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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백년을 지탱해오던 조선이라는 나라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물론 지난 50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일본과의 7년전쟁, 그리고 청국과의 두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기본적인 사회구조에 일대 변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사실상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은 정조사후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대적, 역사적 변혁의 물결을 타고 조선은 近代라는 높은 파고에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특히 일반민중에게 근대라는 개념이 과연 존재했을까? 타의로 근대화를 물결을 타게 된 조선에 서구열강세력의 손길은 지배계층에게는 마수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일반민중들에게는 신천지를 보는듯한 환상에 빠졌을 것이다. 특히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자리매김 하였을 것이다. 그런 신진문물중에서 가장 대중에게 근대라는 개념을 각인시킨것은 다름아닌 新聞이었다. 현대나 고대나 권력유지의 가장 큰 틀은 정보 장악력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가 권력을 잡고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중세 조선도 예외는 아니였다. 이러한 정보를 지배계층만이 향유함으로써 정보 유출의 방지와 정보의 왜곡을 통해서 기난긴 세월 동안 민중을 통치해왔던 것이다. 그런 개념이 근대라는 물결을 타고 일반 대중에게 전파되었던 것이 바로 신문의 탄생이다. 수백년동안 일반 민중들이 갈망했던 정보의 공유화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문의 역활은 지대한 것이다. 비록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속에 살고 있는 시대이지만 아직까지 그런 신문에 대한 역활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더 요즘 몇몇신문들에 대한 안타까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 是日也放聲大哭을 실어 정간당했던 <황성신문>, 그리고 한때나마 민족지라 자부했던 <동아일보>, <조선일보>등의 신문을 통해서 구한말시대에서 해방시기까지의 신문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을 추측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의 역사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기획은 기존의 판에 박힌 역사적 인식을 고찰하는 개념을 초월하여 일반 민중에게 시사되는 많은 부분을 신문지상이라는 형식을 빌려 시대상을 대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정보 취득의 다양성이 떨어졌던 시대에 이런 신문의 역활은 바로 개인과 역사의 매게역활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번 책을 통해서 안창호와 재미교포들이 제작한 <공립신보>, 미국 호놀룰루에서 발행된 <국민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권업신문>과 임정의 기관지인 <독립신문>등의 희귀한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서 한층 기획의 의도가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역사공부 특히 구한말의 역사에서 단순암기식으로 실체를 볼 수 없었으나 이번 책을 통해서 이러한 신문들을 접하게 된 점이 바로 살아있는 역사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문은 여론을 대변한다고 한다. 이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말이다. 지금도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대변하는 신문이 있듯이 당시에도 그런 색깔을 지니고 있는 신문들이 있었다. 특히 한일합방을 계기로 주권상실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러한 경향을 더욱더 커지게 된다. 비록 일제의 검열이 강화되고 언론통제가 심한 시대였지만 그와중에서도 시대를 말하는 신문들이 있어다는 점이 눈에 띈다. 비록 정간이나 폐간의 어려움은 있었어도 이를 극복하고 민중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독립에 관한 무언의 메세지를 전달했던 신문들이 있었기에 민중들이 그 암흑기를 버텨낼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신문과 비교하면 많은 점에서 부끄러운점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시대의 신문들을 통해서 굳이 거대한 역사적 상황이나 시대적 소명 내지는 독립의 갈망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역사서의 행간을 통해서 역사를 투영 하듯이 신문기사의 행간을 통해 그 당시 시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의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문이라는 것이 그 시대상을 대표하는 기록물임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역사적 인식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많이 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매체의 다양성이 떨어졌던 시대에서 신문의 역활은 지금같은 그런 역활을 뛰어넘어 모든것을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일반 민중에게는 더욱더 그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에 게재된 신문을 유심히 보면 그 재미가 한층 더 하다.
1896년 4월 7일 <독닙신문>창간호에 나온 "광고"라는 기사에 신문 8장 가격에 10장을 준다는 마케팅 광고를 보면서 지금 신문사들의 마케팅전략과 비교해 볼 때 잔잔한 웃음이 배어 나온다. 또한 1905년 제국신문에는 민영환의 자살소식과 함께 광고란에 그의 부고를 실은점이 특이하다. 또한 소설이나 만평(우슴거리)같은 유머가 실여있는 점 역시 지금의 신문과는 다를바가 없다. 최초로 간행된 신문에서 출발하여 1918년까지의 신문은 대세가 정치적인 이슈등을 다루는 관보형식의 역활이 컷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19년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다양한 알거리와 볼거리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광고라는 형식을 빌려 본격적인 상업광고가 게재되고 있다. 이들 광고의 특징중의 하나는 유독 임질이나 매독 및 중풍에 관한 치료제 광고가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의학적 수준으로 보아서 치명적인 질병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신식문물의 확대로 인한 제화점 광고와 여성들 바느질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제봉틀에 관한 광고, 그리고 화장품 광고등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사진과 함께 게재되는 봄나들이의 풍경들은 아마도 암울한 시기에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보라는 취지는 아니였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이렇듯 이 시대의 신문들은 그 당시 일반 민중들의 삶을 투영해주고 있다. 나라잃은 슬픔도 중요하지만 일반민중에게 가장 큰 걱정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었던 것 아닐까 싶다. 당시 신문을 통해서 역사적 인식이라는 거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일반 민중들의 삶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도 봄나들이도 가고 싶은 것이고 외모에 대한 신경도 쓰고 싶은 것이고 신식의 의복과 구두도 신고 싶은것이 인지상정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신문이라는 기록물을 통해서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면 너무나 큰 억척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지금보면 유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더 솔직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역사적 사초나 기록물을 통해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지향하고 있지만 반드시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일반 민중들의 삶에 대한 접근일것이다. 그러한 의도 없는 역사적인식이야 말로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 인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그들 민중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고 시대상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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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을 해서 맨 처음 하는 일과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는 일이다. 내가 잠들어 있던 시간 동안 어떤 일어났는지, 내 흥미를 끄는 기사가 있는지 살펴보곤 한다. 출근 시간이 이르면 지하철 역에 배포되는 무가지 신문을 집어든다. 보통의 신문보다는 얇고 전해지는 기사와 정보의 양도 적지만 구석구석 중요한 기사가 많이 실려 있다. 예전에는 '뉴스를 봐라, 신문을 읽어라'라는 엄마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리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다. 학생때와는 달리 조그만 사건 사고 하나로도 주변의 분위기가 쉽게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사소한 변화가 뉴스와 신문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요즘엔 매일매일 그날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찾아보곤 한다. 신문과 뉴스는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10여년전만 해도 조간이나 석간의 신문을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집이 많았던것 같은데 요즘은 흔치 않다. 인터넷과 같은 다른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한 결과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제공되는 신문 대신 무료로 자신의 흥미에 따라 쉽게 기사를 골라 읽을 수 있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인터넷 뉴스를 즐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아마도 그들 주변과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신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제외하고서 말이다. <1면으로 읽는 근현대사>는 그 초점이 신문이다. 1884년부터 1945년까지 발행된 신문 기사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담아내고 있다. 당시 사람들의 정보통이었던 신문을 통해 우리 역사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신문이란 단지 오늘의 사건 사고를 말하거나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기사거리로 다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읽는다는 것, 무척 참신한 발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아직까지 많은 역사책을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들을 비교 했을 때에 머릿속에 남는 역사의 흐름은 단연 최고였다. 아마도 신문 자체만 실려 있었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겠지만 친절히도 당시의 전후 상황을 엮어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최고의 장점을 꼽으라면 다양한 신문을 발췌했다는 점을 꼽겠다. 요즘 발행되는 신문도 신문사 마다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이해나 찬반이 다르게 갈리는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근현대사에 남는 신문들도 그들 나름의 시각으로 사건을 해석하여 신문을 발행했으므로 나도 그에 비추어 다양한 시각으로 사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신문의 현대어 번역을 꼼꼼히 읽고 해설까지 덧붙여 읽으려 하니 다른 책에 비해 읽는 속도는 한참이나 느렸다. 읽는 중에는 속도가 안붙어 조금 답답했지만 다 읽고 나서 문득 이 책을 만든 이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기사 자료를 수집하고 번역을 하고 해설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하지만 그 노력만큼 빛나는 책이라 느껴진다. 빛바랜 신문의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책. 역사를 알고자 하는 이에게도, 언론을 공부하는 이에게도 좋은 만남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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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읽으면서 언론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거짓말을 하고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은 필요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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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당시 사회 현상을 파악하는 중요한 사료다. 이 책은 신문 기사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했다. 우리나라에서 인쇄된 정기발간물이 처음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고종20년(1883년 10월 31일)이다. 일본인 이노우에가 머무르던 저동에 한성순보 인쇄를 위한 박문국사무실이 8월 20일(양력 9월 20일) 문을 열었으며, 10월 초1일(양력 10월 31일) 한성순보(漢城旬報) 창간호가 발행되기에 이르렀다. 한성순보는 음력 초하루와 11일 그리고 21일 등의 10일 간격으로 발행되었기에 순보(旬報)라는 명칭을 붙인 것으로 발행처가 통리아문 산하에 있는 박문국(博文局)이라는 정부기관이니 관보(官報)가 된다. 관보란 정부기관에서 발행한 신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나 한성순보는 관보이면서 신문과 잡지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1884년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를 비롯해 독립신문, 매일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공립신보, 경향신문, 권업신문, 신한민보, 매일신보, 경성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시대일보, 중외일보, 중앙일보, 조선중앙일보, 국민보 그리고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과 중국신문인 대공보까지 1945년까지 국내에 발간되던 신문 총 21종에서 주요한 역사적 사건의 기사를 신문 영인본과 함께 원문을 따로 싣고, 해설을 덧붙여 각 사건의 전후 사정을 생생하게 이해 할 수 있게 편집하였으며 한 사건을 놓고 다른 논조를 보이는 경우 두 신문을 같이 실어 역사적 순간과 당시의 반응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 부분이 이 책의 장점으로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본 역사적 사건을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문명의 기록자인 신문이 품고 있었던 우리 근대의 사실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수록된 기사를 살펴보면 1884년 1월30일치 <한성순보>에는 중국 병사의 범죄를 보도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 무렵 한성(서울)에는 청나라 군인 1,500면이 주든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이 사건이 보도된지 두 달 뒤 청나라 북양대신 리훙장이 조선정부에 “무례를 범했다”며 항의 서한을 보냈는데 이는 조선에 대한 우선권을 내세웠던 청나라가,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던 일제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기사를 쓴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으며 한국 언론사의 최초의 필화 사건인 셈이다. 만주사변,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을사늑약, 이완용 피습, 징병제 실시와 1945년 9월 11일자 ‘태평양전쟁 종전협정 조인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대를 관통하는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총망라했다. 이중에는 역사적인 사간이지만 서상한 폭탄 불발 사건, 봉오동 전투, 보천보 전투 등 보통의 역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건 등도 찾아내 수록하였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 근대를 관통하는 주요 역사적 사건, 역사에서 묻힌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 정치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사건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총 141개 사건을 67개의 대항목과 17개의 중항목으로 분류해 수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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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터넷의 발달으로 인해 신문을 자주 보는 일이 드물어졌다. 하지만 1884년부터 1945년까지 당시에는 신문이 없이는 세상돌아가는 물정을 모를 정도로 중요한 차지를 하고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신문은 오늘날 국제적으로 혹은 국내적으로 사사건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재하여 구독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뿐만아니라 내게 필요한 여러가지 정보들은 물론이요, 필요하다면 나의 정보를 여러 독자들에게 알릴수도 있을만큼 큰 효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유명했던 신문들을 이 도서를 통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신문은 과거에서나 현재에서나 역사의 흐름을 기록하고 언제든지 그 것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 증거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도저히 밝힐수 없는 모든 사건들도 당시의 존재했던 신문들을 통해서 역사를 증명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아 있다. 그만큼 신문이 차지하는 비증에 대해서 더 말할것 없을만큼 막강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언관 言官, 임금의 잘못을 간하고 백관이 비행을 규탄하던 벼슬아치다. 사관 史官, 역사의 기록을 담당하여 역사의 고초를 쓰던 관원이다. 모두 전제 왕권이 밳겅을 위해 제대로 행사되도록 설치 운영하던 직책이다. 근대 이후 이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이들을 들라면 단연 언론인을 꼽을수 있겠다. 그들의 사회적 역할 중 큰 몫이 사회 부조리의 비판과 삼시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론인이 제 구실을 하느냐 에 대한 평가는 매체와 사례, 무엇보다 보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론 그렇다. 우리 나라에서 1883년 최초로 발행된 신문인 한성순보 이후에 신문은 당시 사회현상을 파악하는 주요 자료가 되었다. 그 덕분에 국문학자나 아마추어라도 관심과 열의만 잇다면 신문 기사를 분석해 광고나 철도 등 특정 분야를 파헤치는 것이 가능해졌다. 신문 기사를 통해 우리 근대사의 주요 사건을 더듬어 보고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분석한 신문 기사만으로 역사의 흐름을 엮어낸 최초의 도서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료의 가치도 있지만 기사 원문을 보면 당시 사회적 동향과 인식을 엿볼 수 있어 꽤 흥미롭게 읽혀진다. 더불어 참 언론의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굳이 역사 교과서 논쟁을 의식한 거은 아니지만 보수 진보 진영의 관련서를 뒤적여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려고 하다보니 자료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고 정말 역사 연구란 무엇을 골라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가 관건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도서이다. 같은 사건에도 연구자에 따라 아예 빠뜨린 경우에서 몇 쪽을 할애한 경우까지 다양한 대우를 한 사례를 여럿 볼 수 잇었다. 여기서 주요 사건의 전후 사정을 가능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설명하고 우리 근대사의 흐름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을것 같다. 이 책은 우리 독자들에게 준 큰 선물이다. 기흭과 신문 기사 자료 수집, 현대어 변역, 해설과 감수에 여러 많은 분들의 노력과 힘이 합처져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이다.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다시 한번 신문이 주는 중요성과 다양성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좋은 도서이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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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역사책처럼 당시를 기록으로 남긴다.
역사책이 아닌 신문으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신문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있다.
기사 내용도 다양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신문의 발달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언론의 시작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자료(資料)이다.
사족을 붙이면, 이 책은 일반 책보다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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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펼쳐 역사의 흐름을 읽는다'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신문을 통해 한 사건의 내용 전개이 아닌, 근현대사의 흐름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이 다소 과장은 아닐까? 싶었다. 앞뒤의 내용파악이 역사의 흐름을 읽는 관건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신문의 직접적인 사료제시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순전히 글의 전개만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다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기획의도는 아주 참신하고 성공적이란 생각이 든다. '1面으로 보는 근현대사' 1권을 읽었을 뿐인데 앞으로 5권까지 나올 예정이라니, 사뭇 기대되기까지 한다.
기사 자체의 원문을 읽는 것 자체는 역시 무리지만, 원문 풀이와 해설은 당시의 신문을 이해하고 역사적 사전의 전말을 이해하는데 유용하였다. 또한 하나의 신문만이 아니 다른 논조의 신문을 동시에 소개하고 있어, 역사 읽기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종 승하의 기사일 것이다. 기사의 머리말 제목부터 차이가 있다. 매일신보는 '이태왕 전하 훙거'라 하였고, 신한민보는 '전 광무황제는 1월 20일에 붕어'라 하며, 고종에 대한 평가 자체가 상반되기도 하였다.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의 '화병범죄'의 기사가 이 책의 첫 내용이다. 본문의 내용을 읽으면서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 임오군란 이후, 서울에 주둔한 청병(중국군인)이 저지른 조선인 살인사건이었다. 지금의 주한미군범죄가 바로 떠오르면서 머리가 먹먹해졌다. 역사의 반복일까? 역사서를 읽을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다.
'화병범죄'처럼 전혀 알지 못한 가슴아픈 사건들이 의외로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몇가지를 정리해보면, 서상한 폭탄 불발사건, 암태도 소작쟁의 사건, 한반도를 강타한 20세기 최대 홍수인 '을축년 대홍수'와 민족적 사회주의자 이재유와 마지막으로 보천보 전투(김일성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계기가 된 사건)이다. 또한 역사적 사건의 뒷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독립신문(관민합작 신문)과 동양척식 주식회사(한일합작회사)의 이야기, 안중근 의사, 이토 암살 사건과 관련한 진정한 친일파의 내용(13도 대표의 대죄내용의 지방 통지서)과 이완용을 위한 변명(그렇다고 이완용의 평가가 달라지겠냐만), 신사참배의 과정 등등 덜 알려진 역사와의 만남, 그 의외성에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시대의 흐름 상 3부분으로 나누어 전개되고 있다. 이 책은 기회의도에서 알 수 있듯, 신문을 통해 직접적인 사료 제시를 통해 생생하게 역사 속 현장으로 이끌고 있다. 또한 속속들히 들여다 볼 수 있어, 파란만장했던 근현대사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단순한 역사적 의의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현재의 우리의 모습까지 반영하고 있어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 생생함에 놀라기도 하였다. 아픈 역사와 대면하기에 재밌다고 하면 욕되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의 우리가 지난 역사의 일면을 생생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로인해 뼈아픈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고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지 않을까?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01' 정말로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기대된다. 역사 읽기에 너무도 좋은 자료이자 역사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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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미디어의 발달이 최고에 달하는것 같다. 뉴스를 보더라도,텔레비젼은 물론 인터넷이나 매신저를 통해 들을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제 뉴스 전달물로서 그 자리를 지키기가 매우 어려울 듯하다. 예전에는 아침일찍 배달된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곤 했지만, 지금은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앉아서 읽는 신문조차 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여전히 신문이 뉴스 전달물로서의 역할은 매우 크게 자리한다. 이책은 기존 책들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신문기사 만으로 역사의 흐름을 알수있는 책을 낸다는 것이 과연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책을 읽고나니 내생각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는것 같다. 이책은 1004년 부터 1945년 까지 우리나라의 주요 역사적인 뉴스거리들만 모아 놓은 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 순보를 볼수있는 행운과 함께 신문의 영인본이 함께 실려있고 ,원문을 따로 크게 실고 있어서 사건의 전후사정이나 맥락을 이해하는데 매우 용이하게 구성되어 있다. 책속을 들여다 보면 이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연도를 나누어 이야기 하고 있다. 1884년 부터 1910년까지의 사건,1910년부터 1930년까지의 사건,1931년부터 1945년까지의 사건으로 구분하여 좀더 우리에게 이해하기 쉽게 한눈에 들어오게 구분을 짓고 있다. 우선 먼저 1884년부터 1910년까지의 기사를 보면... 한국 언론사 최초의 필화사건으로 번진 화병범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사건이 보도된 이후 청국인들이 신문 발행처인 박문국을 습격했다고 한다. 이기사는 한자로 쓰여 있어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순한글 신문이 있지 않음을 알수있다. 그 이후 1896년 4월 7일에 드디어 순 한글 신문이 등장해서 눈낄을 끈다. 오늘날은 이날을 기념하여 신문의 날로 지정하게된 역사적인 계기가 되는 날이다.
"금월 13일에 내리신 조칙을 인연하여 조선 국명이 변하여 대한국이 되었으니 지금부터는 조선 인민이 대한국 인민이 된줄로들 아시오." 이글은 1897년 10월 16일의 독립신문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글이다. 오로지 청나라로 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정도였지만 이마저도 러시아와 일본의 상호견제로 한반도 주변정세가 미묘한 균형을 이룬 덕분이었다고 한다.
1905년 11월 17일에 이른바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이른바 "을사보호 조약"을 강방벅으로 체결하였다. 11월 20일에 황성 신문의 장지연은 이를 비판하는 논설인 "시일야 방성대곡"을 실었다. 이날 신문을 평소 발행 부수 3000부 보다 많은 1만부르 찍어 일본의 검열을 받지 않고 배포 했다고 한다.그결과 필자인 장지연등 10여명이 체포되고 신문은 무기정간 조치를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금모으기 운동의 전신이라 할수 있는 국채 보상 운동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1910년부터 1930년까지의 기사를 보면... 제일 중요한 사건중의 하나라 할수있는 한일 합병을 들수있다. 어엿하게 통치권을 행사하던 한 나라가 운명을 건 싸움 한번 없이 이토록 맥없이 이민족에 넘어간 사례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한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임금인 고종의 승하 기사가 주목을 끈다. 고종의 죽음을 두구 분분히 의갼을 달리했다고 하니..역사의 진실은 무엇이고 참언론 이란 무엇인지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1919년 3.1운동은 우리민족사에 길이 남을 독립운동이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와 역량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크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구했던 독랍은 성공하지 못했으니,절반의 성공이라 할수있다. 이시대의 큰사건중의 하나가 바로 광주학생 항일운동이라 할수있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사를 보면... 운봉길 홍커우 공원 의거와 안창호 공판사건의 기사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민족 독립의 하나의 커다란 맥이 되는 두사람의 기사는 우리가 반드시 역사속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손기정 베를린 마라톤 우승또한 기쁘지만 가슴아픈 사건이라 할수있다.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그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 신문의 커다란 중심이 된 조선 .동아일보 폐간사건의 기사는 일부 친일 성향이라 해서 언론학자와 역사학자들가느이 논쟁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신문은 우리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기사만으로 역사의 흐름을 짚어 볼수 있다는것은 그만큼 신문이 우리 삶에 밀접하게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기사를 볼수있는것이 행운이었던것 같다. 한자신문에서 한글신문으로 발돋움한 사실또한 우리에게 큰 자랑거리가 될수있을 것이다. 신문기사를 통한 역사적 사건을 보니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의 유기적인 연결이 한눈에 보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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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김성희 강영선/ 서해문집 刊
잉크냄새 철철히 풍기며 배달돼 온 신문을 보는 것처럼 배판이 매우 크다. 나라를 잃기
흡사, 타임머쉰을 타고 그 암울하지만 개화기 시대의 애독자의 입장에서 그날의 신문을
지금의 생각으로는 기가 막힌 악질 매국노 이완용의 피습 사건을 객관적으로 단순보도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암살 쾌거, 꼭 90주년이 되는 2009년 3 월 1일에 3.1 운동과
치욕의 한일합병, 광주학생운동,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일장기 말소 사건,
어두운 과거사를 쓴잔 마시며 보는 기분은 불쾌하지만 반면교사로 삼기엔 충분한 기사
최초의 근대적 신문부터 일제강점기 신문까지 20개의 신문을 개관한 부분은 유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