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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전 이맘때쯤 [논어]를 읽고 1년 만에 다시 [논어의 혼 2]를 읽었다. [논어]는 동양의 고전 중 가장 많이 읽혀 온 책이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책이다. 지금까지 [논어]와 관련된 책이 3천여 권이나 발간되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세상사는 이치나, 교육, 정치 등에 관해 논의한 이야기를 모은 책이며, 동양 고전 중 글이 간략하고 함축적이며 공자에 대해 가장 많이 알 수 있는 책이다. 그 안에는 공자의 혼잣말이나, 제자와의 질의응답이나, 제자들만의 대화 등이 기록되어 있다.
[논어의 혼 2]는 이전의 [논어] 번역본들과 많이 다르다. [논어]의 제 2권 위정편의 중요한 몇 구절을 가지고 인생을 진지하게 이야기 한다는 점이 그렇다. 김상대, 성낙희 부부 저자가 논어를 통해 들려주는 인생이야기를 고요히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나는 몇 군데의 여울을 만났고, 거기서 잠시 숨을 고르며 읽고 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었으나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 조심스럽게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공자는 15살이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다. 공자가 말하는 학문이란 내면을 경작하고, 내면의 정원을 가꾸고, 내면을 농사짓는 기술이나 자세를 터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리다면 어린 열다섯 나이에 진리를 탐구하고 삶의 본질적인 것을 행하려 노력하며 내면의 성장을 위한 삶을 다짐하는 것은 놀라운 통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정보와 학교교육의 성취를 '쓰레기 같은' 것으로 매도하며 오늘날의 배움을 폄하하는 듯한 자세는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한다. 내면의 성장과 성숙이 '정보'와 '제도권 교육'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들을 무시하고 쓰레기 취급하는 듯한 인상은 교육자다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정보의 시대를 지나 지식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은 지혜의 시대이며 앞으로 도래할 시대는 유비쿼터스 시대이다. 지혜와 유비쿼터스는 정보와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유비쿼터스는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소견인지 모르겠으나 내면에 치중하여 정보와 지식을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은 사람은 좋은데 실력이 없는 사람이거나, 진리나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구도자의 삶을 살 수는 있으나 비현실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둘째, 공자는 마흔이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았다. 저자는 공자가 마흔에 불혹하였다는 것을 인류 최초의 유혹인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과 관련하여 소개한다. 저자는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지식의 나무 과실(선악과)을 따 먹음으로 해서 스스로 에덴에서 떠나버렸다고 한다. 때문에 신도 아담을 추방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아담이 스스로 에덴을 떠난 것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삶이 우리에게 부어주는 아름다움으로부터, 축복과 즐거움과 행복으로부터 우리는 추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먼저 먹었다면 추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지식이 삶을 통해 얻어지고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면 추방은 없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그러나 아담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지 않았기에, 불로소득으로 얻은 지식은 불완전한 것으로 가짜라고 주장한다. 빌려온 것이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질 때 진짜이며 즐거움을 더해주는데, 아담은 순서를 바꾸어 먹어서 추방되었다는 것이다.
위 내용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 선악과 사건은 신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과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이야기이지 지식이나 앎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신은 인간을 말 잘 듣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을 뿐더러 명령에 따라 생각이나 감정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도 원치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고, 인간이 설령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신의 명령에 불순종 하더라도 우리의 선택을 존중한다. 다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우리에게 물으신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을 자백하고 돌이키면 자비로움으로 용서하신다.
성경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기록하고 있다. 금단의 열매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이다. 그러나 신은 이들을 추방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매듭짓는다. 죽어야 할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에덴에서 쫓아내는 것이지 결코 아담 스스로 떠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둘. 저자는 아담이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먼저 먹고 금단의 열매를 나중에 먹었다면 추방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먼저 먹으나 나중에 먹으나 범죄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선악과를 먹었다는 사실, 즉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나중에 먹었더라도 추방당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신학자는 아니지만 이쯤에서 나는 내 상식을 동원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그들이 생명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은 상태에서 선악과를 먹었을까? 내 대답은 NO,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먼저 먹었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뱀이 와서 유혹하기까지 아담과 하와에겐 따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생명 나무의 실과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뱀이 와서 유혹할 때까지 그것을 먹지 않았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셋. 저자가 말한대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이 진짜 지식이고 책이나 사람들, 사회로부터 얻은 지식은 불로소득으로 얻은 지식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며 가짜라는 의견은 납득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 논리를 내세워 아담이 자신의 경험으로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먼저 먹고 나중에 선악과를 먹었다면 추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뱀, 즉 사회로부터 얻은 지식은 자신이 경험해서 얻은 지식이 아니므로 불로소득이며 불완전하며 가짜이기 때문에 추방당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 논리라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지혜'라면 몰라도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경험에 의한 것보다는 학교나 책, 사람들에 의한 지식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불완전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유한한 인생이 어찌 그 많은 것을 언제 다 경험해서 자신의 온전한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앎만큼 값지고 귀한 것은 없을 게다. 하지만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도 앎을 얻을 수 있고,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쌓으며 지식을 축적할 수도 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심지어 어린 아이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와 다른 내 생각이 주제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오해를 한 것 일 수도 있고 저자의 견해를 잘못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해를 줄이기 위해 거듭 읽었다. 그래도 잘못 해석한 거라면 반대 의견을 수용할 각오로 이 글을 썼다. 무례한 내용이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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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상대 아주대 명예교수와 성낙희 숙명여대 교수는 한문과 인연이 깊다는 부부는 1971년부터는 청악(晴嶽) 한영선 선생 수하에서 함께 한문을 사사했으며 그 후에는 약20년간 라즈니쉬 등 각자(覺者)들의 가르침에 심취해 왔다고 한다. 부부가 한길을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들었다. 두 노학자님들이 이번에 펼쳐내신 '논어의 혼2'는 부부 공저로 이번이 논어에 대한 두번째 책이다.
[논어]는 공자의 일생의 언행록(言行錄)으로, 공자의 행적과 그가 주변 인물들의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동한(東漢)의 반고(班固)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 '[논어]는 공자가 제자를 비롯한 당시 사람들과 문답한 내용, 공자의 제자들이 서로 문답한 내용과 공자에게서 전해 들은 말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제자들은 나름대로 기록해 둔 것이 있었는데, 공자께서 세상을 떠난 뒤에 제자들이 모아서 편찬하였기에 ‘논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이 책 '논어의 혼2'는 [논어] 위정편에서 선별하여 싣고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이 논어의 어구 풀이 대신 그 정신을 천착하여 경전의 참뜻을 밝히려는 뜻에서 시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에 쓰여진 논어의 문장은 한 구절을 다양한 각도로 해석하면서 참뜻을 파악하고 있다. 세상에는 지식을 과장하기 위해서 되도록 말을 어렵게 하고 많이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현학적인 학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는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장황하게 여러 페이지에 걸쳐 난해한 어휘로 가득 채웁니다.(p21)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 교수는 “한문 공부를 하는 동안 고전의 해설서를 많이 봤는데 공통적인 문제점이 눈에 띄었는데 대부분 어구 해석에만 치중할 뿐 깊은 뜻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누구나 현대의 삶을 살아가면서 부대끼고 맞딱뜨리게 되는 내용들을 가장 쉬운 언어로 풀어내어 읽기쉬운 책으로 펴내게된 이유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는 개인의 가치를 회복하면 사회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데 개인의 가치 회복을 위한 지혜가 고전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다른 논어관련 책과 달리 읽기가 수월했다. 또한 처음부터 차례로 읽지 않아도 되므로 언제라도 책을 펴고 명상을 한다는 기분으로 한구절 한구절 읽어나가며 이해하는 독서법을 택해 여유로운 독서가 가능한점이 좋았다.
사람다운 사람과 삶다운 삶이 그리워지는 시대에 가정에도 법도가 있듯이, 국가에도 국가의 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정과 국가로 나아가게 하는 기본은 개인의 자질과 인격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삶의 바른 길을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와 같다고 이야기 한다. 몇 장만 떠들어 보면 쉬이 알고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쉽게 쓰여져 있다.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불혹의 삶이란 극히 일부 깨달은 이에게나 가능하고, 많은 보통사람들의 삶은 온통 미혹의 연속입니다. 그러면서도 나이 사십이 되면 으레 불혹의 나이라 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런 언어유희는 재고해 봐야 할 듯 합니다.(p81)
"子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는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로서,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란 구절에 대한 해설은 30쪽에 이른다. 이말은 문턱을 넘을 때 새롭게 세기기도하는 말이다. 먼길 가는 사람이 모퉁이 이를때마다 행하여야 할 자기 자신에의 겸손한 귀의가 깃들여져 있는 문구이다. ‘군자불기(君子不器·군자는 그릇과 같이 한 용도로만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라는 구절에선 “오늘날에는 누구나 전문가가 되기를 원하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한 분야의 지식에만 천착해 기고만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는 해설을 붙였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논어 해설서와는 전혀 다른 창조적인 방식으로 독자가 논어의 참뜻을 깨닫도록 도와주고 있는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저자가 논어 전체를 해설하는 것을 지양하고 한 구절을 다양한 각도로 해석하면서 참뜻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 작업의 결과물답게 이 책에는 논어의 구절 가운데 일부만 소개됐다. 그 대신 각 구절에 대한 해설은 상세하고 깊다. 따라서 이 책은 '논어해제'라기 보다는 이 논어를 현대에 맞게 재구성한 살아있는 경전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이미 논어관련 책들이 몇권 있었지만 사고난 후 몇장 읽다 책장에 고이 보관하길 몇 수년이 지났다. 그 이후에도 손이 쉽게 가지 않던 책이었는데 다시금 고전에 대한 관심이 생겨 다시 한번 고전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한 점이 이 책 ' 논어의 혼2'를 읽고난 후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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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공자의 말씀을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책으로 공자와 그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리고 고제의 발언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 함축성 있게 기재되어 있다. 논어는 전 20편, 48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편의 머리 두 글자를 따서 편명으로 삼았으며 내용은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아는 知命까지로 되어 있다. 논어는 중국의 철학자들과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다른 유교경전의 세책과 함께 사서라고 불리어지며 인, 의 예, 충이라는 유교적 인본주의를 가르쳐왔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해진 것은 중국과의 접촉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삼국시대로 추측되는데 삼국사기에 642년에 竹竹이라는 화랑이 인용한 논어의 구절이 있다고 한다. 『논어의 혼 2 (오랜 잠에서 깨어날 것인가)』는 『논어의 혼 1』편에 이어 1년 만에 두 번째로 발간된 책으로 제1권에서는 첫 번째 '학이편'의 중요한 구절들의 깊은 의미를 살펴보았다면 2편에서는 『논어』의 위정편에서 선별하여 심원(深遠)함과 그 절대무량을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탐색해 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논어의 혼 2 (오랜 잠에서 깨어날 것인가)』는 논어의 어구풀이 대신 그 정신을 천착하여 경전의 참뜻을 밝히려는 뜻에서 시도되었는데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스승은 언제나 역설적인 존재로 남으므로 김상대, 성낙희 두 저자는 라즈니쉬의 강의로 경전 못지않은 진리의 메시지를 담아 以經治經의 방식으로 전술하였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물음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역할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톡톡히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저자는 일러두기에서 이 책이 하나의 교양서적으로보다 현대의 구도적인 삶에 이바지하는 조그만 안내서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적어놓아 『논어의 혼 2 (오랜 잠에서 깨어날 것인가)』를 건성으로 읽기보다 소수라도 다섯 번 열 번 읽으며 철저히 이해하고 인생의 좋은 반려자로 활용하기를 독려하고 있다. 각자의 도에 이를 수 있는 진지한 관심을 갖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통해 유용한 정보만 얻는 에고의 양식으로서의 지식탐구가 아니라 단어들 사이에 있는 행간의 사이에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의미를 신성한 노래를 감상하듯 이 책을 읽어 독서의 엄청난 아름다움과 영감을 받아 그 경전과 더불어 명상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혜의 정수는 어느 한 구절이라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얼마나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깨달은이들의 말을 들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마음으로는 구구절절이 그 말씀들을 따르고 싶은데 실제로는 전혀 실행에 옮기지 못합니다. 참담한 심정입니다.'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데 대한 참 이해가 없으면 불행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우리 자신이기에 우리는 전적으로 마음가짐을 다져 잡고 남의 탓을 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를 가져 그 불행에서 탈출하기 위해 각고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마음은 무능하여 어떤 의지와 꿈,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데는 능숙하지만 의지력이 없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우린 그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겨 무능하고 비겁한 마음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가치 있는 말을 들을 때는 마음으로 듣지 말고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말에 귀 기울여 존재 전체로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갈등하지 않고 실천이 가능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논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었고, 또 그만큼 논어에 관한 수많은 책들의 발간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읽혀지고 있는 '논어'는 긴 세월동안 그 말씀을 통해 현세의 사람들은 말씀의 지혜를 얻고 구하고자 했다. 외롭고 힘든 어려운 삶에서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해주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주고 있는 논어는 사람다운 사람, 삶다운 삶이 무엇인지 교육도 문화도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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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논어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어 보았지만 금번에 출간된 "논어의 혼"은 확연히 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논어 한자문장을 나열해 놓고 이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는 책이 아닌 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또한 논어 정도를 거론할 정도이면 이미 학문의 수준도 상당한 학자들이 저술한 바 일반 독자들이 쉽사리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하나의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이 책은 그러한 우려를 단번에 씻게 해준다.
기존에 논어에 관한 책이 단순히 한자로 이루어진 어구를 풀이함으로써 독자들 이 지루하게 느껴짐으로 인하여 논어 어귀에서 표방하는 진정한 의미를 간과한 점이 아쉬웠지만 이 책은 논어가 추구하는 정신을 쉽게 설명함으로써 일반인들 이 논어를 더욱 친근하게 접근하게 하였다.따라서 전문적인 내용을 기대한 분들 에게는 오히려 적지 않은 실망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마치 맑고 기분좋은 수필 을 읽는 느낌이다.논어의 문장 하나 하나를 서두에만 살짝 보여주고 나머지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경쾌하게 막힘없는 내용으로 이어진다.논어는 알다시피 공자의 사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고전이지만 저자는 공자 뿐만 아니 라 붓다,예수와 같은 성인이 보여 주었던 정신적인 지침을 아울러 서술함으로써 이 책이 비단 유교적으로 편향된 책이 아님을 보여준다.즉 종교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쓰여진 점이 돋보인다.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지나치게 추구하는 물질적이고 외향적인 욕망에 대하여 이 책은 그러한 것이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되기는 커녕 허망한 것임을 강조한다. 즉 현대인은 어느 새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아름다움과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는 스스로 사회의 단순한 부속물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허영과 성형으로 물든 거짓의 미를 추구한다고 꼬집는다.참으로 오랫 만에 접하는 논어에 관한 책이지만 가까이에 두고 여러번 읽고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수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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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와 여행서, 문학, 유아동 도서. 쓴 글을 짚어 읽어보니 주로 읽는 분야가 한쪽으로 치우쳐 편중되어 있다. 그래서 올해에는 잘 읽지 않는 분야의 책도 편식하지 않고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어렵지는 않을까 두근거리며 선택한 책이 논어의 혼2이다. 논어의 혼1을 읽지 않고 2로 바로 들어가면서 2라고 나온 것을 보니 전권이 있나보다 하는 정도만 알뿐 큰 배경지식도 없이 잡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랬는데 기대이상으로 책이 좋았고 훌륭한 스승, 멘토를 얻은 것 같아 무척 기뻤다. 내 용감한 도전에 행운의 여신의 미소가 올라앉았는지 내가 선택한 이 책은 딱딱할 것 같고 어려울 것 같았던 첫인상에서 이런 책을 읽게 되어 뿌듯하고 행복함으로 마음을 채워가게 되었다. 옛 성현들은 천자문을 떼면 논어 맹자는 기본 학습서로 마르고 닳도록 외우고 익혔다 한다. 일차적인 목적으로는 과거 시험의 시험 과목이었기에 더 열심히 읽고 외웠다지만 과거를 떠나서도 평생 진리와 뜻을 깨치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익혔다고 하니 과연 어떤 진리를 담고 있나 궁금했다. 논어의 혼2는 논어 위정편에서 선별하여 어구 풀이 위주보다 말씀의 참뜻을 밝히고 읽는 이에게 맑은 정신으로 마음과 몸을 가다듬도록 진리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진심으로 한 여자를 사랑할 때 그녀가 날마다 새로워 보이는 것처럼 똑같은 어구이지만 날마다 새로운 의미를 전해주는 논어의 혼2가 저자들의 의도대로 찾는 이들에게 청량수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나도 바라게 되었다.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우리 길을 방해하고 있지 않으며,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우리를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책임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82쪽- 우리를 유혹하는 악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과 욕망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욕망을 초월하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잡아당길 수 없습니다. 이는 마음이 파괴되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지 치워 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 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차를 차고에 넣어두는 것과 같아서, 차가 필요하면 우리는 차고에서 차를 꺼내올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83쪽- 링컨이 말했습니다.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만든 얼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얼굴은 바로 우리의 자서전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영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86쪽- 진정 우리가 부모라면 간섭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알 수 없는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고 아이가 탐험을 떠나게 해야 합니다. 어둠과 실패와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어야합니다......자기 내면의 씨앗이 피어서 그 꽃다운 어떤 알맞은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삶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이며,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정비사가 아니라 정원사이어야 합니다. -106쪽-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라.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당당하게 말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과도 맞서 싸워라. 그러면 결코 불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부자나 유명인사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무엇이 되든지 간에 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음에 깊이 만족한다면, 너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될 것이다. -107쪽- 새 것을 깊은 내면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새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것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거절하면 돌과 같이 생명없는 존재가 되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꽃과 같은 존재가 되어 향기롭게 피어납니다. 축복가득한 개화입니다. 새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변화합니다. -166쪽- 모든 아이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지성을 날카롭게 다듬을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합회를 아이들에게 줌으로써 그들을 도와야합니다. 반드시 아무도 복종을 강요받지 않도록, 그리고 모두가 자유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뿌리가 강해질 것입니다. -224쪽- 내 삶의 주인공인 나와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모로서 얻을 수 있는 깨우침과 태어나 나이들어가면서 삶의 강물 속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진리들을 논어를 바탕으로 논어를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고, 경전의 진리들을 바탕에 깔아 살아가는 지혜를 담아놓은 책이 논어의 혼2였다. 단순히 옛 성현들이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논어의 진리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시작했던 논어의 혼2 책읽기는 기대이상의 진리를 얻을 수 있는 함지박이었다.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꿈보다 해몽이 훌륭함을 실감할 것이라는 추천인의 말이 옳다구나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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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공자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 무수히 많이 출판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공자라는 과거의 한 인물에 대해서 관점과 해석이 달라지듯이 고전학문의 대표적인 논어 또한 시대가 흘러가면서 해석이 달라지며 내용 또한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기도 한다.
'논어의 혼'시리즈 중에 두번째인 논어의 혼 2편은 사서삼경중에서도 유교학의 대표작인 '논어'의 위정편을 다루고 있다. 앞으로 현재 2편까지 나온 논어의 혼 시리즈는 더 출간될 예정이고 사서삼경 전체에 대해서 저자는 출판을 계획중이니 아마도 유교와 공자를 아우르는 관련 고전문헌 전체를 다루어보는 몇 안되는 작가로서 그것도 단순히 뜻 해석을 다루는 작가이기보다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쉽고 편하게 사서삼경의 뜻의 해석과 깨달음을 동시에 주는 작가로서 남을 것이다.
'논어의 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현대적인 질의응답의 형식을 이루었다는 것과 큰 틀에 입각한 공자의 말씀에 예리하고 깊은 분석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편하게 일반독자들에게 그 학문의 깊이를 전달해주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또한 질의 응답의 형식으로서 단순한 논어의 해석을 다루는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작가의 생각과 감정 및 느낌이 실려있다는 것이 본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어떤면으로는 에세이와 산문을 읽고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논어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는 논어의 힘을 빌려 삶에 대한 기준과 가치관의 척도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준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의 경우와 달리 실제 직업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었기에 한편의 '논어 및 유교학'에 대한 심층적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다가갈수 있었다. 책을 읽는다는 생각보다는 젊은이로서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어르신의 말씀을 듣는 기분으로 쉽게 책을 넘길수 있었다. 또한 한문과 한자를 최대한 배제한 한글로서 일반인이 거부감없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독자들에 대한 배려도 책을 읽으며 느꼈던 부분이었다.
책은 크게 5가지 논어의 문헌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논어의 대단함을 잘 표현해주는 것이 바로 단순한 5가지의 문헌으로 책 한권이 나올수 있는 깊이에서 느껴질 수 있다. 짧은 5가지의 문장이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의 모든것을 함축시켜줄 수 있는 것이며 결국 지혜와 깨달음은 많은 곳이 아닌 한 곳에 뿌리를 같이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작고 짧은 글귀이지만 그 글귀에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담겨있다는 것이 바로 '논어의 혼'이자 '논어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단순한 해석에 치우치는 책보다는 그 의미의 해석에 비중을 담는 책이 더욱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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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렵다. 모두가 살아가기 힘들다고 소리치고,, 여기저기서 믿기 어려운 , 인간의 양심을 논하기 까지 하는 일들이 신문 방송등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요즘이다. 새삼 살아가기 위한 방법등을 논의 하고, 힘을 합쳐 어려운 이 시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많은 자기 개발서들 사이에서 책을 고르는 것도 힘들어진다. 그런데 잋 이 책 [논어의 혼2]를 만났다. 옛 성현의 가르침속에 침묵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할 지경에 귀한 책이 손에 들어 왔다. 1권도 있다길래 인터넷을 뒤졌다.
[논어의 혼 1]편이 학이편에 중요한 구절들을 가지고 정신편에 중점을 두고, 인도의 라즈니쉬의 강의록을 주로 참고하고 다른 성인들의 가르침도 가미하여 논어를 성인의 시각에서 창조적으로 해설하여 경전의 참뜻을 밝히려 햇다면, [논어의 혼2]권에서는, 논어 위정편에서 선별하여 논어의 어구 풀이 대신 그 정신을 천착하여 경전의 참뜻을 밝히려 했다는 작가의 서문이 있다.
모 신문에 도을 김용욱 선생님의 논어에 관한 글이 계속 계제 되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을 만남에 있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논어(論語)』의 구절들을 용케도 주워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기억하는 『논어』 구절들은 항상 우리가 들어왔던 도덕적 경구와도 같은 뻔한 것들이다. 의외로 『논어』 속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도덕군자 공자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 이야기들이 많다. -- 그러시면서 여러 예문들을 들어 설명하시고 논어 예찬을 하신다.
--조선사회가 유교의 왕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논어』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왕국일 수도 있다. 조선왕조에는 『논어』가 읽힌 적이 없다. 오직 주자집주본(朱子集註本) 『논어』만 읽혔다. 다시 말해서 주자가 해석해 놓은 『논어』만이 읽힌 것이다. 그것이 과거(科擧) 시험의 텍스트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집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논어집주』만이 성경(聖經)이었다. 그들이 성경으로 떠받드는 『논어』텍스트가 이미 주석형태였기 때문에 주자의 주석을 제쳐놓고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주석을 낸다는 것은 상상키도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조선왕조에는 놀랍게도 『논어』 주석이 없다. 퇴계도 율곡도 주석을 내지 않았다. 1813년에 완성된 다산의 『논어고금주』가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다. 『논어』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이 부재했던 것이다. 오직 주자의 『논어』 해석이라는 도그마만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계가 자유로운 신학논쟁을 거부하고 도그마적 성격을 노출시키는 것도 이러한 주자학 전통의 승계선상에 있다.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 어떤 이념적 경직성에 묶여 있는 것도 이러한 주자학 전통의 폐해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480294) 부족한 서평을 쓰기에 참고 글이 되리라 옮겨 왔다.
누구나 알고 있는 '논어' , 그 해설서들이 지난해에 만도 30여 종이 새로 간행 되었을 정도로 공자에 대한 가르침은 뜨겁지만 감히 접근 하기 어려운 글들을 풀어내어 대중적으로 가깝게 다가온 책은 흔하지 않아서 작가님께 감사를 표현한다. 책을 좀 읽는 다 싶은 우리아들에게 한문도 가르칠 겸 '명심 보감'을 권한 적이 있다. 며칠을 잘 한다 싶더니 이내 숙제가 미루어 진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 큼 고전과 경전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 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작가는 경전읽기가 일종의 예술을 터득하는 것이라 한다. 소설책을 읽듯이 경전을 읽으면 핵심을 놓칠 것이기에 날마다 되풀이 해서 읽어야 한다고 한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어제'를 개입시키지 말고, 오늘의 새로움으로 의미를 부여해서 날마다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새로운 만남을 추구하듯 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논어의 혼 2]권은 모두 다섯단락으로 나누어져 그때 그때 위정편의 중요 구절을 작가가 논하고 독자가 질의 하듯 하여 다시 작가가 그 뜻을 풀어내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특히 2, 나는 이렇게 삶의 길을 찾았다. 에서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열 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자립 하였으며, 마흔 살에는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순 살에는 무슨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의 귀절을 나이순으로 나누고 공자의 정신적 성장과정을 세세히 나누어 설명하였다.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일어 날수 있다. 하지만 깨달음을 깨달음이라 깨닫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어렵지 않은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작가의 설명에 조금씩고개도 갸웃거려 가면서 읽어내는데 말그대로 경전의 묘미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눤원래 글이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라 했다. 밀고 당기며 어디서든 손에 집혀지는 대로 펼쳐진 곳의 내용을 심사숙고 하기에 부족하지 않는 책을 만남에 있어 마음을 내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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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이 이가 시린 것처럼 시린 부분이 있었다. 내 나이 30이 되어 어렸을 적 꿈을 다시금 찾아가는 내 자신을 보면서 그 동안 살아온 30년을 무시하고 다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때문에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내 스스로의 감각과 능력이 부족함을 탓하며, 감히 꿈을 꿀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다른 분야로 전공을 하고 그 전공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사회에서도 실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또래에 비해 승진하지도 못했으며, 돈도 많이 벌지도, 부유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세상의 잣대속에서 형편없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열등감에 빠져있었다.
이 책을 읽게된 것은 세상의 잣대로 볼 때, 매우 성공적인 사람들이 그다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머릿속으로는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전부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외로워하고 힘들어하고 다시 낮은 자리로 회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잣대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머릿속이 아닌 가슴 속에 정말로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성인만이 알고 있을 것 같은 깨달음이 실은 그렇게 멀리있지 않다는 것도...
나를 위로해주는 심리학책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논어라고 하지만 어려운 한자는 거의 배재되어 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 수월했다. 아주 가끔은 연결이 잘 안되는 문맥들이 있지만 넘어갈만 하다. 이 책을 쓰면서 일반 독자에게 자문을 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사람들이 논어의 내용에 의문점을 가질만한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형식이여서 그랬는지 마치 내가 누군가에게 대답을 듣는 느낌이었다.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화려해보일지라도 성공했다고해도 내면에서 원하는 바가 아니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좋아보이는 삶이 아닌 내 스스로가 좋아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부유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아도 삶은 절망적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내면의 소리가 돈과 명예인 사람은 행복하겠지만, 아무래도 나 역시 부와 명예는 아닌 것 같다. 지금의 나도 내면의 소리를 조금씩 듣는 것 하다. 세상의 잣대에 나를 맞춰가는 것 자체가 내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고갔음을 깨달았다.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는 내 자신에게 난 행복했어야했는데... 그리고 목적지를 잊지 말라고 했다. 가는 길에 누구에게 아는 척도 하지 말라는 예수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평범한 인사조차 마음에 혼란이 올 수 있다고... 귀가 조금은 가벼운 나에게는 꼭 명심해야 할 말인 것 같다.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난 내가 마음먹은 꿈을 꼭 이루리라......
'진리'를 강조한다. 그럴싸한 어려운 단어로 조합한 지식이 아닌 순수한 진리 그 자체를 말하고 있다. 진리는 우리의 본성 그 자체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깨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깨닫지 못할 뿐이고 단지 스승들은 잠들어있는 진리를 불러들이게 해주는 것 뿐이라 한다. 깊은 내면의 진리속에는 우리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이 있고 스스로 그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열려진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우리모두 각자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세상의 잣대속에서 개개인의 출발선은 모두 다르겠지만 각자 개개인 모두는 뛰어난 잠재력이 있고 깨우치는 자는 각자 다른 출발선의 불리함조차 무색하게 한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좋다 싫다같은 이분법적인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좋은 것과 싫은 것, 행복과 불행 등은 정말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의 구분이라는 말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졌다. 불행을 극복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봤지만 불행이나 행복의 구분이 내 스스로의 잣대였고 불행이 행복일 수도 행복이 불행일수도 있다는 것은 '깨달음'그 자체였다. 불행도 내가 현상에 반응하는 모습일 뿐이였다. 고로, 그 불행도 내가 만든 것이었다. 극복의 대상이 아닌 내 반응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 충격이었지만, 이제서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60세가 되먼 어떤 것을 들어도 거슬리지 않았다는 그 말은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였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단순히 들어주는 것을 떠나서 수용적이라는 의미라 한다.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닌, 분석적인 것도 아닌 순수하게 수용적으로 들어주는 것. 마치 아무런 의심없이 들어야 한다는 그 말이 이 세상에 과연 어울리는 말인가 싶었다가도 모든 것을 수용적으로 받아드렸던 붓다가 스스로의 죽음조차 당연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제야 받아들이라는 의미를 깨달았다.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했고, 화가 났고, 짜증이 났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다시금 내 삶을 곱씹어보고 다시금 책을 보게되었다. 간직하고 내 삶이 다시 느슨해질때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스승이 될 것이다. 내일은 오늘의 나보다 삶을 느슨하면서도 받아들이는 삶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