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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라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된 말이 선풍적인 지지를 얻어 반(反)공산주의 노선을 걸었던 때가 있었다. 이 사건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실로 놀랍다. 로젠버그 부부의 간첩행위로 사형집행 사건을 접하며 든 생각이 우리나라에 그 비슷한 사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인혁당 사건’이 있지만 이것을 아동이나 청소년 대상의 소설에서 다룬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점은 글의 치밀함이나 완성도와 별개로 역시 소재의 다양함은 우리나라가 따라잡기 어려운 부분이다. 한때 우리에게 ‘빨갱이’나 ‘공산당’과 같은 낱말은 금기시 되었다. 그것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인지... 마크 트웨인의 작품이 공공 도서관의 서가에 꽂힐 수 없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의 연장선으로 본다면 그리 놀라울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문학 작품에 이런 점들을 솔직히 펼쳐놓을 수 있는 것이 부럽다. 까발린다는 것이 아닌. 처음 이 책에 현혹했던 것은 단순히 공산주의에 대한 것을 소재로 했다는 것도 있지만, 어! 이런 책 한 번도 내 아이에게 읽힌 적이 없다는 아주 단순함에서 출발했다. 그러면서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사실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ㅋㅋ 하지만 그런 기우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것이었고, 이 책의 저자에 대한 관심으로 몇몇 책을 검색해 보는 굉장히 간단한 수고로움과 역자에 대한 평가가 대단히 높아졌다. 매끄러운 번역은 물론 아이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책의 내용이 긴박하거나 손에 땀을 쥘 만큼 흥미진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또 다른 재미와 진중함이 있다. 주인공 제이미에 의해 매카시즘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상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 가족의 사랑, 그리고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소신껏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용기를 보여줌으로서 가족들이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들 가족은 더 이상의 두려움이나 비밀은 없다.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 것 일뿐. 사회의 정의나 경제적 평등을 이룬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지레 포기하는 일이 있다. 진부하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며 세상은 끊임없이 변할 거고 당연히 변해야만 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힘을 얻게 된다.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잃는다면 그건 감옥에 갇히는 거나 다름없어. 민주주의는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게 아니란다. 우리가 끊임없이 가꾸어 가야 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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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 이름은 찬란하고 꿈을 준다. 부모없이 힘들게 컸어도 일정교육을 받고, 확고한 신념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아프리카계 혼혈(그냥 흑인이라고 하기도 한다)이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성실하고 부지런하면 모국에서 힘들게 살았어도 스쳐지나가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나라. 그래서, 남미와 아시아계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으로 갔고,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지금 우리가 보는 미국이다. 그리고, 지금의 청소년들이 보는 미국이다.
그런데, 시계를 50년쯤 뒤로 돌려보자. 그럼, 불과 20년전의 우리나라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미국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매카시 상원의원으로 대변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공산당과 非공산당. 단지 누구를 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느 집회에 잠깐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은 공산당이 되고, 소련을 도운 간첩 혹은 스파이가 되는 상황.
지금은 그냥 상원의원이라는 사람이 벌인 조작극에 어이없이 웃게 되고, 그 당시 국민들의 삶이 참 어렵고(경제적인 것보다 심리적으로) 힘들었으리라는 막연한 동정을 하게 되는 한편, 그럼에도 자신들이 다른 사람을 공산당으로 지명하느냐 아니면 신념을 밝히고 외톨이로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당당히 자신들의 인생을 선택한 모스 가족들에게는 박수를 보낸다.
어른책이 아니라 청소년책들을 위한 책이다. 그래서, 전개속도가 빠른 편이고, 모스가 학교에서 겪는 친구들과의 갈등, 선생님들의 모습과 부당한 처우가 아이들이 읽고 생각하기에 괜찮다.
특히, 1950년대 로젠버그 부부 사건이나, 할리우드 및 방송계 블랙리스트, 이웃 사람들을 고발하는 사회모습은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국의 그 당시는 어쩌면 우리의 과거와 다르지 않았음을,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하게 한다.
"로젠버그 부부에게는 죄가 없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렇게 믿었다. 어른들은 로젠버그 부부가 사면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부는 로젠버그 부부가 죽기를 바랐다. 재판관은 로젠버그 부부의 간첩 행위 때문에 한국 전쟁에서 미군 수천 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로젠버그 부부의 사형 집행에 항의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벌이는 행진에 신경 쓰지 안흔ㄴ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로젠버그 부부의 사형 집행에 반대하는 집회가 아무리 많이 열린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교황도 자비를 요쳥했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로젠버그 부부는 사형을 당할 것이었다(p.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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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는 부모님을 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어요. 그애들의 방에는 부모님이 골라준 책들이 가득했거든요. 우리 부모님은 내가 책읽는 걸 대견하게 여기긴 했지만 직접 책을 골라주거나 같이 가서 고르는 일은 드물었어요. 계몽사 동화전집(하드커버)이나 역사만화전집(90년대초반 유행)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을 한권씩 골라 읽는 기분을 궁금해하곤 했었습니다. 헌데 나의 부러움과는 달리 친구들은 괴로움을 호소하기 일쑤였어요. 만화책을 보고 싶은데 엄마가 못보게 한다, 어렵고 지겨운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하자고 해서 힘들다...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면 힘들겠구나 동조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복에 겨웠구나'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지요. <모스가족의 용기있는 선택>을 읽으면서 그시절의 내가, 아니 그시절 내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게 재미있는 나이, 세계평화나 민주주의보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보는 것이 즐거운 나이. 그런 나이에 항상 근엄하고 옳은 소리만 하는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 일전에 저명한 잡지의 편집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열망하는 잡지사라서 그분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실제 마주 앉아보니 내공이 깊어 쉽사리 속내를 들키지 않는 분이더군요. 그분께 제가 뜬금없이 물었어요. 결혼하셨냐고. 아이는 있으시냐고. 개인적인 관심이 아니었고, 그 당시 제가 꽂혀있는 책이 있어서 혹시 학부모라면 그 책을 소개해드리고 싶었거든요. 그 분이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 답하셨고, 저는 그분의 의사나 취향과는 상관없이 그 책을 강권했어요. 자기 취향이 분명하고, 해야할 일이 많고,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것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소홀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그 분은 많이 황당하셨을 것 같네요.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나와요. 에이미는 아버지가 진정한 민주주의나 인간의 존엄과 권리에 대해 고민할 뿐, 자식인 스티비가 겪는 고통에 무감하다며 분노하죠. 부모님의 행동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고통이 두렵고,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부모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을 마주쳐주고, 즐거운 일을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요? 헌데 부모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너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이렇듯 서로 다른 강도의 욕구들은 충돌할 때는 더 무른 쪽이 상처받기가 쉬운 법이잖아요. 아직 너무나 말랑말랑한 에이미가, 어쩌면 계속 말랑하고 싶은 에이미가 자신의 동생과 부모를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죠. 해선 안될 말을 불쑥 던져버리는 것도 너무나 아이다워서 저는 너무나 공감이 가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 하지만 에이미는 생각보다 강한 아이였어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부끄러워 할 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에이미는 고통을 상처로 기억하지 않고 무릎팍에 새겨진 딱지처럼, 성장의 훈장으로 기억하라리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와 같이 수많은 부모들에게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많이 읽고, 사회에 관심이 많고, 평화와 인권 수호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한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가는 부모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옳은 것을 함께한다는 것은 단단한 세상과 부딪히는 데 큰 힘이 되는 법이잖아요. 그것을 함께하고 싶다면, 조금 더 따스하게 서로를 안아주고 이해하면 좋겠죠. 가족만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도 없지만, 가족이 아니라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많으니까요.(예를 들어 새해벽두부터 우리를 분노케 하는, 도무지 말도 안되는 - 방송법 개악이나 4대강 프로젝트 같은 것들) 2009년,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고 걸어가고 싶은 분들께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조금 더 즐겁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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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제이미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조차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 나는 새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다시금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친정아버지의 고향이 황해도 이고 당신 혼자 피난을 나오신 피난민이다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어린시절 북한에서 쓴 인쇄물을 주으면 가까운 경찰서는 학교에 신고를 해야 했고 만약 그걸 주운 아이가 있으면 그 주변에서 어떻게 주었는지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해 하며 주위를 맴돌던 시절과 빨깽이라고 하면 간첩과 연결되어 신고를 해야 한다는 표어를 늘상 들으면서 살아온 저에게는 더욱이 빨갱이라는 단어와 공산주의라는 단어는 거부감 그 자체 였다. 모스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을 읽고 나서는 무조건 아니다가 아닌 나름의 좋은 점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가장 힘들때 이웃과 가족,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 주고, 나름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을 한장한장 읽으면서 이해 하게 될 수 있어서 보면 볼 수록 좋았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의 역활은 중심 그 자체이였던 것 같다. 아마도 제이미 에게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의 제이미는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힘든 시절 이야기를 들어 주고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할머니의 말씀처럼 "세상 일이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란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는 거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내용이고, 공산주의,빨갱이, 학교,친구,사회 모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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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는 그 윗세대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공산당을 뿔이 있고 얼굴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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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 집권 당시에 매카시라는 유명한 상원 의원이 있었다. 아마 매카시즘이란 말은 귀에 익을 것이다. 이 매카시즘이 매카시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그는 유명한 '빨갱이 사냥꾼' 이었다. 당시 미국은 소련에 의해 공산주의에 대해서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청소한다는 의미로 미국 내에서 헌법을 무시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모스 가족이 바로 그 공산주의들 중의 일부였다.
공산주의하면 별로 떠오르는 점은 별로 없다. 단지 서로 의견이 엇갈린 것일 뿐인데, 다수가 지지하고 있거나 또는 세력을 가진 사람의 의견이라 해서 그 반대쪽 의견을 짓밟는 것은 옳은 일일까?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은, 왜 하필 공산주의는 다 없어져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언론의 자유이며, 의사표현의 자유이다.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도 일종의 의사표현의 자유이다. 하지만 매카시는 달랐다. 공산주의 자체를 지지하는 사람을 처리하는 것도 부족했었나보다. 공산주의 이념이란 인종차별을 없애고 모두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 차별주의를 없애려는 사람도 공산주의. 월급을 더 받겠다고 시위하는 노동자들도 공산주의. 공산주의를 나쁘게 보지 않는 사람도 공산주의. 심지어 자신이 무슨 이유로 공산주의로 몰렸는지도 모르고 붙잡혀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것이 실감난다.
모스 가족도 공산주의이다. 하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단지 현재의 사람들이 너무 차별대우를 받는다며, 모두가 평등한 사상을 지지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익 세력덕분에 순간에 빨갱이로 몰리면서, 주인공인 제이미 모스는 친구도 다 잃고,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물론 지금은 다르겠지.
작가는 이 책을 청소년들이 매카시라는 이름을 기억하길 바라면서 썼다고 한다. 읽으면서, 공산주의가 비록 실패한 예는 있으나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든다. 지지하는 쪽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만 보완하면 될 것이 아니던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도 본질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 모두 평화의 이념을 간직하고 있다.
모스 가족 주변에서도 FBI라는 사람들이 거의 게슈타포같이 주변을 살펴보면서 공산당원을 찾고 있었다. 마치 쥐를 찾고 있는 고양이와 같은 모습이다. 햄스터 속에 섞여 있는 먹을 수 있는 쥐. 하지만 쥐를 찾을 수가 없으니 온갖 명분을 지어내어 햄스터도 쥐로 만들어버리고 꿀꺽 삼켜버린다. 오래전에 공산당원과 인연을 끊은 피트 모스가 탄압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먹이를 찾는 고양이가 세운 명분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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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이미라는 여자아이가 겪는 이야기를 나타낸 책이다. 제이미는 정말 불쌍하다. 아빠는 공산당원이 아닌데 매카시도 있는 청문회에 나갔다가 제대로 된 말을 했는데 매카시가 밀리니까 국회 모독죄로 인정한다면서 두 달후에 재판을 하는데 그것은 유죄 판결로 감옥에 갈 것이 뻔한 재판이기 때문이다.
일레인은 정말 나쁘지만 양심은 있는 것 같다. 전에는 제이미랑 친하게 지내다가 제이미의 아빠가 공산당원으로 몰려서 고등학교에서 해고당한 것을 알자 아빠가 제이미랑 같이 다니지 말라고 했다면서 제이미가 사물함에 넣어둔 메모도 구겨서 버리고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다시 친구가 되니까 양심은 있는 거 같다.
찰리는 정말 정말 나쁘다. 힘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고 허비의 가방에서 아이들이 공산당 신문이라고 생각하는 신문이 나오니까 괴롭히기 때문이다.
테일러 아저씨는 나쁘다. 제이미의 아빠를 공산당원이 아닌데 공산당원이라고 신고하기 때문이다. 로젠버그 부부는 불쌍하다. 아무리 간첩이라도 그렇지 총으로 사형하면 고통은 많이는 없었을텐데 고통이 많을 것 같은 전기고문으로 죽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조금 특이한 책 같다. "그들은 이미 명단을 갖고 있었어. 새로운 정보를 캐내려 했던 게 아니라고.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게 누구인지를 보여 주면서 세력을 과시하려는 거야. 사람들이 비굴해지는 걸 즐기고 있는 거지." ......................본문 129쪽에서
"...어떤 위대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지요.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은 속일 수 있습니다. 또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처참하게 몰락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232쪽에서
"세상 일이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게 아니란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는 거야." .......................233쪽에서
1950년대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공산주의자를 밝혀내는 작업이 벌어지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빨갱이'나 정치적 좌파로 몰려 고발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좌파 정당이 다른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운영이 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좌파 정당 자체는 합법이지만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 활동할 수는 없게 법률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좌파 정당에 가입하거나 좌파 정당의 당원들을 친구로 둔 사람들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좌파 정당은 인종 차별 철폐등의 운동을 펼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몰릴까봐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죄없이 일자리와 가정을 잃게 되고 강의나 모임에 참가하고 편집자에게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 심지어는 자기가 공산주의자로 몰린 이유를 모르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빨갱이 사냥꾼'은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었는데 그 때 당시 미국에서는 매카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숱한 사람들을 반미 활동가라고 고발하였지만 어느 유명한 전기 작가의 말에 의하면 실질적으로는 단 한 사람의 공산주의자도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제이미가족처럼 말이다.
제이미가족은 우리 가족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안전을 위해서 집회를 나가는 그러한 평범한 가족이었다.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는 평등을 누리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족이다. 그러한 제이미 가족이 살고 있는 시대적인 상황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수 없는 압박을 받게 된다. 아파트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약한자들에게 후원금을 보냈다는 이유로 제이미 가족은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된다.
지금의 우리 현실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지금의 현실 뿐만이 아니라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할 것이다. 집회에만 참여하면 예전의 공산주의, 빨갱이가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했던 노인분들은 불일듯이 일어나서 빨갱이니 공산주의자니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며 달라든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젊은 사람들속에도, 기득권층 속에도 수많은 빨갱이를 몰아내야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있다는 것이다. 정말 제이미가족처럼 지금 시위에 나가고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빨갱이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이 책속에 나오는 신문들처럼 그러한 시위에 나가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국민들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수많은 기사들을 조작하고 자신이 원하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럴때마다 정말 답답하고 어이없음을 느끼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고, 과연 저 사람들은 무슨 근거로 그러한 말들을 믿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제이미 가족처럼 사실 우리 아이들도 집회에 같이 나간다. 큰 아이는 집회에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두려워한다. 그리고 싫어한다. 그시간에 친구들과 놀고 싶어한다. 제이미처럼 영화를 보고싶고 평화롭게 세상을 만끽하고 싶어한다. 그저 정치적인 견해없이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고 싶어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자유롭게 평등하게 자유를 만끽하며 아줌마로서의 편안한 시간을 즐기고 싶다. 우리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받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이들에게 현실을 진실되게 바라볼수 있는 한 방편인 이야기라 많은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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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모스 가족의 용기있는 선택>이란 제목만 가지고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그려진 앞 표지 그림이 귀여워보이긴 했지만 뭔가 내용을 암시하는 것같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을 넘기자 속지에 두 사람이 남긴 말이 소개되어있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반미국적인 행위로서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윌리엄 O. 더글러스
하원 반미 활동 조사 위원회야말로
미국 역사에서 가장 반미국적인 것이다. -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
위의 말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내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고,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는데, 바로 찰리 채플린이었다. 어릴적 우연히 찰리 채플린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가 그렇게 유명한 배우인줄도 모르고, 책에 담긴 영화속 사진들이 눈길을 끌어 책을 읽었었다. 그 때 읽은 내용의 대부분을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건 그가 천재적인 희극인으로서 유태인이었다는 것과 거의 일생동안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으며 살았다는 거다. 그런 의심은 그의 배우 활동에 계속 걸림돌이 되고 정신적으로도 그를 많이 힘들게 했었단다. 세계적으로 그렇게 유명한 배우인데도 게다가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입장때문에 고통속에 살았다는게 그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엘렌 레빈의 <모스 가족의 용기있는 선택>을 읽으며 그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제이미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수학교사인 아빠와 라디오 방송작가인 엄마, 그리고 자상하면서도 지혜로운 할머니와 동생, 그리고 제이미. 또 근처에 사는 외참촌네와, 큰아빠네. 제이미는 단란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의 가족들과 살아가지만 제이미는 늘 불안해하며 산다. 왜 그럴까? 그건 바로 빈민구호 활동을 하고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부모님들때문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겠지만 1950년대 당시 미국 분위기는 그랬단다. 반미 활동 조사 위원회는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바와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반미국적인 행위 로 규정짓고 그 사람들에 대해 뒷조사를 하고 미행하고 추측하고 추궁하며 공산주의자로 낙인을 찍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거나 교도소로 보냈다고 한다. 심지어는 어떤 신문을 구독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모임에 가고, 어떤 주장에 대해 서명을 했는지까지 체크당했다고 하니, 책을 읽으면서도 '정말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제이미가 두려워하고 책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은 미국이 아니라 몇 년 전까지의 대한민국 이야기인데 말이다.
제이미가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 벌어진다. 아빠는 밀고에 의해 학교에서는 해직되며 '반미 활동 조사 위원회'에 출석하게 되고 엄마도 해고 되며 제이미는 학교 신문사에서 쫓겨나고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이미는 그를 지원해주는 친구들 안에서 용기를 얻고 학교에서 받는 부당한 대우에 맞서며 점차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다. 엄마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며 아빠는 비록 공산주의 활동을 예전에 그만뒀지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자신의 정치적 입장 증언을 거부하고 교도소로 가기로 한다.
'용기있는 선택'이란 제목이 책을 덮으며 가슴 속에 남았다. 제이미의 아빠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책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미국의 암울했던 시기를 아이의 눈으로 보고 그린 책이라서 당시 사회의 구체적인 사건들이 나열된건 아니지만 제이미가 보고, 듣고, 느꼈던 일들만으로도 그 당시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치라는 다소 어려워보이는 주제를 문학으로 잘 녹여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초등 고학년 이상의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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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정부가 내세우는 사상과 다른 사상을 지닌 한 가족의 모습에 대해 쉽고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출판 의도가 오늘을 살고 있는 미국의 청소년에게 사상의 자유와 진보적 관점을 심어주기 위한 소설이고, 그러다 보니 주인공 또한 11살짜리 어린 소녀 제이미 이다. 모스가족의 아버지는 과거에 공산주의 정당에 가입했던 전력이 있으며 전 가족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의 상원 의원인 매카시는 공산주의자란 국가전복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선동하면서 공산주의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사회 곳곳에서 탄압하기 시작한다. 그 일환으로 모스 또한 교사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제이미는 학교 신문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책은 단순히 공산주의자가 밝혀진 이후에 나타나는 탄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자 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순간이 가져오는 긴장감을 제이미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밝혀진 이후에 오는 탄압 이면의 정신적 자유로움에 대해 더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아이들끼리 사상적 차이를 두고 빨갱이라며 왕따를 시키는 부분들은 사상의 억압이 삶 곳곳을 기형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읽고 나니 미국의 청소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도 필요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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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에덴의 동쪽’을 만든 일리아 카잔 감독이 공로상을 받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감독이기에 공로상 수상자리는 당연히 기립박수에 이은 감동적인 인사말로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수상자가 호명되고 카잔 감독이 등장하자 많은 영화인들이 자리에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었다. 그이유는 잠시 뒤에 밝혀졌다. 카잔 감독은 1950년대 미국, 맥카시 청문회에서 동료 영화인을 공산당원이라고 밝힌 후 자신만 풀려날 수 있었다. 이일로 인해 많은 영화인들이 고초를 겪어야 했다. 카잔 감독은 이후에도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영화인들로부터는 배신자로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미 반세기도 더 지난 사건이 아직도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 맥카시즘이 준 상처는 아직도 미국사회의 반면교사의 교훈을 주고 있는 것같다. 매카시즘이 몰아치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럴 땐 문학이라는 것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진다.
제이미는 부모님과 동생 뿐 만 아니라 할머니와 큰아버지, 큰어머니, 외삼촌 등과 함께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하지만 할머니가 러시아 혁명기에 탈출하여 미국으로 들어온 것 때문에 FBI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이미 역시 이런 사실을 친구들에게 비밀로 하며 살아가는 걸 힘겨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들어닥친 FBI에게 아버지가 잡혀가게 된다. 제이미의 아버지는 공산당원이라는 죄목을 쓰게 된 것이다. 공산당원으로 몰린 사람은 다른 공산당원의 이름을 대야 풀려날 수 있다. 제이미의 아버지 역시 지인의 고발에 의해 잡혀가게 된 것이다.
이일로 인해 아빠도 교사직에서 해고 되었을 뿐 만 아니라, 엄마 역시 방송작가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가족 모두가 위기에 몰리고 제이미 역시, 친구들의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제이미의 가족이 이런 불행을 헤쳐나올 수 있는 방법은 아빠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는 것 뿐이다. 모스 가족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물론 제목처럼 비겁한 길을 선택을 하진 않는다. 그 선택으로 인해 가족은 고난의 길을 가게 되지만 결코 아빠를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메카시즘은 공산주의로부터 미국을 지킨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하는데 무자비한 방법을 동원하였다. 이로인해 미국사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나았다. 자신이 풀려나기위해 친구나 지인을 고발해야하는 가혹한 행위로 인해 잡혀간 사람이나 풀려난 사람 모두 헤어나오기 어려운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매카시즘과 같은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 훨씬 깊고 오랜시간 동안 사람들을 괴롭혔던 시기였다. 하지만 세월이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이책을 딸아이와 함께 읽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매카시즘이란 걸 이해하기도 어려워 했지만, 우리역사와 함께 비교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놀라워 하였다. 아이에게도 내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