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0)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40%
  • 리뷰 총점6 1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8.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당쟁이 극심했던 효종과 현종의 치세를 이해하다!
"당쟁이 극심했던 효종과 현종의 치세를 이해하다!" 내용보기
병자호란’(1636)의 치욕을 견디고 중국의 심양으로 끌려가 인질로 지내야만 했던 봉림대군은 귀국 후 형인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세자로 책봉된 뒤 인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로 등극한다. 인질로 잡혀 있는 기간 동안에도 서양의 발달된 기술에 관심을 보였던 소현세자의 죽음은 역사학계에서도 여전히 의문에 쌓여있는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
"당쟁이 극심했던 효종과 현종의 치세를 이해하다!" 내용보기

병자호란’(1636)의 치욕을 견디고 중국의 심양으로 끌려가 인질로 지내야만 했던 봉림대군은 귀국 후 형인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세자로 책봉된 뒤 인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로 등극한다인질로 잡혀 있는 기간 동안에도 서양의 발달된 기술에 관심을 보였던 소현세자의 죽음은 역사학계에서도 여전히 의문에 쌓여있는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소현세자와 세자빈을 포함한 손자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인조의 의도가 관철된 것으로 해석하는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고 하겠다형인 소현세자와는 달리 청나라에 대한 강한 반감을 지니고, 실현 불가능했던 이른바 북벌론(北伐論)’을 재위 기간 내내 내세운 것도 결국 정통성이 취약한 효종으로서는 대신들의 뜻에 영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재야의 인사들을 중용한다는 명목으로 대거 조정에 진출한 산림(山林)들이 권력을 장악하고그들에 의해 이른바 산당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형성되었다송준길과 송시열 등 양송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당시의 정치 현실은 명분론에 치우쳤다고 평가되며명분에 집착한 행태는 후에 이른바 예송논쟁으로 세력 다툼의 장을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효종이 죽은 후 윤선도와 송시열 사이에 펼쳐진 예송(禮訟)’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리 결정되면서남인 혹은 서인 세력들의 몰락을 재촉하는 역할을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효종은 재위 10년 만에 종기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그의 아들인 현종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현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부왕인 효종의 상복을 둘러싼 예송논쟁으로 시달리게 된다이미 장자인 소현세자가 장자로 죽어 차자로 왕위에 오른 효종의 위치를 대통을 이은 왕으로 보는가아니면 둘째 아들이면서 왕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가 걸려있었던 것이다실상 상복을 입는 것은 단순한 문제였으나그것이 둘째 아들이라는 입장의 노론과 대통을 이은 왕이라는 남인 사이의 명분 싸움으로 전개되었기에 논의의 방향에 따라 상대방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결국 1차 예송에서는 노론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윤성도가 유배를 가는 것으로 귀결되었고, 2차 예송에서는 남인의 주장이 채택되면서 송시열이 사사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현종은 봉림대군이 병자호란으로 중국 심양에 유배되었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조선시대 외국에서 태어난 유일한 왕이기도 하다소현세자가 죽은 이후 봉림대군(효종)이 세자로 되면서 자연스럽게 세손이 되었고효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그의 치세 동안 남인과 노론 사이의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그로 인해 각 정파 사이의 세력 균형을 꾀하는 탕평책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평가된다이후 제대로 운영된 적이 없기는 하지만그로 인해서 조선 후기 정치적 명분인 탕평책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해된다재위 기간 내내 종기로 고생하면서 자주 온천을 찾았으며이 책의 저자는 현종의 치세를 곤욕의 세월재난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효종이 시행하였던 대동법을 전라도 지역까지 확대하여, 이후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예송논쟁과 자연 재해가 극심했던 그의 치세 동안 나름 균형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던 현종은 재위 15년 만에 3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3.10.03. 신고 공감 1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북벌과 예송 논쟁으로 남은 두 임금 효종, 현종-효종, 현종
"북벌과 예송 논쟁으로 남은 두 임금 효종, 현종-효종, 현종" 내용보기
조선은 군주제였지만,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전제군주제는 아니었다. 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었고, 후기로 갈수록 사림들이 본격적으로 관료로 진출하고, 삼사의 권한이 강해지면서, 신권은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가 됐던 것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13권에서는 효종과 현종 두 임금을 다루고 있는데, 이 두 임금 대에는 양란이 끝난
"북벌과 예송 논쟁으로 남은 두 임금 효종, 현종-효종, 현종" 내용보기

조선은 군주제였지만,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전제군주제는 아니었다. 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었고, 후기로 갈수록 사림들이 본격적으로 관료로 진출하고, 삼사의 권한이 강해지면서, 신권은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가 됐던 것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13권에서는 효종과 현종 두 임금을 다루고 있는데, 이 두 임금 대에는 양란이 끝난 뒤였고,산당을 본격적으로 등용하면서 더욱 신권이 강해지던 시기였다.

더욱이 효종의 경우 정통성 문제에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처지였다. 세자였던 형 소현세자가 급환으로 서거하고, 조카 셋이 모두 유배 또는 죽은 뒤에 보위에 오른 인물인만큼 시비에 오르지 않도록 처신을 조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초기에는 자연히 왕권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는데, 효종 대에는 야인이라 할 수 있는 산당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당시 산당의 중심인물은 송시열이었고, 효종은 송시열을 배려하면서 그를 조정에 들이려 했지만, 송시열은 예의상 잠깐 벼슬을 했다가 이내  미련없이 조정을 떠나 야인의 길을 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으로써, 그의 영향력은 더욱 지대해져갔다는 점이고, 조선시대에서는 권위를  지닌 거유(巨儒)는 사대부들에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재야의 권력자였다. 

그렇기에 효종은 송시열과 독대를 하기까지 했고, 그의 북벌계획에 대해 논의했다고 하는데, 이 둘의 독대는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기에 서로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하고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권이 강해진 것도 그렇지만, 효종과 효종 비 승하 뒤 불붙게 되는 두차례의 예송 논쟁은 전쟁을 겪고 난  조선 사회 여러가지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효종이 세상을 떠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가 3년동안 상복을 입어야 할지, 1년동안 상복을 입어야 할지의 문제와  효종 비 인선왕후가 죽고 난 뒤 이번에는 인선대비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양란을 겪은 뒤 예학이 중심 학문으로 떠오른 것은 흐트러져가는 사회기강을 '예'로써 다잡겠다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예학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측면을 따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두 차례에 걸친 왕실의 예학논쟁 또한 상복 착용기간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이 논쟁이 당시 사회를 뒤 흔드는 논쟁으로 불붙게 된 것은 효종을 장자로 볼 것인지 차자로 볼것인지 하는 즉 정통성 문제가 직결돼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 논쟁 동안 현종은 송시열 등 당시의 예론의 대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게 된 것인데, 허목이 송시열의 의견에 반박을 하면서, 논쟁이 번졌고, 당쟁적 성격까지 가미되면서 더욱 혼란을 거듭하게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윤선도 등이 귀양을 가는 예송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송논쟁을 지켜보면서 계속 헛웃음이 나왔다. 자의대비가 몇년동안 상복을 입는지 하는 문제가 그렇게 대수로운 것인지. 조선사회가 들썩거려야 했는지. 

선조시절까지만 해도 당시 거유 소리를 들었던 유성룡, 이이 등은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효종, 현종 대의 송시열,허목, 윤선도 등은 논쟁이 중심에는 있었지만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내놓은 인물들이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단연 돋보인 신하가 김육이었다.그는 대동법의 확대시실을  밀어붙이고 화폐 사용을 주장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시행했다. 민생과 관련한 김육의 현실 감각은 그만큼 뛰어났고, 대동법과 화폐사용은 낙후된 조선의 상업을 발달시키는 촉진제가 됐다.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해서 조선에 머물게 된 것이 효종 4년인 것을 감안하면서 이미 세계는 바다를 통한 교류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은 여전히 상복을 몇년 입어야 하는 것이 정국을 뒤흔드는 쟁점이 되고 있었으니,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송시열은 여전히 건재했고, 왕에 버금가는 권력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말 한마디, 일거수 일투족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소모적인 논쟁을 확산시키고 당쟁을 더욱 격발시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당쟁과 거유들의 존재감등은 상대적으로 왕권이 움츠러 들게 만들어, 현종 뒤를 이은 숙종은 왕권을 강화화기 위해 당쟁을 적극 이용한 환국을 주도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다시 수많은 사대부들이 희생이 따르게 된 것이다.

효종과 현종 두 왕대에서는 왕의 정치력과 민생을 염두에 둔 신하들의 현실인식이 아쉽기 그지 없었다 .

 

 

e****0 2014.11.17.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북벌을 둘러싼 시대의 흐름, 효종과 송시열 그리고 현종...
"북벌을 둘러싼 시대의 흐름, 효종과 송시열 그리고 현종..." 내용보기
요즘 제일 각광받고 있는 대중적인 역사 분야가 바로 조선사 쪽이다.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이 한글로 번역되어 인터넷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리라.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번역 인터넷판을 보려면 아래 사이트에 접속하면 된다.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     평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서점에 들를 때마다 이런저런 역사관련 책들을 읽곤 하는데, 그
"북벌을 둘러싼 시대의 흐름, 효종과 송시열 그리고 현종..." 내용보기

요즘 제일 각광받고 있는 대중적인 역사 분야가 바로 조선사 쪽이다.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이 한글로 번역되어 인터넷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리라.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번역 인터넷판을 보려면 아래 사이트에 접속하면 된다.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

 

 

평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서점에 들를 때마다 이런저런 역사관련 책들을 읽곤 하는데, 그 중 얼마전부터 유독 눈에 띄는 책이 있다. 바로 박시백 씨가 낸 <조선왕조실록>인데 다른 책들과는 달리 만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읽기에 편하고 저자의 주관도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새로운 책이 나오는데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린다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런 부분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유익한 면이 많아 계속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진다.

 

 

저자가 바로 얼마 전에 새로 낸 이번 13권도 잔뜩 기대를 걸고 미리 주문을 했고, 오늘 바로 받아서 금방 읽어버렸다.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조선에 분 '북벌'의 기류를 일으킨 것으로 유명한 효종 임금과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 그리고 조선 후기 유학의 거두인 송시열과 부친의 이름에 가려져 별로 빛을 보지 못한 현종 임금이 이번 책의 주요 인물들이다.

 

 

책에서는 효종에 대해 성실하고 강건하며 사치와 여색을 멀리하는 인물로 서술했지만, 동시에 그가 외친 북벌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고 바라본다. 정말로 조선이 청을 공격할 정도의 군사력이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공격이 아닌 방어를 염두에 두고 군사력 강화를 했다는 부분에 촛점을 맞춘다.

 

 

또한 송시열이 북벌론자였다는 기존의 주장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오히려 송시열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군사적 북벌은 도저히 불가능하며 다만 숭명사대와 소중화의 이념을 간직하자는 이른바 '정신적인 북벌'을 추구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효종이 북벌 사업을 추진할 무렵, 청을 다스리던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었고 청은 한창 국력이 융성하여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오른 상황이었으니 조선이 정말로 청을 쳤다면 그 결과가 별로 좋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조선에 최초로 온 서양인인 벨티브레와 하멜에 대해서 작가가 어떻게 서술할지 기대가 되었는데, 그 부분은 좀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 아쉬움이 남는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무려 3천번이나 언급된다는 대학자 송시열은 서로 다른 두 부분을 지녔는데, 논리와 학식에서는 매우 훌륭하나 주자학을 지나치게 숭상하여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은 무조건 배척하고, 심지어 친한 벗이었던 윤휴와도 논쟁을 벌이다 결국 원수가 될만큼 편협한 면도 있었다. 하긴, 누가 말하기를 학자들이야말로 검투사보다 훨씬 지독한 싸움꾼이라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리고 북벌을 추진한 부친의 이름에 가려져 그다지 존재감이 없게 된 현종도 상당히 군사 분야에 관심이 많고 백성들에게 이로운 대동법을 뚝심있게 추진한 인물이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어 놀라웠다. 단,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부스럼과 종기에 시달리다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면은 뭇내 씁쓸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현종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조정 내에서 남인과 산당의 쟁투가 격화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아마 그런 당파싸움의 토대에서 희대의 요녀라는 장희빈이 태어나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리라.

 

 

벌써부터 다음 권의 내용인 숙종 부분이 기다려진다. 좀 무리한 부탁이지만 저자가 빨리 속편을 내주기를 바란다. ^ _ ^ ~

x***2 2009.01.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내용보기
13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효종, 숭선군, 조귀인, 김자점, 하멜, 원두표,        김육, 이경석, 김집, 송시열과 송준길 오른쪽 : 현종, 자의대비, 허적, 윤휴, 허목, 정태화, 김좌명            윤선도, 김수홍, 서필원   13권은 효종·현종실록이다. 효종의 재위기간은 10년이고, 현종은 23년이다. 정종·단종·예종·인종같이 재위기간이 짧은 왕의 경우 앞뒤의 제왕과 묶는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내용보기

 

13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효종, 숭선군, 조귀인, 김자점, 하멜, 원두표,

       김육, 이경석, 김집, 송시열과 송준길

오른쪽 : 현종, 자의대비, 허적, 윤휴, 허목, 정태화, 김좌명    

       윤선도, 김수홍, 서필원

 

13권은 효종·현종실록이다. 효종의 재위기간은 10년이고, 현종은 23년이다. 정종·단종·예종·인종같이 재위기간이 짧은 왕의 경우 앞뒤의 제왕과 묶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두 임금의 경우는 모두 10년 이상 왕위에 있었는데 한 권으로 묶었고, 그러면서도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책을 펼쳤다. 책을 덮으면서 느낀 마음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나의 역사 지식이 부족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지금까지 내게는 효종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 의지를 다진 강인한 왕이지만, 현종은 그야말로 두루뭉술한 제왕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모두 오류라는 것을 느꼈다.

 

효종이 북벌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송시열과 이완 장군을 등용하여 북벌을 도모한 것이 나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송시열은 북벌에 관해서는 이렇다 할 업적이 없이 당파싸움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며, 이완 장군은 이름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은 대부분 설화나 야사 수준이었던 듯하다.

 

또한 현종은 13대 명종처럼 재위기간은 길었지만 이렇다 할 업적이 없이 유야무야 세월만 보낸 무능한 임금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는 양송(송시열과 송준길)의 산당에 맞서 당파의 중용을 지키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김육을 중용하여 대동법의 전국적인 실시에 노력한 것은 현종의 업적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둘째, 여러 인물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특히 ‘오우가’의 작가인 윤선도는 문장은 물론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복서·음양·지리에도 통한 문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가 예송 논쟁에서 송시열과 치열하게 대립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물론 그가 긴 기간의 유배생활을 한 것은 알고 있었느나, 논쟁의 중심에 섰다는 것은 몰랐으니 나의 지식의 한계인 듯하다.

 

셋째, 예송 논쟁은 지루하기만 했다. 효종의 죽음에 대해 계비인 자의대비가 3년복을 입을 것인가 기년복을 입을 것인가에 대한 지루한 논쟁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그것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대를 이어가면서 싸우는 것을 보니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 지극 정성으로 북벌을 도모했으면 성사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은 현대 정치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강력한 여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강고한 단결과 투쟁이 우선순위일 텐데 계파 논쟁이나 일삼으며 연전연패를 거듭하는 야권의 현실에서 예송논쟁을 떠올렸다.

 

끝으로 효종과 현종의 수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효종은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으로 인한 정통성 시비, 현종은 산당의 기세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두 왕은 그런 난관을 어느 정도 무마하고 자신의 뜻을 펴려는 순간에 임종을 맞이한다. 효종과 현종 모두 10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면 보다 안정적인 왕권을 확립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쉬움을 적는다면 야사에서 그렇게 많이 언급되는 이완 장군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네델란드 출신 귀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연과 하멜 포류기의 저자인 하멜 등에 대해서 좀 더 언급을 했으면 어떨까 싶다. 아마 그들에 대해서는 실록에 언급이 없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야사라도 소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14권은 숙종실록이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등 많은 일화를 지니고 있는 시대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y******3 2014.03.03. 신고 공감 1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답답했던 시대,,,북벌에 대한 합리적 해석이,,,
"답답했던 시대,,,북벌에 대한 합리적 해석이,,, " 내용보기
고등학교 때 학교 도서관을 뒤지고 있는데 선배하나가 나한테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 안쪽 케케묵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국역 시리즈 중에서 그나마 잘 알려진 "세종실록"을 좀 보다가 답답해서 그만 둔적이 있었는데,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원본 역사서적들을 보는게 쉬운일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 의미
"답답했던 시대,,,북벌에 대한 합리적 해석이,,, " 내용보기
고등학교 때 학교 도서관을 뒤지고 있는데 선배하나가 나한테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 안쪽 케케묵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국역 시리즈 중에서 그나마 잘 알려진 "세종실록"을 좀 보다가 답답해서 그만 둔적이 있었는데,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원본 역사서적들을 보는게 쉬운일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만화 시리즈는 비록 한권에 많은 내용을 담느라 그림보다 "대사"가 많아 아주 쉽진 않지만, 이러한 역사 지식에의 갈증를 해소해주고 일반인의 소양을 넓히는데 큰 이바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섬유수출업(카이스트)을 하고 있는 안동진이라는 분은  외국 바이어를 만날때 자신이 직접 저술한 <머천다이저에게 필요한 섬유 지식>이라는 국,영문 서적을 선물하곤 하는데 그는 이러한 실무적인 일뿐 아니라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과학"분야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틈틈히 일반인을 위한 과학칼럼을 쓰곤 했는데, 최근 이러한 칼럼들을 묶고 11번의 퇴고를 거쳐 <과학에 미치다>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사람의 칼럼을 읽다 보면 아주 전문적인 과학적 내용들을 일상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가는데 이해하기도 쉽고 참 재미있게 쓴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그래서 무릇 전문가는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의 지식을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동진 같은분이나 박시백화백, 그리고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교수, 역사학자 이덕일, 정자전쟁(Sperm Wars)라는 책을 통해 인간의 성적 행동들을 일반인들을 위해 충격적이고도 재미있게 들려준 로빈 베이커 같은 사람들은 마땅히 존경 받아야 한다.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다시 "조선왕조실록"으로 돌아가서, 박시백화백은 실록을 꼼꼼이 들여다 보고도 하지만 다양한 역사적 견해들을 현재 시점에서 해석하여 교과서에서 배운바와 다른 내용들을 결과적으로 설파하기도 하는데 이또한 그의 고민과 관심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효종"에 이르러서는 그가 비록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어서 복수를 꿈꾸었다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31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임금이 되었는데, 그러한 국제정세와 상황판단없이 "북벌"을 꿈꾸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실록의 문헌과 자료를 통해서 송시열 등을 비롯한 사림세력으로부터 제기될 "정통론"에 대한 컴플렉스 및 그들과의 세력균형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역사는 들여다 볼 수록 화만 나고 답답한게 사실이다. 임진왜란이라는 크나큰 시련에서 배우지 못했고 이후 나라의 근간이 되는 백성의 삶을 집권자들이 도외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시일이 소요되긴 했지만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안타까운건 좀 더 일찍 망했으면 이땅의 백성들이 좀 덜 궁핍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박시백화백이 건강하게 이 시리즈를 잘 끝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저작을 통해 그가 돈도 벌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문화가 좀 더 풍족해 지지 않겠는가?  

YES마니아 : 골드 s****h 2009.01.3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진정한 북벌이었을까 아니면 통치를 위한 propaganda였을까?
"진정한 북벌이었을까 아니면 통치를 위한 propaganda였을까?" 내용보기
이 권에서는 효종과 현종을 다루고 있다. 교과서 역사책에는 효종과 송시열이 북벌정책을 썼다고 간단하게 나오는데 이 책에서는 송시열은 물론이고 효종조차도 진정한 북벌이라기 보다는 성을 쌓는 등 수성을 위한 국방력 증강에 힘을 썼다고 해석하고 있다. 나는  효종은 잘 모르겠지만 송시열이 북벌에 적극 참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치려 본 유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진정한 북벌이었을까 아니면 통치를 위한 propaganda였을까?" 내용보기

이 권에서는 효종과 현종을 다루고 있다.

교과서 역사책에는 효종과 송시열이 북벌정책을 썼다고 간단하게 나오는데 이 책에서는 송시열은 물론이고 효종조차도 진정한 북벌이라기 보다는 성을 쌓는 등 수성을 위한 국방력 증강에 힘을 썼다고 해석하고 있다.

나는  효종은 잘 모르겠지만 송시열이 북벌에 적극 참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치려 본 유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전쟁으로 일으키려고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단 그들은 보수적인 사람들이고 문관의 체제가 확고한데 굳이 전쟁을 일으켜 무관들의 정치적인 힘을 키워줄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자신들의 이념인 성리학적 나라를 세우고 그 안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현종하면 생각나는 것은 예송논쟁 뿐이다. 상복 문제 하나로 왕의 정치력과 권력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나라는 조선 밖에 없을 것이다.

e******s 2015.02.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중기 전란기의 아쉬운 대목
"조선중기 전란기의 아쉬운 대목" 내용보기
효종 하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북벌' 정책 정도가 그간 배워왔던 이야기인데, 오히려 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국가적 위기시에서의 선조보다 더 심했던 인조의 무능과 편협했던 질투, 효종의 형이었던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미 흘러간 역사에서는 만일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이 무의미하다고는 하지만, 만일 반정을 성공시킨
"조선중기 전란기의 아쉬운 대목" 내용보기
효종 하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북벌' 정책 정도가 그간 배워왔던 이야기인데, 오히려 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국가적 위기시에서의 선조보다 더 심했던 인조의 무능과 편협했던 질투, 효종의 형이었던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미 흘러간 역사에서는 만일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이 무의미하다고는 하지만, 만일 반정을 성공시킨 인조의 인물됨이 달랐더라면 조선 후기의 역사는 이후 우리가 겪은 민족적 비극과는 달리 전개되지 않았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n*****s 2009.11.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북벌과 논쟁
"북벌과 논쟁" 내용보기
북벌이라는 가슴 떨리는 단어.   바로 그런 북벌이 나오는 효종실록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효종의 북벌론에 대해 작가는 새로운 해석을 내어놓았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효종이 북벌을 추진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런 단순한 사실이 아
"북벌과 논쟁" 내용보기

북벌이라는 가슴 떨리는 단어.

 

바로 그런 북벌이 나오는 효종실록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효종의 북벌론에 대해 작가는 새로운 해석을 내어놓았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효종이 북벌을 추진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런 단순한 사실이 아닌 그

이면에 감춰져있던 새로운 사실이 있다. 작가는 그런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리고 예송논쟁을 바탕으로 당시의 논쟁의 치열함을 표현했다.

 

문을 숭상하고 무를 배척하는 경향으로 흐르던 조선에서 무의 가치를 높이고 북벌론을 등장시켜 무의 기치를 세운 효종. 하지만 그런 북벌은 그의 신화가 되었다. 늘 정통성 문제로 자유로운 운신의 폭을 가질 수 없었던 효종은 많은 노력을 꾀하지만, 결국 그 성과를 모두 이룰 수 없었다.

 

그 와중에서 그가 준비했던 북벌은 현재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북벌, 난상토론의 대명사가 된 예송논쟁.

 

그 속에 빠져보는 것도 현대 사회를 일시적으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할 것 같다.

n********s 2009.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 효종/현종 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 효종/현종 실록" 내용보기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아끼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권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만화라고 무시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나온 조선왕조에 대한 어떤 입문서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조선왕조실록에 빠져서 IMF로 어려웠던 시절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사료와 씨름한 작가의 마음가짐과 준비한 공력 때문일 것이다. 이번 13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 효종/현종 실록" 내용보기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아끼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권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만화라고 무시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나온 조선왕조에 대한 어떤 입문서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조선왕조실록에 빠져서 IMF로 어려웠던 시절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사료와 씨름한 작가의 마음가짐과 준비한 공력 때문일 것이다.


이번 13권은 조선의 16대, 17대 왕이었던 효종과 현종실록을 다룬다.

이 두 왕은 ‘북벌(효종)’과 ‘예송논쟁(현종)’이라는 뚜렷한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실록과 기타 사료를 검토하고 난 후 효종의 북벌이 실제로 추진되었다기 보다는 하나의 구호적인 성격과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효종은 군사에 관심이 많았고, 다양한 군사제도의 개혁을 주도했다.

그러나 효종의 군사개혁은 청을 정벌하려는 목적이라기 보다는 침입이 있을 경우 임진왜란 때와 같은 장기항전 및 게릴라전을 염두에 두는 정도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효종이 북벌을 표방한 것은 적장자였던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 이후 효종이 평생동안 낙인처럼 지니고 있던 ‘정통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송시열을 중용한 것도 역시 당대 주류 사대부들인 산림(山林) 세력의 지지를 얻어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다분히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고 보고 있다.


현종 당시의 예송논쟁은 이후 숙종에서부터 정조시기까지를 관통한 ‘당쟁’이 본격화된 사건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예송논쟁은 왕이 직접 당쟁의 중심에 서서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시도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현종대의 예송논쟁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효종과 그 왕후가 죽은 후 입어야 할 상복의 기간을 두고 치열한 예학의 해석논쟁과 더불어 일어났다.

하지만 작가도 지적하듯이 상복을 입는 기간은 전시대에도 온갖 편법이 난무하였던 문제였고, 또한 각 당파의 주장에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점에서 논쟁의 결과가 완전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되어 버린 예송논쟁은 분명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효종의 북벌과 현종의 예송논쟁은 이제는 조선사회에서 왕권에 대한 신권의 우위가 돌이키기 어려운 대세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태종이나 세조, 연산군이 노력했던 신권을 지배하는 왕권이나 세종이 노력했던 왕권과 신권의 조화와 균형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기가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왜란과 호란, 인조반정 등을 거치면서 나타난 왕권의 무력함과 및 간관제도와 상소로 대표되는 성리학 사상으로 무장한 산림세력의 자신감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대를 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시점에서 보수회귀와 근본주의적 편협함이 나타났고, 종국에는 이것이 국력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왕권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사대부 지배체계 역시 무력함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는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였고, 그런 점에서 서서히 의식과 물질기반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중소상인들과 일부 농민들의 역할이 중요해 지는 시기였다.

하지만 결국 이 시대의 흐름은 ‘소중화(小中華)’를 강조하고, 경전의 문구 하나에 치중하여 상대편을 몰락시키는 보수적 근본주의로 회귀하고 말았다.

청나라는 서양 각 국가들과, 일본은 네덜란드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문화로의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조선은 중화중심를 심화시켜 가고 있었다.

이제 당쟁은 건전한 붕당정치라기 보다는 문구 하나하나로 꼬투리를 잡아 ‘너죽고 나살기’ 방식의 양상으로 바뀌어 갔다.

조금만 더 융통성을 가진 지배체제가 이루어졌더라면, 수권 집단의 타협이란 새로운 정치문화가 창출되었더라면, 기층 민중들의 의식이 좀 더 각성하였더라면 하는 등등의 생각을 가져보지만....

결국 역사에서 가정이란 하나의 결과론이며 아쉬움의 표출 이상이긴 어려운 것 같다.


다행이었다고 느낀 점은 김 육과 같은 정치인이 있어서 ‘대동법’이라는 민중중심적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졌다는 점 정도일까.

그나마도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전국적인 실행은 그 후로도 한참 후인 숙종 시대나 되어야 하니, 더욱 답답함을 느낄 뿐이었다.


이제 현종의 시대까지 가고, 아마도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장 많은 소재가 되었을 ‘장희빈’이 등장하는 숙종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예송 논쟁을 통해 지배계급의 주류였던 서인 세력과 만년 야권이었던 남인 세력의 본격적 다툼이 시작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당쟁을 통해 당시 조선의 지배계급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흔히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영조/정조시기에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다음 권을 기대해 본다.

s******e 2009.05.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평화의 시기
"평화의 시기" 내용보기
원래 제목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고 하려고 했다. 우선 효종과 현종을 지내는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송시열이라는 것에서는 부인을 하기 힘들다. 솔직하게 그만한 영향력을 누린 조선의 누가 있는가 궁금하기 조차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송시열의 세상이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는 실록을 다루는 책이니까, 임금님 중심으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제
"평화의 시기" 내용보기

 원래 제목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고 하려고 했다. 우선 효종과 현종을 지내는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송시열이라는 것에서는 부인을 하기 힘들다. 솔직하게 그만한 영향력을 누린 조선의 누가 있는가 궁금하기 조차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송시열의 세상이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는 실록을 다루는 책이니까, 임금님 중심으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제목은 

 

 효종 임금. 열심히 하신 임금이다. 사실 그 분이 북벌을 꿈꾼 것이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마음속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자주 국방이다. 강한 청나라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청나라도 부터 버티는 것 혹은 보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분이 술을 끊고 정사를 열심히 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가신 것이 안타깝기도 하며, 정치적으로 아버지의 인조에 비해서 전혀 나아간 부분이 없다. 서인 정권이 아니라 할 수 없으며, 치욕적으로 서인 산당의 꼭두가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종, 이 분 참 평가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역사 속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다. 이분의 치세가 1~2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15년 이상(정도) 한 것을 보면 오랜 세월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 혹은 당파에서 조절을 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종 이름은 멋있지만 별로 지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어쨌던 정파적으로 중립적이면서 왕권을 지키려고 했던 인물이다. 이 정도면 훌륭한 인물이다.

 

 이 책의 주요한 부분의 하나이지만, 기해 예송은 어이없다. 크게는 태평성국이어서 싸울 것이 없는 시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고, 작게는 유교의 법도가 지나치게 갔어, 더 이상 공통의 이해를 얻을 수 없는 지경에 갔구나 하는 생각이다. 솔직하게 우리가  중국의 질서에 잘 들어갔고, 큰 문제가 없는 사회이구나 하는 생각이다. 바보들이 강력한 유교 질서만 공고히 하지 않았으면 개인에게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지만, 교만한 것은 항상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승자는 바뀌는 것이 아니지만.

 

 결론을 내자면 이 시대는 평화의 시기이다. 효종 임금님은 기꺼이 받아들이시는 임금님이고, 현종 임금님도 중재에 능한 임금이다. 남인도 중용해 당파 문제도 잘 모르겠고, 외척에 대한 이슈도 거의 없는 시대이다. 한마디로 평화의 임금 시대이다. 이것이 제목이다.

 

 앞장에서도 나오지만, 대동법을 만드는 사람, 김육, 김육,에 대해서 길지 않지만 잘 정리되었다. 조선시대 행정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대동법이 전파되어 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김육은 따로 한번 봐야 할 것 같다.

 

 북벌 이야기가 나오지만 뻥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있을 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어렵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송시열 뻥쟁이라고 한마디 하고 싶다.

 

z******g 2012.04.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