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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쓰인 책들이 모두 그렇지만 이 책도 <언어>에 대한 '일반학개론'을 한 책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궁금증을 해갈하기에 딱 알맞은 책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청소년을 위한>이란 '부제'를 단 책답게 '아주 쉽게 풀이'되었으며 다른 개론서처럼 퉁명스럽고 딱딱한 말투가 아니라 진정 <언어>에 호기심을 품은 어린이들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풀어 쓴 노력이 엿보였다.
또 외국의 개론서를 뒤친(번역) 책이기에 당연스럽게 빠져버린 <한국말>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았기에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청소년을 위한 언어학개론서>로 손색이 없다.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으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를 많이 꼽는다. 그만큼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고 <인류의 진화>도 바로 이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에 다른 동물에 비해 엄청나게 불리한 신체적 불리함을 딛고 빠르게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들은 전혀 언어를 구사할 수 없을까? 아니 <언어의 주목적>인 <의사소통>을 다른 동물들은 전혀 할 수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왜냐면 <언어>라는 것이 다분히 <상호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무리(사회)>를 이루는 동물들은 간단하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언어의 발달>은 '지능'과도 밀접하기에 지능이 어느 수준에 이른 동물들이라면 <언젠가는> 다른 동물도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언어를 지금보다 정교하게 발달>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물론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앞선 의문은 <꿀벌이 추는 춤>을 연구하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도 얼마든지 나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이는 다른 동물들의 의사소통도 앞으로 연구를 거듭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뒤처진 의문은 아직도 논란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포유류의 연구인데 현재 훈련된 침팬지는 알파벳을 익힌 것은 물론 2000여 개의 단어를 구사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훈련을 시킨 조련사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을 헤아린 수치일 뿐,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보편적인 언어>를 구사한다고는 할 수 없단다. 예를 들어, 사람은 처음 만나는 언어가 다른 나라 사람일지라도 <체계적인 언어를 구사>하기에 간단한 통역을 거치면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침팬지와 사람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훈련을 시킨 조련사는 <일종의 애정어린 바디랭귀지>를 통해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몸짓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조련사 이외의 다른 사람은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침팬지끼리 사람처럼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진화를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은 현재의 언어구사력으로는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야 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 뿐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는 몇 개의 언어가 존재할까?>, 그렇다면 <인간은 몇 개의 언어나 배울 수 있을까?>, 또 <단 하나의 언어만 쓰는 날이 올까?>, 불가능하다면 <세계공용어를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도 나올 법 한데, 이 책에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책을 읽는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싶다. 나는 스포일러가 아니니까..
언어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구사할수록 드는 의문도 있다. 과연 <힘센 언어>와 <힘약한 언어>가 있어서 <힘센 언어>가 승리하고 <힘약한 언어>는 사라져 없어질 운명인 걸까? 그렇다면 세계 언어 가운데 <한국말>의 위치는 어디쯤이고, 지금 우리 나라에 부는 <영어광풍>은 이런 우려가 시작되는 징조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은 목적도 이런 의문에서 시작되었는데 마침 여기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반가웠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예전에는 <자국어>의 위대함을 앞세우기 위해 여러 모로 고민하고 애를 썼던 모양이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었고, 요즘에는 '모국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여전하지만 학문적으로 볼 때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생각'이라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의견이란다. 그래서 새삼 부각되는 것이 <순수한 언어>가 존재하느냐는 논란이다.
이것도 결론부터 얘기하면 <없다>이다. 왜냐면 사방이 꽉 막힌 고립된 곳이 아니고서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는 끊임없이 서로 문물을 교류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물이 교류되는 한 그 문물과 더불어 <어휘>들도 교류되기 때문에 <순수한 언어>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말도 오래 전부터 중국과 교류하면서 수많은 <한자어>가 우리말에 스며들었으며, 원제국·일본제국 시절에는 각각 몽골말과 일본말이, 해방 뒤 미·소 군정기에는 미국말과 소련말이 들어와 우리말과 섞이었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현재 영어광풍이 불기에 앞서부터 영어는 우리말 속으로 속속 스며들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도 볼 수 있고,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힘이 셀 때는 우리말 어휘를 널리 퍼뜨렸을 테고, 우리가 힘이 약할 때는 다른나라말 어휘가 스며들었을 테니 말이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점에서는 문제가 있는 셈이고, 세계화의 흐름으로 볼 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닥 걱정할 것이 못되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청소년의 외계어 남발과 어휘파괴 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언어도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서 탄생하고 성장하다가 수명이 다하면 소멸이라는 단계를 거친다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소년들의 <은어와 비속어를 즐기는 경향>, 다시 말해, <또래 문화를 즐기려는 경향>이니 그냥 냅두면 저절로 바로 잡히는 것일까? 아니면 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지도를 강화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딜레마를 맞이 하니 말이다. 각설하고, 이 책을 뒤친이(이 책은 원래 글쓴이의 허락을 구해 뒤친이가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말의 사례를 담아 놓았다)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펼쳤다.
딴에는 맞는 이야기이긴 하나, 나는 달리 생각한다. 왜냐면 <또래문화도 정도껏 즐겨야 한다>는 쪽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과거와는 <정보전달속도>가 너무나 다른 환경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또래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은어와 비속어>가 전파되는 속도가 비교적 느린 편이었다. 그래서 쓰이다가 곧 사라지기 일쑤였고, 적은 수가 즐기다가 곧 <사회 언어> 속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한 번 쓰인 언어는 대중매체를 통해 넓게 퍼지고, 인터넷 기반을 통해 빠르게 전파된다. 그래서 한 번 쓰인 은어와 비속어는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며 우리 <사회 언어>에도 강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요즘 청소년들의 어휘구사 가운데 상당수가 <욕설>을 섞은 어휘들이고 청소년들끼리 하는 대화는 결국 은어와 비속어, 그리고 욕설로 도배된 셈이다. 이런 상황을 그저 과거처럼 대하게 된다면 <우리말>은 더욱 빠르게 변하고 결국 <세대간 대화단절>이라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다. 한창 때 즐기던 언어가 평생갈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청소년들에게 <은어와 비속어>를 대체할 <바르고 고운 우리말>이라도 알려주는 노력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수 년 뒤 우리말은 크게 변하고 말 것이다. 우리말이 변하는 것은 대세라고 인정할 수는 있지만 <급속한 변화>로 인한 세대 간 단절 현상은 우리 사회의 병폐현상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본다.
이처럼 이 책은 <언어>에 대한 일반학개론서임에 틀림없다. 청소년들도 부담없이 즐겨 있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쓰여졌다. 그런 점에서는 더할나위 없다. 다만 언어가 순수하기보다는 보편적인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언어의 세계화>도 순리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에는 반대한다. 한가지만 짚고 넘어간다면, 물론 <외래어>는 <외국어>와 달리 우리말 범주에 속하고, <외래어>가 늘어나는 만큼 우리말 어휘가 더욱 풍부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수용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우리말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는가부터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 먼저 만든 것이기에, 우리에게 없는 표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외래어>를 수용하는 일을 말함이 아니다. 우리말로 충분히 나타내고 표현할 수 있는데도 <신비로운 어감>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버린다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 글을 빌어서 어줍잖은 깜냥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자 함도 아니다. 다만 나는 <외국어>를 쓰기에 앞서 먼저 적절한 우리말 표현이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다짐일 따름이다. 난 점점 멍들어가는 <우리말>을 보면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우리말에 힘을 보태고자 <언어학>에 관심을 보이는 것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