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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하게 수준 높은 작품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무척이나 뿌듯합니다. 생소한 미국의 여류 작가 <낸시 패커드>의 이 작품은 미스테리 소설계의 권위있는 상인 <애거서상>과 <매커비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빼어난 역량을 갖춘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미스테리 작품이지만 거칠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여류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깔끔함이 작품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듯 하며, 추리소설의 성격 못지 않게 연애소설의 느낌도 상당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스토리도 무척 흥미로우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다보면 어느새 소설이 끝나 있습니다. 그만큼 몰입도도 꽤 높은 것 같습니다.
이름만큼이나 별 볼일 없는 소도시 <스몰 플레인즈>. 17년전 눈이 휘몰아치는 겨울밤에 사건은 시작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시체.
이 소설의 모든 것이 바로 17년전의 이 한 사건에서 비롯되게 됩니다. 도대체 과연 이 소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지만 작가는 성급하게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를 주저하며, 보다 다른 것에 몰두합니다. 바로 이 사건을 통해 서로의 인생길에서 크게 엇갈리고 마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인생은 우리에게 어떠한 선택의 카드를 주는 건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운명이라고 이름으로 강요되는 카드를 주고 그대로 살아가게 하는 건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이는 운명을 개척한다고 하지만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은 운명에 역행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역시 17년 동안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17년이 지난 시점에서 조금씩 자신들의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운명에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17년전의 사건의 실체는 조금씩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까지... 결말은 소설 내내 끌고 다니는 이 사건의 진실과 등장인물들이 치루어야 했던 대가에 비하면 의외로 소박하지만 그래도 후련한 마무리 인 듯 해서 좋았습니다.
미스테리 스릴러이면서도 왠지 깔끔해서 좋았고, 스토리도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작품이라 평하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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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애거서상의 수상 작품다운 작품이다. 애거서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개 '선정성, 폭력성 과잉이 없으며 통상적으로 아마추어 탐정이 주인공이며 한정된 지역과 등장인물을 다룬 작품’이 후보가 된다.> 이 설명에 정확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며 더 나아가서 8,90년대 미국 추리소설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미국식 신본격 추리소설을 코지 미스터리로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7년 에드거 상에 선정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켄자스시티의 스몰 플레인스라는 소도시의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살인과 추방이라는 청춘들의 아픔과 대비되게 잘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1987년 1월 23일 단 하루 밤에 일어난 사건으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진다. 그 날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한 소녀는 그 날 살해당하고 모든 사람에게서 자신의 이름을 빼앗겼다. 그 소녀의 시체를 목격한 이들은 침묵으로 동맹의 맹세를 했고, 이 후 그 소녀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장면을 목격한 소년은 마을에서 쫓겨났다. 자신을 지켜주리라 생각한 부모는 판사이면서도 아들이 아닌 자신들의 이웃이자 친구들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소년이 떠나며 첫사랑을 잃어버린 남겨진 소녀와 소년의 친구 또한 아파하며 성장했다. 죽은 소녀는 단순히 살해당한 소녀로 이름도 없이 묘지에 묻힌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소원을 들어주는 동정녀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뒤 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추방당한 소년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마을에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의 비석을 보고 자신이 잊지 않고 있음을 알리고자 마을에 남는다.
진실이 때론 거짓보다 잔인하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진실을 거짓보다 낫다고 하지는 않는다. 거짓은 속으로 곪아 퍼지며 사람을 괴롭히고 진실은 환부를 드러내 도려내는 고통을 주고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로 인해 진실을 알고자 한 사실을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거짓이 견디기 힘들어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자기 합리화라는 눈가림으로 양심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해도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일과 자신을 버린 자들에 대한 복수를 막을 수는 없다.
작은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절묘한 구성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작가는 기적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2007년 에드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가 제이슨 굿윈의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에게 상을 넘겨줘야 했지만 그 해 애거서상과 매커비티상을 타서 2관왕이 된 작품답게 처음에 "왜?"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고 그것을 1987년과 2004년을 넘나들며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과 마을 사람들의 끈끈한 우정, 그리고 그들이 감추고 있는 가식의 뒤에 있는 것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작은 시골 마을 스몰 플레인스, 판사 아버지를 둔 미치네 가족, 의사 아버지를 둔 애비네 가족, 보안관 아버지를 둔 렉스네 가족은 절친한 사이다. 부모들도 친구 사이고 아이들도 친구로 잘 지냈다. 하지만 이들이 친구라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는 완벽한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완벽했다면 살인 사건을 조사도 하지 않고 묻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미치가 떠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해도 결국 숨기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라는 이유를 방패로 삼아 자신마저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믿음을 상실한 가족들과 기적을 믿는 사람들의 대비는 오늘날 믿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의심받는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없이 기적은 믿는다. 그 기적의 토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믿는다. 그것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을 인간은 믿을 뿐이라는 반증 아닐까. 기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기적을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허구가 쌓여서 거짓이 진실이 되고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살해당한 소녀도 기적을 믿었으리라.
작가가 작품후기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한편의 동화를 현대적으로, 어른들이 읽을 수 있게 만든 작품처럼 느껴진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회오리바람에 날려간 도로시가 <인 콜드 블러드>에서 범죄에 휘말리는 것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게 읽어가면서 작품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미치가 어쩌면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스몰 플레인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살인과 추방, 배신과 화해, 불신과 용서가 융화되어 토네이도에 모든 것을 삼켜지고 남은 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라고, 인간에게 자연이, 기적이, 동정녀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듯한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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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꽃다발속 무덤에서 소녀가 말하네. 어린 소녀는
더럽고 추악한 어른 남자가 세월을 잡아먹어버리고 어린 소녀는 그저 눈 밭에서 눈동자마저 투명하게 얼어버리네.. 신원도 삶도 ..소망하던 작은 마음도 어른아이같은 어른들 욕심속에 사라져버리고 그녀의 무덤엔 꽃이피네. 죄지은 마음들은 그 죄를 덮고저,, 어린 소녀를 성녀로 만들고 다친 마음에 다친 사람들의 염원이 쌓이네. 누구도 듣지못하는 눈내리는 밤의 소리.처럼. 그러나 태풍이 거세게 불면 거짓의 꽃다발속 무덤에서 소녀가 말하네. 아직은 죽지않았노라고.... 나를 찾아내어라...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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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낸시 피커드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여러가지 힘든 일이 따르게 마련이다.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친구나 친척이 죽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자신의 집 근처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면 어떨까.
이럴 경우 정신적 충격은 둘째치고, 사법적으로도 무척 피곤한 절차를 밟게 될 것이 분명하다. '모른다'라고 잡아떼도 수사관들은 쉽게 넘어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살해당한 시신이 특정 장소에 놓여진데에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난감한 상황을 비교적 덜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시신의 신원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이야 과학수사의 기법이 많이 발달해서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여러가지 수단이 있지만, 약 20년 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당시라면 시체의 얼굴을 뭉개고 지문을 제거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신원불명의 변사체'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많은 경찰력을 동원할 수 있는 대도시가 아니라, 몇명의 보안관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면 더욱 그렇다. 예산과 인력의 부족을 핑계로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수많은 미해결사건의 하나로 분류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마을의 사람들은 몇년이 지나고 나면 사건 자체를 잊게 될 것이다.
쌓인 눈 속에서 발견되는 여인의 시신
낸시 피커드의 2006년 작품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런 식으로 범죄를 무마하려 한다. 작품의 무대는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시골 마을 스몰 플레인스다. 1987년 1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한 농장의 근처에서 벌거벗은채 얼어붙은 여인의 시신이 발견된다. 강간의 흔적이 있고 범인은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 시신을 눈밭에 버린 것처럼 보인다.
마을에서 보안관을 겸하고 있던 농장주인은 이 시신을 오래된 친구인 의사의 병원으로 가져간다. 그러자 의사는 시신의 머리를 비닐봉지로 감싸고나서 야구방망이로 수차례 내려쳐서 얼굴을 망가뜨린다. 마을사람 누구도 이 여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 다음부터 사건의 처리는 일사천리다.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관은 신원불명을 이유로 사건수사를 마무리하고, 마을 사람들은 돈을 걷어서 시신의 장례를 치르고 공동묘지에 무덤을 만들어서 묻는다.
하지만 사건이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당시 병원에는 이 마을의 고등학생 미치가 숨어서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치는 그 의사의 딸과 몰래 데이트를 하던 도중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미치는 집으로 돌아와서 마을의 판사인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아버지는 미치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날 미치를 먼 곳으로 보낸다. 스몰 플레인스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공부를 계속하게 만든다. 사실상 유일한 목격자인 미치를 마을에서 추방시킨 것이다.
마을의 실제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안관, 의사, 판사 세 명이 함께 입을 맞춰서 사건을 은폐시킨거나 마찬가지다. 마을 주민들은 아무도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하물며 고등학생인 미치는 말할 것도 없다.
17년의 시간차이를 오가며 진행되는 구성
사건은 한참 뒤인 17년 후에 다시 시작된다. 고향에서 쫓겨나 객지생활을 하던 미치는 그때 이후로 모든 것이 뒤틀려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언제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당시 아버지의 행동을 알고 싶어서 다시 고향을 찾아온다. 미치는 17년 전 사건의 진상을 모두 파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잃어버린 그 세월을 어떻게 보상받을까?
<스몰 플레인의 성녀>는 1987년과 2004년의 공간을 오락가락한다. 17년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세월이다. 얼어죽은 여인은 마을에서 '성녀'로 추앙받고, 오랜만에 나타난 미치는 마을사람들에게 경계의 대상이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도 자신을 멀리한다. 아버지는 미치에게 "나는 너를 보호했다. 그 일을 건드리지 말거라"라고 말한다.
작가 낸시 피커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을 전개시키는 구성과 함께, 고립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스몰 플레인스를 고립시키는 것은 여름에는 토네이도, 겨울에는 폭설이다. 폭설로 시작된 사건은 토네이도로 종결된다. 눈보라가 사건을 흐릿하게 뒤덮었다면, 폭풍우의 세찬 바람은 모든 거짓을 벗기고 진실이 드러나게 만든다. 그 결과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더라도.
어쩌면 오래된 과거를 캐낸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쾌한 일이다. 인간에게는 감추고 싶은 사연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마을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집요하게 그런 것들을 들쑤시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왕따'를 자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리 감추려해도 결국에는 드러나게 마련인 일도 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관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것이다. 오래된 사랑은 17년의 시간도 단숨에 뛰어넘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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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놀라운 점은, 2007년에 최우수장편소설부문에서 아가사상과 매커비티상을 같이 수상했다는 점이다. 아가사상은 많이 알려져있다시피 코지미스테리물을 검증하는 최고의 상으로서,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이름을 딴 것으며 매커비티상은 뮤지컬 [캐츠]의 원작인 T.S.엘리오트의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에 등장하는 재능많은 미스테리캣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해에 소개되는 작품만 해도 몇만, 아니 수십만건을 될터인데 그 중에서도 두 상을 거머줬다는 것은, '그 해'에서..그러니까 '그 해'에서 가장 독보적인 작품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낸시 피커드는 일반적으로 가볍게 읽어버리고 마는 코지물보다는 사회적 의미를 가미한 뉴코지물 작가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사건의 해결, 로맨스의 완성과 함께 조금은 어둡고 진지한 메세지를 전달한다....만, 상의 후광이 너무나 대단했을까 난 저자가 남자주인공인 미치에게 반한 듯 마치 로맨스소설에서 뿅튀어나온 적당한 어둠과 고뇌와 무지 풍부한 신체적매력 등의 묘사엔 좀 웃음이 나왔다.
또한, 적어도 특정한 누군가 젊은 여자아이를 집적거리는 성향이 있었다는 중대한 사실이 뒤에서 나오는 것 또한 좀 못마땅하다. 갑자기 놀라게 되잖아!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어?' 하고.
이 소설의 배경은 켄자스로 마치 같은 배경에서 살다가 소용돌이 바람에 날아간 도로시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은 집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구조로 이뤄져있다.
17년전 고등학교 졸업생인 미치와 이보다 어린 애비는 열렬히 사랑을 하는 사이로 어느 춥고 눈내리던 밤 열렬히 서로에게 몰두하고 있었다, 부모님 몰래. 송아지가 태어나는 것을 돌보기 위해 목장을 갔던 목장주이자 보안관 셀렌버거, 그리고 두 아들, 패트릭,렉스는 얇은 잠옷차림에 하혈을 하고 죽은 아름다운 소녀를 눈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시신을 가지고 애비의 아빠인 쿠엔틴 레이놀즈는 셀렌버거와 함꼐 모종의 고뇌에 찬 대화를 하곤 미치가 보고있는지도 모르는채, 시신의 얼굴을 훼손한다. 미치는 엄격하지만 그래도 판사인 자신의 아버지 톰 뉴퀴스트에게 이를 말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묻지만, 아버지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미치에게 누명이 씌여진다며 마을을 떠나라고 한다. 정말로 믿으면 오명의 그림자를 남기면 안되는 거잖아!
여하간, 그리하여 졸지에 떨어지게된 애비와 미치. 미치는 연락을 할수도 없고 (정말 한번도 연락할 수 없었을까? 음, 전화하고 말안하고 끊는 정도로 애정을 표현할 수는 있잖아. 물론 10대에는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가 존경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혼돈스럽지만...) 세월을 흐르면서, 이름없이 죽은 소녀는 동정녀 (virgin)이란 조작된 이름속에 이름없는 비석뒤에 묻히고, 점점 그녀에게 기도를 하면 기적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남게된다.
미치의 엄마가 마치 과거 사건의 재현인듯양 묘지로 향하는 눈속에서 죽고,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미치에 대해 말들이 구구하다. 미치는 드디어 자신에게 드리워졌던 의심과 자신을 몰아낸 아버지, 그리고 과거 사건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풀기위해 돌아오고, 마치 오즈의 마법사처럼 소용돌이 돌풍이 휘쓸고간 마을에 돌아오게 된다.
한명씩 따져보면 죽은소녀가 다 누구인지 아는 이들은, 과거의 망나니 패트릭,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안관이 된 렉스, 애비, 미치 등간의 이야기가 얽혀 클라이막스에 달한다. 캔자스주에선 살인사건을 알고도 신고를 하지않은 경우 처벌이 있으며, 그 주에 거주할 경우에 한정하여 2년의 공소시효를 가지게 된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안은 어떤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운 모든 것을 뒤바꿔놓을 사실을 밝히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과연 어떤 결과가 가장 합당할런지.
과연, 죽은 소녀의 미스테리를 밝혀내면서도 미치가 법적으로도 안전하고, 그리고 애비와도 잘 연결될 수 있을런지....이미 오즈의 마법사 어쩌구 하면서 엔딩을 슬쩍 언급했건만,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단, 미스테리물에서 기대치 않게, 내가 잘견디지 못하는 '전형적 로맨스물에서 나오는, 그 눈이 부신듯 아름다운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묘사'가 있어서 약간 손발이 오그라든다 (로맨스물이 싫은게 아니라 생각치않은 곳에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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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흡입력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중간에는 전개가 늘어지다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급작스럽게 마무리가 되는 흠이 있지만 아주 재미있는 작품. 가슴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감동은 없지만 궁금해서 자꾸만 읽게 된다. 애거서상 그러니까 코지 미스터리를 대상으로한 권위있는 상을 받은 작품들 가운데 한국에 유일하게 번역된 작품이기도하다.(라고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사건은 스몰플레인스라고 하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판사의 외아들 미치와 의사의 둘째딸 애비가 열일곱살이 되어 첫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밤이다. 그시각. 보안관과 그의 두 아들은 눈발 날리는 길을 운전하다가 변사체를 발견한다. 미모의 소녀. 그녀는 알몸으로 꽁꽁 얼어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강간의 흔적으로 여겨질 만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보안관은 소녀의 시체를 싣고 의사의 집으로 간다. 미치는 아랫층에 몰래 콘돔을 가지러 내려오다가 자기가 아는 소녀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본다. 그녀는 미치네 집에서 청소를 해주던 미치 또래의 새러였다. 더구나 언제나 믿어왔던 아저씨들은 죽은 새러의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든다.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 그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모든 걸 털어놓지만 아버지는 그들을 고소하기는 커녕 미치를 마을 밖으로 도망치게 한다. 미치는 침대 위에 남겨두고 온 소꿉친구이자 첫사랑 애비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이웃 친구들이 있는 스몰플레인스를 떠나게 된다. 도대체 왜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게 한 것일까? 아저씨들은 왜 시체를 훼손했을까? 새러는 누가 왜 죽였을까? 원제 제목은 [The virgin of small plains]이다. 성녀라고 번역되지만 처녀라는 뜻으로 음미하는 것이 작품 전체 내용과 더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조그마한 마을에 시체가 발견되자 말이 와전되어 새러는 눈처럼 순결한 처녀였다고 이야기되고 나중에는 그녀의 무덤이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어지게 된다. 누구나가 자기 고향에는 평범하고 선량한 어리숙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미욱하게 믿기 좋아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가 욕망과 비밀이 더께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법이다. 심지어 '나'를 만든 부모마저도 욕구와 불완전함을 가진 존재이다. 처녀성은 순결함을 뜻하는 동시에 인간이 성숙을 위해서 언젠가는 버려야할 과도기적 정신성이기도 하다. 내가 나고 자란 환경에 대해 품고 있었던 미신적 세계관을 깨고 그것을 직시하는 것. 소설 마지막에서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 미치는 자신의 진정한 고향이자 두고온 the virgin인 애비와 결합한다. 재미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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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445페이지, 25줄, 28자.
1987년 1월 23일의 사건과 2004년 1월 23일의 사건이 차례로 소개되면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결국 책 전체는 이 둘을 벗어나지 못하지요. 비록 시간대는 조금 더 확장되지만요. 1987년의 사건이란 렉스 셸렌버거가 아버지를 도와 때이른 송아지 출산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예쁜 소녀의 알몸 시체 이야기이고, 2004년은 애비 레이놀즈가 치매에 걸린 나딘 뉴퀴스트를 묘지 근처에서 잠옷만 입은 상태로 발견하여 도우려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입니다. 사실 애비(당시 16살)는 1987년에 나딘의 아들 미치(18살)와 첫 섹스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콘돔을 구하러 아래층(쿠엔틴 레이놀즈의 진료실)에 내려갔던 미치가 그 길로 사라진 관계로 두 사건 모두의 당사자가 된 셈입니다. 미치는 쿠엔틴이 그 알몸 소녀의 얼굴을 야구 방망이로 내리쳐 박살 내는 걸 보고 아버지인 톰 판사에게 말한 직후 타지방으로 빼돌려졌습니다. 이야기의 실제 진행은 2004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일어나지만 실제로는 과거를 이런 저런 사람의 회상을 통해 두 개의 시간대에서 재조명하는 것이고요.
JD라는 앵무새의 거처 이동이 정반대인 것을 아무 의도가 없다고 볼 순 없겠죠. 마을의 3대 실력자인 판사, 보안관, 의사의 결탁(?)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꾸네요. 몇 가지 설정은 좀 무리인 것 같은데, 이야기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었겠죠.
다른 건 때문에 좀 우울한 상태여서 그런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우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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