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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를 먹는 오후 -김봄
2016년 09월 09일 출간
처음 봤을 때는 아, 쇼코의 미소랑 비슷한 것 같다. 생각했다. [쇼코의 미소]는 2016년 07월 07일에 출간된 책이며 따뜻하고 몽환적인 표지와 같은 따뜻하면서도 무거운 소설이었다. [아오리를 먹는 오후]도 마찬가지로 겉표지가 참 이쁘다. 마치 방금이라도 사과가 튀어나올 것 같은 싱그러움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겉표지만 보고 소설을 밝은 이미지로 생각했다면 나처럼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일 것이다. 쇼코의 미소보다 더 무겁고 폭력적인 언어 선택들로 약간의 불쾌함과 안쓰러움, 고통, 삶과 죽음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대로이다. 소설의 무거운 분위기를 특히나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김영하, 편혜영, 한강, 황정은, 김봄 작가들의 소설을 특히나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리스트에 김봄 작가가 들어온 것이다. 여담으로 항상 느끼는 거지만 민음사 출판사는 책들이 너무 이쁘게 나온다. 나는 아직 [82년생 김지영]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마찬가지로 읽게 된다면 좋아할 것 같다. 겉표지가 이쁘면 속이 뒷받침 해주질 못하는 책들이 많은데 민음사는 그렇지 않아서 좋다는 말이다.

첫 번째 편인 무정. 주인공은 열일곱 살 정도의 소년이다. 엄마와 아버지와 이모와 할아버지, 이진이 등장한다. 해외에 거주하며 여러 번 재혼을 반복하며 생일 때마다 메일과 편지를 보내지만 엄마라 부르기 힘든 남과도 같은 엄마. 엄마가 나간 뒤로 바로 이모한테 맡긴 채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는 아버지. 경제적으로 풍족히 뒷받침 해주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노처녀 이모. 엄마와 닮았다고 항상 윽박지르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버지의 새로운 애인인 트랜스젠더 이진. 그들에게서 정이란 단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담담하게 반어법으로 표현해낸다.
처음 이 소설을 딱 맞이했을 때 이해가 안 갔다. 응? 이게 무슨 내용이지? 그러니까 이모가 어떻고 이진이 왜? 숨겨진 표현들이 많아서 헷갈린 것 같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아, 이 아이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구나. 표현 방법이 서투른 걸 너무 잘 표현해낸 나머지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던 내가 이해를 못 했던 것이다. 소년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아버지와 이진의 관계를 알게 된 후 이진이 찾아왔을 때도 괜찮다, 오해하고 싶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말을 한다. 그러나 행동은 다르다. 자기감정에 의해 나오는 충동적인 행동들은 그가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사랑받고 싶다고 하는 게 보인다.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할 나이에 무정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소년은 안쓰러웠다. 특히, 할아버지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죽어가고 있을 때에도 소년은 영화에 빠져 있었다. 그를 발견한 아버지는 그동안 삶의 걸림돌 같았던 그를 죽어가는 그를 보고 한참을 있었다. 골든타임을 지나 움직이는 아버지를 본 소년은 아버지를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만약 경찰이 더 물어봤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아버지를 두둔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시신이 된 할아버지를 죽어서 시원하다 표현하는 모습이 이중적으로 나오는 모습도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나 또한 둘째라 욕해대고 때리던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주 어려서 돌아가셨다는 말도 이해 못 할 나이였지만) 앞으로는 만나지 못한다는 얘기에 욕을 안 먹어도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나쁜 생각이지만 그땐 그게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림보. 주인공은 형사다. 죽어있는 여성의 입안을 처음 만진 그는 자신의 지하실을 떠올리며 안정을 찾는다. 그는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서로 딱히 간섭하는 것도 없고 관계도 정해진 날에만 가지는 선이 그어져 있는 관계. 둘은 적정선을 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성격이라 결혼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안정을 찾는 공간은 바로 자신의 집 지하실이다. 축축하면서 어둡고, 답답하지만 아늑한 공간에 있으면 그는 묘한 안정감을 얻게 된다. 지하실에 가는 날이면 거의 잠에 빠지곤 하는데, 오랫동안 눈 뜨지 못할까 봐 불안하면서도 기절하듯 잠이 든다. 그리고 땀에 젖어 지친 몸으로 깨어남에 안정을 되찾는다.
나는 지하실이 왠지 모르게 엄마의 뱃속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내의 밝고 활발한 가족들은 얘기가 잠깐이나마 나오지만, 그의 가족사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 그도 [무정] 편의 소년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덜 받았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안정감을 주는 장소는 어렸을 적 자신이 있었을 뱃속과 같은 분위기의 지하실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지하실에 가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며, 그는 되려 불안해진다. 몸이 피곤해지면 바로 떠올라 발걸음이 옮겨지다가도 이러다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세를 놓게 된다. 모녀가 들어와 살게 되면서 상황이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꾸준히 유지해오던 적당함을 지하실의 여자아이가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의 서재에 들어와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되고, 자신의 집을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하는 아이를 아내 또한 싫지 않은지 내버려 둔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는 정해지지 않은 날에 갑작스레 그에게 다가와 눕는다. 그런 아내에 당황한 그는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나중엔 자신도 정해지지 않은 날에 아내의 곁에 눕게 된다.
점점 감정과 교류가 없는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이해 안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별로 꺼내고 싶지 않아 생략한다. 모녀가 세를 들어 산 뒤에도 지하실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그를 계속 잡아 이끈다. 그러다 결국, 그는 모녀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지게 되고, 밝은 빛을 보며 눈을 뜨려 한다. 이 부분에서는 마치 뱃속의 아이가 진짜 세상에 나오는 순간을 표현한 것 같았다. 선을 넘지 않으려 하던 그가 선으로 림보를 하듯 넘어가는 부분을 밝은 빛에서 눈을 뜸으로써 표현해냈다.

내 이름은 나나. 김봄 작가는 이 편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봄의 궁극적인 목표를 가장 잘 나타낸 편이라 생각한다. 십 대 폭주족들에 관한 얘기다. '나나'는 본명이 아니다. 폭주족의 우두머리 격인 수완의 오토바이는 항상 위험하다. 가장 위험한 묘기를 부려 인정받는 그의 등에 "나, 나, 나, 나!" 하며 대담하게 나선 이후로 그녀는 '나나'로 불리게 된다. 그들은 나나가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 다니는지 본명이 뭔지는 궁금하지 않다.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질주하는 것만이 인정받는다.
그런 그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김 반장이다. 표면적으로 김 반장은 위험한 아이들을 위험하지 않게 잡아들이는 것이지만, 그는 나쁘다. 교묘히 아이들을 속여 굶주린 아이들에게 음식으로 미끼를 던진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잡아들이기 시작한다.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다치거나 피를 흘리며 죽어가도 신경도 안 쓴다.
청소년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어른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의 악마가 되어 나타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보다 더 악마 같은 것은 세상이라고 표현해내는 이 소설은 많은 공감이 간다. 절대 악마의 자리에서 내려올 것 같지 않은 아이도 죽음을 맞이할 때는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아닌 엄,까지만 외치다 세상을 떠난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나'는 한 명이 아니다. '나나'는 우리 삶 속에 아직도 방황하며 불완전한 형태로 곳곳에 남아있다.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편이다.

책의 중심이 된 아오리를 먹는 오후 편. 주인공과 엄마, 엄마의 애인인 삼촌이 등장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소녀가 말을 이어간다. 첫 생리가 터진 그녀는 엄마와 삼촌이 있는 방에 들어가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그런 '나'를 엄마는 우악스럽게 끌고 나간다. 그녀의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방문에 난 작은 창문에 푸우 시트지를 붙이는 엄마에게 모성애를 찾을 수 없다가도, 생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는 그녀에게 아프지 말라고 타이레놀을 쥐여주는 엄마는 모성애 그 자체이다. 정작 아이는 아픈 것보다 바지도 안 입은 푸우가 붙여진 창문 때문에 우는 것이다. 아이는 사춘기를 맞아 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보였다.
아무도 없는 오후, 당번이라 늦게 끝난 아이를 태우러 온 삼촌. 그를 보고 엄마 때문에 잠시 망설이지만 이내 타고 만다. 가는 도중에 아이의 눈에는 자기 또래의 남자애들은 가지지 못 한 판판한 가슴 근육과, 팔뚝을 자꾸 훔쳐보게 된다. 삼촌이 말하는 것에 빵빵- 터지며 웃기도 하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기도 한다. 자꾸 엄마가 생각이 나지만 삼촌을 떨쳐내지 못하고 즐거운 시간이라 표현하고 있다. 삼촌은 아오리 사과를 참 좋아한다. 차에서 내려 다리 위에 앉아 아이에게 권하지만 정작 맛있게 먹는 것은 삼촌이다. 사과를 먹는 입을 유심히 보던 아이는 고기를 뜯는 짐승 같다 표현한다.
엄마의 남자친구에 자신도 모르게 호감이 가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는 것을 잘 표현해 냈다. 다리 위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슬쩍- 손을 대는 삼촌이 싫지 않다. 점점 더 과감히 만지는 삼촌과 입을 맞대는 순간에도 엄마를 생각하지만 불완전한 아이는 삼촌이 싫지 않다. 그러다 난간에서 기울어지고 아이가 바라보는 삼촌의 얼굴이 작아지기 시작한다.
가장 소름이 돋았던 편이다. 역시 중심이 될만하다. 소녀는 죽었고, 눈을 감지 못한 채 바라보는 세상과 과거를 얘기하고 있었다. 양쪽의 경찰에 의해 포박된 삼촌과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기절해버린 엄마를 본 뒤 소녀의 눈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천천히 감기게 된다. 무척이나 짧았지만 눈을 뜬 시간은 길었던 그녀의 세상은 겨우 잠잠해진다.

[문틈]은 히키코모리인 소년 이야기다. 잘 사는 부모 밑에서 정말 바쁘게 시간을 쪼개며 공부하던 '나'. 엄마와 아빠의 학업에 대한 극성 탓에 아이는 점점 말이 없어지게 되고, 결정적으로 히키코모리가 된 계기가 있다. 부모님 사이의 걸림돌이던 할아버지와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 하던 '나'는 한국으로 다시 회항해서 돌아온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죽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못하는 할아버지가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어물쩍 넘기려 장난친다 생각한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믿지 않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깨닫게 된다. 그런 그에게 자세한 경위를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장난인 줄 알고 신경 안 썼다 말을 해주지만 사람들은 다른 말을 해주긴 원했다. 그 뒤로 나는 입을 닫는다. 방문을 닫는다.
방 안에만 갇힌 나에게 엄마는 허리띠를 선물한다. 나는 그 선물을 보자마자 엄마에게 욕을 한다. 자신은 허리띠를 매는 바지를 입지 않는 걸 아는 엄마일 텐데, 숨은 의미를 내가 알게 된 것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필요 없는 것이지만 나중에 필요하게 되었을 뿐이다. 처음엔 말도 걸어주던 엄마가 며칠째 말을 걸지 않는다. 음식 또한 깍두기와 김치찌개만 들어오고 있다. 나는 먹지 않는다. 창문에 달린 커튼 봉에 허리띠를 묶어 고리를 만든다.
'나'는 밖을 나온 적이 있다. 아무도 눈치 못 채는 밤에 나와 굶주린 배를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으로 때우게 되고, 아르바이트생인 여자애와 본능에 의한 관계를 가진다. 여자애 또한 그런 나를 밀쳐내지 않는다. 그리고 종종 둘은 만나게 된다. 그러다 나는 여자애가 질리기 시작한다. 마지막이란 뜻으로 했는지, '나'는 여자애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집에 들어온다. 집에 들어와 맞이하는 것은 팔짱을 낀 채 노려보는 아빠였다. 그리고 항상 손을 들어 위협만 해 전혀 무섭지 않던 아빠는 처음으로 허리띠를 풀어 아이를 때린다. 그리고 며칠 뒤 순정이(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여자애의 이름이다.)의 아빠가 찾아왔다.
문틈의 화자는 문을 잠그지 않은 지 오래다. 스스로 방문을 닫고 들어간 것은 스스로의 책임이다,라고 말을 한 아빠와 엄마는 오히려 나를 방 안에 가둔 것이다. 문을 열어 자신을 붙잡길 바라는 마음이 문틈에 엮여 있는데 부모님은 그것조차 외면해 버린 것과 같다. 나는 그래서 생을 마감하려 허리띠로 줄을 만드는데 안타까웠다. 스무 살이 되는 '나'가 한 일들은 욕을 먹고 벌을 받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 짓들이지만 그런 그를 방관한 것은 부모다. 자신의 자식을 악마라 표현하는 부모가 진정한 악마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공부에만 취중 되어 부모님과 1년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웠던 아이는 결국 입을 닫고 방문을 닫고 마음도 닫는다.

절대온도는 가출 청소년 얘기다. 스스로 팸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모여사는 아이들의 얘긴데, 보면 가관이다. 팸을 만든 '미미'라는 아이와 화자인 '만두'가 엮이며 얘기가 진행되는데, 이들은 살인과 방관, 몰상식한 관계와 행동을 일삼는다. 팸을 만든 아이들은 얼마 전 연쇄살인범이 살았던 집에 들어가 모여 살게 되고, 생활비가 떨어지자 원조 교재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타난 남자는 한 명을 납치해가지만 남은 아이들은 그저 지켜만 보고 신경을 꺼버린다. 희고 큰 눈을 가졌지만 모인 아이들 중 가장 뚱뚱한 미미는 사실 임신 중이었단 걸 만두가 알게 된다.
팸의 리더인 강철은 아이들을 맘대로 주무르기 시작하고, 쥬리를 죽이게 된다. 이유는 자꾸 웃어서였다. 나도 초등학생 때 그런 아이가 있었다. 당황하거나 불안하면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리는 아이가 있었다. 쥬리도 그 아이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은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두는 미미와 둘이 도망을 나온다. 도망을 나와서는 셋이 되었지만 말이다.
현실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불완전한 환경이 그들을 더 옥죄여오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요즘은 성인 남성도 무서워한다. 아이들을 무서운 존재로 만드는 건 사실 어른들 아닐까 생각도 하지만, 이번 편은 너무 현실적이라 아이들을 이해하기 싫어지는 편이었다.

오! 해피의 해피는 주인공이 키우는 개 이름이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부도가 나자, 사람들에 못 이겨 스스로 몸에 기름을 붓고 자살을 하게 되면서 엄마와 나는 힘든 세상을 살게 된다. 주인공도 나이가 적지 않다. 이미 결혼도 한번 했다가 이혼한 상태다. 그런 주인공은 모델하우스 알바를 가게 되고, 웬만한 집보다 좋은 곳에 발을 들이게 된다. 주인공은 기면증을 앓고 있다. 종종 그래오던 그녀는 알바를 가서도 쓰러지듯 잠든다. 그런 그녀를 모델하우스의 직원이 그래서는 안되지만 침대에 눕히고 보살펴준다.
그녀의 엄마는 남편을 잃은 후로 어쩐지 어려진 것 같다. 이번에는 아빠의 유산인 낡고 허름한 집을 허물고 새로 지으려 설비업자를 들인다. 해피는 그런 남자를 싫어한다. 설비업자도 마찬가지로 해피를 해피가 아닌 장군이, 이놈, 똘똘이 등등 아무 이름으로 부르며 모녀가 안 볼 땐 발로 차기도 한다. 곧 허물 집이라고 집에 아무 때나 서슴지 않고 들어오는 설비업자를 반기는 엄마나,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 않고 방관하는 그녀의 태도에 내가 되려 불안하고 화가 났다.
결국 집은 콘크리트만 드러낸 채 설비업자와 그를 소개해준 사람들은 잠수를 타 버리고 엄마는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다. 설비업자가 사라진 뒤로 해피도 같이 없어져 목놓아 부르며 찾다가 결국 찾게 된다. 죽은 채로 말이다. 역한 냄새와 함께 내장을 드러낸 해피는 설비업자의 짓이 분명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나도 개를 키우는 입장으로서 책에서 이런 얘기만 나오면 화가 난다.
설비업자가 임대해준 원룸은 두 달이 아닌 한 달이었고, 그들은 무일푼으로 쫓겨날 신세가 돼버렸다. 그녀는 아이가 된 듯한 엄마를 이끌어 모델하우스의 아파트로 데려간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엄마를 씻긴 후 하얗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금세 잠든 엄마에게 행복해? 하며 묻고 잠결에 들은 엄마는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최악의 상황이고 바닥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해하는 둘의 앞날을 걱정하게 되었다. 둘이 부디 아침에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일어나 나갈 수 있길. 둘이 살아나갈 방법을 찾고 다시 일어서길 말이다.

마지막 편인 맨홀. 딸이 엄마를 낳게 되면서 딸의 손에 키워지는 엄마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딸의 엄마가 엄마의 딸인 것인데, 참신하지 않나 벌써부터? 화자로 등장하는 엄마는 어렸을 적, 애인과 동거를 하다 아이를 가지게 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엄마는 '엄마'를 보자마자 때리고 아이를 낳은 뒤 아이를 올케 손에 키워지게 오빠 집에 보내버린다. 어린 그녀를 위한 선택이었다지만 '엄마'는 죽은 뒤 딸의 아이로 환생한 것이다. 여기서 맨홀은 딸의 뱃속을 뜻하는 것 같다.
떨어져 지냈어도 자신과 똑같이 행동하는 딸을 보고 엄마는 동질감을 가지며, 자신은 해내지 못했을 서툴러도 노력하는 모습에 기특하기도 한다. 딸도 아이를 몰래 나았는지, 아빠는 보이지 않고 육아마저도 서툴다. 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욕을 내뱉으며 혼자 두고 나가버리는 딸의 모습에 엄마는 혼자 남겨지고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딸이 나가며 "금방 올게, 엄마" 하며 나가고, 엄마는 자신이 딸을 낳은 뒤 바로 보내질 때도 엄마의 등 뒤에서 "금방 올게, 엄마"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혼자 남은 엄마는 침대에서 떨어지게 되고 다시금 맨홀을 맞이하게 된다. 구멍 속에서 바라본 게 맨홀이 아니라, 빛을 잃어 어둠이 된 맨홀 말이다.
금방 올게, 엄마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딸이 자신이 금방 온다고 아이에게 말을 하는 것과 마치 엄마가 아기로 환생한 걸 알고 있다는 듯 엄마라 부르는 것 두 가지로 의미되는데, 죽음과 탄생의 모호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오리를 먹는 오후처럼 화자는 자신의 얘기를 말로 전할 수가 없다. 자신이 못 이룬 모성애를 자신의 딸이 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기뻐할까, 아니면 슬퍼할까? 몰래 서툴게 키워갈 딸의 앞날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항상 김봄 작가의 소설은 처음엔 이해가 안 간다. 뭐지, 어려운 내용인가? 싶다가도 마지막엔 아, 이래서 이랬구나. 하고 다시금 보게 만든다. 내용이 무겁고 불쾌한데, 그 삶에 빠져들게 되는.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우리들의 현실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앞에 말했던 [쇼코의 미소]와는 같은 무거움이지만 무게의 차이는 훨씬 나가는 듯한 김봄의 소설은 내가 순식간에 읽을 정도로 재밌었다. 모든 편마다 처음은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보는 건 마지막이 그 불편함을 해소해줄 무언가를 던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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