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부터 독특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첫 장을 읽으면서 기존에 읽었던 소설들과는 다르다. 대사를 지칭하는 기호도 없이 글을 쭉 나열되어 있어 독백인지 아님 대화인지도 몰랐다. 이 점에 더 냉철하게 이 책을 바라보게 했던 것일까? 내용 또한 포근하거나 감동을 주는 그런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기에 어쩌면 기호 없는 대화 장면은 더 주인공의 마음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쿠아리움은 신기한 물고기로 가득한 곳이다. 서로 다른 종류가 모여 같이 살아가는 곳. 인간이 보기에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지만 그 안에서는 어떨까? 매일 이 아쿠리움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있다. 부두에서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소녀..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근처에 노인이 나타났었다. 오로지 물고기로 이 둘은 대화를 할 뿐 어느 것도 말하지 않았었다.
여기서 이 노인과 소녀의 대화 중엔 물고기가 나오는데 생소한 종류이다보니 상상도 안갈뿐더러 내용보다는 이 물고기가 너무 궁금해서 책을 읽다가도 찾아보기도 했었다. 하여튼, 이렇게 두 사람은 나름 가까워지고 있었고, 이 노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엄마와 자신을 제외하고는 어떤 가족도 없었던 소녀..그리고 노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아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 엄마는 더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고 있었다.
소설은 가족과 한 아이의 성장를 보여주고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것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엄마의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던 소녀를 바라봐야 하고 여기에, 엄마가 가진 또 다른 상처...아픈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원망. 어린 나이에 엄마를 돌봐야했던 아픔과 상처..그리고 살기위해 지독한 삶을 살아야했던 시간들...누구나 상처는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을 토해내느냐 아님 꾹 가슴속에 깊이 두느냐 인데...엄마는 너무 눌러와 살았다. 그것이 다시 아버지를 만난 순간 터지게 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행동..그리고 어느 순간 터지는 엄마의 모든 감정들...그러나 내 입장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가족이기에 더더욱 상처가 커버린 과거의 시간...그리고 여전히 가족이기에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소녀와 엄마는 미래와 아픔처럼 보인다. 유유히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평안해 보이지만 그건 타인의 시선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이건 삶에도 역시 보여지는 것으로 누구의 삶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되며...케이틀린과 셰리 역시 그러한 사람들임을 느낀 소설이다.
|
|
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단다. (중략) 우리
삶은 단 한 번뿐이야. 그래서 용서받길 바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는 거야. (181p)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 이루어지라고 계속 그렇게
말하고 결국 이루어내는 것, 과연 그것에 ‘용서’가 들어가도 될까? 데이비드 밴의
<아쿠아리움>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 국제 축제’에 참석차 방한했던 작가와의 서면인터뷰 글을 읽다
보니, “내 소설 중 비극이 아닌 작품은 처음”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나는 그의 작품을 처음 읽는 것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가 용서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현재에 받아들이고
또 인식하면서 끌어안는 것, 천천히 내려놓는 것 말이다.(337p)
사실 나는 용서는 노력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장이 그렇게 내 마음을 흔든 것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끌어안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 그런 것이 용서와 닮아 있는 감정일 것이다. 시간을 강물의 흐름에 비유하듯이, 인생 역시 아무리 거친 바위가
나를 할퀴어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물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그 곳에 던져두고 온 감정을 돌아봐야 했던 케이틀린의 엄마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열두 살, 마냥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소녀, 케이틀린이 20년이 흐른 후에 그 시절을 회상하는 식의 글임에도
그녀의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비극적으로 다가온 것일까?
그 유리 안쪽에서 녀석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를 보았을까? 아니면 그저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거울로 만든 집처럼?(14p)
케이틀린은 엄마가 데리러 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아쿠아리움에서 보낸다. 그녀에게
아쿠아리움은 하나의 세상이고, 또 그녀의 꿈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어류학자가 되어 수조가 아닌 바다로 떠나고 싶어하는 케이틀린에게 한 노인이 다가온다. 물고기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물고기에 자신을 투영하곤 한다. 어쩌면 그러한 교감이 있었고,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것에 외로움을 느끼던 케이틀린에게 외할아버지의 존재는 너무나 반가울 것이다. 문제는 엄마이다.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떠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케이틀린과 엄마가 갈등을 할 때마다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어쩌면 케이틀린의 생각과 달리 아쿠아리움은 물고기에게 지극히 안전한 곳일지도 모른다.
왜 굳이 바다로 나가야 할까? 왜 굳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고집스럽게 여러 가지 의문을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가족을 통해 이야기하는 상처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올해 읽은 소설 중에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다만 그러한
감동과 아름다움에 빠지기 싫다고 투정하고 있는 나의 오기가 용렬해 보일 뿐……
|
|
아쿠아리움 속에서 살아가는 소녀의 아름답고도 슬픈 성장기. 데이비드 밴의 전작인 <고트 마운틴>이 인간의 근원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신작 <아쿠아리움>은 훨씬 더 아릿하고 슬픈 아쿠아리움을 좋아하는 소녀의 성장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다. 열두 살 소녀 케이클린이 엄마와 함께 단 둘이 살고 있으며, 학교가 끝난 뒤에는 항상 아쿠아리움에 들려 수조 속에 있는 물고기를 구경한다. 엄마가 데리러 오기까지 항상 발길이 닿기에 열두 살 소녀는 물고기의 움직이나 행동, 생김새, 이름까지도 척척 알아 맞춘다. 여느날처럼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를 구경하다가 한 할아버지를 알게되고, 친구처럼 일상적인것들을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외로운 두 모녀의 곁에 다가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린 소녀에게 때로는 친근하게도, 때로는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좋아. 아저씨는 한때 여름마다 알래스카에서 어선을 탔단다. 그땐 큰넙치를 제일 좋아했지. 저도 큰 넙치 좋아해요. 꽤 쿨한 녀석들이지. 큰넙치가 왜 좋아요? 엄마가 식탁 밑으로 내 발을 꾹 누르면서 나를 흘려 보았다. 따개비를 생각해. 어서 말해줘요, 아저씨.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좋아. 왜냐하면, 녀석들은 머리 한쪽에 두 눈이 모두 달려 있거든. 두 개 다 위쪽에 달려 있어. 얼굴의 반대쪽은 눈이 없는 장님인데, 항상 모래나 진흙에 파묻혀 있지. 아무것도 없는 아래를 향해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못 보는 그쪽 얼굴이 좋아. 그런 이미지가. 우리에게 뭔가 말해주는 게 있는 것 같거든. - p.49 마치 수조 속에 갇혀있는 물고기처럼 엄마와 자신을 헤치는 거대한 포식자처럼 다가올까봐 아이는 항상 무섭다. 엄마의 친구로, 애인으로 받아들이는 스티브 아저씨와의 관계 또한 가깝지만 아이는 엄마의 상황을 인식하고 가까이 다가갈 때와 멀리 있어야 할 때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챈다. 그것이 애처롭기도 하고 때로는 소녀의 생존방식으로 느껴져 어둡고도 안전한 따개비같은 생활의 소녀의 모습을 눈에서 놓을 수가 없다. 사무실은 꼭 위쪽에서 조명이 내리비치는 수조 같았다. 하지만 아쿠아리움에서는 어떤 물고기들을 함께 풀어둘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빌 같은 물고기는 절대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어떤 포식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바닷속에 더 가까울 것이다. - p.67 소녀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아쿠아리움은 그야말로 가장 안전한 공간이지만 소녀의 엄마는 소녀가 상상하는 대로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세상은 아쿠아리움 속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이의 아빠 없이 홀로 딸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여자의 강인함, 외로움, 자신이 딸 아이의 나이였을 때 병든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의 미움과 상처는 그녀에게 그 어떤 세상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열두 살 때, 그 물살에 떠밀리고 또 그 해일이 어서 물러가길 기다리며, 나는 막연히 언젠가는 그 모든 것들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날들은 더욱 길어졌다. 내가 직접 끝내기는 아직 불가능했다. 그것은 더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생각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진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나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지난 시간들을 지우고, 지난 마음들을 지워간다. 우리는 더이상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p.82~83 아쿠아리움에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자신의 외할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케이틀린은 기뻤지만 엄마는 자신의 아버지가 나타남으로서 격한 분노를 일으킨다. 딸과 아버지, 엄마와 딸, 손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 책 속의 이야기가 마치 바닷가에 부유하는 해초처럼 착착감기듯 처음부터 몰입이 될 만큼 재밌게 잘 읽힌다. 무엇보다 아쿠아리움 속의 물고기가 떠도는 상상과 책 사이사이에 삽입된 물고기의 삽화 때문인지 더 생생하게 아쿠아리움 속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바다 깊은 곳을 유영해 저 아래 깊숙한 곳의 세상은 어떨까 궁금한 적은 많았지만 거대한 수족관에서의 모습은 상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쿠아리움을 가서 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구경했지만 실제 바다를 보는 것만큼 황홀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열두 살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쿠아리움 속의 이야기가 훨씬 더 좋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데이비드 밴의 글 속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고찰이 들어가지만 인간이 갖는 결핍, 상황, 관계들을 집어넣어 인간의 가장 태초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전의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쿠아리움>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만나 사랑과 용서, 가족의 또다른 얼굴을 깊게 바라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아쿠아리움 속에서 살아가는 소녀의 아름답고도 슬픈 성장기. 데이비드 밴의 전작인 <고트 마운틴>이 인간의 근원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신작 <아쿠아리움>은 훨씬 더 아릿하고 슬픈 아쿠아리움을 좋아하는 소녀의 성장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다. 열두 살 소녀 케이클린이 엄마와 함께 단 둘이 살고 있으며, 학교가 끝난 뒤에는 항상 아쿠아리움에 들려 수조 속에 있는 물고기를 구경한다. 엄마가 데리러 오기까지 항상 발길이 닿기에 열두 살 소녀는 물고기의 움직이나 행동, 생김새, 이름까지도 척척 알아 맞춘다. 여느날처럼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를 구경하다가 한 할아버지를 알게되고, 친구처럼 일상적인것들을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외로운 두 모녀의 곁에 다가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린 소녀에게 때로는 친근하게도, 때로는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좋아. 아저씨는 한때 여름마다 알래스카에서 어선을 탔단다. 그땐 큰넙치를 제일 좋아했지. 저도 큰 넙치 좋아해요. 꽤 쿨한 녀석들이지. 큰넙치가 왜 좋아요? 엄마가 식탁 밑으로 내 발을 꾹 누르면서 나를 흘려 보았다. 따개비를 생각해. 어서 말해줘요, 아저씨.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좋아. 왜냐하면, 녀석들은 머리 한쪽에 두 눈이 모두 달려 있거든. 두 개 다 위쪽에 달려 있어. 얼굴의 반대쪽은 눈이 없는 장님인데, 항상 모래나 진흙에 파묻혀 있지. 아무것도 없는 아래를 향해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못 보는 그쪽 얼굴이 좋아. 그런 이미지가. 우리에게 뭔가 말해주는 게 있는 것 같거든. - p.49 마치 수조 속에 갇혀있는 물고기처럼 엄마와 자신을 헤치는 거대한 포식자처럼 다가올까봐 아이는 항상 무섭다. 엄마의 친구로, 애인으로 받아들이는 스티브 아저씨와의 관계 또한 가깝지만 아이는 엄마의 상황을 인식하고 가까이 다가갈 때와 멀리 있어야 할 때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챈다. 그것이 애처롭기도 하고 때로는 소녀의 생존방식으로 느껴져 어둡고도 안전한 따개비같은 생활의 소녀의 모습을 눈에서 놓을 수가 없다. 사무실은 꼭 위쪽에서 조명이 내리비치는 수조 같았다. 하지만 아쿠아리움에서는 어떤 물고기들을 함께 풀어둘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빌 같은 물고기는 절대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어떤 포식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바닷속에 더 가까울 것이다. - p.67 소녀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아쿠아리움은 그야말로 가장 안전한 공간이지만 소녀의 엄마는 소녀가 상상하는 대로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세상은 아쿠아리움 속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이의 아빠 없이 홀로 딸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여자의 강인함, 외로움, 자신이 딸 아이의 나이였을 때 병든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의 미움과 상처는 그녀에게 그 어떤 세상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열두 살 때, 그 물살에 떠밀리고 또 그 해일이 어서 물러가길 기다리며, 나는 막연히 언젠가는 그 모든 것들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날들은 더욱 길어졌다. 내가 직접 끝내기는 아직 불가능했다. 그것은 더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생각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진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나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지난 시간들을 지우고, 지난 마음들을 지워간다. 우리는 더이상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p.82~83 아쿠아리움에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자신의 외할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케이틀린은 기뻤지만 엄마는 자신의 아버지가 나타남으로서 격한 분노를 일으킨다. 딸과 아버지, 엄마와 딸, 손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 책 속의 이야기가 마치 바닷가에 부유하는 해초처럼 착착감기듯 처음부터 몰입이 될 만큼 재밌게 잘 읽힌다. 무엇보다 아쿠아리움 속의 물고기가 떠도는 상상과 책 사이사이에 삽입된 물고기의 삽화 때문인지 더 생생하게 아쿠아리움 속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바다 깊은 곳을 유영해 저 아래 깊숙한 곳의 세상은 어떨까 궁금한 적은 많았지만 거대한 수족관에서의 모습은 상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쿠아리움을 가서 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구경했지만 실제 바다를 보는 것만큼 황홀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열두 살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쿠아리움 속의 이야기가 훨씬 더 좋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데이비드 밴의 글 속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고찰이 들어가지만 인간이 갖는 결핍, 상황, 관계들을 집어넣어 인간의 가장 태초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전의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쿠아리움>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만나 사랑과 용서, 가족의 또다른 얼굴을 깊게 바라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
|
우선 책 표지부터가 심상치가 않은데, 어두운 배경 속에 빛나는 물고기들은 아쿠아리움 속의 생명들을 표현해 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아쿠아리움 속에서 바다를 꿈꾸는 한 소녀, 열 두살의 케이틀린이라는 소녀가 커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입니다. 책 중간에 등장하는 물고기, 산호, 수초들을 손으로 그린 듯한 예쁜 그림들이 있어, 보는 내내 지루하지가 않았고, 또 생소한 단어들은 알기 쉽게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방과후에 아쿠아리움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물고기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케이틀린이 어떤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되는데, 엄마와 단둘이 사는 어린 소녀 케이틀린은 자유롭게 숨을 수 있는 가족을 소망합니다. 바로 고립된 채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싱글맘의 이기적인 사랑 아래에서 납작 엎드린 채 살고있기 때문이죠. 사랑이 사랑을 파괴하고, 사랑이 사랑을 치유하는 어둡고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용서를 통해 어두운 아쿠아리움과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가는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
작가의 데뷔작 <자살의 전설>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역시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다. 자살의 전설에서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심도있게 그려서 이번책도 그런책이려니 했는데, 그런 기대를 완전히 벗어나는 책이었다. 일단 아쿠아리움이라는 수족관에 매일 찾아가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와 살고 있고, 사는게 궁핍하지는 않지만, 뭔가가 허전하고 쓸쓸하다. 성장소설로 볼수 있는 책이지만, 수족관에서 각종 물고기나 수상생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사랑스럽고 삶에 대한 통찰을 엿볼수 있는 문장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 책 속의 문장 "나는 그를, 그러니까 그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 물고기처럼 얼룩덜룩한 피부, 알들이 있는 쪽으로 휘어져 있는 녀석의 등지느러미처럼 한쪽으로만 나 있는 머리카락, 일그러진 입모양, 양쪽으로 축 늘어진 입술, 퉁퉁 부은 눈두덩에 묻힌 작은 눈. 그는 왠지 불안해 보였다."
"그 소리가 마치 내가 어떻게 사람이냐고 묻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죄송해요. 괜찮아. 고백하자면, 나도 그게 궁금하구나. 만약 내가 걷는 게 힘들어지고, 혼자 남아서, 더이상 사람들 눈에도 잘 안 띄고, 얼굴도 전과 같지 않아져서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게 되면, 그래서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에게 놀라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전에 불리던 대로 불릴 수 있을까? 그건 그러니까, 새로운 존재가 아닐까? 게다가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대체 무엇일까? 죄송해요. 아니다. 그건 우리가 함께 생각해볼 만한 흥미로운 질문이야. 아주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은걸. 저 녀석이 물고기인지 아닌지, 또 내가 사람인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자꾸나." |
|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저 물고기를 정말 사랑하는 귀여운 열두살 여자아이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자기 과거나 가족에 대해 절대 말해주지 않는, 그러나 딸을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늘 학교 끝나면 아쿠아리움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낙인 꼬마 케이틀린은 다양한 물고기들의 습성과 아쿠아리움의 분위기를 바깥 세상과 연결시키면서 열두살치고는 조숙한 사고를 보인다. 엄마를 무척 사랑하고 의지하는 케이틀린이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엄마에게 말 못할 비밀도 생기게 되고, 생각지 못한 인물이 이들의 인생에 등장하는 바람에 파란이 일어난다. 헌신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엄마의 다른 면을 보게 되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이 곪고 터진 채 케이틀린마저 상처입힌다.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감정 폭발하는 장면들이 등장해 정말 놀랐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후기를 읽어보니, 데이비드 밴이라는 작가는 '우리는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가'라는 그리스 비극을 뼈대로 글을 썼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극단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전개를 읽어나가면서 저 역시 가까운 사람들과 이런 갈등을 겪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문학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했다. 순수하던 케이틀린이 어른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과 엄마의 내면까지 이해하게 되고, 용서라는 걸 어떻게 하는 건지 배워가는 과정이 잘 그려진 것 같다. 내용 전개는 아주 격렬한데 문장은 아름답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 그걸 용서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정말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극단적인 내용 속에서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읽을 때와 흡사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면서 아프게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
|
아쿠아리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둡지만 안전한 아쿠아리움 속에서 바다를 꿈꾸는 소녀의 성장소설. 케이틀린이라는 소녀는 언제나 학교가 끝나면 아쿠아리움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그 소녀에겐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위안이다. 어느날 한 노인을 만나면서 친해지는데, 그는 케이틀린의 외할아버지였다. 케이틀린은 할아버지가 생겨 기쁘지만, 엄마는 격한 분노를 터뜨린다. 그 둘 사이에서 케이틀린은 두 사람을 감싸안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이다. 케이틀린의 심리묘사, 또 할아버지와 엄마와의 대립속에서의 심리묘사 등 흥미진진하고 또 우리들의 일상의 모습과도 닮았다. 가족에 대해서도 한번 더 깊이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하다. 그리고 이 책은 영화화 예정이라고 해서 더욱 기대된다. 책으로 만나본것만큼 영화도 흥미진진할것같기때문이다. 또한 <뉴욕 타임스> 북리뷰 에디터 선정 도서라고 한다. 이런 데이비드 밴의 귀한 소설을 읽게되서 영광이다. 아쿠아리움 하면 물고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성장 소설을 읽고나니 나 또한 한층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
|
참 특별한 아이.
어떻게 소설이 이렇게 안 지루할 수 있지? 이 책은 내게 다시 소설책만의 즐거움을 주었다. 케이틀린. 이 아이는 가족을 통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기도하고, 참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케이틀린. 그녀가 바라보는 모든것들을 아쿠아리움속 세계와 연관지어 버린다.
그들의 삶은 어떨까? 그녀가 바라보는 것들은 너무 슬픈게 많아 보였다. 엄마도 수위아저씨도.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최근 영화 '아가씨' 보면서 좀 마음이 그랬는데ㅡ 정말 오랜만에 재밌는 소설 책,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에서 재밌게 읽은 표현들을 몇구절 적어보고자 한다.
상어들은 어딘가 수도승 같아 보이기도 했다 (p.29)
꼭 별을 낳는 나뭇잎 같아요. 그 물고기 자체에서 생성된 은하수가 폭발하는 듯한 모습 (p.43)
|
|
아쿠아리움/데이비드 밴/아르테/내놓은 작품마다 문학상을 받는 작가의 수족관이야기~
세상은 겨대한 아쿠아리움처럼 행동 반경이 한정되어 있는데요. 인간은 물고기들처럼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먹이를 탐하다가 대를 이은 후 사멸하는 존재인데요. 아쿠아리움 같은 세계를 유영하는 인간의 불안전을 생각하니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인간의 불안함이, 할 줄 아는 것보다 할 줄 모르는 것이 많은 인간의 무능력과 무지가 인간세계를 다툼과 전쟁, 욕망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쿠아리움! 내놓은 작품마다 문학상을 받는 작가인 데이비드 밴의 이 소설을 읽으며 무지와 불완전, 부족함 투성이의 가족관계를 보며 내 가족을 되돌아봤는데요. 사랑 받을수록 상처를 주기도 쉽고 사랑할수록 상처를 받기도 쉽다는 것을 생각한 독서였어요. 소설 속 가족관계를 보며 슬픔과 아픔으로 다가왔답니다.
화려한 빛을 자랑하는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향연을 펼치는 거대 수족관은 인간을 위해 전시된 배려없는 오락이기에 아쿠아리움 속 이야기는 더욱 고통스런 슬픔이었는데요. 우린 누구를 위해 전시된 아쿠아리움 속을 유영하는 걸까요?
열두살의 소녀 케이틀린은 학교가 파하면 아쿠아리움에서 부두 노동자인 엄마를 기다리는데요. 아쿠아리움에는 개복치, 대구, 고등어 등 흔한 물고기도 있지만 고스트 파이프피시, 버마재비, 해룡, 해마, 폐어. 허밍버드 개구리, 빨간씬벵이, 세점박이씬벵이 등 흔하지 않은 물고기도 있기에 케이틀린은 물고기를 보는 재미에 빠져있었는데요.
어느 날, 아쿠아리움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물고기 감상을 하던 케이틀린은 물고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친구 같은 노인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케이틀린이 노인과 친하다는 사실을 안 엄마는 노인을 파렴치한 치한으로 몰며 경찰에 신고를 하는데요. 엄마는 아쿠아리움에서 노인과 맞딱뜨린 순간, 그 노인이 자신을 버린 아버지임을 알고 분노합니다. 엄마와 둘 뿐이던 세상에 할아버지의 존재는 케이틀린에게는 기쁨의 존재였지만 엄마에겐 용서 받지 못할 존재였기에 케이틀린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세상에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라지만 어떤 일이 있었기에 자신의 핏줄인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걸까요? 겁쟁이처럼 숨는 철부지 허밍버드 개구리 같았던 노인은 겁쟁이처럼 도망쳤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버렸던 아내와 딸을 찾아 용서를 구했지만 너무 늦어 버린 걸까요?
나중에 케이틀린도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케이틀린도 할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엄마, 자신과 샬리니와의 사랑과 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용서하기 힘들어 하는데요.
처음엔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엄마 셰리의 모습에 공감이 어려워 감정 몰입이 힘들었는데요. 아쿠아리움 속 낯선 물고기의 삶이 인생 같다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요.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고 암에 걸린 엄마를 수발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저당 잡혔던 아이, 아무도 모르는 엄마의 죽음을 혼자서 감내하며 자신의 몸을 팔아 생존해야했던 소녀. 그런 소녀에겐 아빠에 대한 원망이나 세상에 대한 원망이 깊은 수족관보다 더 깊이 새겨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겪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무게라지만 어린 아이가 겪기엔 너무나 힘겨웠을 상황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기에 소설이 현실이 아니라 소설로만 끝나기를 바라기도 했는데요.
소설을 읽으며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기에 타인의 삶에 공감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셰리가 느꼈을 지독한 고통과 외로움을 감히 짐작하지는 못하지만 사랑과 상처는 종이의 양면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곪은 상처를 내내 안고 살아온 엄마의 인생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요. 그래도 상처이자 상처를 건드리는 대상인 할아버지가 상처를 수습해 나가는 과정은 늦었지만 감동이었고요.
아쿠아리움! 내놓은 작품마다 문학상을 받는 작가의 수족관 같은 세상이야기였어요. 세상엔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도 있고, 용서가 되지 않는 대상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더불어 사랑 받을수록 상처를 주기도 쉽고 사랑할수록 상처를 받기도 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
[서평] 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저 / 조연주 역 / 아르테(arte)]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밴은 2008년 출간한 반자전적 소설 <자살의 전설>은 그레이스 팔리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캘리포니아 북어워드 등 전 세계 12개 문학상을 수상했고, 20개 언어로 번역되어 11개국에서 '올해의 책'에 40회나 선정되었다. 연이어 발표한 <카리부 아일랜드>는 16개 언어로 번역되어 9개국에서 '올해의 책'에 25회 선정되었다. 2013년 출간한 <고트 마운틴> 역시 10여 개국 이상에 소개되었고, 수많은 문학상과 추천 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아쿠아리움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자연스레 수족관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만으로도 큰 흥미를 유발하는 이 작품은 2015년 출간되어 작품 세계의 일대 전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커커스 리뷰 '2015 최고의 소설', 아마존 독자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평단과 독자의 큰 지지를 얻었다기에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중에 커서 어류학자가 되어 오스트레일리아나 인도네시아, 브라질 혹은 홍해 같은 곳에서 살면서 종일 따뜻한 물속에서 지내고 싶어하는 열두 살의 꼬마 아가씨 케이틀린이다. 케이틀린은 아버지 없이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데 수업이 끝나면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매일 아쿠아리움에서 사랑하는 물고기들을 보면서 시간을 떼운다. 여기 아쿠아리움에서 케이틀린은 어떤 노인 한 분을 만나게 되는데,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좋은 말동무가 되었다가 점차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서 이 노인에게 의지하게 된다. 어느 날 야근을 하는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엄마가 일하는 곳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숙제를 하던 케이틀린을 보고 아이를 홀로 뒀다며 엄마가 누구냐고 무섭게 다그치는 감독관 비빅을 만나고 케이틀린은 엄마와 헤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겁을 먹는다. 노인은 케이틀린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재빠르게 눈치챘고 케이틀린에게 이야기를 듣고 자신은 늦게 잔다며, 생계를 위해 야근을 해야 하는 케이틀린의 엄마를 자신이 도와줄 수 있을 거라며 케이틀린에게 엄마를 만나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한다. 너무도 좋은 친구인 이 노인에 대해서 엄마에게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던 케이틀린은 엄마에게 노인의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노인의 이야기를 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 셰리는 어른의 시각으로 노인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해 버린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이야기를 해도 들리지 않는 엄마는 크게 분노하며 케이틀린에게 가슴을 만졌냐느니, 사랑한다는 말을 했냐느니 등과 같은 질문들을 했고 무작정 경찰에 신고를 한다. 어린 케이틀린은 노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그리고 다음날 경찰들은 케이틀린을 따라가 노인을 덥치는데.. 뒤이어 노인을 본 셰리는 마치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멈춰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변태 성욕자인 줄 알았던 그 노인은 바로 자신과 어머니를 내팽개치고 떠나 한없이 증오했던, 무책임한 아버지이자 케이틀린의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셰리는 다시 만난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지만, 그동안 엄마와 단둘이서만 지냈던 외로운 케이틀린은 할아버지가 생긴 것 자체만으로도 그저 행복하고 설레였다. 평소 가족이 없다며 옛날 이야기는 해주길 꺼려하던, 자신을 버리고 떠난 할아버지를 증오하는 엄마와 뒤늦은 후회와 용서를 바라며 가족을 이루기를 원하는 할아버지 사이에는 케이틀린이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은 아쿠아리움에 있는 물고기를 비롯하여 바다 속 많은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것들은 케이틀린의 생각과 심정을 들여다보고 할아버지와 이어주고 가족들이 되는 큰 매개체 역할을 하기에 흥미로웠다. 물고기를 좋아하며 외로움을 타는 다소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꼬마 아가씨 케이틀린에 빠져 들어 이 소녀의 행복을 바라며 읽게 되는데 어두운 바다 속 물고기들의 세상과 우리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라 재미있게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