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의 미래, 중년파산 | 아카기 도모히로 외 | 류두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10
허공 저 멀리 시선을 둔다. 높고 푸른 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 무심한 듯 유유자적 흘러가는 파란구름처럼 우리네 삶도 저렇듯 늘 푸르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말이다. 양지와 음지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들락날락거리며 수시로 자리바꿈을 반복하지 않던가. 그 안에서 우리는 또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만들며, 세상살이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시나브로 체득(體得)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좋든 싫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말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금수저’면 어떻고, ‘흙수저’면 어떤가? 신은 공정해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단점을 골고루 하사받았다고 굳게 믿으면 그뿐이다. 이는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자신’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면서 수렁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또한 언제든 기회만 되면 한 입에 꿀꺽 넘겨버릴 듯이 우리 주변에서 그림자처럼 어슬렁거리는 블랙홀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백주대낮에 눈 빤히 뜨고도 뒤통수 맞는 세상이다. 이런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 줄 바짝 조이고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아니, 직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즈덤하우스에서 최근에 출간된 <98%의 미래, 중년파산>(아카기 도모히로 외, 2016)은 버블 붕괴의 여파를 온몸으로 뒤집어쓴 중년들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가감(加減)없이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 일본에서는 기업의 눈에 띄어 정직원이라는 각인을 받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출발점이며, 인간이 되어야 비로소 차를 사거나 가정을 꾸리거나 집을 살 만큼의 임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취업하지 않고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니 얼마나 참담한가?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령, 취업이 되어도 문제는 계속된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로지 소속집단에 온몸을 바쳐서 헌신하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휴일은커녕 가족과의 따뜻한 대화 따윈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취업이 되어도 문제이고 평생 아르바이트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도 문제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결국 중년파산이라는 초대형 파국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너’와 ‘나’의 구분이 없으며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모두의 미래가 여기에 속할 뿐이다. 그렇다고 인생이라는 소중한 테마를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인간은 태어나서 늙어간다. 태어나서 20년이 지나면 20세가 되고, 60년이 지나면 60세가 된다. 20세인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경우는 있어도 결코 중도에 태어나지는 경우는 없다. 강물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27쪽)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나름의 착지점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한 노력과 함께 무한 긍정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으리라.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직장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미래에 환한 등불을 밝혀줄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또 변하고 있다. 개성이 요구되는 세상이고 개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삶의 깊이를 더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당장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중도에 탈락할 확률이 줄어들고 또 그만큼 중년파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결코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실제사례와 함께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보다 밝은 미래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
|
사오정이 현실화된 지 오래다. 퇴직할 정년의 나이는 참 많이도 빨라졌는데, 막상 퇴직하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은 별 다른 기술을 요구하지 않고 창업이 쉽다는 이유로, 또 목만 잘 잡으면 수입이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치킨집의 '블랙홀'로 빠져 든다. 하지만 알토란 같은 퇴직금만 날리고 가게를 접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되면 파산이라는 말이 남 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노년 파산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노년 파산을 넘어 중년 파산의 시대다. 실제로 그렇다. 도표가 증명한다. 2015년, 1월부터 2월까지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연령별 파산 현황이다. ![]() 이른바 중년이라 할 만한 나이대의 파산이 무려 65.4%나 된다. 실태가 이러하니 어떻게 중년 파산이라는 말이 마냥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 있을까? 노년 파산이라는 말은 우리가 겪는 것을 정확히 10년 앞서 경험한다는 일본에서 나온 말이다. 중년 파산도 그렇다. 그것은 지금 일본에서 현격하게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아카기 도모히로를 포함한 다섯 명의 일본 자유기고가 쓴 '98%의 미래, 중년 파산'은 바로 그것을 다루고 있다. 일본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아주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었다. 흔히들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다. IMF가 터졌을 때의 우리나라와 똑같이 그 때 갓 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 취직이란 하늘의 별 달기보다 더 어려웠다. '취업 빙하기'란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이제 그 빙하기 때 구직활동을 했던 이들이 40대가 되었다. 중년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 그들은 '잃어버린 세대'(단카이 주니어 세대가 여기에 해당된다.)라 불린다. 앞 세대(단카이 세대)와 다르게 경제 부흥에 따른 달콤한 과실을 전혀 맛보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취업이 어려웠던 그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 되었다. 그런데 한 번 비정규직이 되면 결코 정규직이 될 수 없었다. 이 책의 2장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대담으로 이뤄졌는데, 그 중 다음과 같은 말은 왜 일본에서 '중년 파산'이 현실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미야 : 흔히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하는데,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20세부터 40세까지 20년 동안 취직을 하거나 업무를 익히거나 결혼, 출산을 합니다. 말하자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0년인데,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그것을 빼앗긴 셈이지요. 제가 조합원으로 속해 있는 '프리터 전반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외에도 실업자, 저소득자, 위킹푸어 같이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폭넓게 가입할 수 있는 독립계 노동조합입니다. 이곳에서 8년 동안 함께 운동을 해왔던 조합원들은 전부 30대 후반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 누구 한 사람도 결혼한 이가 없었고 아이도 없었지요. 가야노 : 조합원 중에 정직원이 된 사람은 있습니까? 아마미야 :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었어요. 정직원으로 일했던 사람이 8년 사이에 실직해서 지금은 생활보호를 받고 있다든지 하는 반대의 경우라면 수도 없이 많지만요. (p. 77 ~ 78) 그들에게 더이상 삶이 나아질 가망은 없다. 현상유지만 되어도 다행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본 역시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다. 자꾸만 늘어나는 노년층으로 인한 부담이 사회에 가중될 수밖에 없다. 반목과 증오도 덩달아 커지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가 쓸 수 있는 재화엔 한계가 있고, 경제 불황과 노년층의 증가로 갈수록 세수가 줄어들게 되면 사회로부터 그동안 받았던 혜택을 줄어들며, 그 줄어든 원인을 남들에게서 찾기 때문이다. 즉, 저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내가 받을 임금이 적어졌어, 혹은 복지 혜택이 줄어들었어 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런 식으로 '중년 파산'의 징후는 왜 극우로 치닫고 있는 아베 정권을 일본 국민들이 지지하는가에 대한 것 역시도 알게 해 준다. 우리나라의 일베와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재특회'라고 해서 극우를 표방하는 넷우익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처음엔 이런 넷우익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회적 소외와 불만 계층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왠걸 어디든 있을 법한 주부나 멀쩡한 회사의 정직원들마저 많이 가입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무엇이 안정적이고 평범한 그들에게 중국과 한국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경제적인 불안감이 자리한다. 그러니까 '일본 최고다!'하는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인들 때문에 내가 쓸 수 있는 경제의 파이가 적어진다는 박탈감이 증오의 근본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불안이 타인에 대한 적대와 증오를 부추긴다. 사실 우리나라의 일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가뜩이나 많이 늘어난 혐오 문제도 이번 정부에 들어와 더욱 나빠진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도 암울한데 미래의 전망마저 보이지 않으면 타인을 포용할만한 여유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한정 줄어들기 마련이다. 혐오를 지양하고 모두가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선플 운동 같은 걸 할게 아니라,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경제적 자본을 늘려주면 된다. 최저 임금을 현실화 하고, 부자 증세를 통한 세수 확충으로 고용과 복지 혜택을 증대하여 현재와 미래를 불안 속에 걱정하면서 맞이하지 않게만 하여도 지금의 혐오와 증오는 많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지금 사회가 너무 가진 자 위주로 되어, 98%의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을 못 받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없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소득 불평등의 운동장을 얼른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중년 파산'은 결코 남의 나라 일도,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비정규직의 비율이 50%가 넘었다. 언제 성큼 닥칠지 모른다.
|
|
내 나이 이제 서른둘. 지금 다니는 회사는 올해로 7년째 근속 중이다. 회사를 다닌 게 어느덧 10년차가 되어간다니 새삼스럽긴 하지만, 세 살배기 딸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 아이가 커서 독립할 때까지 '밥줄'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말이다.
물론 남편이 벌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함께 벌어야 하고, 그러기로 약속했다. 엇비슷한 수입을 가진 우리 부부 중 한 사람이 회사에서 낙오된다면 우리 가정의 가정경제는 비루해지고 비참해질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 대한 생각도, 다닐 만큼 다니다가 힘들면 그만두지 뭐~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모든 것이 달라진다. 어느새 회사에서 나를 내치지 않는 이상 회사를 꼭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작 서른둘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그래서인지 <중년파산>이라는 책 제목의 '중년'이 멀지 않은 나의 미래로 느껴졌다. 다가올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고 해서 외면하다가는 정말 어두운 미래를 맞이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미리 알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
책 속에서는 왜 중년파산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그리고 한국과 어떤 점에서 유사한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금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책이다.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중년뿐만 아니라 청년들조차도 중년파산이라는 말이 와닿을 만큼 녹녹치 않은 한국사회이다. 점점 수명을 길어져서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할 텐데, 40, 50대에 퇴직을 해서,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비정규직으로 전전긍긍하다 그대로 노후를 맞아야 하는 현실.. 사실 재벌이 아니고서야 누구나에게 닥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 실감하지 못해도, 중년 파산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이 책.. 각자의 상황에 따라 나름의 대비를 하라고 일깨워준다는 면에서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
|
중년에 파산이 되는건 매우 쉽다. 본인이 아프거나 가족이 아프면 된다. 예고치 않은 실직을 당하면 된다. 사업을 한다면 혹은 자영업을 한다면 경제상황으로 인해 망하면 된다. 이 외에도 파산이 되는 경우는 매우 다양하게 많다. 파산을 하지 않고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는게 어려울 뿐이다. 20,30대까지는 취업을 하기가 그나마 수월하다. 쉬운게 아니다. 아르바이트 든, 파견계약직이든 당장의 돈을 벌 방법은 다른 연령대보다는 높다는 의미다. 하지만 40대가 되는 순간 이직을 하는것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모두 어렵다. 회사는 적게 주고 오래 일을 할수 있는 젊은 연령대를 선호하지, 연륜과 경험에 약간의 돈을 얹는 것조차 꺼린다. 특히나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바뀌고 젊은 감각이 돈이 되는 지금 상황에서 중년이란 나이는 적응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가성비 낮은 인력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우린 중년에 파산하지 않을 수 있을까? 40대 이후의 삶이 풍요로울 거라 얼마나 자신할 수 있을까? 월세로 매달 500만원 이상의 소득이 보장된 사람이 아니라면 대답은 '자신없다'이다. 망하지 않을 거라 자신하는 대기업도 몇년사이에 파산하는게 당연하고, 지금 보유한 업무 능력이 언제 새로운 기술로 대체될 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중년에 파산한 사람들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질문한다. 과연 이 사람들이 잘못인가? 아니면 사회가 잘못인가? 일본 저자들이 쓴 일본 사회의 중년 파산이지만 한국과 닮은 점이 매우 많다. 파견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거나, 여성의 일자리는 반찬값 벌이 정도의 가격으로 매도되는 경우라던가 등의 사례들은 지금 당장 한국으로 바꿔도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일본 직장내에서의 왕따 문제인데, 뒷담화와 승진 차별을 주로 하는 한국의 직장 왕따문화와 달리 직장에서 대놓고 폭력을 행사하고 구타하는 일본의 왕따 문화는 충격적이었다. 직장에서 그렇게 동료를 때리는데도 말리지 않는다는 건 일본 직장 문화가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심지어 그런 사례가 꽤 자주 나왔다. 이 책의 결말은 크게 두가지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아서 직장을 얻는 걸 포기하고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운을 얻고, 그러면서 하나씩 시도해보고, 그러다 장사 혹은 협동조합과 같은 활동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케이스가 있다. 반면에 사회의 기초생활수급과 같은 제도로 극도의 빈민을 구제하는데에 그친다. 모두가 중년 파산을 두려워 한다면 자연스레 소비를 줄이게 된다. 그에따라 내수 시장은 위축되어 고용시장은 더 악화된다. 두려움이 실제 상황으로 발현된다. 중년의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나이 듦이 경제적 불안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회로 변하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나는 과연 중년에도 파산하지 않을 수 있나? 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특히 3장의 파산사례들은 매우 현실적이라 이 부분만 읽어도 충분히 좋은 책이었다.
|
|
10년도 더 된 얘기다. 해마다 초과이익분배금으로 잔치를 벌이는 대기업에 다니던 선배들은 짬만 나면 모델하우스를 보러 다녔다. 그들은 모였다하면 부동산 얘기를 나눴고 상가 낀 자그마한 건물을 산 다른 동료를 부러워했다. 빵빵한 직장에 매번 보너스 대박을 터뜨리는 그들이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한눈파는지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중년, 40대에 진입 중이거나 진입한 사람들이었다.
제목부터 암담한 ‘98%의 미래,중년파산(아카키 도모히로 외 5인 글, 류두진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은 단카이 주니어 세대의 중년을 걱정하고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한다고 외친다.
만 65세 인구가 총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는 고령 인구를 대상으로 한 복지, 사회 정책들이 정비되는 등 노인이 빈곤 문제로 인해 겪게 되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중년인 사람들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경기 침체기의 직격탄을 맞아 직장 구하기 어려운 청년 시절을 보냈고, 이제는 하루 버티기도 힘든 상황인데 아직도 젊다는 이유로 관심의 대상이 되기는 요원하다.
이력서에 공백 기간이 있으면 당사자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다고 간주된다. 그렇게 잠재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사회적 철퇴’만을 거듭해 받으면서 점차 살아갈 의미나 의욕마저 잃어간다. (본문 p.122)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가 아닌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위로받던 세대가 있었는데, 이 말에 분노하는 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 흡사하다. 처음 들었을 때만해도 멋지게 들렸던 ‘프리터족’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삼포’는 이제 우습다. ‘칠포(연애, 결혼, 출산, 내집, 인간관계, 꿈, 희망 포기)’ 정도는 되어야 한다. 현재 이 암울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세대가 10년이 지나면 중년을 맞이한다.
우리나라의 중년은 특히나 불안하다. 어렵사리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해도 정년은 보장되지 않고,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연일 고공행진이다. 그렇다고 복지 정책이 잘 되어있는 것도 아니니 부모와 본인의 노후까지 생각하면 걱정거리가 산더미다. 지금의 상황이 이러한데 10~20년 후라고 좋아질까?
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라도 찾아볼까 하고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 해답은 아쉽게도 우리도 이미 아는 내용이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사회가 변해야 한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 아닌가? ‘노오~력’을 하라고 벼랑 끝으로 떠밀지 말고, 상생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력의 공백을 경험한 사람이 자기 긍정감을 갖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책에는 흔히 ‘자기 자신을 칭찬해주자’고 적혀 있는데, 남에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지는 실질적인 체험이 없으면 실천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통감하게 됩니다.(본문 p.179) 힘내라고 말해도 되는 상황은, 어떤 사람의 목표를 100이라고 치고 70점 정도까지 가 있는 사람의 등을 힘껏 밀어줄 때뿐입니다. 0이나 마이너스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한들 비참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아요. 방향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힘내야 좋을지를 모를 때가 있으니까요.(본문 p.199~200) |
"전혀요. 생활에 의욕이 없어요. 공허함이라는 기분 알죠? "눈여겨 볼 지점은 이 책이 ' "이같은 현실을 '개인의 책임'으로 단정 짓기란 정말 쉽고, "이제는 젊은이도 아니니 앞으로는 동정도 받지 못해요. "배제의 논리를 관철하고, 남에게 냉정하고, 불안을 부채질하는 사회가 아닌 사람들이 안심하며 일하고, 서로 돕고 격려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이제 중요해졌다."
|
|
98%의 미래, 중년 파산은 제목부터 현실을 바라보는 냉정함이 있다. 누구나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내일을 희망하는데 파산이라는 전혀 달갑지 않는 제목을 달았다. 그 속에 현실의 단면이 있고, 책을 읽어 가며 공감하는 내 마음에 불안이 발생한다. 동시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뇌도 있다. 인구학, 경제상황과 단기 경제 예측, 세대간의 간격, 피케티의 경제 현상에 대한 분석들이 논의 되지만, 시간의 흐름속에 '변화하는 세상과 내가 그 변화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돌아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진실은 불편하지 않지만, 내가 알고 싶어 하거나 외면하는 진실은 불편할 때가 많다. 그 진실을 다양한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다. 한번씩 책을 들추어 볼 이유다. 책은 단카이 세대라고 말하는 일본의 고도성장 세대가 맞이한 환경, 단카이 주니어들이 처하는 저성장의 세대를 비교함으로 삶의 관점에서 이 세대들이 맞이할 환경을 현재에 비추어 예측한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세대들의 맞이 하는 현실과 결과가 결국 그들이 하류노인이 되는 단초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며 균등하기 않은 기회의 시대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 기회마저 잃어 생계를 어렵게 살아가는 세대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이 맞이하는 중년이 그 앞세대와는 전혀 다른 노후를 맞이할 것으로 예측한다. 앞세대의 말(하류노인)을 듣고, 나의 현실을 보면 나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한국경제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은 어떤 매체에서도 이런 주장을 보기 힘들다. 자조에 섞인 헬조선, 망한민국이란 젊은 청춘들의 말이 시대를 풍자한다. 그리고 나의 경험과 책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간의 차이만 있지, 데쟈뷰를 연상할 수 밖에 없다. 삼성이 기업매각등을 통해서 20조의 현금을 모아서 준비한다는 루머가 있다. 그만큼 현재의 불안이 미래의 삶에 주는 영향으로 더 불안해 진다. 책의 사례에서 보듯, 세상은 정글이 되어가고 있고, 불만은 차오르고 삶에도 경제에도 버블이 차오르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를 나는 황금마차를 탄 세대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지적성취가 높다기 보다, 사회의 수준이 대학보다 낮고, 성장기에 필요한 인력 수급 문제로 버스로 모셔가던 시대다. 좀더 쉽게 사회진출과 안정적인 삶이 부과된 세대다. 반면 그들의 지식을 축적하고, 사회적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칭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90년대 대학생 세대는 일부는 황금마차를 타기도 하고(군대면제라면), 대부분은 한겨울 허허벌판의 한가운데 떠밀려 떠나버린 황금마차를 구경만 한 세대다. 나는 세상에서 X표를 받은세대, 맛보기 세대(뭐좀 하면 바뀜)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97년말의 사태로 98년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리고 입사하는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서, 황금마차의 존재를 모르는 힘든 청춘들의 이야기가 현재에 있다. 80년대 학번들의 자식세대가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이되어가는 지금이다. 마윈이 말한 나이를 먹어가면서 필요한 것, 공자님이 말씀하신 나이에 따라 해야할 것이란 좀더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중요하게 간주해야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원때 해야할 일이 있고, 팀장때 해야할 일이 있고, 임원이 해야할 일이 있다. 팀장할 나이에 사원이 하는 일을 한다면 스스로 부족함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원할 기회가 없어, 팀장을 할 수 없는 기회균등의 박탈, 시대의 환경과 치열한 환경이 주는 영향은 반드시 그들만의 잘못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이런 시대일 수록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실력을 쌓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실력을 쌓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시간, 금전적 여유등은 또 다르다. 여기에 사회의 실패와 좌절이 있다. 이런 체계가 지속된다면 계층간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고, 세상은 경직될 수 밖에 없다. 마치 설국열차의 꼬리칸이 늘어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일은 인류의 역사에 경직된 사회는 폭력과 야만적인 사태가 많이 발생한다. 설국열차에서도 대화보다는 폭력의 과정이 시스템의 변화를 결정할 때까지 지속된다. 이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사속에서 배워야 할 것을 놓치는 것이다. 불과 100년전만 해도 세상은 총질을 밥먹듯 일삼았다. 개인의 노력들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제도와 법률로 노력들이 발현되어 최대한의 구성원들이 기초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나는 믿는다. 나랑 상관없는 입법기관, 법률집행기관이 사회를 운영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이유다. 진보인사들이 정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란 간접적으로라도 여기에 영향을 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예상하고 있고, 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준비하고, 현재를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조금의 여유들을 주변과 함께 하는 따뜻함을 되찾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세상은 나의 비용이 누군가의 소득이고, 누군가의 비용이 나의 소득이란 사실을 잊은지 오래되었다. 춘추전국시대 아이를 바꾸는 이야기를 보며 야만의 시대라고 하며, 남의 집 귀한자식을 학대하며, 우리집 귀한자식도 남에게 학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난 이런 것이 하류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내야할 이유는 우리가 이를 극복하고 더 좋은 환경을 다음세대에게 줄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내가 이런 시대를 살아내야할 이유라고나 할까....아니 그래야 세상은 조금 더 좋은 방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 저자가 일본인인지라 일본의 상황에 대해서만 적었지만, 읽어나가면서 '곧 내 미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은 일본이 겪었던 경제성장과 버블이 가라앉은 상황을 그대로 답습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안고있는 사회문제도 비슷한 시기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최대 경제부흥기에 사회를 이끌었던 '단카이세대', 그리고 그들이 낳은 자식들을 '단카이 쥬니어'라고 합니다. 단카이세대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학교만 졸업하면 대기업엔 그냥 취업하는 시대라 어려움이 없었지만... 단카이 쥬니어의 시대에는 버블이 가라앉고 대학졸업 후 취업할 회사가 없어 결국 비정규직, 파견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중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중년이라는 나이 & 정규직의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재취업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계속해서 저임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해서 선택했던 비정규직, 파견직, 아르바이트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몰아넣었고, 국가는 그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개인의 능력부족'이라는 틀 안에 넣고, 노오력~하지 않아서 낙오자가 되었다고 핀잔만 늘어 놓습니다. 과연 이 상황이 개인의 문제라는 틀 안에서만 봐야 할까요? 그 불황의 시기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선택했던 비정규직&파견직&아르바이트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을 '개인의 능력부족'이라는 말로 단정지어 말할 순 없습니다. 단카이 쥬니어세대는 중년이 되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고, 노년기에 들어서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서게 되겠지요. 이 책에선 위의 내용들을 아주 상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읽으면서도 너무 씁쓸하더라구요. 곧 우리의 미래또한 이러겠지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중년들의 재취업 및 교육을 위한 국가의 지원도 마련이 되어야겠지요. 거기에, 사람들이 사회에서 활기차게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고용의 질 개선 // 터무니 없이 낮은 급여, 노동력 착취, 복지 하나 없는 블랙기업은 법적 조치를 해야지만 할 것입니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중간에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정곡을 찌르더군요! 미니멀리스트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물건이 없음에 불안을 품지 않는다. 왜냐하면 필요해지면 언제라도 물건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으며, 소비를 억제하는 대신 정신적 충족감(일적으로 얻는 성취감)을 얻고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많은 물건들 속에 있다. 이들은 항상 돈이 고갈될 위기감을 안고있기 때문에 한 번 손에 넣은 물건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설령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언젠가 사용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물건을 버릴 수 없다. |
|
열심히 일하고도 버림받는 하류중년 보고서 패자부활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 성실히 일해도 배고픈 노년이 기다리는 대한민국 중년 파산은 이미 시작되었다 나자신 또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중에 한사람인데 이책을 보니 이렇게 큰소리 치기만 할 것이 아닙을 뼈저리게 느낀다 열정만으로 원하는것을 얻는 시대가 아니라는것 또한 알게된다 이책이 경제적인것 만 주목하지 않고 안정적인 노동활동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사람의 정신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주변의 평범한 사례에서 찾는다는것이다 중년파산은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사회 전체를 향한 엄중한 경고로 이해되어야한다. 중년파산은 곡 가족의 위기고 모든 세대를 병들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물건을 많이 갖고 있다 미니멈은커녕 불필요할 정돌로 물건이 넘쳐난다 이는 결코 귀찮아서 그런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돈이 고갈될 위기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번 손에 넣은 물건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설령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언젠가 사용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물건을 버릴 수가 없다
자산이 있던 측은 보호흫 받고 처음부터 자산을 갖지 않은 사람은 쫒겨났다 결국 가진 사람이 잃ㄱ은 것에 대한 동정은 강하지만 애초에 갖지 못한 사람에 대한 동정은 부족한 것이 오늘날의 현주소 기업에 선택받은 사람이 되어야 설령 뭔가 불행한 일이 생기더라도 거기에 대한 보상이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자산을 가진 사람은 모든 면에서 우대받고 지진피해라는 유사시에조차 자산을 갖지 못한 가난한 중년에게 사회는 계속 냉혹할 뿐이다 중년의 빈곤은 자기 책임일까? 지금의 일본 사회는 사회적인 책임을 묻게 되는 사안은 뭐든 자기 책임이라며 책임을 개인에게 떠 안기는 경향이 있다 원래 있어야 할 사회 책임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사회책임의 대부분이 개인에게 전가되어 있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다가오고 변해 갈 것이다 저자는 하늘을 나는 슈퍼카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는 이 또한 금방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30년후이면 많은 세상의 변화가 다가올 것이다 기계가 생산을 대신해가는 사회속에서 신의 가호를 받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미래에 우리들은 증오나 원망속에서 그저 오로지 괴로워하며 발버둥 칠 뿐이다 이제 회사라는 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가족이나 이웃과 행복하게 살기 위한 일을 위해 한단계 인식의 도약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부모가 빈곤하다는 이유료 자녀에게 제대로 된 교욱을 받게 하지 못하고 그때문에 자녀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곤의 연쇄를 이런 방법으로 완화할 수 있고 정부재정에도 플러스가 된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에 대한 빈곤 대책 중에 괴롭힘 등에 대한 대책도 적절히 수립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고 또 건전한 자기 긍정감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평범한 삶의 궤도를 이탈한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서 단 한번의 탈락으로 모든 것을 잃는 사회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사례를 통해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게 현실일진데 청년도 중년도 노년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해 하루노인 문제는 하류 중년층의 불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누구나 안심 사회를 누릴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도쿄 수도대학의 아베 아야 교수가 말한다 노인문제의 답은 중년 문제에 있다 중년층은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윤택한 생활 보호를 받더라도 소용없다 사회에 자기 자신의 역할이나 존재감을 가질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 그런 직장의 존재가 중년층에게는 중요하다 절대적 빈곤율은 먹을 것이 없고 집도 없는 상황 확실히 일본 내에서 아프리카 최빈국에 잇을 법한 절대적 빈곤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먹고는 살지 않느냐는 의견을 지닌 사람이 아직 일본에는 많이 보인다 노숙인인 사람과 이야기보면 버려진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때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버려야 했다고 한다 자기 자존감이나 자기 긍정감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 바로 ,,,상대적 빈족의 본질 다른 사람과 관계하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결국 읿본이든 어느나라이든 사회속에서 평범하게 사람과 어울려가는 당연한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그런 상황속에서 상대적 빈곤에 빠지면 사람은 괴로워진다 하류 노인의 등장으로 사실 나자신이 이책을 구매해 읽었지만 불안과 두려움을 선동하게 되는 것은 맞는 말인듯하다 불안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지나친 선동 역시 문제이니 혹독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에게는 지원이 필요하며 우리나라 현실과 다르겠지만 우리또한 노후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