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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책을 고를때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그 책이 정말 촘스키가 쓴 책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촘스키와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후자인 경우가 많아요. 이 책도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와 같이 촘스키의 인터뷰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단, 이전 책이 1999년의 인터뷰였다면, 이번에는 2006&7년에 이루어진 인터뷰가 그 근간입니다. 장황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하는 짓(?)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인터뷰 내용에서도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입니다. 물론 중간에 이라크 침공도 있었고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상황도 상당히 변화하기는 했습니다만, 큰 맥락에서 보면 그리 달라진 것 이 없는게 사실입니다. 오히려 미국의 경제정책이 붕괴되기 시작한 2008년 이후에 이루어진 정말 '따끈따끈'한 인터뷰였다면 좀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이 아쉬운 부분이지요. 반면에, 이번 인터뷰에서는 중동, 특히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 조금 상세하고 깊이있게 논의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촘스키翁의 연세를 감안하면 '불량국가'에 필적할만한 신간을 만나보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가능하면 인터뷰의 형태로라도 최근의 경제상황과 관련한 그의 통찰력있는 의견을 보고싶은 바램이 생깁니다. 내용면에서는 조금 덜 신선한 듯한 인터뷰이지만, 풍부한 각주/미주, 깔끔한 삽화와 적절한 주제별 분량 등 편집/구성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우리의 존경하는 지도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이성을 가지고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115쪽
(인터넷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이 흘러넘친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보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세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그러한 정보를 아무렇게나 해석해버려서 완전히 누에고치처럼 편협한 망상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인터넷에서는 광신적 군중 행위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인터넷에서의 이런 군중 행동은 다른 종교적 광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증거나 논리가 없어도 누에고치처럼 오로지 자가발전에 의해 증폭됩니다. - 226~228쪽,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 中
유능한 과학자란 자신이 어떤 정보를 구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가 접하게 되는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필요한 것만을 최소한으로 보는 사람 말입니다. (중략)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지식, 배경에 대한 이해, 세상을 해석하고 걸러주는 장치로서의 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인식능력 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찾아야 할지 알게 되지요. - 227~229쪽,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 中
어떤 국가도 인정을 받기는 하지만 존재할 권리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중략) 세계의 모든 국경선은 정복의 결과입니다. 국경선은 인정될 수는 있어도 정복의 결과로 생긴 국경선의 합법성을 인정하라고, 특히 자기 나라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그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 275쪽, 이스라엘과 미국이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존재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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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근래 들어 새삼스레 그 중요성을 깨닿게 되는 가치들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서로의 상생과 발전을 위한 비판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사회. 그리고 뚝심있게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행동하는 지식인이 존재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유독 요즘 들어 소중하게 느껴진다.
노암 촘스키, 저명한 언어학자이면서 동시에 패권국의 권력,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행동하는 지식인. 냉전 이후, 단극체제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시민이면서도 자국을 사랑하기에 더더욱 따끔한 매질을 멈출 수 없다는 노암 촘스키의 최신 발행본,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를 펼쳐보았다.
이 책은 2006년~2007년까지 노암 촘스키와 라디오 진행자로 유명한 '데이빗 바사미언'과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정리, 발행한 책이다. 책 구성 자체도 데이빗 바사미언의 질문과 노암 촘스키의 대답으로 이뤄져 있다. 때문에 사실, 인터뷰 형식의 서적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자칫 Q&A의 나열로 정리되지 않은 산만한 글을 대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기존의 촘스키 책들과 같이, 역시나 정확한 사례제시와 간렬한 논점으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또렷히 집중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동시에 전파국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지닌 미국. 하지만 세상에 과시하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국익을 위해서 라면 합의된 국제법을 가뿐하게 위반하며 비민주적인 불법행위를 일삼는 미 정부의 정책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미국의 이중성, 아니 현실주의 패권국으로서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그야말로 불량국가를 타파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세계평화 질서유지에 힘쓰는 모범적인 강대국이 아닌 국가 대 국가로 대면하는 세계 무대 위에서의 미국이란, 철저히 자국이익 중심주의로 행동하고 있음을 되새겨주며 노암 촘스키는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좋은 나라,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부신다.
일례로 PART 2. 레바논과 중동의 위기에서 미국은 언제나 중동평화의 정착을 위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다하지만 실상 중립을 벗어난 이스라엘 편들기 정책으로 오히려 중동을 불안의 구렁텅이에 몰아놓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남이 하면 불륜, 자신은 로맨스라는 말처럼 똑같은 행위를 두고 남이하면 불량국가 , 자신이 하면 엄연한 국익추구인 편리한 이중잣대로 세상을 제 손에 움켜쥐고 있는 미국을 다시금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해서, 미국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픈 책이다.
책이 발행된 이후,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밀어부치던 부시행정부가 막을 내리고 새롭게 변신을 외치는 오바마행정부가 들어섰다. 비단 촘스키는 어쨌거나 미국의 국익을 위한 정책의 핵심은 변모할 수 없으리라 진단하지만, 취임 이후, 중동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제스춰를 보낸 오바마이기에, 그리고 미국이 감춰왔던 인권유린의 온상,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린 오바마이기에,
이렇듯 전 공화당 정부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민주당 오바마행정부라서 앞으로의 미국의 대외 행보에 몰고올 변화에 기대를 걸고 싶다. 그리고 역시나, 현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노암 촘스키의 날카로운 시각을 담은 향후 서적도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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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후 조선에서는 명(明)에 대해서 왜군을 무찔러서 조선을 망하지 않게 해주었다고 해서 재조지은(再造之恩: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을 베푼 부모의 나라로 숭앙했다. 그런데 500년 후에 그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다만 그 대상이 명에서 미국으로 바뀐 것만 다를 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미국이란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막아주었고, 경제가 발전하도록 원조해 준 나라이다. 또한 미국은 세계에 정의를 심어주는 경찰국이고 무오류(無誤謬)의 나라, 항상 동경하고 무조건 따라 해야 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과연 미국이란 나라가 그와 같은 존재인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절로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의 주요 수출품으로는 영화, 무기, 달러를 우선 들을 수 있지만 여기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인권과 민주주의’이다. 우리는 그 동안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해왔는가를 잘 알고 있다. 인권 탄압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이른바 ‘독재 정권’을 타파하기 위해서 미국은 참으로 많은 힘을 기울여 왔고, 그 노력은 지금도 쉼이 없다. 다만 문제는 미국이 수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상품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민주주의란 말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렇게 하는 나라는 민주적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나라는 비민주적인 것입니다.’(p.80)라고 촘스키는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하게 국민의 지지를 얻어 성립한 정권일지라도 미국의 정책에 따르고 동조하지 않으면 ‘반민주, 독재’라는 딱지를 붙여서 무력으로 직접 침략하거나 뒤에서 쿠데타를 조종하여 그 정권을 전복시켜 그들이 말하는 ‘민주 정부’를 세워놓는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행하고 있는 대외 정책의 핵심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지난 대통령 부시는 9.11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고, 있지도 않은 ‘대량학살 무기’의 개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라크와 전쟁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이 손실된 것은 물론이고, 이라크와의 전쟁은 직접적으로 유가를 상승시키는 원인이 되어 전 세계적으로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의 저항군에게 수많은 무기를 지원하고 군사 지식을 전수한 것이 바로 미국이었고, 호메이니에 의해 이란 혁명이 성공하자 이라크를 사주해서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이라크에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미국이었다. 이런 모습이 사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미국의 진면모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국민들은 그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정책을 펴는 정권을 지지하는가? 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타국 전쟁터에서 죽어가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 촘스키는 ‘선거제도와 정치체제가 저급한 수준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선거가 없는’ 현 미국 정치 체제는 기본적으로는 ‘독재’라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다양하지만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한 것은 바로 ‘핵문제’라고 촘스키는 말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나라들이 핵을 개발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도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이것에 대해 촘스키는 ‘핵 확산의 원인은 대부분이 미국에 있어요. 미국의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군국주의가 핵 확산을 조장하는 것입니다.’(p.214)라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미국이 기술을 지원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담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역사적으로 미국이 전 세계에서 저질러 왔던 온갖 악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 세계를 보는 관점이 읽기 전에 비해 전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음을 느낄 것이다. 끝에서 촘스키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미국의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인을 비롯한 세계인 대부분은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악행을 마음대로 저지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촘스키는 ‘미국 권력집단의 진정한 성공은 사람들을 서로 분리시켜놓음으로써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해놓았다는 것’(p.280)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국민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원리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 원리를 알지 못하면 결코 세계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첫째, 투키디데스의 원리로서 ‘큰 나라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들이 시키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둘째, 아담 스미스가 말한 ‘국가 정책의 ‘주요 결정자들’ 즉 ‘상인과 제조업자들’은 영국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를 포함해서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가혹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이해관계가 ‘특별히 잘 지켜지도록’ 한다.’(p.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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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길목을 들여다보다
카우보이 복장을 한 심술궂은 아이가 권총을 들이밀고 있는 표지사진은 미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의 흐름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각국의 입장과 이데올로기의 복합적인 상황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그 방향성을 잃은 지 오래다. 더욱이 미국의 이름으로 세계질서는 흘러가고 있는데, 그것마저 여러 논쟁을 일으킨다. 팍스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식대가 되었지만,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니면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반장이 되어야 할 아이가 어느 새 왕따를 괴롭히는 아이가 되어버렸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계는 고집불통 골목대장한테 휘둘리고 있네 하지만 우리는 마구 날뛰는 미국에 대해 그저 관망해야 하는 입장이다. 뭔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없는 그저 세계시민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아브람 노엄 촘스키는 보지 못하는 세계의 흐름을 읽는 몇 명 안 되는 학자이다. 그야 말로 바른 말을 하는 사나이라 할 수 있겠다. 중동에서 아직도 벌어지는 레바논 침공과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 911 이후의 정황, 인터넷에 관한 파급효과 등에 대해 이 책은 말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진상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책은 언제나 충격적이다. 언론을 통제하는 미국의 정치적 전략에 전세계는 우롱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마스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에 결국 폭발한 그들이 진정 가해자인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되는 살벌한 칼날 위를 걷고 있다. 유엔의 국제법도 무용지물이다. 미국은 ‘한다면 한다’ 라는 그 절대적인 힘이 참으로 무섭다. 우고 차베스는 2005년 유엔총회에서 제3세계 동등한 국제무대의 진출을 위한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위한 연설을 했다. 무력에 관한 통제와 에너지 문제에 대하 제시한 그의 의견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른 잣대를 제시하였지만, 미국에 의해 보도에 제한이 걸리기도 하였다.
진실을 찾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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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부시 정권의 공적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잦은 전쟁과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마음껏 펼침으로써 민심을 돌아서게 만들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말이다. 오바마의 피부색이 그의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을 것이며, 민주당이라 하여 전적으로 긍정적인 정치를 펼 리는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해결해줄 희망을 그에게서 발견하길 원하고 있다. 이제 막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한 그이기에 대통령 오바마를 평가하기 위해선 아직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끝났을 때 우리가 바라던 것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오바마가 이루었길 바랄 따름이다. 만약 이런 우리의 바람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옮긴이가 원하는 것처럼 더 이상 촘스키의 저서를 읽지 않아도 될 것인가? 자국을 일컬어 ‘불량국가’라고까지 칭해온 이 대학자의 글은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씁쓸하다. 미국이 100% 옳을 순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깨어질 수 없는 우방이라며 거진 신봉까지 하는 몇몇 정치인들의 모습을 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떠올리곤 한다. 그들의 미국 추종(?)은 나름의 신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기회주의적인 행태일 따름인 걸까? 속내까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난 미국 못지 않게 우리 역시 변화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이 책은 일종의 인터뷰 형식을 띠고 있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인터뷰를 했다고 되어 있는 부분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의 유명한 인터뷰어 촘스키가 품은 생각의 기본적인 큰 틀에는 변화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 번 말뚝을 박았으면 끝까지 제 옳다 믿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뚝심이랄까. 아니, 이는 단순히 양심이나 의지의 문제만으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숱한 세월동안 촘스키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까닭 중 하나는 바로 미국 사회가 그마만큼 변화하지 않고 정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고 집권당이 바뀌는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는 그다지 많은 변화가 없었다. 전쟁을 조금 더/덜 신봉하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조금 더/덜 펼쳐지고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국가 위에 군림하는 제 1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은 여전했다. 만일 우리나라가 그와 같은 노력을 한다면 별다른 파급효과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강자의 위치를 점해온 미국은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제 마음껏 국제법을 어길 수 있었으며, 심지어 선과 악을 해석하는 잣대마저도 뒤바꿀 수 있었다. 한 나라를 불량 국가라 정의하고, 특정 전쟁을 악과의 성스러운 다툼으로 포장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서는 아마도 미국이 유일할 것이다. 실제로도 미국은 그래왔다. 곳곳에서 정당하게 수립된 정권을 테러와 전쟁을 통해 붕괴시켰고 끔찍한 학살을 자행하면서까지 제 통제력을 유지시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미국이 이와 같은 위치를 고수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현재 휘청이는 미국 경제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나아질 것이라고들 하고, 세계 경제를 보았을 때 나아져야만 하지만 가까스로 회생한 미국이 과연 과거와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지는 장담이 어렵다. 유럽 연합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미약하나마 몇몇 국가들의 독자적인 결속 및 움직임도 지속될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이제라도 미국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해야만 한다는 식의 ‘독수리 5형제’ 의식(?)을 버리고 세계와의 진정한 융화를 꿈꾸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변화해야만 한다. 미국 못지 않게 우리에게도 말할 바는 널려 있다. 최근에는 자유로운 표현의 길이 가로막히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마음이 갑갑하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기에 문제가 있으면 공론화시키고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한다. 변화하건 변화하지 않건 일단은 문제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에겐 촘스키처럼 인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치 않는 것 같아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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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9.11은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재앙과도 같았을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함께 전국토를 아우르는 촘촘한 국토안보를 바탕으로 세계를 장악하는 거대한 경제기반의 모든 축이기도 한 미국 본토 그것도 그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이 테러집단에게 유린당한 사태를 마주하며 모든 미국인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곧바로 부시정권은 오사마 빈 라덴으로 대표되는 테러집단에 대해 복수를 선포한다. 그 누구도 무엇이 그러한 사태에까지 이르게 했는지보다는 즉각적인 보복이라는 응징에만 초점이 모아졌을 뿐이다. 물론 미국은 테러집단의 배후로 지목되던 아프카니스탄을 폭격했고 그들의 국토를 초토화시켜 버렸다. 하지만 행동하는 지식인, 자유주의적 사회자라 불리는 노엄 촘스키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 정부 자체가 원인을 제공했기에 테러의 근본적인 책임은 미국정부에 있으며, 미국 정부가 정해진 국제법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그들을 응징하는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 역시도 또다른 테러의 원인이 될 것이라 말하며 극단적이고도 배타적인 미국의 주류언론과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처럼 그는 진실을 말하고 겉으로 드러난 실체의 이면에 주목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어쩌면 그로 인해 그는 지금껏 이렇게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역시 언제나 그랬듯 권력의 선전에 빠져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유일한 그들의 견제세력이었던 소련이 사라진 냉전이후의 세계에서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적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미국은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면에는 철저한 미국의 국익이 우선시되고 있다. 그를 위해 이제껏 미국은 수없이 많은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들의 말에 따르지 않는 국가의 지도자가 있다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까지 그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이스라엘을 앞세워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드는 것을 서슴지 않았고, 오랫동안 라틴 아메리카를 눈물젖은 땅으로 만들었다. 촘스키는 그러한 자신의 나라 미국을 '불량국가'라 매도하며 국제규범이나 국제법을 따르지 않는 미국에 대해 그것 자체가 이미 범죄라 말하고 있다. 책에는 잘못된 미국의 대외정책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의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저자가 바라보고 있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원유는 빠질수 없는 근간이기도 하다. 그 자원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소유로 하는데 있어 미국은 모든 것을 불사한다. 그런 미국에게 아랍 민족주의는 가장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이라크에서 이란에서 그리고 레바논에서 미국은 모든 협상을 무시하고 강경일변도의 대외정책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부시를 '악마' 혹은 '유황독소'라 부르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등장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오랫동안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식민지 아닌 식민지 상태의 나날을 보냈던 라틴 아메리카는 차베스를 필두로 서서히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듯 보여진다. 그가 독재자이건 미국의 표적이건 차베스는 그의 나라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임에는 분명하다. 미국이 앞세운 소수의 권력자들이 국가 전체의 부를 쥐고 있던 패턴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남미의 알 자지라 방송이라 할 수 있는 텔레수르는 그러한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미디어의 독립은 독점화된 국제정보질서를 개선하고 재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촘스키가 말하는 것처럼 세계평화에 가장 커다란 위협을 주는 존재는 이라크도 이란도 북한도 아닌 미국 그 자신일 것이다.
"우리는 한다면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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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이 책을 읽고 덮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정말 자원과 국익을 위해서 미국이 하지 못할 짓이 없구나였다. 물론, 작년 한 해 미국을 바로 보자는 류의 책들을 좀 읽으면서 그동안 무지했던 나의 역사관에 좀 살을 얹기는 했다. 그 책들은 미국이 행한 일들의 이면에 감춰져있던 사실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들추어낸 이야기 들이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해와 설명은 좀 부족한 듯 싶었다. 그래서 미국이 진짜 나쁜 일을 많이 했구나..까지는 생각해도 왜 그런 악행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통찰과 고민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구성이 촘스키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보니, 질문자로서 궁금한 점을 상세하게 묻고, 대답하고, 또 그 대답에 반박하기도 하는 식이라서 하나의 사건을 다루더라도 그 인과관계를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촘스키에 의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원하면 어느 나라나 다 침략한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스라엘의 예를 들자면, 그들은 미국의 지원을 업고 레바논을 침략하고 점령한다. 자기들이 정해놓은 국익에 따라, 자신들의 국경선을 마음대로 넓혀가는 강대국이라는 그들.. 전쟁을 치러야 하는 자신들만의 변명과 구실도 정말 억지스럽다. 책에서 언급된 알란 더쇼위츠라는 사람이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레바논 인구의 80% 이상이 헤즈볼라를 지지하기 때문에 레바논 사람은 누구나가 합법적인 공격물이 될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는 사실에서 나는 기가 찰 뿐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현재는 여기저기 벌려놓은 힘자랑에 이제 진퇴양난에 빠졌다. 점점 미국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만의 세력을 키우는 시아파 문제를 해결하고 이라크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의 앞으로의 행보가 정말 궁금하기까지 하다. 또 하나, 이 책에서 언급된 9.11테러에 대해 그동안 나 역시도 많은 음모론을 접했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진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것에 관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그는 미국이 훨씬 무섭고 잔인한 행보를 하고 있음에도 9.11 같은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에 온 국민의 관심과 에너지를 분산시킴으로써 우리가 더 심각한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9.11이 미국에 의해 자행된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고, 미국 정부 자체도 그다지 강력하게 이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느 정도 그의 말에 수긍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촘스키의 입장에서 보면 9.11 사태는 미국 정부에 의해 행해지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을 어떤 이익과 목적을 위해 이후 수차례 이용하기는 했다는데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이 책을 읽는 한 사람의 독자로써 강대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지만, 평범한 독자 외에 언론인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촘스키가 말한 내용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미국정부에 보조를 맞춘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미디어법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 지금 미국정부와 공조해 철저히 진실을 가린 미국 언론들의 행태를 보니,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우리나라의 미래 또한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혹은 재벌에 의해 통제되고 왜곡되어질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다. 언론과 미디어가 적어도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데 앞장서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지기를 빌어본다. 책을 읽다보면, 강대국들, 특히 그들이 주장하는 국익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부담스럽다. 국익을 앞세워 자신들의 입장을 앞세우는 강대국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논리 등 그들만의 기준과 정의로 합리화되고, 국제질서가 개편되어 버리니까. 이제 미국은 오바마의 시대로 새로운 막을 열었다. 촘스키는 오바마 역시 ‘꿈, 희망’이라는 이미지만을 앞세워 당선된 대통령이기에 기대를 크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오바마가 미국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보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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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보니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첫째 이란, 그 다음이 북한 이란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해 아브람 노엄 촘스키는 말한다. 우라늄을 농축해서 핵무기를 제조한다는 것은 지구상의 인류 전체의 운명이 그것에 달려있다 한다. 이란의 핵 시설에 군사적 공격을 가하는 문제와 더불어 핵 문제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미국이라고 촘스키는 말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강대국으로서 누누히 민주주의라는 것을 말해왔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진실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본인의 나라는 절대 손해볼줄 모르며, 양보 또한 이익의 범위안에서만 이루어질수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란 나라다. 9.11테러 또한 몇 해가 지난 지금도 그때의 희생자들에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에 9.11테러 또한 미국의 자체적인 음모라는 설이 주장되고 있어 많은 관심을 둔적이 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정말 미국이라는 나라는 치가 떨릴정도로 아주 무서운 나라일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설에 불과할뿐 아직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촘스키는 말한다. 이 지구상에서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나 자신도 미국이 상대하던 다른 나라들과의 숨어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깊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분명한것은 미국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듯이 앞으로 변화된 미국의 모습을 내심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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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안 읽히는 책이었다. 내용은 어렵지 않다. 문장도 평이하고 번역도 괜찮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더럽게 안 읽혔다. 북다이어리를 보니 2월 28일에 등록하고 거의 그 즈음에 읽기 시작했던데... 촘스키는 대단한 학자다. 무엇보다 생성문법이론의 창시자이다. 언어학과는 아니지만 언어학관련 교양을 몇 번 들어서 노엄 촘스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언어학 뿐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자기 의견을 말하고 옳지 못한 것을 밝히는 사회학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언어학자로서의 촘스키가 아닌 디번킹을 하는, 사회학자에 가까운 촘스키의 면모를 나타내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미국의 비리(?)를 밝혀낸다. 이 책에는 몇 가지 주요한 주제들이 있는데 가장 큰 주제는 아랍권 국가와 미국과의 대립, 협력에 관한 것이다. 미국은 몇몇 아랍권 국가와는 친 동기처럼 행세하고, 몇몇은 악의 축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란, 이라크가 나쁘기에 악의 축이라고 칭하는 건 아니다. 이란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어서도 아니다! 미국이 비호하는 이스라엘 등의 나라, 또는 전에 비호했던 나라(심지어 이란 이라크도)는 민주주의, 인권과 전혀 상관없는 길을 간다. 독재자가 국민을 탄압하고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준다, 그런 나라들이 자치를 선언하는 순간 '악의 축'내지는 그 비스끄무리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인권탄압은 독재할 때가 더 심했지만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 자치를 하려는 지도자는 독재자로 명명된다.(물론 포퓰리즘의 문제점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영토분쟁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어린 시절, 나에게 이스라엘의 이미지는 순박한 목자의 이미지, 이집트에 독일에 당하고 산 불쌍한 민족의 이미지였다. 기독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커 가면서 그 이스라엘사람들이 똑같이 영토를 빼앗고 토착민들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혼란스럽던지.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홀로코스트. 그러나 그건 사실 조금은 미국의 주도하에 부각되어버린 이미지였다. 물론 홀로코스트는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피해자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줌으로서 팔레스타인을 빼앗고 있다는 점을 희석시키고, 말 잘듣는 군사대국 이스라엘을 곁에 둔다. 동시에 미국이 자행한 인권탄압, 원주민 학살 등이 별거 아닌 것으로 묻혀버린다.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그렇게 아끼고 감싼 것도 어느 순간부터였다는 것! 1967년 전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쓸만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급 싸고 돌았던 거지. 독재니, 학살이니, 인권탄압이니 하는 모든 것들은 실제와 다르다. 그냥 미국 마음이다.
민주주의와 함께, 미국이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질서' 주류 경제학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무역이 모든 나라를 잘 살게 해 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적 빈곤이 갈수록 심해질 뿐이다. (사람들은 절대적빈곤보다 상대적빈곤에 민감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이 말하는 신자유주의와 완전 반대 길을 갔다. 국가주도형산업정책, 보호무역. 실제 신흥공업국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런데 정말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이야말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난리를 치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팔아먹을 때는 신자유주의를 운운하고 수입할 때는 관세를 높게 매기고 자국산업을 보호한다. 미국 기반의 경제학자들은 대체 뭐냐 미국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면서(혹은 무시하면서) 분석하니 그렇게 현실과 동 떨어진 분석이 나오지=ㅁ=! 촘스키는 내내 비판적인 어조를 유지하지만 쿠데타를 원하지 않는다. 밑에서부터의 점진적인 변화, 일반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싶어하며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서평을 읽은 분들은 보니까 꽤 괜찮은 책인데 왜 별이 세 개밖에 안 될까 생각하실 것이다.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이 읽히지 않는 이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이게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인데 글이 아니라고 하면 아이러니지만 여기 저자 명에 노엄 촘스키라고 써져 있는데 아니다. 저자는 데이비드 바사미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은 한 대안 라디오방송의 진행자인데 그는 유명한 학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그걸 정리해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도 마찬가지,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촘스키를 인터뷰하고 그 논의가 책으로 출간된 것. 그러나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무리 인터뷰 내용이라고 하지만 조금 더 현안별로 정리해서 낸다던지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두서없는 문답 형식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글이 아니다. 어떤 일관된 논리와 짜여진 형식을 가지고 나에게 정보를 주거나 무언가를 주장하기위한 좋은 글이 아니다. 그냥 말하는 순서대로 적혀있다. 말이 문자로 옮겨진, 속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촘스키지만 말이다 보니 논리가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또 주제는 이리갔다가 저리갔다가 하고 감정이 격해져 자극적인 어구를 내뱉기도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이 들의 대화를 쫓아가기 어렵다. 이 책이 글인 것 처럼, 또 촘스키가 그것을 직접 집필한 것 처럼 보이게 한 마케팅과 저자 이름... 어떻게 보면 성공이다. 만약에 이게 그냥 인터뷰록에 지나지 않으며 촘스키가 직접 쓴 것도 아니란 걸 안다면 구매하려다 생각이 바뀌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들이 논의하는 현안에 대해 기본지식이 있고 자투리 시간에 부담없이 잡지 읽는 기분으로 읽는다면 이 책이 좋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겐 따라가기 힘들고 논의를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남았다. 일관된 주장과 올바른 논리, 논거를 갖춘 '글'이 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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