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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자기계발은 오늘의 에세이. 오늘의 에세이는 내일의 자기계발서. 뚱한 공상으로 교보문고안을 빙빙돌던 중 묘한 시선을 주는 표지를 보고 책을 집었다. 꼿꼿한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시선이 “이 시대의 삶을 짊어질 수 있는 울트라 캡숑 근력 강화제 제조법의 비밀!”이라고 외치는 것이 이 시대 응원의 정석. 그런데 ‘표류기’라는 제목을 달고 응원을 하겠단다. 나 원참.
정신없이 글자를 따라갔다. 솔직하다는 말도, 노골적이라는 말도, 그의 글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생각나고 떠오르는 그대로를, 읽는 사람의 마음에 고스란히 비춰준다. 어쩜. 마치 글과 편안한 수다를 떠는 기분이다. 이 글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잘은 모르겠다. 그냥 진짜 응원이라는건 이런거다 싶다. 편안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는 “나처럼 잘해봐”라고 말하는 척추 꼿꼿한 친구가 아니다. 근력 강화제 따위는 사양이다. 소주한잔이면 되지.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내이야기를 하고 니이야기를 하며, 너도나도 그렇게 살아가니, 살아가야하니, 서로의 잔을 부딪치는 그런 친구. 그의 글은 그런 친구와도 같은 글이다.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시간은 그런 친구와 조근대다, 잔을 기울이다, 소리를 지르다, 흥분을 하다, 낄낄대고 넘어가기도 하는...그런 시간이다.
지금 나의 세계는 흉흉하다. 세상도 흉흉하다. 그의 세계도 흉흉한 듯 싶다. 그가 보는 세상도 흉흉하다. 글자가 들썩들썩 거린다. 만지면 뜨거워 데일것만 같다. 다른 누구가는 알까. 애써 발을 떼면서 한권 더 집어 들었다. 공감하고 싶다. 소통하고 싶다. 힘이 되고 싶다. 고맙고, 친근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이 리뷰를 써내려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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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기억하고 있던 이름의 기자라, 책이 나왔다기에 별 생각 없이 구매했어요. 그런데 배송오자마자 정말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네요. 이렇게 속도감 있는 글을 본 게 얼마만인가 싶습니다. 지면에서 읽었던 기사도 있지만 그보다는 앞부분의 개인사가 정말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습니다. 아프게도 하고, 웃게도 하고,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필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문장의 맛이 각별합니다. 전에 본 적이 없는 화법입니다. 누구의 도움이나 원조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니, 앞으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오랜만에, 리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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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는 '건설'되는 것으로는 모자라며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지는 새로운 사회에 걸맞는 구성원들이 '생산'됨으로써 가능하다. 국회를 만들고, 인권위를 만든다고 민주주의가 되는게 아니다. 대기업 살리기가 경제 살리기로 여겨지고, 형님과 동생이 엄격히 구분되는 분위기에서는 비정규직을 위한 입법이 힘들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이뤄지기 힘들다. 궁극적으로 세상은 사람이 바뀌어야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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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언제 처음 보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첫 인상은 '연예인 할 외모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지?'였다. 찢어진 눈, 시니컬 한 표정과 말투. 나이도 어려 보이진 않으니 뭔가 있지 않고서야 방송에 나올 리는 없다 싶었다. 훗날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스스로를 글쟁이라 칭하는 방송인 '허지웅'씨 얘기다. 당시에 그의 글을 본 적이 없으니 내가 받은 인상은 오롯이 그의 외모와 화술에 기인한다.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일단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또 하나 외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나랑 비슷하다는 점에서 느끼는 동질감도 한 몫 했다. (생김새가 아니다.) 이 책은 순전히 작가의 이름만 보고 집어 든 책이다. 무려 2009년에 출간된 오래된 책임을 읽는 중간에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작가의 나이 서른 살에 집필된 책이다. 이 책 분류가 에세이로 되어 있긴 한데 내 생각엔 사회문화 비평 쪽으로 갔어야 되지 않나 싶다. 개인적인 내용들도 담겨 있지만 사회문화 비평이나 영화 평론 관련 글이 훨씬 많고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 같은 서민들이 살아가기엔 우리나라 사회가 녹록하지 않을 뿐더러, 서른 살의 나이는 사회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데 책임질 것들이 늘어나는 시기이니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싶다. 게다가 책 속의 내용을 보면 그 시절의 그는 고시원, 반 지하를 전전해야 했고 삶이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기에 가볍게 던지는 듯한 글 속에서도 은연중에 냉소와 분노, 슬픔이 담겨있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7년이 지난 지금의 사회는 책이 쓰인 당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 씁쓸한 현실이 무려 7년이나 지난 책을 보며 공감하며 집중할 수 있었던 원인일 것이다. 책 속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MB 정권이 집권했던 시기이다. 정치적인 문제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시끄럽기 그지 없었던 시대다. 개인적으로는 이 나라 민주주의가 한참 뒤로 후퇴했다고 여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진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작가 입장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불합리함과 비정상적인 담론들로 가득 차 있던 사회였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글에 놀라는 한편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가 서른 살에 사회를 바라보고 사유했던 깊이만큼도 현재의 내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 어느새 '이런 게 세상이야'라는 보통 어른들의 사고를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 같은 어른들이 늘어가면 사회는 비판의 기능을 잃어가는 것이고 이 변화는 소수의 부류들이 좋아할 만한 현상이다.
물론, 그가 말했던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글이 좋은 것과 의견의 일치는 별개의 문제니까. 사랑에 관한 얘기라던가 자살 시도와 관련된 내용, 군대시절과 직장생활 관련 얘기 등은 '지극한 개인사니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간다. 젊은(?)이의 감정적이고 저돌적인 발언들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이 뚜렷하고 다소 민망할 수 있는 얘기들까지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회 비판과 관련된 얘기는 다시 한 번 읽어보려 한다.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으니..) 문득 궁금함이 일었다. 현재의 허지웅은 굉장히 잘 나가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고시원, 반 지하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본인의 삶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리라.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많이 유해진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촌철살인의 독설보다는 방송을 위한 자극적 멘트들이 늘어가는 것 같음은 내 착각일까. 방송이라는 특성 때문에 애써서 그리 하고 있는 것일까. 진보적 화두를 다루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었고, 반지하실에 작은 에어컨 하나 샀다고 우파로 변질되었다는 소리를 듣던 그 사람은 과연 그대로일까. 환경이 바뀌니 사람의 소신과 시각이 바뀐 것일까. 지금의 그에게 그 시절에 비판했던 사회주제들에 대해 한 번 묻고 싶어진다.
여전히 나는 그를 좋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내가 그의 변화를 샅샅이 좇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당시 그의 글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 냈고, 팬을 만들었다. 당시의 글(이 책 속에 묶인)은 현재의 내 가슴도 울렸다. 2014년에 출간된 '버티는 삶에 관하여'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핏 보니 동일한 내용을 가져다 쓴 것도 있는 듯하지만 역시나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후의 그의 생각, 그의 글이 궁금하다.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고 그의 말 한마디가 이슈거리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과연 당신은 스스로가 말했던 마초가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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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날카로운 글들이 있다. 허지웅의 ‘대한민국 표류기’를 중간에 이르렀을 때 그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뭐 이리 치기어린 글들이 있나 하는 생각도 했다. 기성세대와 다른 것을 강조하는 폼이 불편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그의 뾰족한 면에서 풍겨져나오는 간지어린 매력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한번쯤 귀 기울여야 하는 그런 말이라고 해야 할까. 우석훈의 이 책의 끝에 이런 말을 써놓았다. “만약 지금의 20대가 부모로부터 정신적이고 또한 물리적으로 독립하면 어떻게 될까? 허지웅이 된다.”라고 하는데, 동감이다. 알면 알수록 빠지게 되는 남자 그리고 글. 허지웅, 만나서 반가웠다.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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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허지웅'이란 작자.. 그가 진짜 싫어한다고 말했던 '성시경'때문에 인식했다. 알.았.다.고 표현하기엔.. 그는 생각보다 꽤나 유명인이었다. 미처 몰라뵈어 죄송할 마음이 들 정도로..^;;;ㅋ 약간은 시니컬하고, 저속적이면서도 꼬임이 없는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어 <대한민국 표류기>를 읽었다. 찌질한 아이돌이지만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며 우석훈은 감동의 대서사시를 느끼게 되리라..고 했지만, 감동이라기엔 좀 뭐하고.. 그냥.. 뭔가 '앗-!'하는 게 있긴 있었다.
돈은 딱히 필요한 만큼만 바라되 그 바람으로 인해 돈에 얽매여 살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가치관이, 조금 덜 부유하고 조금 더 가난하게 살자는 허지웅의 방식과 그 틀이 어느 정도 맞닿아있음이.., 나와는 달리 나름의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행복관과 나의 행복관이 크게 다르지 않음이.. 괜히 안도감이 들면서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와, 조금 덜 부유하고 조금 더 가난하게는 살되 이대로는 안된다며 기꺼이 틀린 것을 바로잡으려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헤아려보려는 그는.. 참 달랐다. 우리는 분명 한 시대, 같은 서울 땅을 밟고 서 있었지만.., 그와 나의 사이엔 참으로 먼 거리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뭘 잘하는지 뭘 잘못하는지 뭘 해야 하고 뭘 해야할 필요가 없는지.. 잘 모른다. 모르겠다. 당장의 내 밥그릇도 어떻게 채워넣어야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 나이 이제 서른넷이다. 정답과 옳은 말만 이야기하는 어른님들이 아닌, 아직도 그 정답을 찾아가는 어른이 되고픈 아이다. 조급하지만 많이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 다 살아낸 노인네보단, 알고 싶은 게 많은 아이로 살고 싶다.
p.19 주변에서 고시원을 "거기 잠깐 살아봤는데"라며 웃음거리 소재로 삼거나 대단한 고난과 육체적 고통의 기억으로 환기시키면, 그래서 조금 불편하다. 내게 있어 고시원은 그때 그 시절의 뜨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약간의 살 냄새가 더해진 삶의 풍경이자, 지금 딛고 서 있는 현실의 연장선이다. 고시원에서 원생으로 2년을 살고 총무로 2년을 더 산 뒤 주변의 반지하 전세방을 얻어 나왔다. 벌써 3년째인데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 때마다 매번 어색하다. 고시원으로 부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때만큼 살고 있는 공간의 모든 걸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주변 세계를 향한 애정을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p.73 반지하방도 그 아이도. 나는 되게 못생기게 눈썹이 아프도록 표정이 구겨져 운다. 김수박의 만화를 봐서 그럴까. 보고 싶다. 억억 그러면서. 그리고 보고 싶지 않다. 남은 국물 걸죽한 새벽에 우리가 기억을 공유했던 공간들에 이름을 적고 왔다. 파일로트 유생 매직 펜. 우리의 정류장. 우리의 벽. 그걸로 충분해. 나 성시경 싫은데 '안녕 나의 사랑'만 계속 듣고 있네? 쓰러져 잠들었다가 해 뜨면 출근하는 거지. 안 그래? 나는 내일 이사한다. 내가 잘할게, 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바다로 간다. 얼굴 붓겠다. 곡주라. 내일! 꿈! 증산역! 북가좌전화국! 그렇게 하나씩. 나는 기억하지 않을 거야. 간사함. 얇음. 보일러 켜고 따뜻하게 잘 거야. 안녕, 안녕, 안녕.
p.109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계산된 위악을 부리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기보다 더 많은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관계의 정치를 위해 신뢰를 가장하지 않으며(나는 신뢰를 가장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듯 구토가 쏠리는 인간을 삼십 명 정도 알고 있다) 미래의 무더기보다 현실의 한 줌을 아끼면서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되 도인이나 성자가 되기보다 장터의 소박한 무뢰배가 되길 소망하는 이종이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노력하고 있다. 변하지 않을 거란 자기 확신은 있다. 나는 신념과 이론이 아닌 좁은 오지랖과 얕은 참을성과 깊은 분노 때문에 이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멍청해서 신념이나 이론이 생길 리 없고, 그래서 나는 어른스러움이라는 이름의 화장술을 배울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필요 이상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에 흐른 고름을 먹고 자존심을 핥으며 의기양양 이름을 팔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아, 나는 정말 미치도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고 나를 세울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p.132 그들은 인재를 원하는 게 아니다. 관리자-가부장의 권위에 가족의 끈끈함으로 무조건 복종하고 봉사해낼 자식새끼들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 식의 가족주의가 체화된 조직의 구성원이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영혼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다. 역겨운 것이다. 천한 것이다. 조직을 순식간에 뛰쳐나와야 할 정도로 절박한 것이다. 조직 내 가부장의 인성마저 두고 볼 것이 없는 기름 덩어리라면 그야말로 처연한 노릇이다. 유감스럽게도, 겪어본 자들만이 이 환멸의 깊이를 감히 가늠해낼 수 있다.
p.182 요즘 같아선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일이 대단히 어렵다. 그럴 의지도 기력도 없다. 좀체 누군가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신뢰 없이는 관계가 어렵다. 신뢰하는 관계라도 그것이 망가질 때 절망감이란 땅이 꺼지고 하늘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슬프다.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신뢰하고 신뢰 받는다는 게 착각 없이 가능한 일인가. 담배를 힘차게 빨고, 생각이 닿으니 다시 한 번 심란해져 힘없이 뿜었다.
p.308 오늘이 2008년 12월 13일이다. 내일이면 만으로 서른이 된다. 지금까지의 삶은 방향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리 됐다. 10년 후에는 그렇게 찾은 방향감각으로 내가 이만큼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지금도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다. 중산층의 기준을 만족시킬 만한 재물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뭘 잘하는지 뭘 잘못하는지 뭘 해야 하고 뭘 해야 할 필요가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건 관계를 통해 얻어졌다. 나와 관계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래서 고맙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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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허지웅 씨의 글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어서 그의 책을 묶은 것이 나왔다길래 샀다. 앞의 고시원 생활에 대한 글은 무척 재미있었다. 그의 블로그 글과 기사들을 엮은 것이라는데, 아마도 출판사에서는 요 앞부분의 글에 꽂혔던 것 같다. 흥미를 갖고 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글은 술술 익힌다. 추천사를 쓴 우석훈 박사의 말대로 20대의 삶과 고뇌가 진솔하게 묻어있다.
그런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정리가 안된 기분이 많이 들기 시작한다. 파편적인 단상글들이다. 전형적인 '블록글'이다. blog + block
특히 촛불 시위 당시의 글들은 더욱 그러했다. 파편적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약간 지쳐있는 상태에 후반부에 영화평들이 나왔다. 이건 그래도 훌륭하다. 역시 정리할 텍스트가 있는 글이 나은 것 같았다. 아니면 기사나 글로 올리기 위해 정리한 초고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이런 블로그 계열을 모아놓은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 잘 드러났다. 앞부분에 좋은 글을 실려 힘을 주고, 뒤로 가면서 힘이 빠지는..그런
그래도 몇 몇 글이라도 건질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 그런 면에서는
신윤동욱의 '플라잉 시티'가 훨 괜찮았다는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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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류기>의 저자 허지웅에게 우석훈은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절대 아니다(이 아저씨는 무슨생각으로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을 했는지 모르겠다). 허지웅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의 글쓰기가 시대를 반영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허지웅은 주목할만한 작가이고 그의 책은 읽어볼만하다.
<대한민국 표류기>는 허지웅의 개인적인 경혐들과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허지웅의 생각을 담고있다. 허지웅이 영화기자이고 이 책에도 영화이야기가 나오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다. 영화서적보다는 좌파젊은이의 생각노트에 더 가깝다. 특히 책의 중반부는 우리나라의 정치,사회,문화현상에 대해 쓰고있는데 이 글들이 상당히 괜찮다. 시각은 노골적으로 좌파적이지만 논리가 있고 공감도 되고 재미도 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흥미롭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과 경험을 쓴 초반부는 몇몇 쓸만한글들을 제외하고는 실망스럽다. 자의식이 과잉표출되어서 재미도 없고 일고 난 후 내용이 기억나지도 않는다. 차라리 이 부분은 과감히 잘라내버리는게 좋았을 듯 싶다.
<대한민국 표류기>는 재미있지도 않고 책의 작가 허지웅도 대단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책은 읽을만 하고 작가 허지웅도 주목해 볼만하다. 그의 블로그(http://ozzyz.egloos.com/)에 가보면 쓸만한 글들이 많다.(하지만 쓰레기 같은 글들도 많다.)
p.s 허지웅은 2008년에 오디언에서 인터넷방송 <라킬비>를 에세이스트 김현진과 진행한적이 있다. 심심할때 듣기좋았던 매우 괜찮은 프로였다. 관심있는 사람은 찾아서 들으면 좋을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