래 숨어든다.'는 내용이다. 단순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말로 <어둠 속의 기다림>은 전작인 <미처 죽지 못한 파랑>에서 잘라냈던 저 에피소드를 작품으로 정리한 글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소설 속에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했던 소재를 300여 페이지의 장편 소설로 재구성해 전혀 다른 글을 만들어 낸 것인데 <미처 죽지 못한 파랑>은 아직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가 있었으면 어땠을 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글을 읽고 난 뒤로 미뤄두자. 누군가에게 쫓기는 이가 도망을 치는 글은 많이 봤고, 앞이 보이지 않는 이가 외로움과 역경을 이겨내려고 하는 이야기도 제법 봤지만 그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이야기는 아마 이 글이 처음인 것 같다. 독서를 좋아하긴 하지만 꽤나 편협해서 ㅡ그리고 상상 이상으로 독서량이 적다ㅡ 오츠이치가 그려내는 소재들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다. 자의든 타의든, 남들과 자기 자신을 격리시키고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우연히 상대방을 지켜보게 혹은 알아가게 되면서 가지게 되는 소소한 변화와 감정의 흐름들이 꽤나 재미있게 읽힌다. 스릴이 넘치면서도 즐겁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여자의 집에 쥐죽은 듯이 숨어 지내는 남자가 언제 들킬지 몰라 조마조마하면서도, 그녀가 요리를 한다거나 스토브 앞에서 잠들어 있거나 하면 걱정이 되서 안절부절하기도 한다. 타인에겐 관심이 없었던 남자와 타인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했던 여자.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ㅡ 하는 고민이 생기고, 감정이 일어나는 과정이 각각 두 남녀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그려진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소설, 일종의 미스테리라는 거다. 난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그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푹 빠져서 읽다가 깜짝 놀랐으니까. 알고 보니 이 소설은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 데 꼭 보고 싶다. 오츠이치의 작품들 중 꽤 많은 수가 영화로 제작되었다더라. 하긴, 읽으면서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좋겠는데ㅡ 싶었던 글이 이미 꽤 있으니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의외인 건 그렇게 일본 드라마나 영화, 소설들을 자주 접하는데 어째서 지금껏 오츠이치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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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죽지 못한 파랑》 뒤에서 이 책에 대한 광고를 보고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난 뒤가 아닌 바로 다음에 볼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에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로 시력을 잃고, 하나뿐인 식구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혼자 살아가는 미치루 집에 경찰에 쫓기는 아키히로가 몰래 숨어든다. 아키히로는 역 플랫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용의자다. 도망치고 숨기까지 해서 아키히로가 죽인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이 아니다"는 말을 하는 곳이 나온다. 역 플랫폼에는 한사람이 더 있었다. 읽으면서 조금 마음에 걸렸던 사람이 있었는데, 사진 보는 부분에서 느낌이 왔다. 그때 아키히로가 말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