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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우리 문화의 근저, 논어를 공부해보자_도올의 논어한글역주3(4)_최모창(CHOI, Mochang)
"유교와 우리 문화의 근저, 논어를 공부해보자_도올의 논어한글역주3(4)_최모창(CHOI, Mochang)" 내용보기
15-7.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 不失人, 亦不失言."15-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더불어 말할 만한 상대인데도 더불어 말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을 잃어버리고, 더불어 말할 만한 상대가 아닌데도 더불어 말하면 그 말을 잃어버린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또한 말도 잃지 아니 한다."15-8.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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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 不失人, 亦不失言."

15-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더불어 말할 만한 상대인데도 더불어 말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을 잃어버리고, 더불어 말할 만한 상대가 아닌데도 더불어 말하면 그 말을 잃어버린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또한 말도 잃지 아니 한다."



15-8.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15-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구차히 삶을 구하여 인(仁)을 해침이 없고, 그 몸을 죽이어(殺身) 인을 이룸(成仁)은 있다."


"지사志士"는 의로운 사람. "살신성인殺身成仁"에 관하여 어찌 구구한 해설이 필요할까보냐마는, 도덕적 신념이 종교적 신념보다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중략)........ 자신의 도덕적 신념 때문에 절대권력도 무서워하지 않고 꼿꼿이 간(諫)하고 꼿꼿이 사약을 받는 선비의 자세를 우리는 무수히 체험하였다. 그들의 삶의 자세가 축적되어 그래도 우리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형성한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자세가 바로 이 장의 공자 말씀에서 유래되었다면 "교육의 위대함"에 대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저 유명한 살신성인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제 몸을 죽이어 인(어짊)을 이루다.


15-14. 子曰: "躬自厚, 而薄責於人, 則遠怨矣."

15-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스스로 자기를 책망하기를 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하기를 박하게 하면 원망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살면서 힘써야 할 절실한 말씀이다. 독자들은 제발 그 반대가 되는 삶을 살지 않기를.


자꾸만 남을 욕하고 책망하는 것에 후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데 박한 나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 나 자신을 늘 돌아보고, 남에게는 관대하면 우선 내가 행복해지고, 원망들을 일도 없으니.


15-18. 子曰: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15-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자기의 무능함만을 병으로 여긴다.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병으로 여기지 아니 한다."



15-21. 子曰: "君子矜而不爭, 群而不黨."

15-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긍지를 지니되 다투지 아니 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하되 편당 짓지 않는다."

"긍矜"을 고주에는 "긍장야矜莊也"라고 했는데 장엄하고, 근엄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의 "긍지矜持"가 "프라이드"라는 뜻도 있지만 고주의 뜻을 내포한다. 2-14, 13-23과 비슷한 취지의 말이다. 긍지를 지녔다고 해서 사람들과 다투게 되면 그것은 근원적으로 존재의 겸손을 결여한 것이다.



15-28.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15-2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이 도(道)를 넓힐 수 있는 것이요, 도(道)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

너무도 유명한 말이지만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다. 그러나 도덕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것이다. 도덕이란 어디까지나 "가도지도可道之道"에 속하는 것이며, "불가도不可道"의 세계에서는 도덕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은 항상 인간 사이에 존(存)한다. 우리가 인을 보통 인이라 하지 않고 인간(人間)이라고 말하는 것이 시간(時間), 공간(空間)과 함께 항상 간(間, relationship)을 전제로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人)은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이라는 삼간(三間)을 떠날 수 없다.




수년간의 치열한 준비과정이 있었지만 8천매를 넘는 원고지를 긁어댄 것은 불과 5개월 동안이었다.(제5편 까지는 [도올논어]라는 기초원고가 마련되어 있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책상머리에 앉아 만권(萬券)의 서향(書香) 속에서 씨름하며 푸른 하늘도 쳐다보지 못했다. 어두운 독방에 갇힌 죄수의 삶처럼.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이토록 처절한 스케쥴은 나의 삶의 업보라 해야할 것이다.

나는 본시 자비(自卑)를 싫어하고 불필요한 겸사(謙辭)를 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심으로 나의 학문의 부족함을 절감했다.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만이 앞선다. 보다 풍요로운 지식으로 내가 이 작업에 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자랑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나의 곤지(困知)의 역정이라고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출전을 밝혀가면서 독자들에게 [논어]의 진면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선학(先學)들의 노고(勞苦)에 힘입은 것이다. 

하루에 평균 7,80매는 계속 쓴 것 같다. 정말 나의 정신세계는 질풍노도와 같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 질주의 회오리 속에 항상 공자는 조용히 나의 곁에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부하고 싶다. 정말 공부하고 싶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겨우 공부한다는 게 무엇인지 안 것 같다. 건강이 주어지는 대로 나머지 생애를 온전히 학문에 바치고 싶다. 우리시대의 시경(詩經) 한 수라 할 수 있는 고 김광석군의 [이등병의 편지]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정말 다시 시작하고 싶다.

우리나라에는 중국고전의 우리말 번역전통이 거의 전무하다. 번역(translation)은 없고 전자(轉字, transliteration)만 있는 것이다. 나의 원칙은 단 하나! 오늘 21세기의 한국 젊은이들이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경전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사장된 옛 고전을 번역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새로운 바이블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공자를 한국인들이 그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언어의 장벽이 없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드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논어]는 한문 텍스트로서 엄존하는 것이다.



아! 읽기도 힘들고, 정리하는 것도 힘들었던 도올의 논어한글역주가 끝났다. 저자도 밝혔지만 이러한 엄청난 작업을 한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덕분에 2500년 전 공자님 생각과 말씀을 편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나를 일깨워주고 돌아보게 한 공자님의 가르침과 사상을 자주 되뇌며 바른 삶을 살아나가고 싶다.

f******y 2016.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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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우리 문화의 근저, 논어를 공부해보자_도올의 논어한글역주3(3)_최모창(CHOI, M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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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논어한글역주 3권 인상적인 부분 이어서 옮겨본다.13-17 子夏爲莒父宰, 問政. 子曰: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見小利, 則大事不成."13-17자하(子夏)가 거보(莒父)의 읍재가 되어 공자께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속히 성과를 내려고 하지 말라. 작은 이익에 구애되지 말라. 속히 성과를 내려하면 전체적으로 통달할 수 없고, 작은 이익에 구애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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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논어한글역주 3권 인상적인 부분 이어서 옮겨본다.

13-17 子夏爲莒父宰, 問政. 子曰: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見小利, 則大事不成."

13-17자하(子夏)가 거보(莒父)의 읍재가 되어 공자께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속히 성과를 내려고 하지 말라. 작은 이익에 구애되지 말라. 속히 성과를 내려하면 전체적으로 통달할 수 없고, 작은 이익에 구애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인간이 "광기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그 인간의 정상적 심리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 광기에 대하여 광포하게 반응하는 "이성적" 인간이야말로 오히려 광인일 수도 있다. 그것은 정상(normality)을 풍요롭게 만드는 영감이었다. 소크라테스나 피타고라스나 이런 인물들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요즈음 감각으로는 모두 감금의 대상이 되어야 할 광인들이었다. 
왜 이들이 감금(the Great Confinement : 푸코 용어) 되어야만 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이성주의가 승리를 구가하고 수량적 과학의 진보에 의하여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더 이상 획일주의적 가치관을 넘어서는 다양성을 용인할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다양성의 용인을 효율성의 저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근세유럽을 지배하게 되는 이성주의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이성" 이외의 모든 "비이성"을 감금시켜버리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이성주의자라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폭력성과 배타성이 강렬한 성향으로 나타난다.


13-23.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13-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동류로서 휩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사람들과 동류로서 휩쓸리기만 할 뿐 오히려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명언이다. 조화는 이루지만 자신의 고유한 길을 가는 사람. 남의 인생 살지 않고 자기 인생 사는 사람. 
자기를 잃고 남에 맞추어 똑같이 휩쓸리면서도 자신의 내적 조화와 사람들과의 외적 조화 모두를 이루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 나만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누구와도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13-26. 子曰: "君子泰而不驕, 小人驕而不泰."

13-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태연(泰然)하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면서 태연하지 못하다."

"태연泰然"이란 자기존재에 대한 깊은 확신에서 오는 여유로움을 말한다. 여기 "군자"와 "소인"이 치자와 피치자의 이원적 개념이 아니라 치자에 대한 가치평가어라는 사실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위 13-23 군자화이부동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태연(클태 그러할연). 각 한자의 뜻을 숙고해보면 태연이 가진 의미가 조금 더 다가올지 모르겠다. 자신에 대한 신념이 있기에 태연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교만하지 않기에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조화) 하지만 소인은 태연하지 못하기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교만하기에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아아! 나를 크게 돌이켜보게 하는 말이다.


 

14-1. 憲問恥, 子曰: "邦有道穀, 邦無道穀, 恥也."
14-1. 헌(憲: 원헌, 원사原思의 이름)이 치욕을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봉급을 받으면 정당하다. 그러나 나라에 도가 없는데 봉급을 받는 것은 치욕이다."

......... (중략) "곡穀"은 녹이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당연히 그 녹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군주가 도 없는 나쁜 놈인데도 조정에 눌러앉아 녹만을 처먹는 것은 치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이 공부를 해서 사법고시, 행정고시, 공무원시험에 합격만 하면 평생 봉록이 보장되었다고 온 집안이 기뻐 들썩인다. 무도한 시대에 녹을 처먹는 것이 치욕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위 공자님 말씀과 관련하여 김남주 시인의 시 한편 옮기고 오늘 글을 마무리하자.


어떤 관료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공정하게!


나머지는 다음에!

f******y 2016.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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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우리 문화의 근저, 논어를 공부해보자_도올의 논어한글역주3(2)_최모창(CHOI, M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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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3권의 인상적인 부분 이어서.12-7.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12-7 자공이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먹을 것을 풍족케 하고, 군사력을 풍족케 하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곧 정치다." 자공이
"유교와 우리 문화의 근저, 논어를 공부해보자_도올의 논어한글역주3(2)_최모창(CHOI, Mochang)" 내용보기

논어한글역주 3권의 인상적인 부분 이어서.


12-7.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12-7 자공이 정치를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먹을 것을 풍족케 하고, 군사력을 풍족케 하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곧 정치다." 자공이 반문하였다: "부득이 하여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오리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식(食)을 버려라! 예로부터 전쟁이 나서 죽든, 기아로 죽든 인간의 죽음이란 불가피하게 있어온 것이다. 그러나 백성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가 없다."


역시 자공과 같은 무게 있는 인물이 나타나니까 대화의 수준이 격상되는 느낌이 있다. 자공은 정치가였다. 그래서 정치의 요체를 공자에게 물은 것이다. 1) 식량의 충족 2) 군비(軍備)의 충족 3) 백성으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 "민신지民信之"는 어떤 판본에는 "사민신지使民信之"로도 되어있다. 생존의 조건으로 우리는 군비와 식량을 먼저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식량과 군비는 정치의 관건이다. 공자는 그것의 중요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정치의 세 가지 조건을 말할 때, 족식(足食)과 족병(足兵)을 먼저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택일(擇一)을 하라면 최후에 남는 것은 식(食), 병(兵)이 아닌, 신(信)이다. 이것은 식과 병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위정(爲政)의 근본적 요체가 식이나 병과 같은 부국강병의 물리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근간을 떠받치는 도덕적 신뢰에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도덕적 신뢰가 무너지면 식(食), 병(兵)이 다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경제, 경제 운운하다가 오히려 경제가 망가지고 마는 사례를 우리는 여기저기서 목도할 수 있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은 정체(政體)와는 무관한 정치학의 영원한 제1명제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우리나라만 보아도, 신뢰가 없는 사회 하에서는 그렇게 바라는 먹고사는 문제(식)도 안보(병)의 문제도 모두 무너져버리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잘 살고 싶은 데에 눈이 멀어, 경제 경제 경제만을 외치며 사회 전반의 신뢰나 도덕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고, 이러한 분위기 속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자기 몫 챙기기에만 바빴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잘 되기는커녕 국부는 낭비되어 더욱 살기 힘들어지고, 방산비리로 천문학적인 비용 낭비와 함께 국방력에도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크고 길게 보지 않고 눈앞의 것만 보는 국민과 공부하지 않는 풍토,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세력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불신의 사회구조 속 우리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는 다른 어떤 것도 무용지물이라는 공자님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케 한다.


12-19. 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而民善矣. 君子之德, 風; 小人之德, 草. 草, 上之風, 必偃."

12-19.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물어 말하였다: "무도(無道)한 자들을 사형에 처하여 유도(有道)한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면 어떠하겠나이까?"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대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어찌하여 인명(人命)을 살상하여 정치를 하려는고! 그대가 선을 원하면 백성 또한 선하게 될 것이다. 군자의 덕은 스치는 바람과도 같고, 백성들의 덕은 풀과도 같다. 풀 위에 바람이 스치면, 풀은 누울 뿐이로다."


시공을 초월하여 이 지구상의 모든 위정자에게 공자가 던지는 위대한 메시지! 여기서 우리나라 매스컴에서 잘 쓰는 "민초民草"라는 말이 나왔으나 그것은 한국식 조어일 뿐 정통 한자성어가 아니고, 또 과히 좋은 표현도 아니다. 김수영의 시에서 유래된 말인듯 하나 그의 "풀"의 이미지는 전혀 논어적 맥락이 아니다. 민중을 가리키는 말로서 굳이 "민초"라는 말을 즐겨 쓸 이유가 없다(이희승 [국어대사전]에도 들어있지 않은 말이다). 풀이 바람에 눕는다는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고 부차적인 것이다. 여기 공자의 메시지의 핵심은 이것이다: "어찌 사람을 죽이어 정치를 행하려는고! 子爲政, 焉用殺!" "자위정, 언용살," 만고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자국민을 30만 명 이상 학살한 보도연맹사건으로부터 인혁당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을 생각할 때, 그토록 자국민을 살상하면서 정치를 자행했던 우리민족의 최근세사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여기 "군자"와 "소인"을 치자와 피치자의 관계로 정형화시킨 표현은 공자의 어투가 아니다. 후대의 도식화된 개념을 반영한다.

이 뿐이랴? 강력 사건이 날 때마다 다 죽여야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 죽인다고 그런 사건이 나지 않나? 자기를 죽이는 자살과, 혼자 죽기 억울하다며 다른 사람까지 죽이는 살인. 이의 증가는 사회가 병들어 있음을, 그 구성원들이 병들어 있음을 반증한다. 단지 죽이는 것만으로 병든 사회를 치료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병든 원인을 파악하고 사회 구조적으로 고치고 보완해가는 한 편,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치료 및 관리 시스템이 시급하다.



12-23. 子貢問友,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無自辱焉."

12-23. 자공(子貢)이 친구 사귐(友)에 관하여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친구에게 충심으로 권고하여 바르게 이끌어 주어라. 그러나 너의 충심이 먹히지 않을 때에는 중지하라. 자신을 스스로 욕되게 말라."


천하의 명언! 내 일생 새기고 또 새기는 명언이다. 친구란 본시 의(義)의 관계이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서양 기독교류의 전도주의(evangelism)의 무리함은 바로 이러한 공자의 사상에서 여지없이 그 유치함이 드러난다. 나의 충심이 먹히지 않을 때 무리하게 인도하면(道: "導"로 쓴 판본도 있다) 나의 욕(辱)으로만 돌아올 뿐이다. 이것은 그 사람을 버리거나 배반하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각적인 존재다. 그리고 모든 중(中)은 시중(時中)이요, 모든 인(人)은 시인(時人)이다. 인간은 시간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 내 충고가 먹히지 않더라도 나에게 진실이 있다면 언젠가는 먹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동방적 인간관의 심오함이다. 인간을 공시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통시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은 선험적 자아의 통각적 주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오온(五蘊, panca-skandha)의 주체이다. 공자가 말하는 이 친구관계는 비단 친구관계에뿐만 아니라 매일 만나는 부부관계에도 적용된다. "불가즉지不可則止," 스스로를 욕되게 말라. 기다리면 언젠가 이해된다. 진리는 시간을 배제할 수 없다.




오늘은 여기까지.

f******y 2016.07.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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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우리 문화의 근저, 논어를 공부해보자_도올의 논어한글역주3(1)_최모창(CHOI, Mochang)
"유교와 우리 문화의 근저, 논어를 공부해보자_도올의 논어한글역주3(1)_최모창(CHOI, Mochang)" 내용보기
드디어 도올의 논어한글역주 마지막 권이다.이 책. 참 어렵고 두껍고, 읽는 것도 오래 걸리고 힘들었는데, 정리하는 것도 어렵구나.각설하고, 바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으로 들어가보자.9-7.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9-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세인들이 나보고 박식하다고들 하는데, 과연 내가 뭘 좀 아는가?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유교와 우리 문화의 근저, 논어를 공부해보자_도올의 논어한글역주3(1)_최모창(CHOI, Mochang)" 내용보기

드디어 도올의 논어한글역주 마지막 권이다.

이 책. 참 어렵고 두껍고, 읽는 것도 오래 걸리고 힘들었는데, 정리하는 것도 어렵구나.


각설하고, 바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으로 들어가보자.

9-7.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9-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세인들이 나보고 박식하다고들 하는데, 과연 내가 뭘 좀 아는가?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비천한 아해라도 나에게 질문을 하면, 비록 그것이 골빈 듯한 멍청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 양단(兩端)의 논리를 다 꺼내어 그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있는 성의를 다해 자세히 말해준다. 이래서 내가 좀 아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이에 대한 구구한 주석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나의 번역을 자세히 살펴 보라. 내가 살면서 공자에게 배우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장에서 나 역시 배우는 학인으로서 가장 크게 배운다. 내가 사람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고 하는 것이, 모두 이 장에서 공자에게 배운 방법론과 그 성실한 삶의 자세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골빈 듯한(空空如) 질문이라도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친절하게 답해 주되, 그 "양단을 두드린다." "고기양단叩其兩端"이란 과연 무슨 뜻인가? 여기서 바로 자사(子思)의 중용사상이 나온 것이다. 양단이란 한 사태에 대하여 테제(These)와 안티테제(Antithese)의 양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양단은 직선의 양단일 뿐 아니라, 원의 중심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질문자로 하여금 모든 주변상황을 동시에 고려케 만드는 것이다.


9-10. 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9-10. 안연이 한숨쉬며 크게 탄식하여 가로되: "우리 스승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고, 뚫고 또 뚫어보아도 더욱 견고할 뿐. 바라보니 앞에 계시더니, 홀연히 뒤에 계시네. 스승님께서는 그토록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끌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는도다. 나를 문(文)으로 넓혀주셨고, 나를 예(禮)로 집약시켜주셨도다. 공부를 그만두자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 나의 있는 재능을 다하고자 하나, 스승님은 어느샌가 또 새롭게 우뚝 서계시는도다! 아~ 스승님을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 그 실마리를 잡아야할꼬. 아 ~ 나의 스승님!"

이 장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노산 이은상(1903~1982)이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 속에 이 장의 일절을 썼기 때문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스승의 은혜 가사가 논어에서 왔을 줄이야. 비슷한 측면에서 내가 발견한 놀라운 일이 더 있다. 이 책 논어(주로 3권)을 읽으며, 본문에 등장하는 한자어 중 우리가 아직까지 그대로 쓰고 있는 단어들을 여러 개 발견했는데, 2500년 전 공자시대와 완전히 동일한 뜻으로 동일한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그러한 단어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소위 - 한자로는 所謂(바소, 이를위)로써 '이른바'라는 뜻으로,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은 "소위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이 말이야~! 이따구로 행동을 합니까?" 이런 식으로 쓴다.

하필 - 한자로는 何必(어찌하, 반드시필)로써 '어찌하여 반드시'로 뜻을 풀 수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왜 하필 나냐고? 지식인이 나 뿐이야? 저 놈도 개판인 건 마찬가진데!" 이런 식으로 쓴다.

부득이 - 한자로는 不得已(아니불, 얻을득, 이미이)로써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라는 뜻으로, 예나 지금이나 "부득이하게 한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하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쓴다.

자고 - 한자로는 自古(스스로자, 옛고)로써 '옛날부터' 라는 뜻으로, 예나 지금이나 "자기가 자초한 일이야! 자고로 멈출 때를 알아야 한다고 했거늘, 꼬리가 길다보니 잡힌거지 뭐!" 이런 식으로 쓴다.

백성 - 한자로는 百姓(일백백, 성씨성)으로써 '수많은 성씨에서 파생되어 곧 일반 국민'이라는 뜻이다. 나는 백성 민民자가 한문이다 보니 백성은 순 우리말인줄 알았는데, 백성도 한자어였다. 예나 지금이나 "소위 지식인이라면 일반 백성의 본이되어야 할 텐데 나라가 썩을대로 썩었구만!" 이런 식으로 쓴다.

~(이름)야! - 한자로는 也(어조사야)로서 '사람 이름 뒤에 붙여 이름을 부를 때' 쓴다. "동수야! 하와이 가서 좀 쉬다 온나." 이렇게 쓰는데, 받침이 있는 이름의 경우 "혜인아!" 이런 식으로 '야' 대신 '아'를 쓰는 것은 아마 발음 편의상 이렇게 변형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건 내 추측으로 틀릴 수도 있다.) 2500년 전 공자님도 제자들을 누구야! 누구야! 이렇게 많이 불렀다.

참!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저 단어들이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뜻이나 용법의 변화가 전혀 없는 채로 동일하게 쓰인다는게 다시 한 번 놀랍다.

12-1.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12-1. 안연이 인(仁)을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기를 이기어 예(禮)로 돌아가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어 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천하가 모두 인(仁)으로 돌아간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로 말미암는 것이니, 어찌 타인으로 말미암아 인을 실천할 수 있겠느뇨?" 안연이 말씀드렸다: "그 세목을 여쭙겠나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지어다." 안연이 대답하였다: "회(回) 제가 불민하오나 이 말씀을 공경되이 따르겠나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이어서 하자.

f******y 2016.06.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쉬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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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서들을 보면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스스르 꺼지는 것이 많다. 이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11편까지는 주자주까지 같이 번역하면서 코멘트까지 가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고금의 주석을 비교평가하면서 합당한 원의를 추론한다. 스칼라쉽이 느껴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만큼 공이 많이 들고 글의 양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자주가 번역되지 않은 12편부터 20편
"아쉬운 마무리" 내용보기

주석서들을 보면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스스르 꺼지는 것이 많다. 이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11편까지는 주자주까지 같이 번역하면서 코멘트까지 가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고금의 주석을 비교평가하면서 합당한 원의를 추론한다. 스칼라쉽이 느껴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만큼 공이 많이 들고 글의 양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자주가 번역되지 않은 12편부터 20편까지는 그냥 도올 자신의 생각만을 코멘트한다. 간간히 다른 주석도 인용하고 있지만 많지 않다. 물론 주자주 번역이 빠진 것이 문제는 아니다. 김용옥의 말대로 난삽하고 늘어질 뿐 원문의 뜻을 드러내는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올 자신의 번역과 코멘트로 충분할 수도 잇다.  도올의 말대로 11편까지 얻은 배경지식으로 나머지는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1편까지와 12편 이하의 차이는 그런 것은 아니다. 분량으로 보더라도 공이 덜 들어간 것이 분명하게 눈에 띈다. 어떤 장은 뜻이 매우 애매하게 넘어가고 잇다. 가지고 있는 한문대계와 주자주를 봐도 역시 그 부분은 애매모호하고 소략하게 넘어가는 부분이니 도올을 탓할기는 힘들다. 그러나 다른 모든 주석가들이 애매하게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 엉성하게 처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도올의 장기인 잡설의 경우 11편까지는 자신의 잡설에 어느 정도 근거를 제시하면서 넘어가지만 12편 이하에선 그냥 지나가는 넋두리다. 정성의 차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논어를 읽는데 이만큼 도움이 되는 책도 드물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문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어서 주석서들을 스스로 읽을 수 있더라도 이책은 도움이 된다. 도올이 항상 강조하는 번역 즉 살아있는 지금의 한국어로 옮겨져야 한다는 주장을 실천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