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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글쓰기의 최전선]으로 은유작가를 만났다. 자기계발서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책을 구매한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좋다고 추천하길래, 또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선뜻 읽었지 싶다. 그리고 그녀의 글쓰기에 푹 빠졌다. 그녀가 쓰는 글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말하는 글 쓰는 방법에 빠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 그녀의 글을 찾아서 읽는다. 이 책도 그렇게 다가온 책이다.
독학으로 글쓰기를 배웠다고, 아니 시작은 읽기였다고 말하는 저자. 소설책보다는 철학책이나 시집, 평론집에 주로 손이 갔다는 저자는 다독가라기보다는 문장수집가로, 서사보다는 문장을 탐했다고 한다. 소설책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한데, 그 다음 손이 자주 가는 분야는 영 다르다. 그나마 동양철학 책은 좋아하는지라 얼추 비슷하다가도 시집, 평론집에 이르러서는 영 딴판이다. 그렇지만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이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하여 혼자서 안심(?)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이 수집한 문장들을 추려 모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렇게 고른 104개의 문장들이 실려 있고, 그 문장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이 담겨있다. 그녀는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길 때마다 자신이 수집한 문장들을 펼쳐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어떤 문장일지, 어떤 생각일지를 혼자서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그녀가 수집한 문장과 생각을 읽어가다 문득 목에 가시라도 걸린 듯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016) 적절한 장소에 찍힌 마침표만큼 심장을 강하게 꿰뚫는 무기는 없다. -이사크 바벨 - ‘글을 쓰다 보면 꼭 사랑에 매달리는 사람처럼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질 때가 많다. 내가 아는 걸 다 설명하고 싶고 감정을 다 드러내고 싶고 내 생각을 더 헤아려 달라고 조르고 싶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픈 욕심이 넘치니, 글이 안 끝난다. 그런데 읽는 사람 입장이 되면, 끝나지 않는 글은 고역이다. 중언부언 반복되고 추상적이고 장황하고 어수선한 글은 매력 없다.’ (53쪽) 나도 안다. 그런 글을 읽는 것이 고역이라는 걸, 매력이 없다는 걸. 하지만 욕심이 앞서니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일단 쓰고 난 다음, 그 글을 쪼갤 수 있는 데까지 쪼개어 단문으로 만든다. 그렇게 된 글을 읽어보며 느낌이 이상하다 싶으면 다시 합친다. 시간을 무지 잡아먹고 피곤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은근슬쩍 원래의 글로 다시 돌아간다. ‘내가 글로 밥 먹을 것도 아닌데’하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023) 있어도 괜찮은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이태준 - ‘남의 글에서는 잘 보이고 내 글에서는 안 보이는 게 슬프지만, 암튼 불순물과 첨가물은 몸에도 나쁘고 글에도 해롭다. 화려한 요소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가 얼마나 적은가가 글의 성패를 가른다.’ (67쪽) 문제는 내 글에 있는 불순물과 첨가물이 필요할 때 안 보이고, 나중에야 보인다는 것이다. 볼 일이 있어 급히 나가다보면 잔디에 섞여 있는 잡초가 눈에 뛴다. 헌데 문제는 볼일을 보고 와서 찾아보면 안 보인다는 점이다. 그 근처에 앉아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 또한 피곤한 일이 되고 나는 또 다시 합리화에 들어간다.
(044) 한 가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이해한다. 만물에는 똑같은 법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귀스트 로댕 - ‘공부는 독서의 양 늘리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자기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은 무엇이다 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가며 다진 인식들. 그러한 자기 삶의 맥락이 있을 때 글쓰기로서의 공부가 는다.’ (109쪽) 그냥 마음에 들어온 문장이다. 나는 독서의 양 늘리기를 공부라 생각한 것은 아닌지 가슴이 뜨끔해진다. 그래서 글쓰기가 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083) 시험 삼아 내 입으로 읽으니, 이를 듣는 것은 나의 귀였다. 내 팔로 글씨를 쓰니, 이를 감상하는 것은 내 눈이었다.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았거니, 다시 무엇을 한탄하랴. - 이덕무 - ‘읽으면 보이는 것이다. 묵독이 아닌 낭독은 어조, 억양, 공명, 논점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내가 나를 벗 삼는 것, 글이 느는 지름길이다.’ (187쪽) 나 역시 글을 쓰고 나면 일단 인쇄를 한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는다. 읽다보면 무슨 말인지 그 글을 쓴 나도 모르겠고, 단락이 연결이 되지도 않고, 스스로가 한심해지곤 한다. 연필을 들고서 고치고, 순서를 바꾸고, 아예 몽땅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부족한 것은 이태준 작가가 말하는 신경질이다. 항상 신경질보다 너그러움이 앞서니 내 글쓰기에는 미덕이 없는 것 같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글쓰기에 대하여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저런 핑계도 하나둘 튀어 나온다. 나 또한 저자처럼 마음을 다잡아보아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수집한 문장들을 펼쳐 보았다고 하지만, 수집한 문장도 없는 나는 저자의 책을 다시금 펼쳐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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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인 출판사인 유유 출판사에서 나왔고 은유 작가가 썼다. 효리네민박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출연했던 박보검이 쉬는 시간 읽을 책으로 이 책을 골라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마침 글이 안 써져서 고민하던 차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을 읽은 다음 안 써지던 글이 술술 써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코 이 책을 읽은 것이 낭비였거나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은유라는 작가를 발견했다.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은유 작가에게 마음을 줘버렸다. 니체를 흠모한다는 고백, 그리고 건질만한 문장이 그리 많지 않아서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는 고백이 적힌 서문을 보며 나와 똑같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나도 니체를 좋아하고 문학보다는 문장을 더 좋아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상상력이 뛰어난 이야기보다는 인식의 깊이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문장에 훨씬 이끌렸다. 은유 작가도 그런 유형인 것 같다.
은유 작가의 글은 삶으로부터 길어올러진 것이 느껴진다. 직접 삶과 대면했을 때 나오는 문장들을 그녀 자신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녀의 글도 그녀의 이상과 닮았다. 좋은 문장은 결코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좋은 문장은 오직 경험으로부터, 충격으로부터,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나온다. 은유 작가는 그것을 알고 있다. 삶으로부터 나온 문장들이기에 그녀의 문장은 아름답다. 때때로 그녀의 문장들은 인식의 깊이가 매우 깊은 협곡 같다. 그런 문장들은 읽는 이를 두렵게 하고 기쁘게 한다. 기존에 알고 있던 현실을 찢어버리기에 두렵고 새로운 현실을 인식하게 하기에 기쁨을 준다. 그녀의 문장은 니체를 닮았다.
또 그녀는 시를 좋아한다고 언급하는데 그래서인지 문장이나 단어의 선택이 예사롭지 않다. 그녀는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을 건드린 인식을 끌어올린 다음 시인의 조각칼로 그 인식을 섬세하게 다듬기까지 한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 바로 이것이다. 저자인 은유 작가의 문장이 지나치게 좋아서 읽는 이로 하여금 함부로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뭐, 사실 이건 핑계겠지.
처음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최근 이 책을 샀다. 보관하고 싶었고 자주 꺼내 읽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글을, 이 리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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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 일지>를 보고, <쓰기의 말들>을 읽고.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그렇다고 아주 안 보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고 본 게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 된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추천해 준 작품을 보아도 아무 감흥이 없었던 적이 많다. 보게 되더라도 보통은 티브이에 방영하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를 좋게 평가하는 이들이 추천하는 작품의 칭찬과 비판을 훑어보고 나서야 '한번 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미생>, <나의 아저씨>를 볼만했던 드라마라고 느꼈고, 내가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호평의 글을 여럿 읽은 후 <나의 해방 일지>를 보게 되었다.
그에 비해서 영화는 꾸준히 보는 편이다. 나는 왜 다큐나 영화는 보고, 책은 읽으면서 시리즈물인 드라마는 잘 안 보게 될까? 나는 TV 시청 목록에서조차 뭔가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통상 10편 넘게 구성이 되고 주말 시간을 거의 다 털어내야 완주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리뷰까지 하는 데 비슷한 시간이 들지만, 상대적으로 잘못 골라 실패할 확률이 적다. 거의 모든 책에서 배우고 그만큼 자란다는 느낌을 갖는다. 내가 드라마를 까탈스럽게 선택하는 이유는 아마도 '한 권의 책' 정도의 교훈과 의미, 그것도 아니라면 그를 보상하고 남을 정도의 재미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이 책 <쓰기의 말들> 저자인 은유는 소설을 잘 안 읽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분량 대비 건질 문장이 없어서'라고 반쯤은 농담으로 얘기한다. 저자는 스스로를 '문장 수집가'라고 할 정도로 좋은 경구와 금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좋은 문장과 표현을 보면 몸이 저릿할 정도로 흥분을 느낀다. '문장 애호가'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래도 소설을 과거보다는 더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한다. 바로 전에 읽은 <다시, 책으로>에서 메리언 울프가 썼듯이, 타인의 삶에 들어가 보는 것이 나의 삶에도 강력한 의미를 가지며, 이렇게 학습된 능력이 우리가 보다 인간다워지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의 해방 일지>는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거나 이야기적 완성도가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냥 주인공이 나와 같은 내향적인 사람이었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에 공감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인상 깊게 본 드라마는 죄다 내향적인 사람들의 힘겨운 생존 이야기였다는 공통점이 있구나. 실제 나의 일상은 그리 극적으로 나쁘지도, 어느 한순간 뭔가 깨달음을 얻고 날아오르지도 않는다. 인생이 드라마가 아니니까 그렇겠지만, 극중에서라도 주인공이 경계를 허물고 도약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대리만족이라고나 할까.
- 드라마를 보다가 생각해봄...- <나의 해방일지>에서 '추앙'에 대한 얘기가 있다. 남에게 기대하고, 상처받고, 불안해 하고, 눈치보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그냥 내가 선택한 상대에게 온전한 추앙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추앙의 대상에게 존경과 사랑, 행동을 다 주겠다. 상대방의 조건과 반응과 교환을 따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건 종교의 영역 아닌가. 나는 사람 관계에서 이런 종교적 행위에 반대한다. 일방적인 추앙은 나쁜 녀석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좋지 않은 신호를 주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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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강좌를 시작해 현재 학습 공동체 '말과활 아카데미'와 글쓰기 모임 '메타포라'에서 정기적으로 강좌를 진행한다. 이 밖에도 성폭력/가정폭력 피해 여성들, 마을 공동체 청년들, 시민 사회 단체 활동가들과 글쓰기 워크샵을 열었다. 자기 경험에 근거해 읽고 쓰며 자기 언어를 만들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직업에 뜻을 두고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와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 [폭력과 존엄 사이] 등을 펴냈다. - 저자 소개
글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쓰기의 말들'이 글쓰기로 들어가는 여러 갈래의 진입로가 되어 주길, 그리고 각자의 글이 출구가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프롤로그에서
1 행동하는 자만이 배우기 마련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모든 배우의 원리는 비슷하지 않을까. 결심의 산물이 아닌 반복을 통한 신체의 느린 변화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중요하고 좋은 문구이고 좋은 글이라서 줄을 긋고 접고 중요한 책이 되었다. 안쓰는 사람을 쓰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책이기 때문에 쓰기에 대한 유혹이 담겨 있다. 정말 열심히 책을 읽고 글 쓰기도 해야 되겠다고 다짐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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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는 작가가 마음에 담았던 글쓰기에 대한 문장이 있고 오른쪽에는 그에 관련된 작가의 단상이 있다. 문장 하나만으로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와닿지 않는 문장도 있었다. 좀 더 정확한 출처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은유 작가님의 글을 읽는 것도 좋았지만 중간중간 있는 작가님의 학인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그분들.. 열심히 글을 쓰고 계실까요?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셨다니 부럽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인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당장 뭐라도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 리뷰도 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마음이 길게 유지되면 좋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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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느낌을 기록한 책이다. 에세이로 보면 된다.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은 104가지 문장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구성을 보면 왼쪽은 마음에 와 닿은 문장이고 오른쪽은 그것에 대한 느낌이다. 나는 왼쪽 문장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그 글(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 흐름과 맥락 속에서 그 글이 가슴으로 다가 왔겠으나 하나의 문장만 떼어놓으니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리 오른쪽 맨 밑에 마음에 든 문장을 적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어느 책을 보고 메모한 것인지도 알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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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외면 할 수 없는 글쓰기의 필연] 읽고나니 이해 할 것 같다. '쓰기의 말들' 부제로 "안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란 문구가 붙은 이유를. 읽기 전까진 여느 책들의 글쓰기 학습법(skill)과 비슷한 내용을 다룰 법한 인상을 받았다. 저자 은유는 책에서 "단문을 쓰세요." "행간을 살리세요"와 같은 좋은 글쓰기의 방법적 조언들을 숨기지 않는다. 허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저자의 표현을 살리자면 '삶의 구체성'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엔 삶이 녹아있다. 글은 곧 삶을 드러내고, 우리네 삶은 글을 필요로 한다. 다음의 저자 고백은 독자로서가 아닌 불안하기만한 자아로 살아가는 나의 삶, 그 구체성을 알아주는 것만 같다. "삶의 구체성을 벗어난 무책임한 비유가 아닌 일상의 구석까지 훑어 내는, 삶의 무자비와 세계의 인식불가능성을 순순히 인정하는 진짜배기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책은 글쓰기를 가장했지만 실은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 또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조차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그속에 피어나는 마음의 일들을 밝히고 만져준다. 저자가 풀어놓는 100여개의 글쓰기 이야기는 우리가 더이상 쓰지 않고 있을 수 없도록 만든다. 한 동안 책읽기에 몰두했다. 2019년은 유독 더 그랬다. 나 스스로를 알고자 하는 갈증으로 가득했고, 깊고 탄탄한 사유와 지식으로 내면을 채우고 싶었다. 연초에 정했던 독서 목표량은 초과 달성했다. 이 역시 처음 이룬 성과라 의미있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여전했다. 독서는 지식보다는 이해와 성찰의 마음을 넓혀주는 것 같았다. 그 마저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읽기만을 위한 독서는 점점 나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주체는 나인데, 실천이 동반되지 못한 인식들의 과잉이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나와 타인 그리고 그 관계를 알고 싶어 몰입한 책읽기가 어느 순간부터 되려 혼란이 되어 있었다. '쓰기의 말들'은 읽기가 읽기로서 끝이 아니라 쓰기로 이어져야 함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주체가 되어 행하는 글쓰기는 자기 삶의 맥락을 만들어 낸다. 책을 통해 그리고 불안 투성이인 세상을 견더내며 얻은 생각과 성찰, 인식들은 글쓰기를 통해 삶의 맥락이 되고 그것이 내 삶을 변화시킨다. 쓰기의 말들은 글쓰기가 나의 삶을 오롯히 마주하고 인생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좋은 방법임을 느끼도록 한다. 저자나 책속에 인용문의 원작자들은 이미 수 없이 써왔고 지금도 이 순간도 쓰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쓰지 않던 사람이 더 이상 쓰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워 질 듯하다. 글쓰기는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 순간을 사는 우리는 필연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103가지 이야기에는 다른 작가, 학자 등의 글을 인용하여 표제처럼 붙여 사용하고 있다. 쓰기와 관련된 문구도 있고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경우도 있다. 책 속 글과 별개로 103가지의 인용구는 그 자체로도 좋아 따로 두고 보아도 좋은 내용들이다. 인상적이었던 인용구 3가지를 덧붙이며 마친다.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되다면,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우디 앨런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신영복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 수전 손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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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가라기보다 문장 수집가로, 서사보다 문장을 탐했다. 우표 수집가가 우표를 모으듯 책에서 네모난 문장을 떼어 내 노트에 차곡차곡 끼워 넣었다.' 문장을 사랑하는 은유 작가가 글쓰기가 힘들때 펼쳐보면 마음 다잡기 좋은 104개의 문장을 추렸다. 그와 함께 저자가 글쓰기와 관련된 에세이 104개를 담고 있다. '나는 글쓰기를 독학으로 배웠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은유작가처럼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독학으로 배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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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출판사의 "~의 말들" 형식의 책과 같이, 이 책도 좌측 페이지에는 쓰기와 관련된 인용 문장들이 우측 페이지에는 그 인용 문장과 관련한 저자의 생각, 경험 등이 언급되어 있다. 글쓰기를 독학으로 배웠다고 밝힌 저자의 글쓰기와 관련된 생생한 경험담 등이 흥미로웠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이 글쓰기와 관련하여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