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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논어를 읽고 어렵다는 생각에 책을 읽다 말았는데 올해 초 논어를 풀어쓴 책을 읽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때가 되어야 하듯이 책 역시 그런하지...이제서야 논어를 읽으니 공자가 무엇을 애기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실, 어려운 것은 아닌데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논어가 탄생이 되기까지...공자의 삶 역시 평탄지 않았다. 사는 내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고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공자는 교육에 더욱어 힘을 기울였다. 어둠이 강할 수록 그 뒤에 오는 빛은 더 강한 법. 공자는 교육을 강조하면서 나라의 혼란스러움을 헤쳐나가기를 바랐다. 이런 인물들을 보면 중국은 참 많은 인재가 있다고 해야할까? 몇 백년이 흘러도 그 당시의 가르침이 현대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을 보면 대단하고 공자 외에도 사마천, 맹자 등 결코 쉽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절망적인 대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함으로써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논어는 정말 세월이 흘러도 다양하게 출간이 되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시로 풀어쓴 논어' 총 20편으로 되어있다. 배움에 대한 시를 시작으로 사람이 지녀야 할 덕목, 정치과 경제 특히, 인에 대해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인은 덕을 가진 인격을 이루고 선한 정치를 하여 백성을 위하고 진리와 사랑을 지니고 살며 서로 어우러져 사는 것이다' 참 쉽게 생각할 수 있을거 같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이인(里仁)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한 번 읽고 넘겨서는 쉽게 다음 장을 넘겨지지 못했다. 시 자체가 문장들을 함축하고 있기에 오히려 소설보다 읽기가 어려운데 ...논어라니...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읽을 때 마다 시간이 소요된 것은 사실이었고 그럼으로서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단점 보다는 장점이 많았다. 하여튼, 이 책에는 교육을 포함하여 모든 것의 가르침이 있는데 사실, 교육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어느 나라든 교육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과 덕을 갖추는 것이 왜 중요한지,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하는 등을 말하고 있다. 앞서 적었듯이 공자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떠돌아 다니면서 겪었던 힘들었던 그 시기를 이겨내거나 상한 마음을 위로 받았던 그 순간들을 기록하며 가르침으로 더욱더 교육에 힘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논어를 무작정 읽기 보단 먼저 공자의 생애를 알고 본다면 말하는 그 의미를 더 정확하게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올해는 논어를 읽어보자라고 다짐했다. 논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 쓴 책들이 있는데 처음 접한다면 원서에 가까운 번역 보다는 풀어쓴 책들을 접해보는 것이 좋다. <시로 풀어쓴 논어> 어려운 것 까지는 아니지만 좀 더 쉬운 책을 보고 읽는다면 나름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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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아는 대로 논어라 함은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으로 기원전 551 ~ 479에 살았던 노나라 공자와 제자와 대화를 통한 가르침이 있는 옛 문헌이다. 다만, 논어는 공자의 제자에 의해도,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편찬되지도 않았다. 그의 사후, 그러니까 후한시대의 정현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던 고론들을 모아, 편찬해서 엮은 것이라 일정한 순서로 편찬한 것도, 주제별로 엮은 것도 아니라고 하는 점이다. 그저 공자와 제자와의 질의문답 정도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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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나 불에 뛰어들어 죽은 사람은 보았지만 인에 빠져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인(仁)은 공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이것이 인격화 된 것이 다름아닌 '군자君子'다. 편자의 말처럼 군자가 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생을 자신뿐 아니라 타인과 비교했을 때도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공자의 논어를 읽는 것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책의 머릿말에는 논어의 탄생배경을 시작으로 논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편자의 '공자님'에 대한 무한한 애정도 느낄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논어부터 쉽게 풀어 쓴 논어까지 다양한 논어를 만나왔지만 같은 얘기일지라도 편자에 따라, 해석하기에 따라 또 읽고 있던 그 상황에 따라 또 다른 것이 논어인데 이번에는 머릿말 마지막 문단에 적혀있던 것처럼 '문화'에서 삶의 해답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읽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가 거리의 젊은 청년들과 나눈 대화록을 읽다보면 기원전에도 이토록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깨달음이 있었는데 이를 조금씩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쳐쓴 책을 새롭다하며 읽었을까 하며 아쉬워했던 적이 많았다. 논어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를 섬기는 자식의 도리, 임금을 섬기는 신하의 도리, 반대로 임금이 백성을 악법으로 다스릴게 아니라 온정을 베풀어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야한다는 등의 내용이 역시나 2000여년 전에 이미 성인에 의해 설파되었는지 어째서 여전히 덕이 아닌 악이 그 위에 있는지 의뭉스러울 뿐이다. 공자의 말처럼 정치란 것이 정계에 있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 개인이 가정에서도 하는 것인데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의무를 남탓만 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 오래전에도 자식들이 부모를 물질적인 것으로 효를 대체하려 했던 것처럼 나 또한 용돈이나 선물로 마음을 대신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그나마 매주 안부전화를 드리는 정도로 내심 할 수 있는 한도의 효를 다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도 뜨끔했었다. 내 가정안에서의 정치를 소홀히하는데 나라 정치가 옳지 못하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가하면 제나라 왕은 음악을 들은뒤로 음식을 멀리하게 되었다던데 지금의 나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의 장르에 따라 먹고 싶은 것만 늘어나니 어쩌면 이렇게 제대로된 풍류와 문화를 취하지 못하는지 한탄스럽기 까지 하다. 좋은 영화를 보면 그 영화의 만족감에 배가 불러야 할텐데 옆에 있는 팝콘을 덕분에 포만감을 느껴서야 될 일인가 싶은 것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왕따'역시 여럿이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끼리끼리 모이는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럿이 잘 어울리지만 끼리끼리 놀지는 않는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어울리고 공명정대하게 행한다.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무리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한사람의 무력이 무서워, 혹은 그의 재물이 탐나 섬김는 것이 아니라 따라주고 있을 뿐이니 그것은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힘에 굴복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쪽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었다. 편자의 말처럼 이 좋은 이야기를 어릴 때 공부하지 않고 이미 후천적인 버릇이 다 생겨난 이후에 바로잡으려고 하니 힘들고 괴롭고 결국 이제와서 무슨 군자타령인가 싶어 그만둬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 전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배워야 할 공부를 제때 배우기 위해서 우선 나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이 우선이구나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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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시 "한문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을 이수하였다. 논어 뿐 아니라 중국 고시에서 발췌한 시를 우리말로 풀면서 의미를 알아가는 수업이었다. 물론 시에 담긴 한자어를 기본으로 숙지하여야한다. 2시간 수업이었는데 초빙교수님이 열정이 넘쳐서 2시간 풀로 수업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학생들에게 힘든 교양과목으로 평가되었다. 교과 과목으로는 초한지, 삼국지, 논어, 맹자에서 발췌된 글을 통해서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고사성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던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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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볼때면, 아니 사극 뿐 아니라 동양의 고전을 말할 때 논어를 빼놓고 말할수 없다. 논어는 몰라도 인(仁)이나 군자라는 단어는 그 뜻을 정확히 몰라도 대부분 들어본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인격의 구성이 仁 (인)이며 인격화된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 영어로는 benevolence 라고 나오는데 해석을 보면 자비심, 박애라는 뜻이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간의 대화형식이 대부분이고 설교조도 있지만 공자의 말씀이 논어이다. 서양의 고전인 일리야드, 오딧세이또한 장문의 싯구로 알고 있는데, 원서는 읽히지 않아도 일리야드나 오딧세이의 해석본이나 해설서가 더 많이 읽힌다고 알고 있다. 논어도 해설서가 더 많은 책으로는 제일로 꼽는다고 한다. 공자 자신은 첩의 아들로 태어나 73세에 생을 마감하기 까지 출세나 권력,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의 사상이 오늘 날 까지 널리 읽히는 까닭은 공자가 말하는 인(仁)이 성공이 아닌 사람의 완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어 첫머리에는 다 알듯이 배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배우는 목적이 마치 벗을 만나듯 즐겁고 완성을 향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어서인듯하다. '군자는 온 세상에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다. ... 그러나 반드시 의(儀)는 정의와 도의의 기준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군자의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p87 공자,맹자를 따분함의 대명사로 쓰고 있기도 하듯, 공자는 고리타분하고 발전적이지 않고, 옛것에 중심을 두고 허레허식에 치중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위에서 보듯, 변치 말라고 강조하는 부분은 도덕적 원칙을 말함이었다. 2000년 동안 선비가 곧은 의지를 갖게 하고 질서를 지키는데 지표가 되었던 책 논어는 그래서 더 감동이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익혀야 할 인간학이 아닌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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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오면서 우리는 분명 각자만의 꿈과 희망을 품고 매진하며 내달리며 왔다.뒤돌아보면 지금 이 현실에서는 눈물이 난다.냉혹한 현실세계는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법칙과 동일하게 맞떨어지고야 만다.이러는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열심히 해도 그 결과로 우리 삶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왔다갔다 한다.아니라 말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불안함을 여지없이 반영하고 있다.그런 이유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고자 인생의 멘토를 찾아 삶의 주인이 되고자 또 다시 숨 몰아쉬며 내달리는 우리 인생이다.한때 고전읽기 열풍이 한창일때 그 누구는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그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왜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나 역시도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분명 읽은 책이였는데 가물가물거리는 것도 있고 흐릿해 기억에도 없는 책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물거리거나 흐릿해졌어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책은 있다.그것은 '논어'다.마치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자의 사상을 통해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기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어지는 동시에 동양철학을 논함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먼저 거론되는 양서이기도 하다.
이때,시로 풀어쓴 논어'를 천천히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끊임없이 경쟁하는 현 사회에서 지금까지 진정한 가치와 의미로 우리에게 깨달음과 전진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질 수 있게 해 주기에 논어의 가치가 더더욱 발하는 듯 했다.실상 동양사상의 핵심인 유가사상을 되도록 쉽게 풀어 세상사는 이치,교육,문화,정치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삶의 근본을 도리에 맞게,정당한 조리를 이루고 있다.서문에 필자가 말했듯이 동양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공자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그만큼 동양 정신 문화의 핵심인물인데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에서 인간을 들여다 본 공자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깨치고 구하고 배우며 나아가야 한다.실상 공자와 같은 삶의 스승이 실존한다면야 더없이 좋겠다만은 혹탁한 세상을 그래도 참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그것을 발견하게 해 주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해 주고 있다.다행스럽게 구어체 대화형 문장이여서 읽기 수월한데다 논어의 특징이 간단명료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기에 더더욱 좋았던 듯 하다.21세기 첨단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삶의 편리함 이면엔 목적과 방법을 숱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답을 찾는 반복적 구간을 쉼없이 달리고 있다.막 읽고 덮은 '시로 풀어쓴 논어'는 어느 내용 하나 빠트릴 수 없을만큼 인생의 깊이있고,가치있는 교훈들임엔 분명하다는 것과 세상 모든 지혜가 그 속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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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는 꼭 한 번 읽어야할 고전이지만 막상 책을 펼치고 읽을 때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수천 년간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한 고전을 단 한 번 읽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논어는 몇 번이라도 곱씹으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다보면 논어가 얼마나 귀한 지혜를 담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울칠 수 있다고 한다.
몇 권을 책을 통해 논어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았다. 공자와 제자의 이야기는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논어를 이번에는 시의 형태로 만나게 되었다. 시와 논어라고 하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의외의 조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먼저 논어와 공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4-5페이지에 걸쳐 간략하게 설명한 내용이라 다른 책에서 읽은 설명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논어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문화와 연결해 설명한 부분은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예로 설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은 먼저 논어 각 편에 대한 해석을 시의 형태로 보여준 후 원문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각 원문 해석에 필요한 부분은 주해로 세세하게 설명하였다. 사실 <시로 풀어쓴 논어>라는 제목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실제 해석한 부분이 시라는 느낌이 그렇게 강하게 들지는 않는다. 예전 학교 다닐 때 한문책에 나온 논어를 설명한 해설집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좋은 점은 별도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서 독자 스스로 논어의 깊은 의미를 찾게 한다는 것이다. 논어는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 있지만 본인만의 사색으로 그 뜻을 찾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해석과 원문, 주해로 이루어진 이 책은 논어를 개인적으로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교재로 삼으면 좋을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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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마음이 답답할 때 논어를 읽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항시 드는 생각은 내가 조금 부족해서 그런 것이지 아니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힘을 내서 따라가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도 힘들어서 인가? 논어가 눈에 들어왔다. 힘을 받고 싶었을지 모른다. 반가운 문장들 그리고 가끔 읽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 그런 것들이 이제는 익숙해 질 때도 됐건만 여전히 논어는 읽을 때 마다 다른 느낌이다. 이번에 받아들은 논어는 조금은 공자님의 잘난 척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수양을 하고 실행을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며 머리가 아플 때는 가끔 나를 위로하는 잘난 척 하는 것은 어떨까?
이번에 잡은 논어는 제목 그대로 시와 같은 형식을 논어 풀이를 해 놓아서 그런지 읽기에는 매우 수월하고 약간의 의역이 들어있어 이해도 빠르게 된다. 이제와 보면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 간 것은 처음인 것 같으니 그만큼 읽기 수월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조금 걸리는 부분이 의역인지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하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은데 하느님의 뜻 이라고 표현을 해서 약간의 종교적인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한자를 잘 모르지만 설명을 위한 글들이 추가로 붙임이 되어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때로는 약간 뜻을 흐리기도 한 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도움이 되는 쪽이 많았지만 말이다.
제나라 임금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님이 대답하셨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며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워야 합니다. Page 228
많은 글귀 중에 이번에는 위에 글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정치가 민감한 시기여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선거가 있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기주장을 하면서 서로에게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공자가 말하는 ‘답다.’ 라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존경 받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정치를 하는 사람다워야 하고 국민을 위하는 사람다워야 하고 자신을 버리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논어가 2천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이렇게 쓸모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 같다. 공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는 것은 당시에도 그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런 말로 사람을 교화 하고 더 이상 도에 어긋나는 일을 행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함이 아니었을까? 논어가 다시 필요한 세상,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