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itesnake의 전작 [1987] 앨범에서 John Sykes가 완성해놓은 작&편곡&녹음에 밥숫가락만 올려놓았던 Adrian Vandenberg는 이후 David Coverdale의 훌륭한 작곡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리바이벌 곡인 'Fool For Your Loving'을 제외한 [Slip Of The Tongue]의 우아하면서 밀도있는 선율들은 David와 Adrian의 상승효과의 결과물이죠. 그런데 이 다 지어놓은 요리를 Adrian은 그릇에 담지 못합니다. 손목 운동을 잘못해 염증이 생겨 기타를 연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영구적으로 불구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회복을 한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David Coverdale은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던 블루칩 기타리스트 Steve Vai를 고용해 앨범의 녹음을 마칩니다. 곡 중 두 대의 기타가 화음으로 연주를 하거나 배틀 형식으로 녹음되어있는 부분도 Steve Vai 혼자 녹음한 것입니다. 즉 [Slip Of The Tongue] 앨범은, Adrian Vandenberg는 전곡을 작곡했지만 연주는 못하고, Steve Vai 입장에서는 전곡을 연주했지만 좀 과장하면 세션맨 역할 밖에 못한 묘한 형식의 앨범인 것이죠. 게다가 이 앨범 이후 David Coverdale은 Jimmi Page와의 프로젝트로 외도를 하고, 1997년까지 Whitesnake는 녹음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어 Adrian Vandenberg는 자신의 밴드 Vandenberg를 등진 뒤 10년이 넘도록 레코딩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명의 다른 스타일의 기타리스트의 엇갈린 행보는 묘한 뉘앙스의 앨범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피카소가 사람들이 알아볼만한 정물화를 그렸다고 할까요. 모든 곡에 Vai 스타일의 화려한 질감이 확실히 존재합니다만 Adrian이 짜놓은 틀 안에 지극히 절제되어있어 우아함이 돋보이는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Steve Vai는 이 앨범 전에도 Alcatrazz와 David Lee Roth의 음반에서 다른 밴드 리더의 입맛에 맞는 연주를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만, [Slip Of The Tongue]의 경우는 기타 파트에 다른 작곡가가 참여하고 있다는 좀 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앨범을 들을 때 마다 궁금해지는 것은 부상에서 회복한 Adrian Vandenberg가 Steve Vai라는 이질적인 스타일의 기타리스트와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을 실제 퍼포먼스입니다. 최근까지 관련 영상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이 글을 올리며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니 1990년 몬스터스 오브 락 영상들이 상당수 보이네요. 이 앨범 발매 후 얼마 안있어 Steve Vai의 솔로앨범 [Passion And Warfare]가 발매되었고, 제가 기억하기로는 Whitesnake의 공연 중 기타 솔로 타임을 겸해 [Passion And Warfare]의 곡들이 한 두 곡씩 연주되었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