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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고 거창하게 물어보기 이전에 나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으로 사니? 나는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또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일까? 마흔 해를 넘겨 놓고도 나는 그 답을,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여전히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도 바쁜지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두려워한다. 어쩜 나는 해답 자체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책 제목이 아주 거창하고 무겁다. 하지만 내용을 확인 하고는 깜짝 놀랐다. 아이들 어릴 때 베드타임스토리로 읽어주었던 철학 동화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읽어 줬던 이야기는 아이들 수준이 맞게 쉽고 재미있게 각색되어 나왔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같다. 모두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던 동화의 일부 같기도 하다. 8편의 이야기 중 몇 가지만 언급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난한 구두장이가 공소 앞에 쓰러진 사람(실은 천사)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내는 처음엔 화를 냈지만 나중에 그를 받아들인다. 그는 구두장이에게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며 그곳에서 살게 된다. 그는 구두를 만들면서 하느님이 낸 문제 3개를 모두 깨닫게 되고 하늘로 올라갔다. 두 번째는 두 형제와 황금에 관한 이야기 인데 동생은 황금을 피해 도망갔고 형은 그 황금으로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하지만 천사는 말한다. 황금을 가지고 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수단에 불과한 거라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 황금을 썼다고 할지라도 황금을 가지고 온 행동 자체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거라고 말한다. 세 번째는 두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루살렘으로 순례 여행을 떠나려는 두 노인은 친구다. 한 친구는 비교적 부유했고(예핌), 한 친구(옐리세이)는 부유한 친구보다는 가난하다. 두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옐리세이는 물을 마시려고 한 마을에 잠깐 들리게 되었고 예핌은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물을 얻어 마시려고 들어간 집에서 옐리세이는 죽음의 냄새를 맡게 된다. 그들만을 놓고 예핌을 따라갈 수 없다 생각한 옐리세이는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들을 도와주고 난 뒤 여행경비가 없자 그냥 집으로 향했다. 예핌은 예루살렘에 도착해 순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온 예핌은 옐리세이를 만나게 되고 친구인 옐리세이가 순례여행은 마치지 않았으나 사랑과 선행으로 신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라 생략하겠지만 딱 한 가지는 언급하고 싶다. ‘지옥의 붕괴와 부흥’이라는 이야기 인데 인간 세상이 왜 끊임없이 혼란스럽고 시끄럽고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지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고, 사랑과 질투가 있듯이 서로 상반된 천사와 악마가 우리 내면속에 잠재되어 있음을 이야기 한다. 사랑을 베풀고 인자한 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타인에 대한 오해와 욕심, 그리고 이기심 등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할 때는 악마와 다를 게 없다. 누구보다 잔인해지고 누구보다 무서워지는 게 인간 아닐까? 독립적으로 선과 악, 천사와 악마를 내세우지만 결국 인간 안에 그 두 가지는 공존하고 있다. 어떤 모습을 더 발전시키고, 갈고 다듬느냐에 따라 선한 인간 혹은, 악한 인간의 타이틀을 달게 되는 것이다.
책은 많이 두껍지 않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쉽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알려준다. 요즈음 아이들은 생각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험 문제 중 ‘주어진 예시를 보고 자신의 처지에 맞게 설명해 보시오.’라는 질문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생은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부터라도 많이 생각하고 사유하게 하는 힘. 길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에 한 권을 다 읽는 것도 좋지만 짧은 단편 하나를 읽고 깊이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삶의 깊이가, 사유의 정도가 더 탄탄하고 탄력을 받지 않을까?
사람은.. 아니 나는 무엇으로 사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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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나에게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사춘기 시절에는 왜 살고 있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다면, 나이가 들면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권력, 경제력, 명예욕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꿈을 꾸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가족으로 인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게다. 어쩌면 나는, 가족으로 인해 살아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푸른숲주니어 <청소년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는 유독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다. 딸을 위해서 구입하기 시작한 시리즈였는데, 학창시절 읽었던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다가오는 느낌, 생각이 너무도 다른 것에 명작 다시 읽기에 매료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학창시절 내게 큰 의미가 있었던 작품은 아니었던 거 같다. 읽어내는 것에 의의를 두었던 시기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산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두게 되는 나이게 다가온 작품이기에 많은 생각을 갖게 된 듯 하다. 이 작품 속에는 8편의 단편이 담겨져 있다.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 등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가져야 할 마음자세가 이야기 밑바탕에 깔려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천사 미하일이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않은 것은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깨달아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답이 담겨져 있다. 톨스토이는 평생에 걸쳐 쓴 단편들의 모든 주제를 통해 그 답이 '사랑'임을 보여주었고, 이 사랑은 기독교적인 사랑, 즉 박애와 관용이라 하였다. 어려운 이웃을 보듬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되어야 함을 일깨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답이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 목적으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죄를 짓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감에 있어 그 근본을 사랑에 둔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으리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톨스토이는 분명 그 답을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진 물음은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사유는 분명 삶을 더욱 깊이있게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된 사랑일 때에만 우리는 진정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사진출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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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의 고전 중 몇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톨스토이의 인생관, 신앙관을 잘 드러내고 있는 여러 단편들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며 던지게 되는 몇가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먼저 톨스토이의 단편 중 가장 잘 알려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신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벌을 받게된 천사가 신으로부터 던져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가게되는 내용입니다.
세 가지 질문은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가난한 구두방 주인 세묜과 아내가 자신들도 가난하고 힘들지만, 벌거벗은 생면부지의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고 거두어준 사랑의 마음을 보고 첫 번째 해답을 얻고 처음 미소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날 죽을지도 모르고 일 년을 신어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 구두를 만들으라고 엄포를 놓고가는 거인같은 손님을 보며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지혜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고 두번째 미소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두방에 찾아온 두 쌍동이 소녀를 데리고 온 여인의 사연을 듣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벌을 받고 쫓겨난지 6년만에, 깨닫고 미소지으며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살피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자기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힘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신사 역시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산 사람이 신을 장화가 필요한지,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슬리퍼가 필요한지 아는 힘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았다. 내가 사람이 되고 나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살피고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의 마음속에 있던 사랑이 나를 불쌍하게 여겨 거두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 뿐, 사람은 오로지 사랑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것이다."
세 가지 물음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단편은 또 세 가지 물음에 대한 것입니다. 한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간, 가장 소중한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신하들에게, 학자들에게 묻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고, 숲속에 살고 있는 은사에게 답을 묻지만 대답은 해주지 않고 밭의 고랑만 파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왕은 은사를 대신해 밭의 고랑을 파며 그렇게 은사와 하루를 보내며 격게 되는 사건을 통해 왕은 세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얻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이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 뿐이라는 것. 그리고 제일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며.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세 가지
우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인생을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 되는 세 가지, 고통스럽고 힘든 인생의 나그네길을 살아가게 해주는 세 가지는 무엇이 있을까요? 성경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나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나의 과거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성경의 예언대로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는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소망이 우리의 미래를 구원해 줍니다. 힘든 인생의 나그네 길이지만 그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정말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에 우리를 버티게 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삶의 현장에 고통을 함께 하는 형제, 자매, 가족, 동료, 이웃이 있기에 우리는 그들이 나에게 주는 사랑으로, 그리고 또한 나의 사랑이 필요한 그들에게 사랑을 나누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로 힘들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나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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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이 글은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 바로 왜 사느냐고 묻는 물음이다. 신의 명령을 거부하던 천사가 있었다. 결국 그 천사는 명령불복종으로 벌을 받게 되었는데 천사가 받은 벌이란 것이 바로 신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세 가지 질문이란 첫 번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두 번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다. 이 세 가지의 질문 중 세 번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잘 살기 위해서라지만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라니, 부모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공부가 필요해서 해야 된다는 마음과 하기 싫다는 마음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결국은 하기 싫어가 이기게 되고, 결과는 심한 꾸짖음과 좌절하는 내 마음을 보는 것이다. 난 왜 이렇게 밖에 안 되는 것일까?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에게 인정도 받고 나중엔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와, 인생이란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처럼 내가 나를 걱정하고 염려해서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오늘도 나는 싫어도 꼭 해야만 하는 공부와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감동받은 글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살피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자기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힘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신사 역시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산 사람이 신을 장화가 필요한지,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슬리퍼가 필요한지 아는 힘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았다. 내가 사람이 되고 나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살피고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의 마음속에 있던 사랑이 나를 불쌍하게 여겨 거두었기 때문이다. p. 51~5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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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철학'이라는 차원높은 단어를 미처 알지 못할 때에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인간세상에 남겨진 천사 미하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를 포함해 총 8편의 단편을 만났다. 부록같은 책 속의 책-교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제대로 읽기]를 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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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중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 <나그네의 선물>이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한참 전에 모임에서 그 책을 이야기하자 한 명이 마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야기랑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그 때는 그 이야기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 비슷하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직접 읽어보니 무엇이 비슷한지 금방 이해가 갔다. 이렇듯 고전은 단순히 과거에 씌어진 작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물론 그 작가가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이어내려오는 것인가 보다.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집에서 표제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온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이 기억력. 그런데 희안한 것은 읽으면 그제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는 점이다. 그러니 다시 읽어도 완전히 새로 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생소한 이야기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어쨌든 읽었던 작품도 있고 처음 읽는 작품도 있는 이 단편집을 읽으며 현재를 생각했다. 솔직히 예전에 톨스토이의 생가 사진을 보고, 또 그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읽고 선입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 부유하니까 아무 걱정없이 글을 쓸 수 있었겠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책상에만 앉아서 노동자를 이야기하고 현실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있는 단편들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현재를 대입하며 읽었다. 이 글이 씌어진 것이 언제인데. 그렇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때로는 비유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지고 한숨이 나온다. 특히 <지옥의 붕괴와 부흥>이라는 이야기는 어쩜 현재와 그리도 똑같은지. 그 글을 읽는 순간에는 현재의 작가가 현재의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톨스토이의 이야기에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기독교적인 사상이 그 이야기에서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다뤄진다. 물론 사상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아주 신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비판한다.
솔직히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종교적이라서 처음엔 그다지 빨려들지 않지만 조금만 읽다 보면 톨스토이의 작품이 왜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지 이해가 될 정도다. 특히 그가 말로만 민중을 외치지 않고 실천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기에 더 그럴 것이다. 비록 현실의 벽에 막혀서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치 성화를 보는 듯한 그림은 몇 점 안 되지만 정성이 느껴진다. 적어도 삽화라고 대충 그리지 않은 것이 느껴져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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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TV에서 추천할 때 유명해졌던 이 책을 읽었었다. 불과 몇 해 전이지만 그때만해도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우화정도로만 생각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올해에는 내가 좋아하는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로 집어든다. 그때와 지금의 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우선,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반발심이 조금은 드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으니 왠지 마음의 정화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야말로 정말 깨달았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 뿐, 사람은 오로지 사랑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것이다. "... 54p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새삼스레 깨달은 진리라고 해도, 역시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우울한 이 사회에도 우리 몰래 다른 이를 위해 살아가는 천사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도.... 사랑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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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톨스토이가 쓴 이야기들을 번역한 책이다. 이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악마적인 것은 차지지만 신적인 것은 단단하다 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세묜이라는 구두장이가 모피외투를 사려고 돈을 꿨던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꿰맨 것도 돌려줘서 돈을 받을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다 돈이 없다고 돈을 안 주고 구두 고친 값만 받고 외상으로 사려고 했는데 외상도 안 되서 일을 하나 받고 집으로 오다가 미하일이라는 하나님에게 벌을 받는 중인 버려진 천사를 발견했는데 모르는 사람이여서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 다시 가서 집으로 데려가서 여러가지 일을 겪는 이야기이다.
세묜은 정말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농부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으려고 했더니 한 농부는 어디를 나가서 아내가 일주일 안에 주인 편으로 돈을 보낸다고 하고 한 농부는 신발을 고쳐준 값으로 20코페이카밖에 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하일은 정말 불쌍하다. 쌍둥이 여자 아이 둘을 데리고 있던 한 여자의 목숨을 살려주려고 하다가 결국엔 영혼을 거두어서 올라가다가 거센 바람이 불어서 그 여자의 영혼만 올라가고 자신의 날개는 부러져서 지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쓴 이야기이지만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 작가인지를 쉽게 알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림책으로도 만들어져있고, 어떤 이야기는 교회에서 목사님이 해주셨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치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말이야~~하고 할머니가 손주들을 눕혀놓고 해주던 이야기같은 따뜻하면서도 권선징악적인 성격이 다분히 들어 있는 이야기들이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요한의 첫째 편지, 제3장 17절 (본문 9쪽에서)
요즘들어 정말 많이 생각나고 나의 삶을 흔들고 있는 말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들이 더 포악하다는 여러가지 다큐멘터리와 정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한 진실들을 어떻게 덥고 하나님 앞에 나갈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 말할수 있을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실까?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너무 떨린다. 더이상 그리스도인이고 싶지 않아지는 요즘이다. 어쩌면 나의 삶은 다른 길을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나의 모습은 전도도 열심히, 기도도 열심히 하는 지역장의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한치 앞도 볼수 없는 풍전등화의 모습이다. 나의 달라진 삶의 방향들을 누구에게 진실되게 이야기할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여러가지 삶의 고뇌들을 톨스토이는 진솔하게 진지하게 글로서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고민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안식을 얻는다. 그래~~나만 힘든게 아니구나~~라고 말이다.
예전에 까뮈나 유명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받았던 위로들이 나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는 구두장이가 만난 천사를 통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삶을 작위적으로 살아보려는 요즘의 세태와 다름이 없다. 사람들이 더 오래 살기 위해서 더 많은 것들을 얻기 위해서 세상을 거스르면서까지 억척을 떠는 모습을 우리는 당연스럽게 생각하고 살아왔고 마침내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병폐가 다가오고 있는지 모든 것들이 잘못되고 난 후에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진실은 언제나 어둠과 밝음 가운데에서 소용돌이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진실은 진실인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한 상태로 항상 숨쉬고 있다. 우리 옆에서 진실이 아무리 '내가 진실이야~~~'라고 외쳐도 우리의 귀는 항상 열려있지 않다.
구두장이 아내와 구두장이에게서 풍기는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악과 선이 그들의 목숨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설정이 아주 틀리지 않다. 글의 무게가 우리를 숙연하게 하고 있다면 그림 역시나 글의 무게에 뒤지지 않는 그러한 무게중심을 지니고 있다. 글의 번뇌가 그림의 번뇌와 오버랩되어 번뇌를 증폭시키고 진실을 더욱더 진실되게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우리들의 깊은 곳을 찌르고 우리 속에 커다란 울림으로 퍼지고 있다. 이러한 인생의 무게를 지닌 글들이 우리 아이들에 나의 삶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람의 삶이란 어떤것인지에 대해서 진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 삶이겠느냐고 자꾸 질문을 던진다.
.......가장 중요한 때는 오직 하나 '지금'인 것이고, 왜 그것이 가장 중요한가 하면 오직 '지금'에 있어서만 우리는 그것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오. 또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것은 앞으로 그와 다시 만나게 될지 어떨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오.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인데, 그것은 인간이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 이 세상에 보내졌기 때문이오. 이것을 마음에 새겨 두시오."
................186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