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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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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죽은 다음날 누나의 뇌가 담긴 싱그러운 사원이 사람의 검시로 아직 모독되지 않았을 때 나는 누나를 한 번 더 볼 계획을 세웠다.(중략)내 눈을 맞이한 것은 활짝 열린 큰 창문 뿐이었다. 한여름 정오의 눈부신 태양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날씨는 맑았고 하늘은 청명했으며 그 파란 심연은 무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삶과 삶의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아프게 환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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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죽은 다음날 누나의 뇌가 담긴 싱그러운 사원이 사람의 검시로 아직 모독되지 않았을 때 나는 누나를 한 번 더 볼 계획을 세웠다.

(중략)

내 눈을 맞이한 것은 활짝 열린 큰 창문 뿐이었다. 한여름 정오의 눈부신 태양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날씨는 맑았고 하늘은 청명했으며 그 파란 심연은 무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삶과 삶의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아프게 환기시키는 상징을 눈으로 보거나 마음으로 그릴 수는 없었다.

내 마음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기억, 그리고 내 죽음의 시간에도 내게 남아 있을 (지상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기억을 회상하는 일을 잠시 멈추고 내가 처음 쓴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에서 적어도 죽음의 영향이 풍경이나 계절 같은 부수적 요소에 따라서 조금이라도 가감이 가능한 한에서는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다른 계절보다 여름에 경험하는 죽음이 왜 마음을 더 깊이 흔드는지 설명하려 했던 것을 몇몇 독자들에게는 상기시키고, 다른 독자들에게는 알려야겠다.

아편 중독자의 고백에서 나는 열대지방처럼 왕성한 여름의 생명력과 무덤의 어두운 불모성이 서로 반복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여름과 우리 생각을 맴도는 무덤. 우리를 둘러싼 찬란함과 우리 안의 어둠. 둘이 충돌하면서 서로를 더 뚜렷이 도드라지게 만든다.

48-49_ 토머스 드 퀸시가 쓴 어린 시절의 고통(1845) 중 일부

 

 

벚꽃이 언제 그렇게 활짝 피는지 보고 싶어서 지켜본 적이 있다. 팝콘이 터지듯, 어린아이가 숨김없이 웃음을 터뜨리듯 꽃잎을 시원하게 터뜨리는 순간을 발견하고 싶었다. 햇빛이 없는 동안 남몰래 꽃을 피우는가 싶어 늦은 저녁부터 어느 벚꽃 가지 아래에서 내내 꽃망울을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관찰했다. 별이 뜨도록 속내를 보여줄 생각이 없는 벚꽃 아래에서 나는 밤을 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꽃잎이 벌어질거고 나는 그 순간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다 불현 듯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을 자는 사이,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벚꽃은 피어서 다음날 아침에 바라본 꽃가지에는 활짝 핀 꽃 몇 송이가 달려 있었다. 약이 올랐다. 너의 꽃잎이 느리게 열리는 모습을 꼭 보겠노라고 다음 봄을 기약했는데, 여전히 나는 벚꽃이 웃음처럼 피는 그 순간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정성스럽게 이 책을 읽었다. 천천히 스미듯 흘러가버리는 시간들 사이로, 천천히 스미는 소중한 깨달음을 꿰어 담은 이 책에서, 혹시라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나몰래 꽃잎이 활짝 피어버리는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으레 꽃잎이란 자기 때가 되면 피는 것이겠지. 그렇게 거기 있다가 또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떨어져 자기 갈길로 가버리는 것이겠지. 꽃잎도 자기 일을 하듯, 이 책에 작품을 수록한 저자들도 다 자기 일을 하고는 때가 되어 미련 없이 떨어져 자기 갈길로 가버렸다. 꽃이 피는 그 순간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은, 저자들의 남긴 그들 삶의 순간들을 애써 발견하고 싶은 욕심과 같다. 내가 굳이 발견하려 하지 않아도 그들의 글은 거기, 이 책도 으레 있어야 할 곳에 묵묵히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굳이 꼭 읽고 확인하고 발견하고 그렇게 마침내는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공들여 읽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꽃의 기억이지만 그 꽃을 지켜본 시간은 내 기억이 되니까.

 

꽃처럼 연약하고 향기롭고, 짧아서 더 소중한 작품들.

전혀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성별, 전혀 다른 형태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니까 저자들과 나인데, 생각의 흐름은 어떤 지점에서 분명하게 만난다. 인간이기 때문일까? 우리가 다 인간이기 때문에.

 

o********e 2018.04.1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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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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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문장가들이 들려주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감상들은평소 어렵고 완벽한 존재로 인식하던 그들을우리와 같은 평범함과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 시간이었습니다. 마음에 든 문장들을 소개함으로서 추천의 말을 대신합니다.       "친구에는 세 종류가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 나에게 무관심 한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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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문장가들이 들려주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감상들은

평소 어렵고 완벽한 존재로 인식하던 그들을

우리와 같은 평범함과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 시간이었습니다.

마음에 든 문장들을 소개함으로서 추천의 말을 대신합니다.

 

 

 

"친구에는 세 종류가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 나에게 무관심 한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유순함을 가르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나에게 조심성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나에게 자립성을 가르쳐 준다."

 

"아이에 대한 뜨겁고, 사려 깊고 군형잡힌 엄마의 사랑은 이 아이의 때 이른 죽음에 관한 권리를 고백하게 한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는 깊은 슬픔과 고통을 숨기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정인가봅니다."

 

"폐허와 참담함. 어쩌면 내가 될 수 있었던 것과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

그러나 놓쳐버리고 낭비해버리고 다 써버리고 탕진하고 되찾을 수 없는 것들.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절제할 수 있었을 텐데.

소심했던 그때 대담할 수 있었을 텐데. 경솔했던 그때 신중할 수 있었을 텐데"


 

 

 

 

 

 

 

 


 

YES마니아 : 로얄 w***a 2019.06.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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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긴하지만...
"천천히, 스미긴하지만..." 내용보기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이라고 적혀있다. 보통은 재미있는 책 위주로 책을 고르다보니 산문, 에세이는 몇몇 작가가 아니면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래도 한번은 읽어볼까하는 마음에 오랜 고심끝에 구매했다. 일단 빨간 책방에서 소개하기도 했지만, 꽤 유명하다고 일컬어지던 영미 작가들의 짧은 글들이 있다고 하길래, 또 너무 긴 글들은 찾아서 읽기도 힘들어서,
"천천히, 스미긴하지만..." 내용보기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이라고 적혀있다. 보통은 재미있는 책 위주로 책을 고르다보니 산문, 에세이는 몇몇 작가가 아니면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래도 한번은 읽어볼까하는 마음에 오랜 고심끝에 구매했다. 일단 빨간 책방에서 소개하기도 했지만, 꽤 유명하다고 일컬어지던 영미 작가들의 짧은 글들이 있다고 하길래, 또 너무 긴 글들은 찾아서 읽기도 힘들어서, 여차저차 구매했다.

유명한 작가의 글도 있고 처음 들어본 작가의 글도 있다. 어떤 것은 너무 지겨웠지만, 대부분 읽은 만한 편. 책 제목대로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이 책은 다 읽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몇몇 글을 읽을 때면 <백석 평전>에서의 백석의 수필이 생각나기도 하고. 백석의 글이 더 와 닿았다고 해야할까?
어떤 글들은 수능이나 교양 시험에 나올 듯하기도?

역시나 책이나 글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글 중에 재미있는 것들이 더 맘에 드네. 작가의 유명한 정도를 떠나서.
그러나 감정이 메말랐는지, 아니면 산문보다 소설이 더 좋은 것 때문인지, 아니면 영미 작가의 산문이 낯설어서인지 아주 좋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듯.

힐레어 벨록의 "구불구불한 길"을 읽노라면 김중혁 작가의 단편 "c1 y=:[8]:" 이 떠오른다.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생각의 궤적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주기성이 마음의 경험을 지배한다. 거리는 가늠되지 않고, 간격은 측량되지 않으며, 속도는 확실치 않고, 횟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되풀이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주나 지난 해 마음이 겪었던 것을 지금은 겪지 않으나 다음 주나 다음 해에 다시 겪을 것이다.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 몇몇 성인들의 영혼은 비할 데 없이 단순하고 고독한 삶을 살며 주기성의 법칙을 완벽히 따랐다. 황홀과 적막이 철따라 그들을 찾아왔다. 적막한 시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버리면서 얻으려 했던 모든 것의 내적 상실을 견뎌냈다. 그리고 약속되지 않았던 달콤한 행복이 마음에 빛날 때 행복해했다. 시인도 그들과 같다. 긴 삶의 경로에서 세 번 또는 열 번 뮤즈가 다가와 시인을 건드리고 떠난다. 그러나 성자와 달리 시인은 늘 유순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되찾을 수 없는 황금 같은 시간이 짧게 머물다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다. 떠나고 돌아오길 반복하는 뮤즈가 떠나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는 시인은 드물다. 그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표현할 길은 단 하나, 침묵뿐이기 때문이다. ... 사람은 삶의 주기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거나 늦게, 너무 늦게 깨닫는다. 왜냐하면 경험이 쌓여야 알 수 있는 문제이며 누적된 증거가 없는 탓이다. ... 사람의 일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에 더 미묘한 뜻이 있다는 것을 - 감히 셰익스피어의 말에 의미를 덧붙이자면 - 깨닫는다면 마음에 평화가 있으리라. (pp.81-85, 삶의 리듬, 앨리스 메이넬)


빨간 책방
1부: https://youtu.be/HimKYBptl0I
2부: https://youtu.be/cr17JTCQYC0
YES마니아 : 플래티넘 h******i 2018.05.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