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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일본이란 과연 어떤 나라인가. 우리의 이 흔한 질문에 답하는 책은 정말 찾기 어렵다. 너무나 단편적인 인상기를 모아놓아 읽고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는 글들, 또는 너무 어려워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전문 연구서들. 이 틈새에서 우리가 일본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시카고 대학의 일본학 교수인 노마 필드가 자신의 경험에 바탕하여 지은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책이다. 노마 필드는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가진 혼혈로서, 일본에 대한 시각에서도 그런 점이 드러난다. 예리하게 비판하는 눈초리가 냉철하고 객관적이면서도, 깊은 곳에서 따스한 마음이 느껴져 나온다. ''일본은 없다,있다''식의 이분법적 판정에 식상해온 우리는 이 책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각기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첫번째는 전국체육대회에서 게양되어 있는 일장기를 끌어내려 불태워버린 오키나와의 슈퍼마켓 주인에 관한 이야기, 두번째는 전쟁터에서 죽은 남편의 시신이 신사에 모셔지는 것을 거부하여 재판을 하고 있는 야마쿠치의 한 주부 이야기, 마지막으로는 천황에거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공언하여 우익의 협박을 받고 있는 나가사키 시장의 이야기이다. 이 세 이야기는 각기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모두 같은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각 이야기의 동일한 사회적 배경과 주인공의 같은 성격을 말한다. 즉 저자는 세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는 일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전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일본중심주의)적인 분위기, 전쟁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다시금 대국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일본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배경이다. 그러나 저자가 보다 깊은 마음에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그 답답한 사회 안에서 자신의 화살을 던지고 있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훈훈하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인 것이다.
일본에서 많지는 않지만 양심적인 사람들이 묵묵히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을 지켜나가고 있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의 저자는 따뜻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독자들이 너무도 답답한 일본의 사회 현실을 감지하면서도 결국 일본에 대하여 훈훈한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이루고 있는 큰 성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주인공 중심의 줄거리 사이사이에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기술을 전문적 역사서 이상으로 채워넣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자신도 모르게 오키나와 역사에 관해 풍부한 지식을 갖게 되며, 일본의 전쟁 책임과 전후 처리에 관해 어느 정도 전문적 지식을 갖게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책이며, 일본정신사에 관한 비평서이면서 동시에 상당 수준의 역사서이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편견을 피해가면서, 단편적이지도 지루한 전문서도 아닌, 지식과 판단, 정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한국사람들의, 또는 일본사람들의, 서로 싸우듯이 편협한 시각에서만 일본을 바라왔던 우리들에게 있어 편견을 없애줄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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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오끼나오였다. 오끼나와는 본래 류우슈우 왕국으로 번영을 했었으나 에도에서의 정치가 시작되었을 때 일본 본토에 흡수되어 일본 아닌 일본으로서 애매한 위치를 갖고 있었다. 본토의 문화와는 상당히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아직까지도 스스로 일본인이라 하는 것을 어색해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전쟁후 겪어야 했던 경험은 너무나도 잔혹한 것이었다. 먼저 오끼나와에 남아있던 일본군에 의하여 남아있는 식량을 약탈당하고 혹시도 모를 미국군에 대한 지원 때문에 천황을 위하여 모두 자결해야 한다는 말로 강제적 집단 자살이 여기저기서 행해졌다. 이와 같은 집단 자살은 비단 오끼나와 뿐만 아니라 만주의 개척단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황국신민으로서 강요된 그들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오랜 세월동안 지역 사람들의 입 속에서 굳건하게 지켜지던 그 당시의 진실이 일부 깨인 사람들에 의하여 집요하게 밝혀지게 되는데 그 밝혀진 진실이라는 것이 사회의 통념과 대립되는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하여 슈퍼마켓 주인 쇼오이찌씨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는 일을 하였다. 일장기가 국기라는 어떤 명확한 규명도 없는 상황에서 쇼오이찌씨는 구속당하여만 했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은 극우세력의 협박과 위협으로 힘겨워져야만 했다. 그래도 쇼오이찌씨의 행동은 많은 지지자들의 옹호 속에서 계속된 법정 투쟁으로 지속될 수 있었고 마을에서는 마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권리들을 찾아나가는 행동이 발맞추어짐에 따라 전후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하여 꿈틀거리는 유일한 곳이라는 말을 듣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조금씩 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사회의 통념에 의하여 진실이 가리워 지는 일은 또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일본의 신사 문제이다. 일본은 그 역사가 말해주듯이 수많은 귀신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한 마을에서도 여기저기에서 교회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서양의 종교가 많이 받아들여 있는 상태인데 일본은 현대에도 여전히 기독교 신자의 수가 전 국민의 2%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전통 신앙이 일본 사회의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신사를 흔하게 접할 수 있고 신사 앞에 서 있는 토리이는 일본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한 신사들 중에서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이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죽어간 영혼들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8월 15일만 되면 일본의 고위 관직자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공적인 신분으로 참배를 올림에 따라 전쟁 당시 일본으로부터 커다란 피해를 입은 주변 국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 내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단지 종교적인 권리를 찾아나서는 것 뿐만 아니라 지난 과거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일까지 은연중에 함의하는 법정 싸움이 일본 열도에서 지리하게 계속되었었다. 자위대로서 참전하였다가 죽은 남편을 자위대 측의 의사에 의하여 신사에 모셔지는 것을 거부하고 일본 헌법 20조에서 보장하는 것과 같이 종교의 자유에 따라서 기독교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고자 하는 한 평범한 주부의 노력이 그것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어떠한 종교에 대해서도 특별한 지원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권력의 핵심이었던 자위대에 의하여 한 사람의 종교적 자유가 짓밟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고도 반론을 제지 할 수 없었던 사회의 인식에 촛불을 들이 댄 것이다.
자신의 종교적 자유에 따라서 유골을 모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나 신사 참배가 사회의 통념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자유마저도 묵인되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거짓이 사회의 통념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진실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끔씩 일본의 고위 관직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본의 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닌 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여 일본이 여전히 현재는 어떠한 지 알 수 없지만 과거에 대해서만은 철저히 거짓이 지배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리하여 수그러드는 경각심을 더욱 강하게 유지시켜 주는데도 일본이 그러한 행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면 되는 것일까...... 나가사끼의 한 시장이 천황의 죽음에 즈음하여 이전의 관리들과는 다르게 천황이 전쟁의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발언은 그 자체로 일본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는데 여기에서도 변함없이 극우세력에 의한 테러가 존재하였다. 그리하여 시장은 폐를 관통하는 부상으로 세상을 달리 할 뻔 하기도 한다. 그와 함께 사회 내에 가려져 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시장에게 격려와 지지의 편지가 끊이지 않았고 그 성과물로써 『편지』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책을 출판하는 데도 끊이지 않았던 공갈과 협박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러한 거짓의 지배와 그것을 거부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세력의 다툼은 일본사회의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라고 해야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떠한 권력체제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있는 사회라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거짓이 지배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듯이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구분이 없는 체제하에서는 그러한 거짓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정의가 정말 실현된다면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계의 어떤 나라에서도 민주주의를 자청하는 나라는 많지만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나 일반 국민으로부터 구성된 지배체제라고는 하지만 민주주의 선거방식이라는 가식 속에 그 진실이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과거의 청산을 올바르게 하지 못한 일본에 대하여 비난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도 과거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꾸 망각하고 있으며 권력자들이 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나라의 정치 구조 속에서는 친일이라는 말과 공산주의라는 말이 언급조차 될 수 없다. 지배권력층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해치는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거짓에 의한 지배에서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 나라에서도 존재해 왔다. 4·19와 87년의 함성이 그러한 것이었다. 진실을 밝히고자 다른 사람의 앞에 서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진실을 이야기하려 [인상깊은구절] '촛불을 꺼주십시오. 그리고 그 깜깜함 속에서 그 사람들이 겪었던 생활을 상상하고, 마침내 전부가 아닌 몇 사람인가가 죽을 때가 왔다는 결단을 내렸던 그 때의 혼란과 공포를 상상해 보아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