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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나갈수록 책 선택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습득하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 몇번의 실패를 해보아야만 모든 사람에겐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자리잡게 된다. 그때까지 부단히 읽어야 하고, 무수한 책들과 만나봐야 한다. 독서가 중요하단 얘기를 많이 한다. 요즘 학생들은 예전보단 책을 많이 읽는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린 학생들에게 책읽기의 효용을 적극 홍보하고 권장하는 분위기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점수를 올리기 위해, 요즘 고등학생들은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또 글도 많이 써볼 것이다. 예전보단 그런점에서 학생들의 교양 수준도 높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목적을 위해 책읽기를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는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올바른 방향도 아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대개 이러한 독서열은 식어버리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후엔, 논술이란 말은 쏙 들어가 버린다. 대신 그 자리를 토익이나 토플같은 것들이 차지해 버린다.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독서열은 미국,일본,프랑스는 말할것도 없고 후진적이라 생각하는 중국보다 더 떨어진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마디로 학교를 졸업한 어른들은 책에서도 영원히 졸업한다는 얘기다. 한달에 책 한 권 읽질 않는 어른들이 성인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 주부들도 책을 읽지 않는다. 만약 가정주부들이 일일드라마에 쏟아붓는 시간과 열정을 책에 쏟는다면, 아마 그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본인의 의식이 깨어 있게 마련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이 최소한 잘되고, 잘못된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주부들의 독서열이 높아진다는 것은 나라 전체의 교양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이들과 남편들에까지 옮아갈 것이다.
모름지기 주위에서 교양교육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다. 교양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대학 교육을 받고, 대학원을 이수해서 학벌이 좋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으로만 교양 있는 인간을 논할 순 없다. 교양인을 양성하기 위해선 제도화된 교육만으론 부족하다. 교양 있다는 것은 지적 균형 감각을 가졌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지적 균형 감각은 어떻게 생기는가 ? 보다 많은 이론과 지식, 그리고 실천적인 성품까지를 갖고 있어서 자신의 지식과 이념 자체를 맹목적으로 신봉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을 알고 있고, 그 둘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견해만을 신앙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다 관대하고, 관용적이고, 생각이 열려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독서인구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편협한 인간들이 넘쳐난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 사회 전체가 건강하지 않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요 며칠전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 메인 화면에서 눈에 확 띄는 신간 하나를 발견했다. <인문학 스터디>란 책이다. 부제는 "미국대학 교양교육 핵심과정,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다. 책을 읽는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선택하고 고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옛말에 악서를 읽는것은 시간낭비라고 하질 않았던가. 책을 읽어나갈수록, 그 앞서 내가 읽어야 할 책을 선택하는 독서의 예비적인 행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느정도, 이젠 책의 제목이나 분위기만 보아도 그 책을 내가 읽어도 후회가 없을거란 느낌이 들고, 요즘엔 어느정도 그 예감이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항상,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를 위해 어떤 책을 우선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라고 하는 의문은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그같은 갈증을 해소해줄 좋은 책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이 책은 마크 C. 헨리라는 현대 미국의 학자가 쓴 것으로, 미국 대학에서 "서구 문명 커리큘럼"을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대학 신입생을 위한 가이드를 목표로 집필되었다.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 안내'라는 부제가 붙은건, 이 미국적인 인문학 공부 방향에 수명의 한국 편역자들이 개입함으로써, 한국 실정에 맞는 인문학 학습 방법을 독서목록으로 따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문학의 학습 영역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해 놓았다.
첫째, 문학 예술이다. 이 분야는 고전문학과 고전학, 근대문학과 예술학으로 이어진다. 둘째, 철학과 정치 분야다. 다시 이 분야는 고대 철학 입문과 근대 철학, 법과 경제 편으로 나뉜다. 세번째 역사학에선 고대 로마사, 19세기 유럽 지성사, 과학의 역사를,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 영역인 기독교 사상 편에선 성서를 기반으로 한 1500년 이전의 기독교 사상을 다뤘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 책이 서구문명에 기준을 둔 인문학 공부 방향을 설정한 책이란 점이다. 동양고전 문학과 철학은 여기서 제외되었다. 이것은 이 책의 한계이지만, 보편적인 세계 시민을 기준으로 한 교양인의 양성이란 측면과 인문학이 서양적인 학문으로 인식해 왔음을 주지한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어차피 인문학 공부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며 공부가 아닌가?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동양과 서양의 질문법만 다를뿐, 같은 의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을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며, 그 공부의 기본적인 원전도 고전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여기에 추가로 동양 철학과 문학 작품에 대한 독서목록을 추가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라는 이 책의 부제에 더 적합했을 것이다.
"키케로는 풍자적 재능이 매우 뛰어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아테네로 스며들게 한' 장본인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생물학, 자연학, 천체의 운행 같은 자연(physis)의 움직임을 알고자 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알고자 했다. " p.63 <인문학 스터디>, 마크 C. 헨리
이 책은 체계적인 인문학 공부에 전념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장의 끝부분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인문학 필수 원전과 그에 따른 참고도서 목록이 잘 정리돼 있어서, 그 분야에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한 책의 선택에 길잡이 역할을 한다. 따지고보면, 책읽기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은 어떤면에서 인문학 공부를 이미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용서나 특정 전공의 이론서의 독서를 제외하곤 대개 잡식성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인문학적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또한 그런 면에서 언제나 독서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과 책의 선택에 항상 고민하고 어려움을 느껴왔다. 대개 많은 책을 읽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왔지만, 이 책읽기에 체계가 없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원전과 참고도서들은 그 양이 매우 방대하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들이 비록 한국어로 번역돼 있다 하지만, 실제 읽어낼 수 있는 독자의 역량이란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대표적으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쇼펜하우어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혹은 스피노자의 <에티카> 같은 서적에 도전할 수 있는 독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단계를 밟아갈 필요가 있고, 인문학 공부의 체계가 필요한 법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텍스트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어 방법이 있다. 바로 여러번 읽고 비판적으로 읽는 일이다. " p.123 , <인문학 스터디>, 마크 C. 헨리
노숙인과 제3세계 시민들에게 인문학 정규과정을 습득할 수 있도록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어, 수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한 얼 쇼리스라는 세계적인 학자가 있다. 그의 저서 <희망의 인문학>은 인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겐 너무나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에서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하게 된 사연을 얘기한적이 있다. 소설가로부터 사회비평가, 언론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던 그가 이 독특한 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의 한 중범죄자 여자교도소에서 한 여성수감자와 만나면서부터다.
그 여성수감자는 감옥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철학을 전공으로 대학과정까지를 끝낸 사람이다. 어느날 그녀와 면담하면서 얼 쇼리스는 한가지 질문을 그에게 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습니까 ?"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 아이들(거리의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부유한자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겁니다" 이 답변속에서 얼 쇼리스는 클레멘트코스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이 여성이 말하고자 한 것은 사실, 가난한 자들, 못배운 자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도 인문학을 가르쳐서 그들이 정신적으로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수감여성의 답변이 독특한 것은, 가난을 경제적인 이유들에서 찾지 않고 그들의 인문학적 교양의 부족에서 찾은 것 때문이다. 원인을 그들의 가정환경이나 악한 기질 등에서 찾질 않고, 인문학적 교양과 학습의 부족에서 찾은 것은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코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데 기여했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했던 연설 한 대목은 인문학 공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이 될 것 같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칩니다. 인문학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험한'사람들로 변화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합법적이고 정당한 `힘'을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합법적인 힘이라든지, 민주주의와 같은 것들은 언제나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만, 그런 종류의 위험은 기꺼이 감수할 가치가 있습니다."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 2006년 1월 한국 방문 강연에서
소크라테스나 공자 말씀이 우리 삶에 어떤 보탬이 될까? 예수의 말씀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칸트나 니체의 철학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들이 논한 것은 밥벌이나 돈벌이, 즉 실용적인 학문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존중받고,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법칙과 세상의 근본이 되는 진리를 깨닫는 방법론에 관한 성찰이다.
요즘 대학에서 더이상 인문학은 인기가 없다. 실용적인 학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에 도움이 되는 학문, 평생 잘 먹고 잘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는 학과에 학생들이 모인다. 그래서 인문학의 사망선고가 대학내에서 선포되고 있다. 인류는 과학기술과 경제적인 진보를 이루어냈고 사람들의 삶은 보다 편리해지고 윤택해 졌다. 그것은 실용학문이 현실에 기여한 덕분이다. 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그 결과 실용적이지 않는 모든 것은 소외되었다. 대학에서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은 훗날밥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들의 문명은 행복해 졌을까? 우리 세상은 보다 살기좋아 졌을까? 과도한 개발은 환경재앙을 불러왔다. 얼마전 수많은 희생자를 낸 중국 쓰촨성 대지진은 인근의 댐 건설에 따른 지반의 약화에서 기인했단 보도가 나왔다. 지금도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녹고 있고, 지구 기온은 수십년간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문명의 진보란 넓게 보면 생태의 파괴란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삶을 단순히 편리와 윤택에 두는 실용적인 태도 때문이다. 실용적인 학문으로만 무장한 지식인들을 양성해 내는 대학은 영혼이 없는 개발업자나 장사꾼만 세상으로 흘려 보내고 있다.
영혼없이 살아가던 노숙자를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화시켰던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코스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아직 인문학엔 희망이 있다. 마크 C. 헨리의 <인문학 스터디>란 책은 왜 읽어야만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읽어야만 하는가? 라는, 독자의 고민에 체계적인 독서 목록을 제시하는 것으로 인문학 공부의 시작을 돕는다.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려는 이는 각자의 책장에서 어떤 책을 꺼내들까? 즉, 무엇을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 책읽기가 행복한 모든 이들의 영혼은 지금 이 시간 신선하다. 그들의 영혼은 타락한 세계에 물들지 않으며, 결국엔 부패하고 부덕한 세계에 희망을 공급할 것이다. 건강한 개인, 행복한 가정,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인문학 공부에 있다.
2009.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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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30대 성인이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가끔 미디어나 지면에서 만나는 인물들을 보며 그 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 많은 역사와 철학과 문학들, 마치 너도 알고 있지 않냐는 듯 모두가 당연히 아는 이야기인양 거론되고 인용되는 걸 볼 때, 난 정말 수도 없이 좌절했다.
그리고 나이들고서야 그 모든 것들을 묶어 교양이라 하고, 인문이라 하며, 그것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호기심을 갖고 읽고 듣고 연구하여 그 각각에 대해 자기 의견을 갖는 거라는 걸 알았다.
또한 한탄했다. 10대 시절, 그나마 자유의지로 이끌리는대로 내 지적 호기심이 삼국지를 비롯해서 동양고전과 역사 이야기로 뻗어가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입학식 다음 날 교실에서 삼국지에서 관우가 죽는 장면을 읽으며 주먹을 쥐며 눈물을 흘리던 내게서 삼국지를 빼앗고, 정신나간 아이라고 몰아세우며 다시 교실에서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엄포와 협박을 받았던 내 학창시절의 아픈 기억과 함께 이런 말도 안되는 교육현장의 역사를 말이다.
또, 내 자유의지가 저절로 찾아간 그 독서의 길이 현명한 길이었는데, 입시교육의 칼로 강제로 통제당해 회복하는데 몇 갑절 긴 시간을 쏟아야만 하는 내 개인적 성장의 안타까움도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가만 내버려두면 자유의지가 자연스러게 고급스런 인간의 길을 찾아가게 하건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이러 할 때에, 미국, 영국,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문학, 역사, 철학으로 나뉘는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일치감치 깨닫고 고급 교육의 방향을 인문학적 소양 쌓기에 두었다고 하니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이제야 그 들의 그런 교육 모델을 배우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입시교육 점수내기에 길들여진 교육 공급자와 수급자들의 굳어버린 틀을 깨기란 쉽지가 않아 보인다.
대학은 점점 기술, 기능 연마장이 되어가고, 정작 인간으로 사는데 필요한 인문학은 관심있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알아서 익히고 그 소양을 쌓아야 한다. 그나마도 잘 잡힌 가이드라인도 전무하다.
우리나라에선 고전철학독서를 하자는 중요한 이야기도 '천재적인 두뇌만들기'캠페인 정도로 표현되어야 시선을 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미국 기준으로 인문학 소양을 쌓는데, 이 정도는 읽고 연구하라고 모든 대학의 커리큘럼을 다 정리해 독서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고전 문학에서 부터 종교에 이르기 까지, 이 정도가 지식인의 교양이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플라톤으로 시작하는 고전철학 원전을 들고 머리를 쥐어박아야 하는 것이 제대로된 철학 공부인 줄 알았는데, 기본적인 배경을 이해하고 참고도서부터 시작해 원전을 읽어가도록 하고, 원전도 이러이러한 순서로 읽으면 좋겠다고 제시하고 있으니, 큰 스승을 하나 만난 것 같다. 결국 읽고 새기고 공부하는 건 본인 몫이지만, 길을 안내하는 것이 스승의 큰 역할 아니겠는가.
다만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철저하게 미국 중심 서양 세계관에서 나온 커리큘럼이기 때문에 동양 역사나 철학에 대한 정보는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 제시된 목록의 도서들을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다 쳐도 5~6년은 걸릴 것 같다. 거기데 동양 역사와 철학은 따로 또 길잡이를 찾아 공부해야 하니, 정말 큰 공부는 큰 공부다. 이러한 것을 스무살 넘어서 대학입시 끝난담에 해서야 되겠는가. 초등 고학년 부터 늦어도 중학교 시절 부터 차근차근 생각의 틀이 큰 인간이 되는 공부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이제라도 독서를 장려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논술이 중요한 교육 과제로 대두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하겠다.
하지만, 좋은 가이드를 제시하고 어려워도 고비고비 잘 넘기고 성취할 수 있도록 제도가 잘 이끌어 줘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크기도 작고 얇고 가볍지만, 뜻을 세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더 없이 크고 두툼하고 무거운 과제를 담은 책일 수 있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해 볼 생각이다. 10년 독서면 뭔가 보이지 않겠는가. 열하일기에 나오는 허생원은 10년 책을 읽으려던 의지를 아내의 구박에 못이켜 꺽고 방을 나서지만, 나는 이제 내 10년 독서를 막을 교사가 없는 관계로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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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부의 시작은 겸손함! 엄혹하고 까칠한 공황의 시절.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 몸도 몸이지만,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리하여, 마음의 치유와 치료가 절실한 때다. 주변의 위로와 위안도 좋지만 마음치료를 위해서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말하자면, 마음의 튜닝. 인문학은 그 중심이다. 최근 일종의 트렌드처럼 흩뿌려지고 있는 인문학. 최고경영자부터 노숙자, 수감자들에게까지 파고들어가고 있는 인문학의 향기.
몇몇 청중에게 요즘 가장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명박”이라는 답변 앞에, 강 박사는 그런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과 정치제도에 대해 되묻는다.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제도인가.” 숱한 희생을 거치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행에 따라 그닥 의심한 바 없이 받아 들여왔던 제도.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그것을 되물어봐야 하는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정치공동체로 사는 게 행복한지, 부족사회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한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는 다른 일례도 들었다. 역사를 주로 다루는 한 블로그. 그 블로그는 이른바 ‘환빠’(환단고기에 열광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 매니아)의 허점도 지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환빠’들은 재차 공격한다. “한민족의 위대함을 깎아내리는 자기 비하 아니냐.” 그럼에도 해당 블로거는 다시 반박한다. “위대한지 아닌지 이전에,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 강 박사가 강조하는 지점은 이것이었다. ‘환빠’는 이미 한민족이 위대하는 신념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 “인문학은 사실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한편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근본적으로 사실에 접근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은 우리가 세계를, 사물을, 현상을,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자세와 태도를 뜻하는 셈이다. 개념으로 무장하자는 말. 무개념, 탈개념의 박쥐(주. ‘로꾸거’ 읽을 것)가 활개 치는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문학 스터디》에 대처하는 자세 편역된 이 책은 원서와 다른 면도 많다. 차례도 다르고 편역자들이 새로 쓴 부분도 있다. 한국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려면 필요한 영역들은 따로 넣었다는 것이 강 박사의 설명이다. 6명의 편역자들이 전공과 관심 분야에 따라 카테고리를 맡고 의견을 보탰다. “이 책에는 최신 이론이 담겨져 있지 않다. 그러나 최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내가 1980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30여년 동안 이 나라에서 2년 이상 뜨는 철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유행에 민감한 풍토를 지적함과 동시에 고전이야말로 진정한 옥석임을 강조한 말이렷다. “이 책은 기껏해야 막스 베버와 카를 마르크스가 있다. 서양 현대철학사는 최신 이론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돈 낭비다. 번역의 오류도 많고 연구자가 없어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인문학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 박사는 우선 ‘꼼꼼하게 읽’을 것을 권한다. 한 리뷰어가 ‘다소 독단적인 저자의 선택’이라며 ‘bias(편견, 편향)’라는 단어로 이 책을 평했는데, 강 박사는 “‘논거를 갖춘 확신’을 편견이라고 일컫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논거를 가진 확신이다. 저자인 마크C.헨리는 어리숙하고 띨띨한 사람이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장난이 아니다. 이 책이 얼마나 잘 쓰여 졌는지 봐야 한다. 본문내용만 충실히 읽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가이드라인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문장 하나, 문단 하나에 핵심적 내용이 압축된 예.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서구 문학의 기원이 최고 지배자가 아닌 모범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됨으로써, 서구 문명은 모범적인 황제들이나 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고대 또는 초창기의 문학을 보유한 다른 문명과 구별된다.”(p.37) 우리나라의 주몽이나 박혁거세와 같은 왕이 아닌 장군의 이야기에서 시작함으로써 개인주의에 대한 역사적 전통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강 박사의 설명이다. 이처럼 단어 하나부터 충실한 책 읽기가 이뤄진다면 160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인문학 전 영역을 포괄하고 궁리 끝에 압축적으로 액기스만 뽑아낸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또 이 책은 해당 영역마다 ‘읽어야 할 도서 목록’이 있다. 주요 저자의 핵심 저서를 다룬 ‘원전’부터 개괄입문서, 역사책, 세부주제 입문서와 연구소 등으로 층위가 나눠져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공부의 깊이와 방향에 따라 위에서부터 차례로 잡는 것이 좋겠다. 학문은 정통적으로, 자세는 겸손하게 아직은 ‘인문학자’라는 타이틀이 ‘쪽’ 팔린다는 강 박사는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5년에 걸친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책 한권을 외우면 5년 동안 술자리에서 화제가 마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자 소리를 들으려면 공부를 20년은 해야 한다. 문학, 역사, 철학에서 제1영역을 어디로 잡든 10년을 하고 나머지 두 영역을 5년씩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는 학문은 유행이 아님을 상기시켰다. “절대 유행 따라 읽으면 안 된다. 정통적인 것에 대한 까닭 없는 반항이 있는데, 학문은 정통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통적이라는 것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다. 대학원 등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커다란 주제를 잡아라. ‘자유’, ‘존재’, ‘필연성’과 같은 무시무시한 주제를 다루고 그런 주제를 다룬 가장 잘 된 책들을 만나라. 피카소는 세밀화의 왕이었다. 그것이 있어서 추상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즉, 정통에 대한 추구가 있었기 때문에 창조가 가능했다.” 마크C.헨리도 말했다. “뉴만의 가르침을 상기하자. 시간의 편협함을 피하라. 다시 말해 최신 사유라고 해서 최선인 것은 아니다.”(p.123) 이런 공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강 박사는 선생과 태도를 들었다.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고자 하면 하루 1시간씩 빡세게 공부하고 매주 2매씩 글을 써봐야 한다. 그러려면 선생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선생이 꼭 필요하다.” 이는 책에 나온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대학 교육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두고자 한다면 두 가지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바로 스승과 친구다.”(p.27) 강 박사는 선생의 ‘야단’이 곧, ‘절호의 찬스’임을 강조한다. 선생의 말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공부의 기본이다. “좀 더 도전적인 책을 골라서 써 보라”는 말을 들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책을 쓸까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선생이) 아끼고 사랑하면 야단을 치게 돼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대가리를 밀고 들어가야 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간극을 채우려면 혼자서는 안 된다. 선생에게 배워라. 선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정통적인 학자(교과서)를 찾아라. 간극 때문에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 독학은 안 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드는 것이 인문학 공부다.” 그리고 겸손함. 배움에 있어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 박사는 강조, 또 강조한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정리하면서 읽는 자세 또한 겸손함에서 나온다. 아무리 날고뛰어도 대가들 앞에서는 ‘삽질’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법. “자기 자신을 겸손하고 냉정하게 파악하고 지적인 겸손함에서 인문학 공부는 시작된다. 인문학의 출발점은 곧, 아주 겸손한 마음이다.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모르면 ‘잘 모르겠다’는 소리를 해야 한다.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하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인문학은 그리하여, 개념교육이다. 무개념이 양산된 것은 인문학을 소홀한 결과다. 교양 없는 인간의 잉태. 지금 우리가 처한 공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정책의 실기와 고민의 부족. “어떠한 경제정책이나 경제체제가 적합한가라는 문제에 대한 접근은 단순히 경제적 생산과 분배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특성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p.91) 강연 후기 강연은 즐거웠다. 어쩌면 그것은 인문학의 즐거움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시 인문학을 고민한다. 지금-여기에서 인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 나는, 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어쩌면, 일반 시민들이 공부하고 향유해야 할 인문학에 대한 접근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 “지적 균형감각은 교양교육을 받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열매다.”(p.123) 그리고 이 말, 명심해야 할 것. “인문학 공부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 바를 글로 써서 정리할 때에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p.18, 편역자 서문 중에서) 공부를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그렇다면, 또 이 말. “마음을 어지럽히는 텍스트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어 방법이 있다. 바로 여러 번 읽고 비판적으로 읽는 일이다.”(p.123) “스타가 되고 싶어?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라던 한민관 노브레이크 엔터테인먼트 대표(<개그콘서트>)의 말을 빌자면,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인문학을 알고 싶으면 책을 사~” 인문학,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고? 이 엄혹한 시대를 관통할 지혜를 얻고 싶다고? 16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이 책 하나로, 당신은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문을 열게 될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그랬다. 자신의 무지를 자각할 때에만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책을 펴라. 눈과 귀를 열어라.
마음치료의 의사는 바로, 당신이다.
[YES24 기고 20090227, 말하자면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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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인문학 공부에 입문하려는 이에게 더없이 친절하고 알찬 안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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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만능주의가 세상을 지배했다. 실용적이라 여겨지는 특정 학문에 대한 깊은 선호, 영어 몰입교육 등 현재의 많은 흐름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지만 금전적인 풍족함이 마음의 여유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유는 분명 예전보다 많아졌는데 마음 한 켠이 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영원히 이 땅에 머물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삶을 통해 열심히 긁어 모은 것도 온전한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그 때에 적어도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으며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문학의 숨은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모두가 경시하는, 각 대학별로 정원을 채우지 못해 급급해 하는 분야가 바로 철학을 비롯한 인문과학 분야이다. 그렇지만 몇몇 시도들은 인문학이 여느 학문보다도 내실 있는 분야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던 이들이 삶의 의미를 되찾고, 소유에 집착하던 이들이 보다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눈을 돌리고…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어쩌면 유일한 분야가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 문제는 너무나도 광범위한지라 이를 어찌 대해야 할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반짝 품었다가도 이내 방대한 양에 질려 손을 놓아버리는 꼴이랄까? 학기초 열심히 학습지를 들추었으나 한 해가 끝났을 때 앞만 검게 변해 있는 학습지를 버리는 일과 유사하다. 미국에는 자유전공이라는 게 있단다. ‘~학’이라는 이름으로 얽히지 않은 공부에 대한 수요가 높을 리는 없었다. 학생수도 그러하고 교수진의 수는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 체제가 유지되는 까닭은 왜일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막막하지만 끊임없이 탐구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도전 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문학 공부에서 초심자가 접하는 가장 심각한 오류가 있다. 전문적인 강의에서 교수의 텍스트 해석이 학생들을 압도해버린 나머지, 학생들이 다르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각자 견해가 있으면서도 학생들은 교수의 해석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은 텍스트의 여러 다른 번역판을 참조하면서 거기에 실린 해제들을 읽는 것이다. 이 해제들은 훌륭한 문학정신에 입각해 작성되므로 설사 편견이 담겨있다 해도 다른 해제를 읽으면서 바로잡을 수 있다. -p41,42 미국의 분위기는 우리와는 많이 다를 거라 예상했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 부분은 읽으면 우리라 하여 유별나게 억압(?) 분위기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시험에서의 높은 성취를 위해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시를 읽고 소설을 이해했던… 어린 시절부터 인문학적 사고를 배제할 것을 강요당해온 걸 생각하면 실용을 강조하는 현재의 분위기가 조금은 수긍이 간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책을 읽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지레 겁을 먹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안다는 것은 모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속도를 내어 많은 양을 소화하는 것도 중요할지 모르나 잠시 지체하면서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 속에서 우리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외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수적인 학문이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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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 핵심 커리큘럼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라지거나 다른 과목으로 대체되었다. 학생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4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모든 요건을 이수해 손에 졸업장을 든다 해도 많은 학생들이 당혹감과 불안감을 품은 채 대학을 떠난다.
1. 요약 。。。。。。。
흔히 인문학이라고 통칭하는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각각의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읽어보아야 할 추천/참고 도서들을 소개해 놓은 책이다. 원래는 미국의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 소개되는 책들은 영어 원서들뿐이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각 분야의 번역자들이 추천하는 국내도서들이 함께 실려 있다.
2. 감상평 。。。。。。。
사실 이런 책을 내는 게 쉽지 않다. 필연적으로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반론이 예상되기 때문인데,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워낙에 말이 많은 사람이기도 해서 그렇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일단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벌이며, 상대를 설득(공격)하거나 하는 것이 일상적이니 폭넓은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주로 고전 중심의 스터디 맵을 제시함으로써 이런 난관을 잘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이 작고 얇은 책에 적당한 무게감을 더해준다.
인문학의 위기는 교양의 위기이기도 하다. 실용학문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시 모든 것을 기술로만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말실수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게 된, 교양을 상실한 시대의 단면이다. 이게 단순히 말실수 같은 것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교양을 상실한 사고(思考)는 사회 전체에 그 자체로 사고(事故)를 초래한다.
인문학이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 온 지혜의 보고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인문학을 익힌다는 것은 그가 하고 있는 일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다. 이 작은 책은 그러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공부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썩 괜찮은 도움을 준다. 당장 나도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꽤 많으니 어서 한 권 들고 읽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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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강유원 박사의 관련기사를 보고 구입하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처음에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름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봤으나 도무지 어디서부터 보고 무얼 중심으로 삼아야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서야 어느정도 서양인문학의 개략적인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느낌이다.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자가 있지만 그 중 중요한 맥락이나 흐름..말하자면 중요한저서들을 짚어준다는데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
물론 책 원전 자체가 미국대학을 위한 것이라 동양이나 한국에 대한 것은 언급이 없지만, 현대 교양인들(서양 대학생들)의 사유체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개념어가 19C 서양 철학에 근거를 둔다는 것을 알게되면 이 가이드책을 봐야 될 필요성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책 자체는 가격이나 분량에 맞게 핸드북 형태이지만 분량이 적은 느낌이 든다.
입문서로 적당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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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스터디란 제목에 걸맞는 두께를 상상해버렸던지.. 처음 책을 받고 나서 얇고 작은 문고판 정도의 크기에 좀 놀랐다. 굵은 제목 사이에 인문학 공부 '안내서'란 글자가 그제서야 보였다. 이 책은 인문학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일종의 안내서다. 대학신입생들이 처음 입학해서 받는 Q&A 책자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물론 이 책의 타겟은 특정 연령층이 아닌, 인문학 공부에 목마른 모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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