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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발전지향적 단계별로 구분해 볼때 近代라는 개념은 기존의 고,중세에 비해서 물질적인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상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각종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인류는 불과 몇백년사이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명화를 이루면서 수천년을 살아온 인류의 삶을 무색하게 하였다. 이러한 물질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면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남녀평등의 개념등 역시 물질적 발전에 못지 않게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近代化라는 대세속에 우리는 물질과 정신적인 양대축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지금도 그 변화는 진행중이다. 우리가 흔히 근대화라하면 바로 서구화 그리고 기독교화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고 타의에 의한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경우는 특히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그동안의 피해를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기위해서 말이다. 외형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낳은 경제적인 발전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 제도적, 문화적인 면에서도 이 땅에 세워졌던 그 어떤 국가라는 개념보다도 확고한 위치에 올라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우리가 여전히 믿고 있는 하나의 종교같은 초월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극히 없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근대화를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서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특히 남녀 평등의 문제(물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패미니스트들도 있지만)는 과거 이나라의 정서적 기둥인 유교(성리학)사상으로 뭉쳐있던 시대에 비해선 상당한 발전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한 근대화의 영향으로 유교같은 낡은 사상의 가치가 부정되고 서구화, 기독화의 정서에 맞는 여성운동이 진정한 근대화의 축으로 인식되었고 또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는 지금 우리가 이룩한 근대화라는 작업의 진행과정이 올바른 도구로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준다. 특히 유교(성리학)에 대한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들 사회발전과 여권신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필자는 감리신학대학원을 나온 기독교인이지자 확고한 패미니스트이지만 유교에 대한 생각을 기존의 여권신장운동론자들과는 사뭇 르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유교를 종교로 인정하고 종교의 궁극인 초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선 영,정조시대 2명의 여성학자를 통해서 유교가 종교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여성주의, 여권신장운동에서 유교가 그 기본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 여성들의 발목을 잡은 유교사상이 어떻게 여권신장의 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종교를 통해서 궁극적인 초월에 이를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권을 제고 시키는 방편이라고 본다. 기독교가 그렇듯이 유교에서도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종교성이란 다름 아닌 聖人之道로 규정되는 일련의 정신적 수행을 뜻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선비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학문세계를 통해 성인지도의 길은 철저한 자기수행과정을 통해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다. 유교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인 修身에서 齊家 治國 平天下에 이르는 과정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다. 즉 자신의 몸을 통해서 수도자의 고행과 같은 의미의 봉제사와 접빈객을 통한 유교 종교성의 초월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뿌리인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깊이 각이되어 있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한집안의 딸, 한남자의 아내, 자식의 어머니라는 삼중고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치 여성운동이나 여권신장을 주창하는 이들에겐 철절히 배척되어야 하는 중세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라는 개념속에 숨겨져 있는 서구화와 기독교화의 몰이해로 인한 우리 전통의 말살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독교의 예배과정과 유교의 봉제사는 그 형식면에서 차이가 있을뿐이라고 생각된다. 예배를 통한 초월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봉제사를 통한 조상의 은덕에 대한 감사는 그 궁극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단지 유교의 종교성은 내면적인 자기성찰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여성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이 마치 근대화의 화신인양하는 자세에 대한 실랄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결국 그 집단의 고유정신을 밑바탕으로 외래사상과의 올바른 접목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이정표를 제시해 줄 것으로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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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남아선호사상 및 가부장적 봉건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유교는 배척하고 바꾸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유교라 하면 여성의 사회진출의 어려움과 남녀의 불공평한 성역할 등 남성위주의 사회를 만들어낸 부정적이고 부조리한 사상 또는 학문으로 생각되어져 오고 있으며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유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이런 유교가 우리사회의 여성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여성주의의 길잡이가 되어준다면, 현대사회의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쉬이 이런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저자는 유교와 페미니즘, 가장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상을 만나게 하여 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유교의 해석과 여성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책은 1부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주의적 탐구’, 2부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 3부 ‘탈세속화 시대에서의 유교와 유교 종교성’의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유교의 종교적 특성에서부터 여성들의 삶 속에서 나타난 유교를 통해 유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여성주의, 기독교와의 만남을 통한 오늘날 우리가 사회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의 길잡이까지 제시해 주고 있다. 1부에서는 한국 고대신앙에서부터 불교, 유교까지 종교문화사 전개속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종교의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대신앙의 경우 생존과 번식이 중요했던 고대사회에서 섹슈얼리티 중심의 여신과 샤머니즘적 여성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숭배된 모성적 생산성 중심의 여신의 모습은 출산을 기피하는 현대 여성에게는 큰 의미를 줄 수 없다. 불교는 우리나라에 전파되면서 기존의 토착신앙과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여성신앙의 중심에는 무교적이고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현세구복적인 경향이 많아 불교에 있어 여성들의 신앙은 비교적 현실을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비교적 불교에 대한 여성의 참여율이 높은데 반해 불교 교리내에서는 여성의 성불을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고대신앙이나 불교와는 달리 종교적 의미에서의 유교는 초월에 관심을 가지며 남녀간에 차별을 두지 않고 성인지도(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성인이 되는 것)의 추구를 지향했으며, 이러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바르게 살고 자신을 갈고 닦아 초월하는 극기복례, 수기안인하면 되므로 다른 종교에 비해 남녀 구분없이 성인지도의 길이 열려있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생각처럼 조선 유교를 거치며 여권이 역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사 속에서 어느 나라, 어느 문화나 거쳐가는 올바른 전철을 밟아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2부에서는 유교가 새로운 여성주의의 바탕이 되어줄 수 있다는 근거로써 두 여성 성리학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은 학문을 닦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인간적 도리로서 부여된 일로 여기며 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여성일지라도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이 가치관에 기초하여 두 여성 성리학자는 결코 남에게 보이거나 입신양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 속의 천명에 대한 순종으로서 학문의 길을 정진하여, 어느 남성 성리학자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이기론과 인물성동이론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정리해 내었다. 이렇듯 독서하고 책을 쓰고 심성을 닦고 자신을 수양하는 일에 전념하면서도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접대하며 어른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거느림에 있어 한 치도 예에 어긋남이 없으며 음식, 바느질 등의 모든 가사에도 최선을 다하여 만물을 살리고 화평을 심는 큰 어머니의 역할을 실천했다. 이러한 여성 성리학자로 인해 기존의 경세(세상을 다스림) 중심 적이던 성리학이 심학화되어 종교성을 띄며 삶과 밀접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두 여성 성리학자를 통해 전통 여성의 재해석이 오늘날 우리의 민족적, 문화인 특수성에 적합한 새로운 한국적 여성주의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현대 여성주의가 주로 기존의 가부장주의 시대와 상황에서 이룩된 가치체계들을 해체시키는 작업에 진력해 왔다면 새로운 여성주의는 다시 재건과 아우름과 새로운 방향 제시를 해주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그 안에 초월적 뿌리를 담지한 자로 여기는 유교는 신화적 성차의 상징을 쓰지 않고도 초월의 존재론적 상징을 제시하기 때문에 남성신 중심 사회에서의 새로운 여성주의로서 제시될 수 있다. 또한 유교는 원래 몸에서 시작하는 공부이고 수행론이다. 두 윤지당과 정일당의 삶에서 엿볼 수 있듯 전통 여성들의 삶은 일반적으로 억압적이고 종속적이었다고 생각되는 것과는 달리, 일상속에서 유교적 수행, 감정과 기질의 단련을 해왔으며 내재화된 초월을 실현화하고자 했다고 새로이 해석되고 있다. 저자는 유교 전통이 가정을 단지 사적 영역이 아니라 공적 의를 실천할 수 있는 자질을 학습하는 장이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왔던 유교 여성들의 삶이 공적 영역에 충실한 삶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유교 여성들의 삶은 종속적이고 억압적이었던 역할의 삶이 아니라 성인지도를 향한 주체성을 가지고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을 갈고 닦으며 가정의 모든 살림을 주관했던 이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유교 여성들의 역할을 포스트 모던적 다중 주체성과 연관지어 봤을 때 조선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차를 인정하고 전통적인 여성의 삶은 산 동시에 시대가 한정하는 역할을 뛰어넘어 친정, 시집과의 관계속에서 뛰어난 멘토, 스승으로서의 삶을 산 다중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했을 때 오늘날의 과도한 경쟁원리와 개인주의, 인간성 상실 속에서 보살핌의 윤리와 어머니 되어주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한국 유교 전통의 여성들이 현대 여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새로운 대안이 되어 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여성주의는 정신적 모성과 마음의 자궁을 이야기하며 남녀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인간적 보살핌의 실천으로서의 모성을 가져야 함을 주장 한다.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유교의 입후제도를 보면, 비록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도 깊은 모자 관계를 형성하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모습 속애서 이러한 보살핌과 연민의 능력을 가진 새로운 여성주의의 어머니 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한국의 유교 전통이 오랜 기간동안 쌓은 역할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으로 평가되어 온 것은 유교가 가지는 종교적이고도 초월적인 차원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유교의 해석과 개신교 교리와의 접목을 통해 현대사회가 가지는 명절, 호주제 등의 유교로 인한 현상들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3부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심오한 성리학에 대한 깊은 배경지식들이 필요하여 쉽게 읽히지만은 않았지만, 내가 유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편협한 사고방식들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서, 책을 읽는데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책이 어려웠던 것이 배경지식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서구적 가치관에 너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니 우리는 너무나도 서구적 가치관에 익숙해져 동양적인 유교를 해석함에 있어서 서양의 잣대를 들이대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가정이 공적인 영역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책 속에서 접했을 때에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도 어느샌가 서구적 가치관에 익숙해져서 가정을 사적이고 중요치 않은 영역으로 여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쟁을 중시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만을 중시하는 서양의 잣대로 해석한 유교는 여성들에게 있어 치명적이고 부조리한 학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종교적이고 동양적인 관점으로 본 유교는 나름대로의 평등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생활한 전통 유교 여성들의 삶 또한 자신을 갈고 닦는 오히려 남성보다도 앞선,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을 살려 성인의 길을 걷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을 한 차례 업그레이드시켜 줄 수 있는 전환점이 되어준 것 같다. 유교가 부조리하고 부정적인 가치로 가득한 타파해야만 할 학문이라고 여기는 분들에게 한 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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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하면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단어 부터 떠오르는 내게,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관점은 매우 생소하였다. 인(仁)을 최고 이념으로 삼아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삼는 하나의 윤리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유교사상에 대해 솔직히 나는, 대한민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막연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은 유교 전통 아래,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오죽하면, 시집가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유교 가부장주의 아래 우리 여성의 삶, 그 중에서도 특히 며느리/아내/아녀자로서의 삶은 그야 말로 '문서 없는 종'에 다름 아니라는게 나의 오랜 고정 관념이었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위와 같은 나의 고정 관념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통해, 그리고 종교라는 다소 생소한 틀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을 돌아 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아주 멀게는, 원시 샤머니즘의 무(巫)교에서 부터, 삼국 시대 불교, 그리고 가깝게는 조선 시대 유교에 이르는 긴 시간과 공간의 광대한 역사적 스펙트럼 속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 듯 흥미롭게 이야기가 펼쳐 진다.
특히 조선 시대 유교의 종교성과 그것이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구체적으로 18세기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사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림 처럼 생생하게 여인의 삶을 반추 한다. 한 시대의 고통과 성과를 보다 장구한 시간과 포괄적인 공간에서 살피고 있는 점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한마디로 스케일이 불록버스터 영화 같다.
어느 부분에서는 저자의 상상과 비약이 조금 지나친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또 결국에는 생각대로 발전하고 이루어 지므로, 저자의 이와 같은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는 항상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기느냐에 따라 180도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으며, 역사에 기대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처럼 한계를 약간 넘은 듯한 저자의 새로운 역사유추, 그리고 생각과 발상의 전환은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준다. 또한 부정 보다는 긍적적인 삶의 요소를 보려는 저자의 시각과 가치관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말 대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의 삶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삶의 제약과 조건들 아래서 시작'되는데, 과도하게 한계와 제약 조건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말이지 그 속에서 나름대로 한계를 극복하고 활동했던 소수의 사람들의 업적과 교훈은 간과 되기 쉬울 것 같다.
무엇보다 종교과 여성을 결부시켜 우리 역사를 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 현 시대 대한민국에서 여성과 종교가 연관지어져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다름 아닌 국민 여배우이자 인기 톱탤런트 였던 최진실씨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신앙인으로서 그녀가 죽음을 스스로 택했다는 사실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력감 내지는 실망감을 느꼈던 것 이다. 나 역시 이를 계기로 종교가 한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종교가 인간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의 깊이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각 개인별 편차가 매우 심한 듯 하다. 한편 역으로 인간 개개인의 삶이 종교를 뛰어 넘어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변화 시켜 나아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 지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상적이고 영적인 세계의 가치를 믿고 성숙된 삶을 사는 초월자 적인 인간이 존재한다는 점 이다.
저자의 참신한 역사유추와 긍정의 힘, 그리고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책의 편집과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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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페미니즘, 언뜻 보면 아주 상반되고 서로 만나서는 안 될 단어들처럼 보인다. 실상은 그렇다. 유교처럼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알았던 학문체계도 없다. 우리 사회가 유교문화권이다 보니 유교에서 바라보는 여성관에 대해서 우리는 은연중에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 유교만 그런가?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여성들을 그저 아기를 낳아주거나, 일해 주는 노예처럼, 더 나아가서는 완롱(玩弄:희롱하다, 마음대로 갖고 놀다의 의미)거리 정도로 밖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사회참여도 많아져서 어느 정도 남녀 동권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불평등한 남녀 관계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게 이 유교라고 하는 사유, 학문, 종교적 체계일 것이다. 이렇듯 물과 불과 같은 유교와 페미니즘의 접점에서 새로운 유교 사상의 해석과 여성에 대해서 탐구한 책이 나왔다. 바로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인데, 저자인 세종대 이은선 교수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또 인접학문을 두루 섭렵하였고 최근 들어, 유교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세속화의 높은 파고 속에서 침몰하고 있는 우리 삶에 ‘초월의 차원’을 제공할 수 있게 하고, 특히 페미니즘 시대에서 여성들이 삶의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리더로서 역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 깊이 천착하고 있다. 고 한다. 사실 책 첫머리부터 충격을 받았던 건 유교와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교안의 여성주의라는 부분을 찾아내 서술한 저자의 놀라운 역량 때문이었다. 읽기기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탐구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 주의적 탐구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 본래의 전통 신앙부터 해서 역사적 맥락과 불교와 유교의 종교문화사속에서 전개된 여성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의미 있는 건 유교보다는 불교를 수용했을 때 여성의 사회 참여율은 높은데, 불교 교리 내에는 여성의 성불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가 쪽도 그렇고, 불교 승려들의 문화에서도 비구니(여승)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서 나이어린 비구(남자승려)에게 예를 갖춰야 하는 게 있다. 반면 유교는 ‘초월’에 관심을 가져서 유교의 이상적 인간의 모습인 성인이 되는데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는데 그 실상은 여성을 가장 억압하는 모습을 드러난다는 것이다. 본래 유교는 누구든지 자신을 수양하여(克己復禮라든지 修己安人)성인이 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유교의 모습은 세계사 속에서 보면 비슷한 모습을 밝아 왔음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2부는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 주의적 조명이라는 제목에서 조선시대 두 여성 성리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두 사람은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으로 ,조선에도 여성 성리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참 낯설게 느껴졌다. 여성이 관직에 오를 수 없던 조선조 이들은 남에게 보이거나 입신양명을 위한 성리학이 아닌 스스로 천명에 대한 순종으로 학문의 길을 정진하였다는 사실은 전통적 여성상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체계를 재고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은 학문과 함께 봉제사 접빈객으로 대표되는(조상에서 제사지내고 손님 접대하는) 당시 조선조 여성들이 해야 할 일과 음식,바느질 등의 가사 등에도 최선을 다한 슈퍼 여성으로서 면모를 보여줬다. 이 두 여성 성리학자를 통해 조선조 성리학은 학문을 닦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인간적 도리로서 부여된 일로 여기며 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여성일지라도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기존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유교는 여성들의 삶은 종속적이고 억압적이었던 역할의 삶이 아니라 성인지도를 향한 주체성을 가지고 공적 영역에서 자신을 갈고 닦으며 가정의 모든 살림을 주관을 강조했고 이런 실증적 증거로 이 두 사람을 들었다. 제3부 유교적 종교성의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 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해서 오늘날의 과도한 경쟁원리, 개인주의, 인간성 상실 속에서 보살핌의 원리-어머니의 마음(불가에서 이야기하는 대자대비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 현대 여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실질적 대안으로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이 만만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읽는 내내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이 무너지는 지적인 즐거움을 만끽 하게 해주는 행복한 독서가 될 것이며, 이 세상을 사는 여성들에게 진정한 여성스러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거라 생각한다. 여성이 바뀌면 남성도 바뀌고 세상이 바뀔 것이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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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교에서 여성주의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낯설다. 왜냐하면 유교하면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서양에서 인간 자신에 대한 자각과 이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계몽주의가 발달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산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 역시 그 이전의 역사를 보면 남성 중심으로 여성을 억압해왔고, 그것을 종교적, 제도적, 윤리적 장치를 통해 공고히 다져왔다. 따라서 이것에 반하여 일어난 여성주의는 당연히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 윤리 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결합되면서 여성운동이 여성의 모성(母性)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도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욱 더 바람직한 인간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p.166)이라고 말하고, 여성운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찾는 길은 ‘여성과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성의 신성한 차원을 다시 회복하’(p.167)는 것에 있으며, 이는 결국 ‘세속화’를 넘어선 ‘종교적’ 가치를 지니는 ‘영적 혁명’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영적 혁명’의 바탕을 한국의 유교에서 찾고 있다. 과연 유교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오늘날 현대 종교현상학의 종교 이해는 어떤 구체적인 인격신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나 성직자 체계의 유무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대신 삶의 진행과정에서 경험되는 성(聖)과 속(俗)에 대한 구별 의식을 그 핵으로 본다’(p27)라고 하여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추구하는 유교도 역시 종교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유교는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인(仁)을 주장했다. 인은 그 글자대로 풀자면 두 사람(二人)을 뜻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교는 원래부터 인간의 문제에 착안하였고 또한 공동체적 가치를 주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로 논의하는 유학은 북송의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 주돈이, 장재 등에 의해 발전하고 남송의 주희에 의해 완성된 성리학(성리학)을 말하고 있다. 도학(道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리학은 그 이전의 유학에 비해 더욱 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하늘(天)이란 존재는 완전무결하며 이 세상의 가장 본원적 원리인 이(理)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이가 각자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성(性)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성이 도덕적 원리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따라서 성리학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었으며, 이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였다. 인의예지의 덕성은 곧 인간 사회의 덕목이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수행 방법이란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그 덕목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성(聖)과 속(俗)이 분리 되어 있지 않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의 법통을 주나라에서 찾았다. 주나라는 이른바 ‘종법(宗法)’에 근간을 둔 제도를 운영하였다. 종법이란 한 집안을 장자인 남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통(宗統)을 세우는 것이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제도를 이은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도 역시 종법 질서를 따랐으며, 그 결과로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은 종속적 지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여성이 단순히 종속적 위치에 만족하고 가정 내에서만 머무르는 존재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써 영, 정조 연간에 생존했던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이라는 두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규중에 갇혀있는 여성의 몸이었지만, 학문을 연마하고 도덕을 수양하여 당시 남성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고, 이들은 며느리, 아내, 어머니, 종부로서 역할을 다하여 모든 이들이 존경을 받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매우 역동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았다’(p.182)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개념으로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기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여성들은 비록 가정에 머물렀지만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통해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면 당시 가정은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면서도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늘날 여성주의가 과도하게 사적 영역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있는 공적 영역의 일을 다시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p.185)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여성 여성주의가 인간성 상실과 생태적 위기, 과도한 경쟁 원리의 적용과 주관주의에 함몰되는 위험 앞에서 다시 ‘보살핌’의 윤리를 찾고, ‘어머니 되어 주기’의 의미를 찾는다면, 바로 한국 유교 전통의 여성들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배려자와 살림꾼으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187)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나가야 할 길은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가’(p.205)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여성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성주의가 과연 보편적인 여성 운동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처해 있는 인간과 여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참고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