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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쪽수도 읽기에 적당한 편이고, 글자 크기나 줄간격도 적당하다. 제목이나 주제가 던지는 무거움에 압도당하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너무 분량이 많거나 책이 크거나 글자가 작으면 읽기도 전에 질려버려 작가가 전하고자 한 간절한 의도를 채 얻지 못하게 되는 수가 나에게는 있었다.
책을 읽다가 내가 가진 편견을 일깨우는 어느 순간이 오면 먼저 반항하게 된다. 내가 이때까지 잘못 생각했다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당신의 생각이 맞다는 근거는 뭐지? 내가 지금에서 왜 당신의 생각에 동의를 해야 하고 내가 믿어 왔던 것들을 버려야 하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러다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때가 또 온다. 맞는 말이니까, 내가 잘못 생각해 온 게 맞는 것 같으니까, 내가 잘못 알았던 게 맞으니까, 나처럼 생각하면 안 되는 거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속의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방식을 많이 만났다. 서양이 좋고 동양이 뒤떨어진 것 같고, 서양은 발전된 것 같고 동양은 미개한 것 같이 생각했던 기억. 내 비록 노란 머리 푸른 눈의 서양인이 되고 싶은 마음까지야 없지만 서양인이라면 동양인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부러워한 적이 있었던 기억. 동남아시아나 인도나 아프리카와 관련된 것들에게서 느꼈던 편협한 오리엔탈리즘.
내 속에 숨겨 둔 나를 만나고 당황하는 일이 잦다. 만약 내가 지금보다 좀더 젊은 나이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작가의 주장에 굳이 반대하려는 근거를 애써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자신이 확고하다고 믿고 있던 바를 다른 사람의 설득으로 바꾸는 일이 어디 쉽게 이루어지는 일인가. 내가 중국을, 인도를, 동남아시아를, 아프리카를 막연히 싫어한다고 느꼈던 마음, 미국과 캐나다와 서유럽과 북유럽에 막연한 동경심을 품고 있었던 마음이 어쩌면 내 스스로 잘못 새긴 오리엔탈리즘으로 인한 편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균형잡힌 시각이란 말만큼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닐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렵게 여겨진다. 세상을 편견없이 바라보는 눈, 멀리 동양과 서양의 거대한 세계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바로 내가 살아가는 주위에서 이 시각은 필요한 것인데.
자신의 머리 속을 다소나마 혼란스럽게 흔드는 일로 자신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께 이 책을 권한다. 자주 하면 곤란하겠지만 가끔 정리해 주어야 할 일이다. |
| 1. [우리 안의 파시즘] 이란 책이 있다. 저자는 일상생활 속에 숨어든 파시즘의 조각들을 분석하며 책의 페이지를 가득채운다. 그냥, ''음. 음?'' 하며 읽는다면 책을 덮고 나서 대한민국을 가득채운 파시즘을 보게된다. 한마디로, 파시즘이 아닌게 없다!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 제목도 비슷하다. 내용은 더욱 비슷하다. 책을 그냥그냥 읽고나서 세상을 둘러보라. 오리엔탈리즘 아닌게 없다! 2. 먼저 개념정의부터. ''오리엔탈리즘은 무엇인가?''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견해를 들어보자.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 간의 인식론적 구분을 창조하고 확인하는데 기여한 이념적 관념이다.'' 간단히 말해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상상하고 날조한 동양의 이미지란 얘기다. 비합리성, 신비함, 정신세계 지향, 물질적 결핍... 인도, 중동, 동남아등지를 생각한다면 우리 한테도 꽤 익숙한 개념일 것이다. (불과 50년전에 우리가 그런 평가를 받았음에도!) 사이드씨는 말한다. ''그런건 제국주의자들이 자신의 침략을, 통치를 정당화 하기 위해 제3세계에 주입한 엉터리 이미지일 뿐이야!'' 이옥순씨가 받는다. ''(사이드씨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후) 그런데도, 우리는 서구에서 들여온 오리엔탈리즘을 무차별적으로 차용해 인도를 신비하고, 뒤떨어지고, 시간이 멈춰있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인도묘사는 완전히 틀렸다!'' 3. 저자가 책을 어떻게 채웠는지 보자. 그녀는 영국이 인도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용한 인도의 이미지를 ''박제 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르며 19세기 ~ 20세기초에 걸쳐 인도에 대한 글을 썼던 키플링, 포스터, 헤르만 해세를 비판한다. (여기까진 우리하고 먼나라 이야기니까 별 상관 없다.) 하지만, ''복제 오리엔탈리즘''의 장으로 넘어오면... 글쎄.. 저자에게 난도질 당하는 작가의 면면을 한번 보자. 송기원, 강석경, 류시화, 법정, 은희경, 한비야, 도올, 김영현, 이지상.... 이옥순씨는 인도에 대한 글을 썼던 작가란 작가는 모조리 자신의 무대 위에 끌어올린 후, ''너희가 그려낸 인도는 결국 19세기 제국주의자들이 그려낸 인도와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어!'' 라며 이 들을 모두 오리엔탈리즘의 미망에 빠진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나선? 끝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인도는 무엇인가?''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서 인도를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저자는 지극히 모호하고 짧은 몇마디만 웅얼거린채 책을 마무리 짓는다. "뭐 이런 불친절한 책이 다 있어?" 4. 나는 저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내가 2년동안 공부했던 법학에선 ''수인한도론''이란게 나온다. 무슨소리냐고? 간단히 말해서 ''문제가 있지만 견딜만한 범위내에 있다면 문제로 삼지 않는다.'' 라는 이론이다. "이옥순씨, 세상을 바라볼 때 ''수인한도론''을 적용해 보는건 어떠실지?" 법학을 끌어온게 불만이라면 물리학에서 초끈이론의 개념을 좀 공부해 보는건 어떨까? ''끈의 길이가 갖는 거시적 둔감함이 플랑크 길이내에서 벌어지는 양자적 난동을 부드럽게 문질러 덮는다!'' "이옥순씨, 가장 근본적인 이론도 적용할 수 있는 미시적 경계가 있는게 이 우주의 본질입니다." 5. 나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 완전한 헛소리라곤 생각치 않는다. 분명히 ''서양에 의해 창조된 부정적인 동양의 이미지,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추한 한국인의 모습'' 같은건 찾아본다면 우리주위에서 엉첨나게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저자가 너무 미시적이고 파편적인 영역에까지 자신만의 이론을 밀어붙여 다음과 같은 망발성 문장을 썼다고 지적하고 싶다. ''마더 테레사의 봉사 활동은 인도의 가난을 세계에 알리는 결과를 낳았다.'' (p159) 이게 될 법한 소린가? 6. 내가 마이너리티를 지향하는 집단에게서 자주 발견하는 특징은 ''자신만의 강고한 세계관으로 세상만사를 모두 해석하려든다.'' 이다. 이 책 또한 그렇다. 인도학자인 저자는 인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하면 죄다 오리엔탈리즘이란 필터를 통해 분석하려 든다. 글쎄, 이런 저자의 태도는 ''진정한 인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본적이 없는 우리의 주위를 환기시킬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거의 아무 것도 없다.''가 내 대답이고 그런면에서 별다른 의의없는 책이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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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학기, 현대문학사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탈식민주의'적 문학비평이었다. 현진건의 소설을 탈식민주의로 해석한 발표를 들으며 혼란에 빠졌었는데, 발표팀의 발표가 탈식민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되 근거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주관적인 추측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주관적이라던가 추측이라던가 하는 것이 개인에 따라 정도차이가 있는 거니까 뭐 그쪽에서 그렇다고 하면 애써 반박하기 힘들지만, 어쨋든 작가의 의도조차 퇴색시킨 것 같아 굉장히 불쾌했다. 우리 교수님께서는 찬사를 보낸 발표였지만..
이 책도 그런 느낌.
오리엔탈리즘에 나타나는 인도의 타자화와 여성화를 비판했는데 어째 그 근거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책을 다 포장해놔서;_; 열심히 밑줄쳐놓은 관련문구를 지금 여기에 적을 수가 없는게 한..!! 이다. 아무튼, 다양한 소설과 일화를 제시하며 오리엔탈리즘에 나타난 식민지화, 타자화, 우민화를 비판했는데, 사실 선입견이라 보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이는 일반적 판단같은 것 조차도 이기적인 정의라고 말하는 것이 또 다른 이기적인 정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어봐야 할지 고민이다. 오리엔탈리즘 자체를 알아보고 싶은데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한 서적만 줄비한 것 같아서 어찌해야 할지. 같은 맥락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련한 책도 고민 중.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에 대한 역사나 등장이나 정의나 사례가 알고 싶은데 최근 발생한 문화적 경향(?)이라 그런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나 정보가 미흡한건지 흠. 논문을 찾아봐야 하나ㅠㅠ는 오바고. 그렇게 학구열이 높은 것도 아니고 수업 때 읽으라는 논문도 안읽는데.......
아무튼 이래저래 의문만 남긴 책. 원래 오리엔탈리즘이 이런거야? 싶기도 하고. 학문이란 것이 다소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좀체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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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을 읽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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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이 두권으로 인해 인도라는 곳에 대해
한번 여행해볼 만한 신비의 나라..류시화가 느낀걸 나도 느껴보고 싶고.삶이 힘들고
지질때 가면 무언가..깨달음을 얻고 돌아올수 있는 나라라고 인식 되어진건 사실이다.
하지만..곧..누구의 추천으로 이책을 읽게 되었다..
완전히.초전박살난..나의 인도라는 이미지..책두권이 심어준 인도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물론..이 책이 현실적으로 본..너무나 현질적이여서..너무나 차갑
게 느껴지는 냉기가 없지 않아 있지만..읽는 내내 사실인 사실에 나의 환상은 깨졌다.
한편으로 이책이 너무 밉지만 고마움이 더 강하다..
인도라는 곳을 여행하기로 류시화의 책을 보고 다짐했다면..
이책을 보고 인도로의 여행을 잠시 보류하게 되어버렸다..
너무나 적나라게 보여준..영국과 인도와의 관계..동양과 인도와의 관계.
인도의 현재의 모습등등..너무나 적날하다..
손등에 스치듯 칼집이 조금 났는데 아프다는 것도 모르고 살다가..
그 상처를 보고..너무 놀라서..아픔이 아물었지만..괜히 아픈듯한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안읽었으면 하는 바램도 이책을 덮고 잠시 생각했던 문제지만..
괜찮다..
이책은 많은 인도에 관한 여행기나 소설을 쓴 작가.그리고 영국이 통치했을때의
유명한 영국인과 작가들..의 말을 인용하고. 언론과 대중매체의 말들을 인용하여
빠져나올수 없이 많은 중거들을 보여주며 아니야 아니야 부정따위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하지만 한편으로는..이옥순 작가의 글을 이해 못하는 페이지도 ..간혹가다.
보여졌다..또한 좀 읽기 어렵운 페이지도 있어..안 읽혀질때도 있었다.
인도..그래도 여전히..가봐야할 나라 리스트 0순위에 꼽히는 인도..
물론 내가 보는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현저히 달라지고 현실적으로 변했을지도
모르지만.여전히..인도는..내 마음속의 0순위로 자리잡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이러한 시선은 인도를 지배한 공격자이자 발전한 서영(영국)과 동일시하여 열등감과 아픈 기억을 잊으려는 일종의 방어기제에 속한다. 곧 유령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스스로 유령 흉내를 내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 |
| 다분히 '선정적인' 미디어 리뷰가 흥미를 끌어 읽게 된 경우다. 문단의 중진인 강석경 송기원 그리고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류시화 등이 인도에 대해 쓴 글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니 이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순한 생각으로 집어든 책이었지만, 생각보다는 그 여파가 상당했다. 그간 '지독하게 가난하고 더럽고 혼란스러운 인도, 그렇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다'라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온 인도. 국내에선 드물게 인도의 뉴델리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친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인도에 대하여 갖고 있던 이미지들은 약 2세기 전,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던 무렵 영국이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만든 이미지와 놀랍게도 닮아있음을 지적한다. 강석경 등이 자신의 작품에서 그렇게도 혐오해온 인도. 또한 류시화가 그렇게도 칭찬했던 인도. 사실 현실의 인도는 그 어느 쪽도 아닌데, 우리는 어느새 영국 식민주의가 만들고 구성한 인도의 이미지를 문학과 영화, 미디어 등을 통해 모방하고 확대, 재생산하여 고착화시켜왔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했던 바로 그 '오리엔탈리즘'은 어느덧 우리 안에도 깊숙이 뿌리내려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문체는 거칠다. 그리고 자신의 논지를 입증하기 위해 영국 식민주의에 드러나는 인도의 이미지와 우리의 그것이 똑같다는 걸 무리하게 끼워넣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가 '서설'을 통해 이야기했듯 '인도를 보고 재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의식에 대한 내적 성찰을 해보자는 얘기다'라는 이야기엔 백번 공감이 간다. 사실 외국에서 떠올리는 한국의 이미지란 인도에 대한 이미지와 별 다를 바 없다. 세계적으로 'Korea'라는 나라는 아직도 냉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지상 최후의 화약고, 아직도 한국전쟁의 참혹함으로만 기억되는 곳이니까. 이번 월드컵을 통해 위상을 드높였다고 자평하지만 과연 한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그런 우리가 어느덧 서구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같은 아시아 국가들을 무시하고 있다니, 헛웃음만 나온다. 물론 오리엔탈리즘의 대안이 옥시덴탈리즘이 될 순 없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문화주의지 사대주의가 아니다. 세계엔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우린 언제쯤 깨닫게 될까? (그래도 해외로 진출한 축구선수들 덕에 사람들이 네덜란드와 터키라는 나라도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듯 하니 이것도 월드컵의 축복이려나) 지금이라도 내 안에 자라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죽비같은 책이었다. |
| 인도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게 인도라는 국가는 못살고 전근대적인 나라라고 하는 고정관념이 형성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고 생각해 보았다. 영국인들에 의해 -마치 우리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우리의 국민들에게 열등국의 백성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이준열사의 헤이그사건에서도 일본의 지대한 노력(?)으로 회의장에 참석도 못해보고 만 것처럼...- 왜곡된 그런 인식을 은연중에 갖게 만는 작업이 100여년 이상의 시간 동안 고착되어 이제는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은 바로 그 생각을 이제는 같은 동방에 이웃하는 나라로 인식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뭐랄까 고정관념을 깰수있는 대안 같은 것 아니면 인도의 IT분야를 소개한 것처럼 인도인의 건전하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소개가 적지 않았나하고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해보고 싶다 인식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이야기를 다음책을 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었다.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보고 우리를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있는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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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동양에 대한 유럽인의 시각을 비판한 책으로 유명하다. 서구인들이 동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을 '오리엔탈리즘'이라 정의했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은 인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양국가에게 적용되는 단어이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동양에 대한 서양의 타자로서의 시선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인의 시각은 그대로이며 놀랍게도 이제는 동양인마저 서로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이 인도사람들을 보는 시각이나 일본 사람을 보는 시각이 같지 않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작가 이옥순은 이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읽는 동안 작가가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영국, 그들의 박제 오리엔탈리즘 작가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을 박제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했다. 그는 식민지하서 원활한 통치를 위해 주체적이고 이성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남성으로 상징되는 유럽의 시선을 '박제' 오리엔탈리즘이라 정의했다. 식민지는 수동적이며 감성적이고 비이성적인 관습이 남아있는 채로 발전이 정체되어 버린 상태로 인도를 인식했고, 또한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공고하게 만들어 나간 것이다.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지식인을 여성적 이미지로 채색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에는 남성을 합리성과 자기통제력을 가진 존재로 여기고, 여성적인 존재는 오염되고 반사회적인 존재로 간주했다. 남성다움은 오직 능력있는 지배국의 남자들만이 소유한 뛰어난 자질이었다. 그래서 사이드가 말한 대로 동양은 언제나 '여성적'인 존재로 그러졌고, 이는 모든 식민지가 비슷했다. 정복자와 지배자만이 유일한 남성이자 지적인 주체라는 인식은 데카르트 시대 이후 서구 사상의 일관된 흐름이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영국의 정치적 반대자인 인도 지식인 역시 점차 '뼈가 연약하고 근육은 흐물흐물하며 신경은 무력하다"거나 "가느다란 사지"로 "느리게 움직"여서 남성다운 저항을 하지 못한다는 나약한 존재로 부각되었다. (p.66)
이를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드는 예는 주로 영국의 책이다. 상당히 날카로운 부분이 많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작가들의 예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서 코넌 도일 속에 보이는 오리엔탈리즘의 모습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내가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이미지들이 이미 하나의 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 우리 안의 복제 오리엔탈리즘 이어서 작가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 부분은 같은 동양 혹은 아시아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도'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다. (동양, 서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말도 안되기는 하지만) 같은 아시아 혹은 동양권 내에서도 우리와 타자를 구분해서 가능한 서양에 가까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닌 아시아인에 대한 비판이다. 개화기를 거진 모든 국가들에게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특히 작가는 일본의 탈아입구론를 가장 큰 예로 제시한다. 아시아를 벗어사 서양으로 가는 것이 개화의 최종 목표였던 것처럼 우리는 서양에 의해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즉 '만들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역설적 논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20세기 초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을 분석한 프레데릭 불레스텍스의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의 글을 대입해보면 잘 사는 나라의 사람들의 저발전 사회를 바라보는 어떤 공식을 추출할 수 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이방인은 그곳 사람들의 삶과 시선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바라보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다음의 인용문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중에서 '가진 것은 없어도 한국인들은 행복하다'라는 글의 일부이다.(p.140)
특히 한국의 경우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이 남다르기 때문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이야기하는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류시화씨를 정점으로 해서 펴내는 인도에 대한 환상이 우리를 '나'와 '그들'을 서로 다르 시선으로 보게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이들이다. 어쩌면 가난함에도 불후하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아야만'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것이 나의 정신적 위안을 위해서도 바람직 한 것이다. 차갑게 말하면 우리에게 '인도'는 없다. 각종 신문과 매체와 글에 의해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왜곡된 인도만이 우리에게 있을 분이다.
지난 10년 동안 인도 전역을 두루 여행한 류시화가 늘 시간의 저편에 누운, 정체된 모습의 인도만 보고 그 변화의 무풍 지대에서 원초적으로 먹고 마시고 잠자는 원시사회의 편린만 보여주는건 무죄가 아니다. 아마도 여행기들은 우리 마음속에 복제된 인도의 이미지와 독자들이 기대하는 인도를 그렸을 것이다. 이렇게 피상적으로 보고 그려진 인도는 막연하고 모호할 수 밖예 없다. "아름다운 곳이지요. 신이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만들었는데, 거기가 바로 인도예요." 오지만 찾아다닌 한비야도 "인도에 가면 인생이 보인다"고 말했다. 마치 선과 악이나 행과 불행은 인도에만 있꼬, 인도에서만 인생이 보인다는 듯이. 그러나 이런 표현은 자칫 다른 오지를 인생이 없는 생물학적 상태로 무화하며 오지 여행가라는 자기의 이미지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p.160)
사실, 조금 과격해서 아쉽기는 합니다 물론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기본적으로 유럽인의 오리엔탈리즘과 우리 안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 균형잡힌 시각을 지니고 있는 편이다. 그 시대의 많이 읽히고 회자된 저작물을 통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를 읽으려고 한 점에서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 대한 모든 글들을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으로 몰아갔다고 생각할만한 글이 드문드문 보여서 저자의 시각에 다소 답답함도 느꼈다.
선진국 (어쩌면 저자는 이런 표현 자체에 대해서도 발끈할지도 모르겠다)에서 일어난 사건을 우리가 보도할 때 우리는 그들의 양면을 보도하려고 한다. 단순히 그것이 인도이기 때문이 아니란 말이다. 작가가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인도'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서 다소 과격한 글쓰기는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읽고 있는 내내 피곤한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왜 인도로 가는가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책 첫 머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인도'로 가는가. 왜 우리에게 인도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이들로 비춰지는가 (그들은 절대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질적인 문화의 극단에 그들이 서 있기를 바라면서 그들이 '나'는 가지고 싶지 않은 '동양'의 '정신'적인 것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서양이 동양에 대해 만들어낸 여인의 얼굴을 덮고 있는 베일로 우리는 인도의 얼굴을 덮고 있다.
현실이 인식을 만드는 것인지, 인식이 현실을 만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식'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이상, 현실을 죽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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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인도 배낭여행 경험은 일종의 자산이었다. 그렇다고 험한 인도땅을 헤치며 생존능력과 도전정신을 기른 것도 아니고 류시화처럼 삶의 무상이나 영겁을 깨달았다는 것은 아니다. 대신 나의 배낭여행 전적은 입사 면접시험 때 좋은 ‘레코드’로 이용됐다. 그러나, “그래, 인도에 가서 뭘 느꼈나?”라는 물음엔 우물쭈물. 솔직히 ‘싸다는 것’ 말고는 거창하게 느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온 인도여행은 그래서인지 찜찜했다. “글쎄, 진짜루 거지가 많고 소도 많더라고” 이런 대답을 하면 친구들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인도 갔다와서 하는 소리가 고작 그깟 얘기라니. 인도를 다녀온지 2년, 늦게나마 해답을 준 건 다름아닌 이책이었다. 답은 다름아닌 ‘깨달음이 없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라는 설파. 인도로 떠난 한국의 글쟁이, 여행가들이 채색한 ‘신비의 장막’은 인도의 물질적 현재와 씨름하지 않고 과거의 이미지만을 부여잡고 있거나 인도인들의 ‘영적 우수성’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인도사회 전체로 과대 일반화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인도 전도사’들에게 있어 인도는 철저히 ‘타자’적이다. 그들은 인도 민중에게 직접 다가가 말을 건네길 주저하며(강석경, 송기원), 그들과 말을 하더라도 자신이 보고자 하는 ‘정신주의’만을 채취하곤 떠날 뿐(류시화)이다. 저자는 한국의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계보학적 추적에 나서는데, 그 뿌리는 다름아닌 식민지 시기 영국의 문필가들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시간이 정지된 인도, 환상적인 인도의 이미지는 다분히 정치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약 1세기 전, 영국은 자신들의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전근대적 인도를 강조했다.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 종교로 자족하는 사람들과 같은 이미지는 제국의 국민들에게 어려웠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현 체제에 대한 ‘감사’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적 기제가 예술과 교묘히 결합됐을 때 나오는 게 ‘식민지 문학’이다. E.M.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이 대표적인 예. 저자가 문제삼는 것은 바로 한국이다. 제1세계의 끝이라도 잡아보려고 발버둥치는 한국에서, 90년대 초중반, 일상이 ‘악마’같아 줄줄이 인도로 떠난 지식인들이 내놓은 인도 체험기가 1세기 전 영국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데 있다. 1. 서양(영국 제국주의자들)이 구성한 인도. 2. 서양을 따르는 동양 1등 모범생 한국이 구성한 인도. 2는 1의 아류, 즉 ‘복제 오리엔탈리즘’인 것이다. 인도의 현재적 지평에는 관심이 없고 인도의 이미지만 사랑하고 키워낸다. 그러나 그것이 함축한 정치적 기제는 단순하다. 주변부 자본주의의 한국 신민들이 인도를 열등한 ‘동양’으로 타자화하면서 자신들을 발전한 서양으로 동일시하는 것.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의 인도 담론은 이러한 정치적 작용의 반영인 셈이다. |
| 주변의 누군가 인도로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곳은 죽기 직전에나 여행할만한 곳이라던데 라는 말을 했더랬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하나 없고, 관심도 없는 상태의 나에게 인도는 그저 빈곤하고 황량하며 인구만 넘쳐나는 나라였다. 사실, 인도와 관련된 서적은 지금까지 한권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 책에 호기심을 느끼게 됐는지 미지수다. 인도를 바라보는 정말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려고 그랬었나. 우리의 머릿 속에서 정형화된 인도를 깨부수려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간혹 극단에 선 문장들이 보이긴 하지만, 크게 거부감을 가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ㅡ저자가 혹평을 가한 글들의 저자를 좋아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ㅡ 생각보다 얇고 포인트도 큰 이 책에서 인도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감지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넘어선 생각을 담기엔 무리가 있고, 원한다면 다른 책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을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