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먹눈
전동균
눈 내리는 밤, 야근을 하고 들어온
중년의 시인이
불도 안 땐 구석방에 웅크리고 앉아
시를 쓰는 밤, CT를 찍어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편두통에 시달리며
그래도 첫마음은 잊지 말자고
또박또박 백지 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
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
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
퍼붓는 주먹눈, 눈발 속에
소주병을 든 金宗三이 걸어와
불쑥, 언 손을 내민다
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잔하고
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
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 그게 시야!
전동균 시인의 시를 대할 때마다, 시인의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늘 정답은 희미하고 멀다. 잘 만져지지 않는 정답을 더듬더듬 하다가 혹시 무당이 아닐까 하는 순진한 생각에 다다른다.(어떤 시집의 속지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서정시인이란 자신의 피를 통해 남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고결한 족속이며 고달픈 족속이라는 말. 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전동균 시인의 시에서는 그런 전통적인 서정시인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포착된다. 유독 삶 내면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많다던가. 또는 삶과 일상의 도처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점이 그렇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있는 무당, 하늘과 인간 사이에 서있는 매개자로써의 영매, 두 모습 다 전동균 시인에게 꽤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란 본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해서 발설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모든 문학의 원류가 무속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
그렇다면 나는 그 경계에 제대로 뿌리를 박고서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늘 불편하고 미안(未安)하다. 다만 한가지. 첫마음은 잊지 말자는 전동균 시인의 말들로 위안을 삼는다. 아득한 그 첫마음과 대면하면 괴로운 시가 조금은 달콤하고 녹녹해지지 않을까? 시를 처음 대할 때의 그 어수룩하지만 막연한 반가움을 잊지 않는다면? 마치 신내림처럼 시가 작두를 타도 아프지 않는 체화된 것이라면 좋으련만.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 그게 시야!’ 과연 내 시가 누구에게 어떤 힘이라도 되었던가? 작은 의미라도 되었던가? 생각하면 자꾸만 아득해진다. 전동균시인같은 사람이 있어서 나는 자꾸만 불편해지고 미안해진다. [인상깊은구절] 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잔하고 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 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 그게 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