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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홀대한 강대국은 없다
"역사를 홀대한 강대국은 없다" 내용보기
CE 660년 백제 사비성(현 부여에 위치). 나당연합군은 서쪽에선 당나라 소정방의 18만 군대가 기벌포를, 동쪽에선 신라 김유신의 5만 군대가 탄현을 서로 공격하였다. 이에 의자왕은 당군을 막기 위해 기벌포에는 왕자들을, 탄현을 넘은 신라군을 막기 위해 황산벌에는 계백을 보내 막으라 했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고 의자왕은 역사에 백제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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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 660년 백제 사비성(현 부여에 위치). 나당연합군은 서쪽에선 당나라 소정방의 18만 군대가 기벌포를, 동쪽에선 신라 김유신의 5만 군대가 탄현을 서로 공격하였다. 이에 의자왕은 당군을 막기 위해 기벌포에는 왕자들을, 탄현을 넘은 신라군을 막기 위해 황산벌에는 계백을 보내 막으라 했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고 의자왕은 역사에 백제의 마지막 임금이란 이름을 남겼다. '사비백제시대'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겠다.

 

  1971년 7월 7일. 공주 송정리 고분군에서 <무령왕릉>이 발굴되었다. 왕릉 안에는 돌짐승(石獸)과 기록새긴돌(誌石) 등을 비롯해서 왕과 왕비의 유물이 아주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이로써 '웅진백제시대'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초기 백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한성백제시대>는 어디서 엿볼 수 있을까? 글쎄..아직까지는 그 속시원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까닭은 '초기 백제의 서울'인 <하남위례성>의 존재와 위치파악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4년 <풍납토성>의 존재를 파악한 역사학자들은 이곳이 <하남위례성>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고, 실제로 <풍납토성>에서 수많은 '초기 백제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었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송파·잠실일대에 '올림픽공원'을 조성하면서 <몽촌토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에 발굴한 결과 <풍납토성> 안에 존재했던 또 하나의 '초기 백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초기 백제의 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써 '한성백제시대'의 한 모습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풍납토성>은 아직 완전히 발굴한 상태가 아니다. 한 나라의 서울이었다면 반드시 있어야할 '왕궁터'를 발견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초기 백제의 서울이었던 '하남위례성'의 위치를 밝혀낸 것이 아니다. 다만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규모>로 보아 이곳이 '하남위례성'으로써 가장 유력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속시원히 발굴해내어서 밝혀내면 될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사정은 무엇일까?

 

  그건 이미 '송파·풍납·천호동 일대'에 이미 주거시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민들이 집을 짓고 터전으로 삼고 있단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나서서 토지를 매입하고 주민들을 이주하면 될 테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풍납토성>이 사적지로 정해지기도 전에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이주를 꺼리고 있으며, 또 아주 많이 들 강제이주비용 마련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풍납토성>을 맨처음 발견한 것은 <1925년 대홍수 때>였다. 과거 한강은 장마철만 되면 범람위기에 놓이던 강이었고, 일제식민시절에도 어김없었다. <풍납토성>은 바로 이렇게 불어난 물 덕분에 발견되었고, 일본역사학자는 이곳이 '초기 백제시대의 성'이라고 확정까지 했단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았고, 곧 그의 주장은 묵살받고 말았다. 이때에는 아직 주민들이 대거 이주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발굴을 시작했다면 별 무리없이 '한성백제의 존재'를 밝혀낼 수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이 기회를 살리지는 못했다. 일제에 의해 왜곡되어지기 싫은 '백제인들'의 간절함 때문인지 몰라도 해방 뒤에서야 <풍납토성>의 진가가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주거하고 있는 주민들 덕분에 속시원히 발굴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그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현재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선 이곳은 앞으로 재개발이 되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될 테고, 또 그 뒤에는 초고층아파트가 들어서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의 예를 들며, <한성백제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CE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역사속으로 묻혔던 <폼페이>는 16세기 말, 수로 공사를 하던 가운데 우연히 발견된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폼페이>를 역사밖으로 꺼내는데 동의하고 17세기부터 발굴하기 시작해 3백여 년에 걸쳐 오롯이 발굴한 결과 오늘날 세계적 관광명소로 꼽히며 온누리 사람들이 알 정도로 유명해졌고, 긴 시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렇기에 폼페이에 비해면 4미터 남짓한 깊이에 묻힌 <풍납토성 발굴>은 보다 수월할 것이며 강성했던 '초기 백제의 모습'을 우리에게 오롯이 보여줄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남하한 비류와 온조가 세운 나라이고, BCE 18년에 세워 CE 660년에 멸망하기까지 이어졌던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다. 오늘날 사학자들은 백제를 <한성백제시대>, <웅진백제시대>, <사비백제시대>로 구분하며, 이 가운데 <한성백제시대>에 '한반도 남부를 비롯해 요동과 산둥반도, 그리고 왜'에까지 세력을 뻗은 가장 강력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재는 장수왕 때 전성기를 맞은 고구려에 밀려 남하해 허약해진 백제의 모습(웅진·사비천도)의 모습만 보며 우리 백제를 잘못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가장 강성한 모습을 쏙 뺀 모습을 보며 백제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냔 말이다.

 

  물론 당장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어린이일 <예비 고고학자들>에게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고고학>하면 외국의 것을 떠올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 곁에 이렇게 생생한 발굴현장이 있으니 말이다. 말뿐인 '반만 년의 역사'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역사를 홀대한 민족이 부강해진 예는 없다. 짧은 역사지만 세계 초강대국이 된 미국도 역사에 얼마나 투자를 하느냔 말이다.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11.01.21.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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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례성 발굴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 책
"위례성 발굴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 책" 내용보기
개구쟁이 혁이네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 그래서 혁이네 집도 아파트를 짓기 위해 포클레인이 와서 건물을 부수고 땅을 파헤친다. 그 와중에 발견된 백제의 토기 조각들과 마침그 근처에 나와있던 대학 고고학과 교수님에 의해 땅 속에 감춰진 백제 풍납토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역사 속에서 위례성에서 백제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결정적 단서가 없었는데 그 증거가 나오게 된
"위례성 발굴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 책" 내용보기

개구쟁이 혁이네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

그래서 혁이네 집도 아파트를 짓기 위해 포클레인이 와서 건물을 부수고 땅을 파헤친다.

그 와중에 발견된 백제의 토기 조각들과 마침그 근처에 나와있던 대학 고고학과 교수님에 의해

땅 속에 감춰진 백제 풍납토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역사 속에서 위례성에서 백제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결정적 단서가 없었는데

그 증거가 나오게 된 것이다.

 

백제의 첫 왕성을 아이의 시선에서  발굴해 나간다.

고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로서

유물 발굴의 중요성과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 나간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작은 아이 2학년 때 읽고 올 해 들어 다시 한번 읽어 주었다. 다시 읽을 때는 백제의 시조 이야기도 같이 해주었더니 더욱 흥미로워 했다.

 

 

 

f****0 2013.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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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로 역사 기행을 다녀온 것 같네요!
"백제시대로 역사 기행을 다녀온 것 같네요!" 내용보기
백제시대로 역사 기행을 다녀온 것 같네요!백제의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는지는 이미 국사 시간에 배워서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유물이나 문화재가 얼마나 되는지, 또 유적지는 어디에 있는지 세세하게 아는 사람은그리 많지 않습니다.어디서나 ‘백제’라는 나라를 오롯이 하나만 다루는 일은 드물고,대부분이 신라, 고구려와 묶어서 삼국시대로 분류를 하다 보
"백제시대로 역사 기행을 다녀온 것 같네요!" 내용보기
 

백제시대로 역사 기행을 다녀온 것 같네요!

백제의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는지는 이미 국사 시간에 배워서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유물이나 문화재가
얼마나 되는지, 또 유적지는 어디에 있는지 세세하게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디서나 ‘백제’라는 나라를 오롯이 하나만 다루는 일은 드물고,
대부분이 신라, 고구려와 묶어서 삼국시대로 분류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백제는 늘 후자로 밀리기가 다반사였거든요.
그래서인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관심도 기세가 드높았던 고구려나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에 비해 덜했습니다.
물론, 어른인 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우리 집 밑에 백제가 살아요>라는 책 덕분에
많은 것을 생각하고, 또 알게 되었습니다.
백제의 유물을 접하려면 공주나 부여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 초기 백제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네요.
풍납토성의 이야기는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으로
백제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들었는데 그 곳에 우리가 위례성으로 알고 있던
초기 백제 시대의 역사가 숨어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책은 백제의 역사와 함께 아이들에게 생소한 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책임에도 짜임새 있는 구성과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재미나게
개입시켜서 책장을 넘겨갈 때마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고고학이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저절로
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자세히 설명해 준 것도 큰 장점입니다.
그래서 백제의 역사와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n****d 2009.01.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