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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의 모습이 한국 교회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등지고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를 타는 일이 매우 쉽다. 그건 등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는 나는 이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전거의 속도가 순전히 내 다리가 내는 힘에서 비롯되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 자전거를
타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자전거가 출발하기 전부터 나를 향해 부는 바람이 느껴진다. 그뿐이 아니다. 속도를 내려고 하면 할수록 바람은 지속적으로 방해가
된다. 그래서 전과 같은 힘으로
자전거를 타도 역풍이 불면 순풍이 불 때만큼의 속도로 갈 수 가 없다. 지난 수십 년간 급속한 경제성장과 기독교의 성장은 괘를 같이 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사회의 경제성장과 일치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모두가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갈구 했고, 교회는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한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경제성장이라는 바람이 멈추었다. 아니, 방향은 순풍에서 역풍으로 바뀌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100명 다니는 교회의 교인수가 증가하지 않아도, 교인의 월급 자연 증가분만가지고도 헌금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었다. 지금은
교인의 수는 줄고, 교인의 수입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축복의 메시지는 더 이상 아멘으로 화답 되지 않는다. 한국의 기독교는 그래서 진정한 시험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10만이
넘는 대군 앞에서 기드온에게 필요한 것은 단 300명의 준비된 용사였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 300명을
추려내시고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된다. 교회가 축복을 받기 위한 곳,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곳, 어딘가에 소속할 곳이 필요하여 다니는 모임, 직분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이러한 자기의 필요를 채울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떠나게 될 것이다. 36페이지에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고 얘기한다. 사실, 자살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건 심각한 문제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 역시 자살하지 않았던가? 예수님도 건지실
수 없었고, 건지시지 않았던 자살을 지금 교회가 해결할 문제로 보는 것은 교회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시각은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영접하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세상이 목표가 아닌 하늘의 천국을 향해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이어야 한다. 그냥 그것이 핵심이다. 책의 상당한 부분이 설문 조사로 지금 교회의 문제를 측량하려고 한다. 일단
그림이나 설문조사 그래프에 대한 캡션이 달리지 않아 읽는 것도 불편했지만, 그 의도가 사실은 더 불편했다. 다윗이 인구를 계수하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나라로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있음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다. 매출액이나 시장상황을 점검하고 나쁜 직원은
퇴출하고 좋은 직원을 뽑아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교회의 전략이어야 할까? 기업의
전략이어야 할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기업은 세상 방식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읽는 내내 답답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