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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읽다 : 역사학자가 구약성서를 공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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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한국에서 모태 신앙이라 하면, 태어날 때부터 부모 한쪽이나 양쪽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 지칭합니다. 아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교회학교에 다니고, 중고등부, 대학생부를 거쳐 한 성도가 됩니다. 그러나 과연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는 교회에서 성경에 대한 사료적 학습을 얼마나 했을까요?보통 새 신자가 들어왔을 때 교회에선 요한복음을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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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한국에서 모태 신앙이라 하면, 태어날 때부터 부모 한쪽이나 양쪽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 지칭합니다. 아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교회학교에 다니고, 중고등부, 대학생부를 거쳐 한 성도가 됩니다. 그러나 과연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는 교회에서 성경에 대한 사료적 학습을 얼마나 했을까요?


보통 새 신자가 들어왔을 때 교회에선 요한복음을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기적과 사역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룸으로써 '믿게 하는' 것이 목적인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중 사복음서와 바울과 디모데의 서신, 그리고 예수의 형제들의 책을 제외한 요한일이삼서와 계시록은 잘 다루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약 중 모세오경과 욥기를 제외한 성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습니다.


왜냐면 '다소 깊이 들어가야 하는 예언서' 들이라 진입장벽이 높을 뿐더러, 지금의 형식주의에 치우친 교회의 사역(영업?)에는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읽고자 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중역이긴 하지만 여하튼 한국어로 쓰여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를 알기 위해서는 히브리인의 근본인 헤브라이즘이 어떤 것인지 접해야 하고, 교회의 중심축인 중장년층 세대는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차분히 그를 공부해 볼 기회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교단은 '그런 인본주의 학자들의 견해 같은 건 필요없다' 는 식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정말 진리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우리가 찾아 읽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타락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에게도 이미 타성이 되고 종교가 되었을 뿐입니다. 루터가 기존 구교의 7가지 예식 중 세례와 성찬을 제외한 다섯 가지를 하나로 줄인 것이 설교인데 지금 목사들은 어떤 설교를 하고 있습니까. "사업이 잘 되고 자식이 공부를 잘 하고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레토릭은 이제 지겹습니다. 진정 그들이 히브리 제사장의 정신을 계승한다면 가볍고 달콤한 말만 해 주면 안되는게 아닙니까.


저자 박상익 선생님은 은사이신 노평구 선생님께 받은 자료들을 탐독하며 구약의 정신과 예표들을 '두드려 본'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밝히고 계십니다. 구한말 종교지도자셨던 '신앙으로 무장한 선비' 김교신 선생님의 정신이 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낱 혈기왕성한 청년에 불과한 제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세대를 거친 학자의 마중물의 사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제대로 읽읍시다. 히브리 종교를 읽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 만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 분명히 발생하고 기록된 '역사' 를 움켜쥐어 깨달음을 얻는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좌파 지식인의 사회과학적 처방과도 동양 철학과도 다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서남 아시아에서 발생한 서양 철학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나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의 본질을 건드리는 지혜의 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사 중 타이타닉의 make each day count가 있습니다. 헤브라이즘은 단순히 사후 세계를 바라보며 성경 말씀대로 착하게 살자는 게 주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숨쉬는 순간순간이 고대로부터 먼 미래까지 이어지는 영원의 계승이라는 것이고, 아무리 실증주의와 도구적 이성을 신봉하며 인간을 저버린, 결과 중심의 행위가 횡행하는 세상이라도 결국은 역사라는 큰 틀에서 보면 진리의 상실과 회복이 반복되는 진통일 뿐이란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이성에 종속시킨다면 우리의 종교는 신비성과 초자연성을 상실할 것이고, 이성의 원리를 거스른다면 종교는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이성을 배척하는 것과 이성 외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똑같이 위험한 양극단이다." -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본문에서 발췌

y****4 2017.04.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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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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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관점이 매우 다양하다. 자신이 놓여진 상황에 따라 똑같은 구절이라 하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성경읽기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신학전공자가 아닌 다른 전공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성경을 보는가 이다. 이번 성서를 읽다도 이러한 주제에 적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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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관점이 매우 다양하다. 자신이 놓여진 상황에 따라 똑같은 구절이라 하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성경읽기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신학전공자가 아닌 다른 전공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성경을 보는가 이다. 이번 성서를 읽다도 이러한 주제에 적합할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c***b 2016.1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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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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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태어나 지금까지 이 땅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불가지론자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성서와 관련된 책을 직접 찾아서 읽을 확률은? 아마 정말 희박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와 관련된 책을 골랐다면 ‘꼭 읽고야 말겠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독자일 터이다. 나 또한 그런 독자 중 하나다. 다른 문화권에 속해있는 작가의 글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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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태어나 지금까지 이 땅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불가지론자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성서와 관련된 책을 직접 찾아서 읽을 확률은? 아마 정말 희박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와 관련된 책을 골랐다면 ‘꼭 읽고야 말겠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독자일 터이다. 나 또한 그런 독자 중 하나다. 다른 문화권에 속해있는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필연적으로 배경지식의 부재로 탐독할 기회를 놓치곤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엔 서양 고전이 그런 고난을 가져다주는 유형이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서양 역사를 비롯해 그들 문화와 관련된 책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답의 결과로 성서를 읽기로 결심했다.

뉴턴 역학이 세상에 도래한 이후로 세상의 주체는 신의 손길에서 인간의 이성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신이 아닌 인간이 주체가 되어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수치화 시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에 근거 없이 불가지 존재를 믿으라 종용하면 거기에 긍정적으로 응답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현대인들을 숭고한 예배의식 앞에 불러들이려면 그들의 이성에 납득할 만한 무언가를 내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판단의 척도가 되는 이성은 역사라는 객관적인 사실 앞에서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인류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며 시도 때도 없이 현실로 끌려 나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장치로 사용된다. 이 책 또한 이를 잘 활용해 성서 입문서로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저자는 구약 성서를 역사학자 관점으로 해석해 객관적인 사실을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신이 있다고 믿는 시대에서 인류를 지탱한 공통된 정서에 초점을 맞춰 한국 사회의 게토가 된 기독교가 어떻게 스스로 정화조 역할을 할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은 전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 정서이자 윤리의 뿌리가 된 도덕으로, 인간의 긍정적인 정서를 고취해 기독교의 뿌리가 근본적인 가치에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사실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욕망 또한 포함되어 있다. 지금의 사회를 보면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욕망인 게 현실이고 도덕적 정의 실현은 인간이 꾸며낸 허구이지 않을까 싶다. 인류는 그 사실을 과학이 신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알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그들이 고귀하다고 여긴 가치들을 세상 곳곳에 파편처럼 남겨놓았다. 인간의 빛나는 이성이 어둠에 물들고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고독하게 만들 때 꿈과 같은 허구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게 말이다. 21세기에서 신을 말하고 도덕적 가치를 논하는 행위는 바로 이런 의미다(테리 이글턴). 종교적 담론은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지만, 우리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고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형이상학적 예술의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성서를 읽다>에서 예찬한 도덕적 가치는 실제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위치에서 비종교인과 종교인을 정서적으로 이어준다.

최근 한국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나는 신이다>로 시끌벅적하다. 한국 사회 곳곳에 사이비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어서 피해자가 위협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을 신으로 내세우는 사이비 종교가 실재하는 사회에서 기독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함께 병들 뿐이다. 불교 문화권에 속한 대한민국에서 이런 아이러니한 체계가 나타난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낭랑한 목소리가 잠깐 울려 퍼지던 시기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에게서 목소리를 빼앗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은 정의를 외치는 이들을 짓밟고 약한 자들을 착취해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실현하고자 한다. 상상 속 유토피아가 현실의 문명과 결합하면 얼마나 파괴적인 위력을 일으키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로 알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뿌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찰되어야 할 때다.


지금의 기독교와 사이비의 병패는 우리 모두에게 정도는 다르지만 책임이 있다. 이럴 때, 예언자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시대로 돌아가 그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어떨까?

d*******8 2023.03.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