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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만 해도 내가 지금처럼 농촌에 들어와 살 게 될지는 전혀 몰랐다. 평생 도시민의 생활을 이어갈 줄만 알았는데 우연히 시작된 시골생활은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지금 18가구가 전부인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으며 200평 정도의 텃밭을 통해 대부분의 채소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은 시내에서 하던 일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생활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반농반X의 삶은 아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업을 이어갈 뿐이므로. 저자가 말하는 반농반X의 삶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사회에 도움을 주고 돈도 벌어 생활을 유지하는’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반농반X라는 말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두 개의 축을 표현한다. 하나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생활의 기반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타고난 재주를 세상에 나눔으로써 인생, 혹은 사회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이 반농반X가 앞으로 우리 삶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물쇠 구실을 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하고 작은 소비를 하면서 자신이 가진 재주를 통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추구해야할 새로운 삶의 형태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600평의 논과 300평의 밭을 일구며 산다. 한 가족이 먹고 약간 남을 정도의 농사다. 생업이 아니다보니 될 수 있으면 기계와 농약의 힘을 빌지 않고 자연적으로 농사를 짓는다. 아마 많은 귀촌인들이 원하는 방식일 것이다. 가족들이 먹을 먹을거리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해내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일을 통해 돈을 벌면서 사회생활을 한다. 저자가 권하는 생활은 검소함과 나눔이다. 물건에 대한 애착을 버릴 때 우리는 좀 더 자유스러워진다. 나 역시 이미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하고 있다. 꼭 필요한 것은 여러 번 생각해서 좋은 것으로 장만하고, 될 수 있으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검소한 생활은 지구를 위해서도, 우리 후손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만 그 실천이 쉽지 않다. 산업화를 통해 소비가 미덕이라고 배운 우리들은 필요하면 사버리고 마는 습성이 몸에 밴 까닭이다. 저자는 영어 ‘셰어’가 점점 대중화 되어가는 것에도 고무되어 있다. 나눔과 베품 역시 우리가 적극적으로 실천해야할 덕목인데 반농반X의 삶에서 빠질 수 없다. 현재 일본도 우리와 다름없이 귀촌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듯하다. 도시에서의 편리한 생활을 마다하고 시골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책은 삶의 해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농촌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라고 권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수십년동안 실천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여러 국가의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책에 공감하고 감명 받아서 반농반X의 삶에 적극적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 말고도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 이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삶의 정답이 꼭 농촌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반농반X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인간이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알리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했다. 삶의 키워드 세 개를 생각한 뒤에 자신의 X(천직)을 찾아보라는 조언도 귀 기울일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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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냇물이 흐르고, 피래미, 여름치가 물장구 치는 사내아이들 사타구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스치며 지나가던, 물 맑고 여름 맑은 청양이라는 시골에서 자랐다. 물론 어린 시절 모두를 보낸 건 아니고 방학때만 새카맣게 그으를 정도로 흙과 물에서 노닐정도의 추억이었지만, 사십여년이 지난 지금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시절 그 개울가가 생각나고 , 그 시절 그 여울에서 두려움에 떨며 다이빙을 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지금, 그 시골 그 마을엔 나의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께서 밤나무를 가꾸시고 배나무를 가꾸시며 살고 계신다. 근처에는 누님도 살고 계시고... 나이 들면서 하루 하루 나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상상해보지만, 마음 한구석엔 할아버지가 계셨고, 아버지가 계신 그 곳에서 또 나의 그림자를 담고 살아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질문을 계속해대고 있다. 혹시 그 곳에서 아버지 ,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농사도 하며, 나의 또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전업으로 하며 일년 365일을 모두 농사일에 매진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을 하고 꿈꾸던 차에 시오미 나오키씨가 지은 "반농반X의 삶"이란 책을 만나게 된다. 하루, 일년, 혹은 삶의 반은 농사를 지으며 나머지 반은 농사 이외에 다른 일을 찾아 활동을 이어가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책의 내용에도 이야기했지만. "호사카와 준"씨의 5:5가 아닌 4:4:2 정도로 나누어서 농사, 농사 이외의 X, 그리고 휴식을 적절히 나누어 일을 하자는 이론을 그의 삶 자체를 보여주며 풀어가고 있다. 지금 이 땅에도 저자가 살고 있는 일본과 같이 휴경지가 늘어가고, 귀농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아버지가 살고 계신 곳 바로 아랫집도 몇 해전 귀농하여 농사를 짓고 계신 형님벌 되신 분이 계신다. 농사를 전업으로 하고 계시지만, 그의 아내는 시골로 들어와 함께 농사짓기를 거부하고 계신다. 자녀들 교육문제라고는 하지만, 전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기엔 그의 지갑이 두둑하지 않고, 도심의 삶을 단 칼에 잘라 버리기에 너무도 많은 X가 그의 아내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저자가 권하는 삶을 나도 살고 싶다. 아니, 지금이라도 그런 삶을 살겠다고 선포하고 길을 나서야겠다. 이 책은, 그야 말로 내가 그리도 읽고 휴식을 얻고 싶었던 종류의 책이라 하겠다. 어쩌면 이제 슬슬 "작전"을 제대로 짜서 수 해 후의 삶을 계획해봐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지금의 전공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주변 대학에 출강을 하거나 농사를 짓지 않는 야간에 적절하게 시간을 분배하여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강구해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정확한 맥락을 유지해가며 갈 수 있는 다해년간의 계획을 수립해야겠다. 물론, 그 길을 가기 위해 타협해야 할 거리들이 너무도 많다. 얇아질 지갑에 대비해야 하고, 줄어드는 관곌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지금이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을 먼저 달려가고 계신 분들과의 관계를 새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어렵지만, 그래도 가고픈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정확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어서 정말 정말 읽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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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호시카와 준씨의 저서에서 반농반저를 접한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호시카와 준씨는 50%는 자급자족할 만큼의 농사를 지으면서 하루의 나머지는 글을 쓰는 일을 한것이지만, 저자인 시오미 나오키씨는 하루의 40%는 농사를 하고, 40%는 자신이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나머지 20%는 휴식을 가지는 것을 주장하면서 각자의 잘 하는 것이 다르기에 책의 제목에 X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책 내용의 배경은 일본의 아야베시로서 이 곳에 이주를 원하며 대기중인 사람이 3000여명 정도일 정도로 많이 알려 졌다. 이 곳은 빈 집도 900여채가 있으나 도시에 사는 집 주인들이 매매나 임대를 주지 않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꼭 자신만의 잘 하는 것이 없이도 일정 양의 땅이 딸린 집으로 이주를 하고 이웃들의 도움으로 농사도 배우면서 짓고 정착을 한 후에, 이웃을 위한 잘 하는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곳이 일본이 배경이라서 그런지,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 기관명 등등이 전부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여서, 책을 읽는데 이해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하였다. 읽고 나서도 일본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대명사를 사용하여 가족에게 책 내용을 설명할 수 밖에 없기에, 이 부분이 좀 아쉬움이 되었다. 어찌 되었던 이러한 반농반X를 통하여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고 잘 하는 것을 하면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들의 삻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에 부러울 뿐이다. 이러한 자체적인 조직체가 우리나라에서 시행된다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다. 우리나라의 농촌에는 귀농자에 대해서 텃세가 있고, 귀농자가 정착하기에 많은 노력과 일정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하루의 반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정서에서는 힘들다고 생각이 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어떤 동호회를 통하여 이러한 자체 조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드는 것도 사실이며, 나도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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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21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아름답게 사는 길이란 ― 반농반X의 삶 시오미 나오키 글 노경아 옮김 더숲 펴냄, 2015.11.24. 14000원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모두 회사원이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기에 흙을 안 만지면서 살지도 않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숲하고 동떨어진 채 살지도 않아요. 그리고,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모두 흙을 만지는 일꾼으로 살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흙이나 풀이나 나무를 잘 알지도 않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에 앞으로도 시골에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지구별에서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하루 빨리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지 모릅니다. 오늘날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가운데 도시를 떠나겠노라 하고 생각하기는 몹시 어려울 수 있어요. 아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 ‘너희는 앞으로 도시를 떠나렴.’ 하고 가르치는 어른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할 만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들한테 ‘자, 너희는 시골을 배우고 숲을 노래하면서 도시를 떠나렴.’ 하고 가르치려면, 이렇게 말할 어른들 스스로 먼저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아이를 낳았을 테니까요. 반은 자급적인 농업에 종사하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는 삶 … 이는 쌀과 채소 등 주요 농작물을 직접 길러 안전한 식재료를 확보하는 한편, 자신의 개성을 살린 자영업에 종사함으로써 일정한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균형 잡힌 삶을 말한다. (19쪽) 데루오 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꼬박 한 해를 정성을 쏟아 가며 벼와 채소를 기르는 농사일, 그리고 유화를 그리는 과정은 서로 닮았어요. 둘 다 단숨에 완성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도시의 좁은 공간에서 분주하게 그리면 마치 공업 제품 같은 그림이 되고 말죠.” (36쪽) 시오미 나오키 님이 쓴 《반농반X의 삶》(더숲,2015)을 읽습니다. 글을 쓴 시오미 나오키 님은 ‘반농’하고 ‘반X’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반농’하고 ‘반X’란 삶을 둘로 나누어서 바라본다는 뜻이요, ‘반농’은 우리 삶에서 반은 농사를 짓는 삶으로 가꾸고, 다른 반이 될 ‘반X’는 저마다 가슴에 품은 꿈대로 삶을 짓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살되 오로지 시골일만 하는 삶이 아니라, 시골일은 하루 가운데 반쯤으로 삼고, 다른 반은 ‘꿈을 찾자’고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달리 보면 도시에서도 똑같이 말할 만합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반만 ‘도시 일자리’를 붙잡고, 나머지 반은 ‘꿈을 찾자’고 할 수 있어요. 또는, 도시에서 붙잡은 일자리에서 ‘꿈을 찾는다’면, 다른 반으로는 시골에서 손수 먹을거리를 지어서 누리는 살림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가 될 만합니다. 전원에서 반농 생활을 하려면 ‘생활 수입은 적게, 마음의 수입은 넉넉하게’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 우리 집은 큰 길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우리 가족은 쇼핑을 자주 가지 않는다. 쇼핑 횟수가 줄어들면 지출액과 쓰레기 발생량도 줄어든다. (50∼51쪽) 딸은 TV 시청보다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종종 아이와 함께 바닥에 누워 그림책을 읽는다. (57쪽) 오늘날 학교 얼거리를 돌아보면 모두 ‘도시 교육’이라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똑같습니다. 서울이나 해남 모두 똑같은 교과서를 써요. 부산이나 통영이나 모두 똑같은 시험문제를 풉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도시에 있는 회사나 공공기관이나 무대’에서 일거리를 찾아서 돈을 벌도록 북돋우기만 합니다. 흙을 만지는 일을 가르치는 학교 얼거리는 아예 없습니다. 뜻있는 교사 몇몇 사람이 학교 귀퉁이에 텃밭을 마련하기는 하지만, ‘밭일’이나 ‘논일’은 어느 학교에서도 교과 과정으로 안 삼습니다. 더군다나 ‘농업고등학교’도 거의 모두 사라졌어요. ‘농업중학교’는 찾아보기 매우 어려우며 ‘농업초등학교’란 아예 있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숲유치원은 있으나, 숲중학교라든지 숲고등학교나 숲대학교는 없어요. 요즘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쓸쓸한 논이 많다. 독한 농약을 쓰다 보면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에 가 본 사람은 알 테지만, 그런 숲은 그저 나무가 울창할 뿐 생동감이 없다. (77쪽) 옛날 시골에서는 어린아이도 귀중한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자신이 가족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고, 가족애는 그렇게 자라났다. (88쪽)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아름답게 사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도시만 떠나면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요? 도시만 떠나면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시골로 가기만 해서는 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시골로 가서도 땅을 넓게 장만해서 큰 기계를 부리고 비닐하고 농약하고 비료를 듬뿍 써서 ‘농업(농사)’을 해야 한다면, 도시하고 똑같지요. 흙을 파서 돈을 잘 벌어야 ‘시골살이(귀촌·귀농)’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수 있는 살림으로 나아갈 때에 시골살이가 비로소 즐겁습니다. 돈을 들여서 땅이랑 기계를 장만하고 시설을 갖추어서, 돈을 더 벌어들이려고 하는 농업(산업 가운데 하나)이 된다면, 애써 시골로 가서 살려고 하는 뜻은 흐려지고 맙니다. 관광이란, 한자를 풀어 보면 ‘빛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빛은 어쩌면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의 친절함 또는 따스함이 아닐까? (113쪽) 월급 생활자라면 한 주에 3∼4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정과 지역사회 활동에 할애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족하는 생활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입은 줄어들고 승진도 늦어지겠지만 생활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136쪽)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저마다 가슴에 꿈을 품어야 합니다. ‘직업 계획’이 아닌 꿈을 품어야지요. 어떤 삶을 이루고 싶다는 꿈을 품을 노릇입니다.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꿈을 펼칠 노릇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거듭나겠노라 하는 꿈으로 나아갈 노릇이에요. 나는 아이들을 오롯이 돌보면서 이 대목을 늘 되새깁니다.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넣는다면,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되니까 ‘틈이 많이 납’니다. 그러나, 아이를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넣으면, 아이 삶에서 오직 한 번만 있는 ‘한 살’이나 ‘두 살’이나 ‘세 살’이나 ‘네 살’이나 ‘다섯 살’이 어떠한 나날인가는 하나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집에서 놀리면서 이 아이들이 저희 나이에 어떤 마음이 되고 어떤 놀이를 누리면서 어떤 하루를 짓는가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껴안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집에서 돌보고 가르치고 품으면서 ‘나 스스로 내가 이 아이만 하던 어린 날에 받은 사랑’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시에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어 받기에만 익숙해진 탓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능력을 잃은 것이다. (164쪽)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면 된다는 것이다. 풀을 스스로 벨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가족이 먹을 만큼의 쌀이 생산된다. 그것보다 크면 노동력이 모자라서 무리를 하게 되는데. (205쪽) 《반농반X의 삶》이라는 책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아주 쉽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시골에서 살 때에 길을 잘 열 수 있으니 시골로 가자고 말하지요. 다만, 전원주택을 짓는 시골이 아니라, ‘내 삶을 가꾸는 살림살이’가 될 시골을 찾자고 말해요. ‘대규모 농업’으로 돈을 벌 시골이 아닌, 손수 먹을 밥을 땅에서 손수 지어서 얻는 홀가분하면서 재미난 시골이 되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이러한 흐름을 살필 수 있다면, 도시에서 살 적에도 ‘모든 날을 돈 버는 일에 가두지’ 말고, 이레 가운데 나흘을 돈을 번다면 다른 사흘은 새로운 삶과 꿈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에 쓸 수 있습니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더라도 나흘만 맡기고 사흘은 오롯이 아이하고 어울릴 수 있어요. 스스로 삶을 찾을 적에 스스로 사랑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삶을 누리려 할 적에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4348.12.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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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농반X의 삶》에서 발췌하고 필사한 내용입니다.
"규모가 식량을 자급할 정도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영리를 고려한 규모라면 상당히 무리가 따를 것이다. 지구에 농약이라는 독을 퍼뜨리는 짓은 절대 안 하겠다는 결심은 가까스로 지켰으나 결국은 기계의 힘을 빌리게 되었고, 대출금의 압박, 정신없는 생활은 더더욱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반농을 추천한다. 백 가지 작물을 재배하는 '백성'이 되거나 농업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전업 농부가 될 필요는 없다. 하루 여덟 시간을 일한다면 그 절반은 자신의 먹을 것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재배하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무언가 수입이 되는 일에 할애하면 된다. 내 경우에는 그런 삶을 '반농반저'로 표현할 수 있다. 또 그 시간을 엄격히 5 대 5로 나누기보다 4 대 4 정도로 나누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 시간에 조금 더 돈이 되는 작물을 기를 수도 있을 테고.
그런 어중간한 방식으로 먹고 살 수 있겠느냐고 질책할지도 모르지만, '먹고산다'는 건 원래 말 그대로 자신과 가족의 심신을 적절한 음식으로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뜻이 아닌가? 하루의 절반으로 그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면 나머지 절반은 좀 더 자유롭게 써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지폐나 동전을 먹고살 것도 아니니 말이다.
적어도 나는 야쿠시마에 온 뒤 십수 년간, 하루 네 시간 일해서 번 수입으로 세 가족을 충분히 먹여 살려 왔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에게는 글쓰리기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론할 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지간한 인기 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글을 써서 받는 인세가 얼마나 쥐꼬리만 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산촌의 풍요, 자원 순환형 시스템이 새로운 관심을 끄는 것이다. 지금 우리 조상들이 자연에게 배워 대대로 물려준 자원, 즉 지역의 유·무형 문화유산, 다양한 산촌 문화의 보전과 전승이 시급하다.
마음의 시대에 자연으로 회귀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런 시대에 아야베는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 아야베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지금도,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일이리라. 나는 앞으로도 '아야베란 무엇인가'를 깊이 탐구하고 싶다.
매력적인 '사람, 소프트웨어, 자연'으로 이루어진 21세기 아야베의 지역 자원으로 도시와 시골을 연결함으로써 인적 교류와 정착을 활성화하며, 공동체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꿈과 보람을 창출한다. 아야베의 지역 자원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21세기 아야베의 가능성을 열어 갈 중요 가치로 육성한다.
옛날 농민은 밭에 콩을 심을 때 반드시 세 알씩 심었다고 한다. 한 알은 하늘의 새, 한 알은 땅의 벌레, 한 알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 조상은 작물에 감사하며 수확을 했고, 이듬해의 수확을 기원하며 정성껏 종자를 채취했다. 생명의 다양성을 중시한 것이다.
현대의 씨앗은 이미 생명의 다양성을 잃고 인간의 상황에 따라 수량만을 추구하는 '씨앗의 본질과는 먼 씨앗'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거의 모든 농가가 종묘 회사에서 종자를 구입한다. 씨앗을 채종하여 기르고 보존하는 소박한 일은 이미 뒷전으로 밀련난 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생명의 씨앗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준 것에만 집착하기 쉽다. 그러나 조상들은 '비우면 채워진다'고 했다. 집착을 버리고 내려놓으면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굳이 만족을 찾지 않아도 저절로 만족하게 된다. 받기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그리고 잊어버리는 것. 그런 자세는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발리 섬의 사회 형태에 푹 빠져 있다. 발리 섬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물 댄 논에서 일하고 더운 낮에는 쉬었다가 저녁이 되면 예술가로 변신한다. 그리고 매일 밤 마을의 집회 장소에 모여 음악과 춤을 연습하거나 그림과 조각에 영혼을 싣는다. 그리고 열흘에 한 번은 축제가 열리므로 거기서 각자의 재주를 펼치다가 다 함께 집단 최면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똑같이 논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예술가가 되었다가 다시 열흘 후에는 집단 최면에 빠진다. 마을 사람 모두가 농민이고 예술가이며 신의 사제인 것이다. 이들 모두가 '완전한 실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 발리보다 이 섬의 모델을 인류 사회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을까?', '과거로 돌아가기 보다 이 섬의 모델을 미래 사회와 연계할 수는 없을까?'라고 혼자 고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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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퇴직을 하고 귀농으로 돌아가 농업을 하거나 소소하게 채소를 기르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연을 좋아하고 여기서 일을 하며 먹고살기 위하는 생각입니다. 자급자족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퇴직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생각, 농촌에서 여유럽게 살아가겠다는 생각하곤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도시생활보다 더 바쁜 농촌생활고 다른 문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와 다르게 농업만으로 자급자목을 할수있기 까지 원주민이 아니면 생각보다 정상상태로 도달하기도 어려운것이 현실입니다. 귀촌에 대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을 위한 책 시오미나오키의 "반농반X로 살아가는 법"을 포스팅 하려고 합니다. 전원생활, 귀농, 반농등 자신이 어떤것을 추구할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것이 시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도전할수 있지만 동일한 결과를 가질수 없는 것이 이것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단추를 잘끼워서 시작하는것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합니다. 하지만 농업을 늦게 시작한 만큼, 저자는 X 즉 다른 무언가가 추가로 있어야 농촌생활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며, 이 책을 대부분에 대해 X를 찾고 어떻게 활요해야 하는지에 이야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말 창업]에 따르면 '좋아하는 일 x 잘하는 일 x 시류에 맞는 일'을 찾아서 창업하려고 한다. 세키네 씨야말로 그 세 가지를 갖추어 전원 창업에 도전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일을 스스로 만들고 가족과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면서 작은 농업이 있는 생활을 누린다. 자신이 바라는 삶을 차차 구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page137 귀농을 통해 추가로 우리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찾을수 있나요? 책에서 대표적으로 X를 찾는 방법입니다. 좋아하고, 잘하고, 시류에 맞는일. 3박자를 잘 고려해서 선택해야 성공적인 안착과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X를 찾는 방법 귀농을 생각하고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보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도 퇴직후 삶을 생각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찾으려는 사람이 한번쯤 읽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농반X로살아가는법, #시오미나오키, #노경아, #더숲 * 이 리뷰는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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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에는 귀촌해서 농사를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농사는 뭐 쉬운가 싶다. 평생 한 가지 일만 해도 밥벌이할 수준에 이르기가 어려운데 농사라고 예외일까. 더욱이 농사는 체력을 요한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벅찬 농사를 나이 든 사람들이 해내기가 쉬울 리 없다. 이런 농사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사회운동가 시오미 나오키는 저서 <반농반X의 삶>에서 생활의 절반은 농사를 짓고, 나머지 절반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쓰는 대안적 생활 방식을 제안한다. 농사는 개인 또는 가계 단위로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위한 방안이다. 앞으로 기후가 급변하면 식량 자급률이 낮은 나라의 사람들은 식량을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돈이 있다 한들 식량이 없으면 사재기도 할 수 없다. 이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농사를 지으면서 기본적인 식량을 확보하면 생활비도 줄이고 자급자족하는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 농사를 통해 꼭 필요한 것만 채우는 작은 생활을 유지하게 되면 하고 싶었던 일(X)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커진다. 이 책에는 일찌감치 '반농반X의 삶'을 택한 번역가, 화가, 민박집 주인, 요리교실 강사, 웹디자이너, 간병인, 심리치유사 등의 사례가 나온다. 저자는 이처럼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연구소를 만들고 각자의 주제를 탐구하는 '1인 1연구소' 사회를 꿈꾼다. 어떤 주제를 탐구할지 모르겠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관심 있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분명 모두가 자신의 X(미지의 무언가)를 찾고 있다. 모두가 자신만의 X를 갖고 있다. 농사를 지어 식량을 충당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생활은 생계를 위해 직장에 다니면서 여가 시간을 이용해 취미를 하는 생활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 저자가 굳이 농사를 택한 것은 단순히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농사는 자연 속에서 일체감을 느끼고 자연의 소중함을 실감하면서 자연의 무한함과 인간의 덧없음을 대조하며 생을 성찰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도시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는 삶에선 이런 성찰을 얻기 힘들다. 농사는 또한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일할 수 있고 정년도 없다. 저자는 서문에서 고대 로마 시인이 남긴 '빵과 서커스'라는 말을 인용한다. 여기서 '빵'은 먹을거리를 가리키고 '서커스'는 볼거리를 가리킨다. 백성에게 이 두 가지를 주면 민심을 장악할 수 있고, 백성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어 결국 나라가 망한다. '반농반X의 삶'은 이에 반대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농사를 지으면 국가나 기업에 빵을 구걸하지 않게 되고, 남이 만든 서커스를 볼 시간에 자신의 관심사와 취미에 몰두하면 사유와 성찰이 깊어진다. 빵도 서커스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지적이 뜨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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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는 삶을 저자는 반농반X의 삶으로 정의한다.
노동가용시간 8시간에서 4시간 농사와 4시간은 자기가 즐거이 할 수 있는 일로 수입을 창출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말한다.
저자의 가족은 도시에서 고향인 농촌으로 이사가 농사를 짓고 글을 쓰고 반농반X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연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를 포함해
반농반X의 삶의 가능성을 직접 실천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실례들을 통해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용기와 선례를 보여준다.
저자가 무사히 고향에서 정착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엔 그의 인맥과 네트워크가
작용하였다.
가족의 도움과 지인의 도움으로 집과 경작지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친환경적인
요리법과 농사짓는 법도 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혼자서 다 해결해야 한다면 농사와 나의 천직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다.
도시는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농촌은 타지역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배타성이
강하기에 그들 문화에 친숙해지지 않으며 힘들다.
반농반X의 삶은 단순히 전원적인 삶의
동경이 아닌 자본주의적 소비지향적인 삶의 가치관과 분열과파편화된 현대 문명에서 독립적이며 공동체 질서를 회복하면서 지구에 보탬이 되는 삶에 대한
고민과 미래세대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감상
2011년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과 알게 모르게 우리의 식탁을 점령한 GMO/LMO 식품에 대한 공포, 미세먼지 및 이상기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처음엔 GMO식품과 방사능이 오염된 음식을 피하기
위해 알아보다가 시중의 먹거리에서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분리하기란 애초에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며 급기야 내가 배출하는 플라스틱과 비닐을
생각할 때 냉장고에서 썩어 나가는 음식과 내가 배출하는 음식쓰레기를 생각하니 중국이나 일본만 탓하기엔 나와 내 가족이 오염시키는 쓰레기도 엄청남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자동화로 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줄고 있으며 앞으론 로봇과 일자리를 경쟁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할 때 소비로 유지되는 도시의 삶에선 ‘돈’이
없으면 죽음을 의미한다.
직장이 없으면 무능을 떠나 생존이 어려운 것이다. 결정적으로 도시에서의 삶은 혼자서 분투하지 않으면 안되는 고립되고 외로운 삶이다. 젊은 작가가 굶어 죽어도 모르는 비정한 세상이다.
도시에서도 지역화폐나 공동체 마을을 만들어 재능을 기부하거나 물건을 팔아 선순환하는
경제를 활성화시키지만 그 규모는 아직 미미하며 근본적으로 일자리가 없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삶이다.
미래에도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선 반농반X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도 모르겠다.
편리한 현대문명과 소비에 익숙해 이런 삶을 바로 포기할 수 있을지, 일자리가 도시보다 더욱 부족한 시골에서 X를 찾아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방향성을 갖고 그런 삶을 살고자 노력하다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지금은 한 걸음도
내딛지 않고 보이지 않는 길만 탓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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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이야기한다. 귀농을 꿈꾼다면 철저히 공부하고 무엇을 농사지을지에 대한 분석을 준비해서 내려가야 한다고. 우린 그저 이곳을 벗어나, 약간의 이상적인 삶을 바라보며 귀농을 했었기에 내려와서의 삶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 남편과 나는 귀농이 아닌, 귀촌을 선택했고 여유가 되면 텃밭이 있는 주택을 마련해야지하면서..(이 부분은 아직 이상적임) 우리가 먹을 것은 키우고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급여를 받는 삶을 선택하여 일년 반정도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작가 시오미 나오키는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어 반농반x라는 사회참여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제시한다. 이 삶의 방식은 우리 부부가 꿈꾸어온 방식이기도 하여, 솔깃한 책 제목에 마음이 이끌렸음을 고백해본다. 일본은 워낙에 농업이 발달되어 있고 하여 반농반x의 삶에 대해 그리 놀랍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왔었다. 그러나, 여기나 저기나 나름의 어려움은 존재하며, 삶의 자리안에서 때론 타협을 통해 삶을 일구어 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내 것만이 아닌, 다른이와도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여유있는 삶.. 이 여유는 물질의 여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것, 혹은 내가 앞으로 있을 것을 자족하며 부족한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여유의 삶을 이 시대에 꿈꾸고 그러한 공동체 또는 마을안에서의 삶, 개인의 삶을 꿈꾸는 것을 보면 결국 우린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요즘, 한창 티비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옹기종기 도심의 어느 지역, 정을 나누는 집들의 이야기에 눈길이 가고.. 시장에서 무얼사도 조금 더 사서 넉넉하게 나누는 인심을 보며 굳이 시골에서 살지 않아도 가까운 나의 삶의 터전을 반농반x의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필요한 것만을 채우고 서로를 생각하며, 돌아보며 그렇게 나만 혹은 나의 삶만을 몰두하며 사는 것이 아닌, 내 주변과 이웃, 그리고 이 삶을 걸어가는 또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 어찌보면 참 감사한 생각이면서도, 당연한 것인데 당연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반성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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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농반X의 삶 _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다」 시오미 나오키 지음, 더숲(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