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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라면 한눈에 반해버릴 동양의 과학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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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문학은 독서의 고수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닐까 싶다. 대표적인 중국의 필기서로 《몽계필담》과 《용재수필》을 꼽을 수 있다. 북송 시대 심괄(沈括·1031∼1095)의 《몽계필담》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문예감상과 사회현상을 골고루 기록한 백과사전식 저작물로 중국 과학사 연구의 이정표라 할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국역본은 전체 26권인 <몽계필담> 말고도 <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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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문학은 독서의 고수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닐까 싶다. 대표적인 중국의 필기서로 《몽계필담》과 《용재수필》을 꼽을 수 있다. 북송 시대 심괄(沈括·1031∼1095)의 《몽계필담》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문예감상과 사회현상을 골고루 기록한 백과사전식 저작물로 중국 과학사 연구의 이정표라 할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국역본은 전체 26권인 <몽계필담> 말고도 <보필담> 두 권과  <속필담> 한 권을 같이 수록했다. 남송 시대 홍매(洪邁, 1123∼1202)가 지은 《용재수필》은 마오쩌둥이1976년 9월 8일 임종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은 책으로 유명하다. 

 

역마병이 도진 여행객이 베낭에 꾸리거나 베개맡에 두고 잠들기 전에 읽는 최적의 장르가 바로 필기문학이다. 각 이야기들이 적당히 짤막하고 분야가 광범위하며 여러 번 읽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내가 《몽계필담》을 읽게 된 계기는 중국의 번역가 린추핑(林楚平) 선생의 글을 접하고 나서다. 린 선생이 문화대혁명과 고된 하방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정신적 지주이자 유일한 마음의 양식이 바로 《몽계필담》이란 말을 듣고 읽기 시작한 것이다.  

 

《몽계필담》은 수학·천문역법·기상학·지질학·지리학·생물학·물리학·화학·의약과 같은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경학·문학·문자학·역사고고학·군사·음악·복식·풍속·놀이 등 인문사회과학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총 609개 사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당시 기네스북이 있었다면 기록될 만한 사건과 일화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가령 동양 최고의 활자인쇄술. 나침반 원리와 제작법, 소리공진현상의 검증, 12기력을 최초 제창, 격술광학의 신영역 개척, '석유'라는 단어의 최초 사용. 화석의 연구, 일식 기록, UFO 목격 등이 그러하다.

 

《몽계필담》은 고사(故事)、변증(辯證)、악률(樂律)、상수(象數)、인사(人事)、관정(官政)、권지(權智)、예문(藝文)、서화(書畫)、기예(技藝)、기용(器用)、신기(神奇)、이사(異事)、류오(謬誤)、기학(譏謔)、잡지(雜誌) 등의 범주로 구성되어 있다. 교감이 잘 된 학술용 판본으로는 호도정의 《몽계필담교정》을 추천한다.

 

송나라 학자 심괄은 매우 박학다식한 과학자였다. 그의 자는 존중이고 지금의 절강 항주 사람이다. 송 신종 때 왕안석의 변법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과학사가 조셉 니덤은 중국 과학사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로 심괄을 지목했고 일본의 한 수학자는 심괄을 중국수학자의 모범 및 이상형이라고 극찬했다. 심괄의 학술적 재능은 무엇보다도 전장제도, 수리, 악률에 있지만 아쉽게도 내가 이렇다할 깜냥이 되지 못해 그래도 내가 비교적 자신있게 이해한 인사, 오류, 예문 가운데 흥미로운 일을 밝혀볼까 한다. 국역은 살짝 수정했다. 재판 시에는 보다 나은 번역, 보다 나은 편집이길 바란다. 심각한 번역 오류가 몇 군데 보이지만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인사와 오류

 

《사기》나 《한서》의 열전을 보면 인물의 성격과 기질을 잘 드러내는 압축적인 일화를 담고 있다. 《몽계필담》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열전만큼 상세하지는 않지만 해외토픽기사 수준의 흥미로운 인물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저자가 소개한 인물들 가운데 왕안석, 범중엄, 정위 세 사람의 이야기는 이들의 성격과 인물 됨됨이를 제대로 반영하는 흥미로운 일화를 담고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개혁가 왕안석의 외고집과 고지식함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왕형공(왕안석)은 천식이 있었는데, 자단산의 인삼으로 약을 지어먹어야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이때 설사정이 하동에서 돌아왔는데, 마침 이 인삼을 가져와 그에게 몇 냥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받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를 타일렀다. "당신의 병은 이 약을 먹지 않으면 고칠 수가 없소. 당신의 질병이 사람들을 걱정스럽게 만드니 거절하지 마시고 받으시오." 그 말에 왕안석은 '내 평생에 자단산의 인삼을 먹지 않고도 오늘까지 살았소' 라며 결국 받지 않았다. 왕안석의 얼굴색이 너무 검어 이를 걱정한 제자들이 의원에게 물어보았다. 의원이 말하기를, '그것은 때이지, 병이 아니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의원은 조두를 주며 왕안석에게 세수를 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왕안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이 나의 얼굴을 검게 만들었는데 그 조두가 나를 어찌 하겠는가!"】(상권178-9쪽)

 

【王荊公病喘,藥用紫團山人參不可得. 時薛師政自河東還,適有之. 贈公數兩,不受. 人有勸公曰:'公之疾非此藥不可治,疾可憂,藥不足辭.' 公曰:'平生無紫團參亦活到今日.'竟不受. 公面黧黑,門人憂之,以問醫. 醫曰:'此垢污,非疾也.' 進澡豆令公洗面. 公曰:'天生黑于予,澡豆其如予何!'】(제9권)


어떤가? 괴짜중의 상괴짜 아닌가! 고질병을 치료할 약도 마다하고 세수 같은 사소한 청결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왕안석의 별남과 괴팍스러움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다. 

 

다음은 정치가 범중엄의 인자함과 인문학적 도량을 보여준 일화다.

 

【경력(1041-1048) 연간, 한 근시가 법을 어겼는데 죽을 죄는 아니었다. 그런데 대신들은 죄상이 엄중하여 사형을 내려야 한다고 요청하였다. 유독 범희문(범중엄)만 입을 열지 않았다. 퇴조 때에 범희문은 그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황제를 설득하여 법령의 규정에 의하지 않고 근신을 죽이도록 하면 일시적으로는 통쾌할지 모르지만 군왕으로 하여금 함부로 사람을 죽이게 해서는 안 되네." 동료들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상권199쪽)

 

【慶歷中,有近侍犯法,罪不至死,執政以其情重,請殺之. 范希文獨無言,退而謂同列曰:'諸公勸人主法外殺近臣,一時雖快意,不宜敎手滑.' 諸公默然.】(제10권)

 

다음은 정위의 지략과 기발한 잔머리를 보여준 일화다.

 

【정진공(정위)이 군왕을 따라 순행을 하였다가 그 의식이 끝났을 때, 황제는 자신을 보좌한 대신들에게 상으로 옥대를 하사하도록 명하였다. 당시 군왕을 보좌한 대신은 여덟 명이었지만, 군왕이 도달한 지역의 저후고에는 옥대가 일곱 개밖에 되지 않았다. 또 상의국에 있는 옥대는 '비옥'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그 가치가 수백만 냥에 달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그것을 대신에게 나눠주어 그들 여덟 사람의 수치를 보충하려고 하였다. 정위는 마음속으로 그 비옥 띠를 얻고 싶었지만 그의 관직은 맨 하위에 속하여 자신에게 그 물건이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는 그 일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의 대는 하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은 옥대를 갖고 있소이다. 당분간 그것을 사용하면서 황제의 은혜에 감사할 생각입니다. 경성으로 돌아간 다음에 다시 저에게 하사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 관리는 상부에 이렇게 보고하여 일을 처리하였다. 모든 관원들이 상을 얻었을 때, 정위의 옥대는 손가락 만한 좁은 것이었다. 황제는 머리를 돌려 주변의 신하에게 말하기를, '정위의 옥대는 다른 관원에 비해 너무 작구려, 어서 가서 다른 것으로 교체해 주시오' 하였다. 그 일을 관장하던 관리는 상의국에 비옥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비옥을 정위에게 하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옥띠는 희녕 연간에 다시 내부로 돌아갔다.】(하권 94-95쪽)

 

【丁晉公從車駕巡幸,禮成,有詔賜輔臣帶。時輔臣八人行在祗侯庫止有七帶。尚衣有帶,謂之比玉,價址數百萬,上欲以賜輔臣,以足其數。晉公心欲之,而們在七人之下,度必不及已。乃諭有司,不鬚髮尚衣帶,自有小私帶,且可服之以謝,侯還京別賜可也。有司具以此聞。既各受賜,而晉公一帶僅如指闊。上顧謂近侍日:「丁謂帶與同列大殊,速求一帶易之。」有司「唯有尚衣御帶」,遂以賜之。其帶熙寧中復歸內府。】(제22권)

 

■예문

 

예문편에서는 특히 이 말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시인들이 시를 짓는 것은 인물고사를 표현하는 것을 위주로 삼는다. 그래서 아무리 짧은 소시라 해도 각별한 심혈을 기울여 윤색하지 않은 시들이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열흘을 단련하고 한달을 제련함'이라는 말도 실로 거짓말이 아니다.】(상권 263쪽)

 

【詩人以詩主人物,礦雖小詩,莫不埏蹂極工而後已. 所謂旬鍛月煉乾,信非虛言.】(제14권)


z***a 2012.07.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