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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을 죽였는가???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말안듣는 이단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님의 <조선왕 독살사건>은 그동안 항간에 떠돌던 야담수준이라고 일축했던 조선왕들의 독살설혐의에 대해서 많은 점을 시사하는 책이다. 특히 저자의 그동안 저술행위으로 보아선 이들 정통학자들에겐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저술중에 하나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여타의 역사적 사초에 의거하여 어느 왕이 어떻게해서 독살설의 가능성이나 개연성 있었고 그래서 그동안 야사나 야담수준의 내용을 좀더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하면는 오산일 것이다. 그동안 저자의 다른 저작에서 일관되게 피력하고 있는 사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역시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암시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 독살사건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얼마전 정조대왕의 어찰이 새로이 발견되면서 이 나라의 강단학계는 또다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그네들의 주장은 바로 발견된 정조어찰이 정조독살설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증거이고 정조독살설은 산간시골에서 떠돌던 야담이었다고 일축했다. 정조독살설 부정함으로서 재야학계의 연구자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한바탕의 해프닝을 결론지어 졌지만 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해방된지 60년인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식민사관에 대한 그 뿌리가 대단함을 보여 주는 사례일 뿐이라고 본다.
왜 그들은 왕을 죽였는가???
이는 조선이라는 국가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여말선초시대에 부패한 왕조에 대한 반동으로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뭉친 신진사대부들과 이성계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 둘은 권력창출을 위해서 이와 잇몸 같은 존재였고 상호간에 확실한 대의명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출발한 조선이라는 국가는 시작부터 왕권과 신권에 대한 상호간에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은 왕자의 난을 계기로 하여 태종의 왕권이 정도전의 신권에 판정승하게 되지만 태종의 뒤를 이은 군주에게 이러한 일련의 왕권강화조치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조선초기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등의 독살설 의혹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의 멸망때 까지 계속된다. 차이점이라고는 신권의 중심세력이 공신, 훈구세력에서 배제되었던 또 다른 사대부들(사림들)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중심세력의 권력이동은 많은 점에서 조선초기의 양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된다. 사림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성리학의 기수들이었다. 성리학으로 철저히 정신무장한 그들의 대의명분은 그동안 훈구세력의 정치적 행보에 비해 많은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대의라는 큰 범주내에서 보다 확실하면서 적극적으로 왕권을 견제하였던 것이다.
훈구세력의 몰락이 가져다 준 정치판은 사림들의 분당과 당쟁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이제는 대놓고 왕권에 대한 위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수많은 국왕과 차기대권주자가 독살설 이나 반정등에 휘말리게 된다. 이들은 국왕보다 같은 당파 당수의 의견을 절대시하였다. 그런 당파성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절대군주까지 교체해 버릴 정도로 대범한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저자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보듯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군왕의 나라가 아니라 노론의 나라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그 어떠한 정책이나 인물(그가 비록 군왕이라고 하더라도)은 철저히 제거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면에 그들의 정신적 모태인 성리학의 왕도정치 실현이라는 대의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런 독살설에 휘말린 국왕이후의 정치적인 행보를 보면 더욱더 독살설에 대한 혐의를 둘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효종의 경우 치세기간 동안 캐치플레이었던 북벌의 잔재를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행위나 정조의 개혁정치 역시 정조 사후의 반동정치에서 보듯이 국왕사후에 철저하게 선왕의 치세를 지우는 작업을 최우선시 했다는 점이 다름 아닌 그들의 행동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조선멸망의 근본원인이 무능한 몇몇의 군주에게 있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100%로 신뢰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앞서 보왔듯이 조선의 군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유일하게 태종 이나 숙종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국왕도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갈 수 가 없었다. 한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군주로 추앙받은 세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종도 신하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정책을 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정책실현에 길게는 18여년이 걸린적이 있을 정도로 신권의 힘은 대단하였던 것이다. 이를 다소 긍정적으로 보면 이러한 왕권과 신권의 줄달리기가 성립해서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단일왕조로 장수를 했던 비결중에 하나라고 하면 그나마 위안거리일 것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조선왕 독살사건>을 통해서 통찰해야 할 것은 다름아닌 각론적인 역사적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이점이 아주 큰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각론적인 관점에서 부터 시작된 왜곡된 사관이 결국 한국사라는 크나큰 정체성에 대한 위기로 대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통사학계에게는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국사교과서를 봐도 알 수 있고, 한나라의 역사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국립박물관에 가봐도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다름아닌 대한민국 사학계의 정설이다. 우리가 아무리 주장해도 통설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저자는 이러한 식민사관의 잘못된 점을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지적해 왔다.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에서 부터 작게는 여인열전에 이르기 까지 그동안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식민사관의 제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저작 역시 저자의 일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 독살사건은 이러한 역사적 왜곡에 대한 빙산의 일부일 뿐이다.
저자와 같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올바른 눈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관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저서임에 틀림없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 왜 그들은 왕을 죽였는가? 조선왕 독살사건이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창공을 나는 새에게는 오른쪽날개와 왼쪽날개가 있다. 아주 단순한 논리이지만 어느 한쪽 날개로는 날수없는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역사를 재단하는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한쪽 날개에 의존한 역사비행을 했다면 이제는 정말 올바른 역사비행을 해야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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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관련된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덕일의 책을 한번쯤은 집어들어봤지 않을까? 작가 이덕일은 참 보물같은 존재가 아닌가..하는 생각도든다.
조선왕 독살사건도... 충분히 의심해볼만한 사료들을 인용하고 정황증거등을 활용하여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던 몇몇의 왕외에도 많은 왕들이 독살되었을거라는 무한한 상상력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읽다보면 이건 좀 지나치다싶은 곳도 가끔 있긴했지만, 대부분 꽤 공감과 수긍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참, 왜 이덕일이 보물같은 존재냐!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재미나게 봤던 사극들이 생각났다. 아, 혹시 그 사극에서 이책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건 아닐까?...이런 생각이 자주 들정도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한편으론 친숙하기도 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극이나 영화, 혹은 다른 역사소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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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두다
식민지 조선 백성의 군주 - 제 26대 고종 어느덧 마지막 장章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달려왔던 속도 그대로 페이지를 넘겼다. 한 장, 두 장, 세 장. 책장이 넘어갈수록 조선의 운명은 그 마지막을 향해 치달았다. 서양 열강과 일본, 러시아가 먹잇감을 놓고 다투는 가운데 안으로는 수구파와 개혁파가 대립했다. 그 사이에서 고종은 수동적이었다. 살다보면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는 때가 있다. 처음에 아는 것은 지식으로써 아는 것이고 다시 한번 알게 되는 것은 지혜로, 체험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이때가 그랬다. 이상하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쩐지 만감이 교차한다. 감히 돈오頓悟의 순간이라고나 할까. 나는 까만 글자들 이면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시간의 강을 보았다. 여기까지 달려오는 가운데 나를 스쳐간 인물들과 사건과 정보와 이미지들, 조각조각 외따로 떨어져 있던 그 지식들이 한 개의 강 속으로 녹아들어 유유히 흘렀다. 나는 그 강의 시원始原과 그 강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깨우침이었다. 그러자 이 결말이 너무나 당연한 귀결로 다가왔다. 정말이지 지당한 결론이었다. 식민지 조선 백성의 군주, 고종이 처한 현실은 단 일 센티미터의 오차도 없이 진리에 부합하고 있었다. 조선은 뿌린 대로 거두는 중이었다.
(수정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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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너무 모르고 지내왔던거 같다.
그렇게 모르고도 사는데 지장없었는데
그럼 알고나면 달라지는게 무얼까?
삶이라는게 더욱 명징하게 다가오는거 같다.
어쩜 그럴수가...
어떻게 그럴수가....
한순간의 선택과 갈등이 얼마나 미래를 갈라놓을수 있는지...
지금 국회를 보더라도 예전과 똑같은거 같다.
아니 그 피를 이어받아서 요모양 요꼴인겐지...
자기의 이익에 반한다고 해서
그 머리좋고 현명한 사람들 모두 죽이고
한장 한장 읽어나갈때마다
이때 이렇게 안했으면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요때 요사람들이 죽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러거나 저러거나 예정되었던 데로 흘러가는 것일까...
삶이라는게 역사라는게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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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힌 싵타래 풀기..
아직도 한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 판사가 된 후 처음으로 맡았던 조선왕 독살 사건. 그 일을 처리하고 난 후 현대사회에서 팽배해 있는 수많은 비리와 범죄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2009년 3월 22일 오후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진행할 사건은 조선왕조 500년 조선 왕들의 독살 사건입니다.” - 저희 국민 일동은 이 재판에 있어 사실을 정당하게 판단할 것과 이 법정이 지정하는 법과 증거에 의하여 진실한 평결을 내릴 것을 엄숙이 선서합니다. 피고인 수양대군은 원고 검찰측에 대항하여 사건 전부를 부인하고, 문종은 독살설이 아니라 종기에 의란 병사라고 확신하며 말했다. 하지만, 어의 전순의의 말도 안 되는 시료방법과 문종 사후 그의 공신 추대 사실을 들어 검찰이 반박하자 어의 전순의의 시료법은 자신이 지시한 적이 없으며, 그 당시 최고의 어의의 시료법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자신 또한 최고의 어의였던 전순의에게 시료를 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의원이라면 누구나 알았던 휴식과 금기 음식을 범했던 사실과 함께 이후 단종의 죽음을 함께 연계시켜 추궁하자 증인 전순의는 수양대군과의 협력사실을 수긍했고, 이에 수양대군은 끝까지 죄를 발설치 않았다. 수양대군이 그렇게 어의없는 문종의 죽음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후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변화했을지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의 한국이 어떻게 변화했을지 추궁하자 수양대군은 ‘권력의 야욕은 나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에 숨어있고, 그 욕심이 드러나는 데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조차 필요치 않다. 내가 그러지 않았다하더라도 인간의 욕망이 사그러들지 않는 한 조선에 독살 사건을 또 일어났을 테고, 그 이후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피고인 문정왕후는 아들의 병세가 위중하다 호전을 보여 다과를 대접하고자 한 것 뿐이지 독살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여느 주동인물과 같이 발뺌을 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시인하였다. 죄인이 죄의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자 배심원단은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판사는 수근거림을 조용히 시킨 후 조용히 원고측 피고인 신문을 유도했다. 피고는 언제 무엇으로 무슨 이유로 인하여 독살을 하게 되었냐고 하는 질문에 문정왕후는 아들이 임금이 되는 것이 원하는 바였고, 그로 인해 인종이 위중하다 호전되었을 때 다과를 빌미로 병을 위중하게 하는 약을 넣었고, 그로 인해 인종이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 하면서 당연히 어떤 어미라도 아들의 지위를 올려주고자 했을 것이고, 그로인해 받는 죄는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 현대사회에서 팽배하는 지연 학연을 넘어서는 혈연관계에서 사학 재단의 혈연관계 임용, 기업들의 혈연 관계 등용, 정치적인 세력에서도 집안의 관계를 넘나드는 권력 상속이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원고측은 이에 그 모든 것은 자식을 위한 것이란 변명으로 둘러싸여진 내 자신의 이익챙기기라 비난하고, 그로 인해 나라의 중대사들을 망쳤으며, 조선 역사의 커다란 비운을 맞게 되었다고 말했다. 수많은 목숨이 그로 인해 사라졌으며, 역사의 변화를 꾀하고자 했던 세력들이 사라지면서 권력이 최고라는 마음만을 심어주어 지금까지도 이렇게 혈연 학연 지연이 팽배한 것이라 보고, 죄를 인정한 사실을 인정하여 죄를 조금 감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 이후에도 독살 사건의 피고들이 줄줄이 나와 자신의 독살설을 부인하는가 하면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고자 죄를 인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이익이 아닌 조선을 위하여 나라의 앞길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컸고, 또한 주변에서 자신을 이끌어주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자신의 형제, 자식, 친인척을 죽이면서까지 권력을 욕심내야 했는지, 그 권력의 중심엔 무엇이 있었는지 그들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로 인해 변화되어왔던 조선의 역사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국민들의 원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현대의 한국사회에서 국회에서의 난동이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대통령 탄핵 사건이 줄을 이루고, 대국민 촛불시위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현실에서 과거를 들추어 파헤쳐 본 들 무슨 수가 있겠냐는 그들의 변에 한마디 던지고 싶었다. “당신들의 그러한 욕심에 의한 대가는 조선의 멸망이었고, 이후 끊임없는 정격유착으로 인한 비리와 범죄 그리고 국민의 국회, 국민의 대통령이 아닌 당의 국회 당의 대통령이 되어버렸다고. 흉흉한 민심에 허리가 끊어지는 삶의 고됨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라도 잡고자 노력하는 성실한 국민들의 밑바탕이 되고 있지 못 하다고. 그리하여 오늘 이 순간 당신들을 단죄하고, 그 죄를 반성함으로 인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 시기가 왔다고”말이다.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한 순간 한 순간이 영화의 필름이 끊어진 것처럼 이어지지 않을때가 많았다. 갑작스런 죽음, 독살, 반정, 난 등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맞물려서 제대로 왕통성을 유지하며 자라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은 개국 후 제도의 정비, 정치 체제의 변화 등 여러 시도를 통하여 조선을 갈고 닦는 변화를 보여주었으나, 그 속에는 개국 후 왕자의 난부터 시작하여, 외적의 빈번한 침입, 붕당정치의 변질, 거꾸로 된 역사 세도정치, 이후 일본의 침입으로 인한 조선의 멸망까지 갖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세월을 거슬러 왔다. 이러한 조선의 500년 역사를 총망라하여 보여준 조선왕 독살사건. 이 책으로 인하여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 조선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조선은 왕의 국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왕의 국가가 아니었다. 신하들을 늘 달래고, 어루고, 위협도 하며 자신의 뜻을 펴고자 했던 왕이었고, 뜻을 이루기 위해선 신하들과 협력해야 했으며, 당들의 권력을 앞세우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당을 내세우는 등의 끝없는 그들과의 세력 전쟁을 해야했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하나도 자신 스스로 택하지 못하는 불운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했지만, 최고의 자리였던 왕. 그 자리를 탐하던 많은 사람들의 질시에 죽임을 당한 능력있는 왕들의 죽음은 지금도 정말 안타깝다. 조선의 역사의 줄기를 바꾼 문종이 그렇게 갑작스레 죽지 않았다면, 새 세계를 열기 위해 막대한 다짐을 한 소현세자가 그리 되지 않았다면, 후덕한 왕들이 욕심에 의한 독살로 사라지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날의 한국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을 것인가. 아마도 얼마전 방송되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궁’의 모습처럼 아직도 영국의 여왕같은 왕족이 남아있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지금의 한국의 모습은 좀더 옛것을 사랑하고 지키려 노력하고, 역사를 보전하려는 열의를 더 가지지는 않았을까라는 덧없는 생각을 해 본다. 덧없는 생각이라 함은 이루지 못했음을 한탄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반성과 생각에서 앞으로의 한국의 발전을 꾀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국가 건설 이래 단 한 번도 국미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러한 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어려운 경기, 고된 삶을 통해 유신 시절의 박정희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이도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눈부신 경제발전 때문에 바라는 것일 뿐 독재체제 속에서의 괴로움과 힘듦 그 속에서 벗어남의 자유를 속박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때의 뛰어난 추진력과 놀라운 정치 감각을 바라는 것일 뿐이다. 권력의 야욕에 무너진 그 수많은 왕들이 눈을 감을 땐 그 피비린내나던 시간을 생각하며 두려운 죽음을 맞았던 것처럼 한국이 그러한 시간을 감내하지 않으려면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당에서 당의 신하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에서 벗어나 나라를 위해서, 국민들을 위한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난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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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독살사건1,2권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록했는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조선의 왕들의 업적 및 일상사를 기록했던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죽은 후에 후세 때 기록하던 일종의 역사서였으나 객관성을 잃기 쉬웠고 지극히 주관적인 사실만이 기록되기도 했다. 그건 바로 기록할 당시의 집권층이 누구였느냐에 따라 그만큼 내용들이 조작되고 변질될 가능성이 다분했었던 것이다.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당시 신하들과의 마찰이 있었던 왕. 대비나 다른 왕가친척들의 세력이 커서 오히려 위협을 당했던 왕. 그들의 석연치 않았던 죽음의 순간에 대한 의문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덕일 작가는 실록을 보면서 정확한 기록이라 보기 어려운 부분은 그 당시 집권층이 아닌 사람들의 기록들로 비교, 대조해가며 꽤 객관적으로 써내려갔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들을 초래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조선의 제5대 왕이셨던 문종은 그 아버지 세종(세종대왕)을 뒤이을만한 훌륭한 왕의 재목이었다고 한다. 세종말년에는 세종 대신 세자였던 문종이 대신 정치를 펼쳤다고 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물색하지 않게 문종의 정치는 세종을 능가했다고 한다. 그런 문종의 갑작스런 죽음과 세조의 등극은 과연 관련이 없었을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을 숙부의 큰 그림자가 단종의 목을 죄지는 않았을까? 왕권강화를 꿈꾸던 예종의 죽음에 준비를 한 것처럼 빠르게 다름 후사를 정했던 신하들의 행동에는 연관성이 없을까? 연산군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듯이 폭군의 모습만 있었을까? 친아들이 따로 있던 문정왕후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인종을 친어미처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아들조차 믿지 못했던 비운의 왕 선조와 아비의 의심을 끝까지 받은 광해군, 이들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둘만의 문제 때문이었을까?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수용해서 나라의 발전을 꿈꾸던 소현세자의 요절.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쓸쓸히 사라진 그의 죽음은 우연이었을까? 어린조카 대신 왕위에 올라 정통성 콤플렉스가 있었던 효종과 그의 아들 현종은 그들만의 정치세계를 펼쳐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는데 그 콤플렉스가 원인이었을까? 모후였던 장희빈을 잃고 자신을 뒷받침해줄 힘마저 없었던 경종은 과연 누굴 의지할 수 있었을까? 왕의 할머니가 된 어린 정순왕후가 자신의 피붙이가 아닌 정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을까? 아들이었던 효명세자로 하여금 왕권의 부활을 꿈꾸었던 순조와 정조가 꿈꾸던 강하고 평안했던 조선의 모습을 실현시켜줄 효명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아무 상관이 없을까? 아버지와 아내의 사이에서 나약하고 힘이 없던 고종이 오로지 외세의 침략 때문에 그 왕권을 잃게 되었을까? 이런 왕들의 주변에는 '왕'이라는 절대권력을 탐하는 무리가 반드시 있었다. 나는 그들의 욕심이 오히려 조선역사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의 왕을 섬기는 신하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지 않고, 그들의 왕을 끝까지 믿고 보필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쩌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문종이 살아서 단종의 뒷받침을 확실히 했다면, 우리의 과학문명이 발전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나싶다. 연산군이 어미에 대한 정으로 폐륜을 저질렀다하나, 초기 정치에 있어서는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느 누구보다 못지 않았었다한다. 중립외교정책으로 현실적인 외교를 펼친 광해군이 살아계셨다면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에게 짓밟히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나라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혁을 꿈꾸던 소현세자가 왕이 되셨다면, 우리는 선진국의 기틀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싶다. 효종이 북벌론을 실현시키셨다면 우린 옛고구려의 영토를 수복하지 않았을까? 그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뤄내지 않았을까? 영조께서 다음 왕인 정조를 위해 결단을 내리시어 정순왕후 및 정조를 적으로 둔 세력들을 모두 처단하셨다면 정조는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기셔서 조선의 부흥을 이끌어내시지 않았을까? 순조, 효명세자, 정조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조선의 근대화에 앞장을 섰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조선정치체제의 죽음을 맞지 않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왕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궁에 머무르고 계실지도 모른다. 흥선대원군이 일찍이 외국문호개방에 호의적이었다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고 일본군에게 국모가 시해를 당하고 왕이 섬으로 피신을 가는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경험들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한나라의 임금으로써 고종이 소극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개방에 눈을 떴다면 우리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작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란 시련도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분단의 상황까지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분이라도 자신의 정치세계를 끝까지 실현시키셨다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었다. 현명하고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끝까지 그들의 왕을 보필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미래는 항상 더 좋은 쪽으로 변해야한다. 지금의 정치세력에게 묻고 싶다. 백성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왕을 보필하던 신하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왕을 저버린 신하,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후자보다 전자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긴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이다. 책을 읽는내내 너무 아쉽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신 왕들의 이야기를 보며 안타까움에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조선왕독살사건>은 나에게 가슴 한 켠에 슬픔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기는 책이었다.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가 반복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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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그리고 유학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하지만, 왕에게는 왕후가 존재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왕들의 영화와 쇠퇴만큼 왕후들도 영화와 쇠퇴를 같이했다. 즉 왕과 왕후는 부부의 관계를 떠나 이질적으로 볼 수 없는 일심의 존재라는 것이다. 조선에서 왕후라는 위치는 화려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시샘과 견제가 있었던 만큼 불안한 위치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16명의 왕후에 대한 이야기를 4가지의 장, 조선의 개혁자로서의 왕후와 정치자로서의 왕후, 그리고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왕후와 왕에게 버림받은 비련의 왕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먼저 조선의 부흥에 일조한 왕후로서 태종의 부인이었던 원경왕후와 세종의 부인이었던 소헌왕후, 그리고 정조의 부인이었던 효의왕후와 고종의 부인이었던 명성황후를 언급한다. 이 네 왕후들은 조선의 부흥과 개혁을 위해 왕들이 노력할 때, 왕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했던 왕후들이다. 원경왕후가 없었다면 왕자의 난에서 태종이 승기를 잡지 못했을 것이고, 소헌왕후가 없었다면 세종은 험난한 개혁을 실행함에 있어 내실을 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소헌왕후가 세자빈을 둘이나 폐출시킨 사실은 그녀가 정치적으로 표면에 나설 수 있었음에도 나서지 않고 궁중의 기강 확립 차원에서 조용하지만 강하게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효의왕후는 홍국영와 원빈 홍씨로 인해 모욕을 겪으면서도 정조를 위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궁중을 잘 다스려 그가 안심하고 국사를 나아갈 수 있게 하였으며, 명성황후는 잘 알다시피 이이제이를 하는 외교술을 통해서라도 조선의 쇠망을 막기 위해 힘쓴 국모였다. 정치자로서의 왕후는 대개 왕이 죽거나 어려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 수렴청정의 과정을 통해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는 문정왕후 윤씨, 인목왕후 김씨, 인선왕후 장씨, 정순왕후 김씨, 신정왕후 조씨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인선왕후의 경우 북벌을 위해 역모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정치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인 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네 명의 왕후는 수렴청정의 과정을 통해 정치력을 보이며 피바람을 가져왔다. 비극의 왕후들은 정순왕후 송씨와 장렬왕후 조씨, 선의왕후 어씨를 언급한다. 정순왕후 송씨의 경우는 세조로 인해 단종이 왕위를 찬탈당하고, 단종복위사건으로 인해 단종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은 왕후이고 조귀인이라는 후궁으로 인해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가 죽는 비참한 사건을 겪은 왕후이며, 선의왕후는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아내로서 14세에 세자빈이 되었다가 17세에 왕비가 되고 20세에 대비가 된 후 26세에 승하하는 비극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였다. 왕에게 버림받은 비운의 왕후들은 폐제헌왕후 윤씨와 연산군 부인 신씨, 단경왕후 신씨, 희빈 장씨를 언급한다. 연산군 부인이나 희빈 장씨는 세간에 다소 알려져 있지만, 폐제헌왕후의 관한 내용은 성종의 어머니와 할머니인 정희왕후나 인수대비와 윤씨와의 사이가 안 좋아서 생긴 고부간의 갈등이 원인으로 인한 것이며, 단경왕후의 경우는 연산군에 대한 반정을 통해 중종이 즉위했지만, 아버지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유로 폐출된 것이다. 특히 후자는 반정이 성공했음에도 왕후가 궁에서 쫓겨난 것은 신하들의 권력이 왕의 그것을 능가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왕후의 역사도 조선의 역사라고 말한다. 여자들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금지되던 시대에 그들은 나름대로 정체성을 찾고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왕후의 삶도 여인들의 삶이라 언급한다. 꽃처럼 피어나 풀잎처럼 시들어 버리기도 하고 왕에 대한 사랑 싸움으로 질투와 투기를 하며, 작게는 궁중암투로 크게는 격랑으로 이끌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600년을 통틀어 볼 때, 많은 왕후들과 후궁들이 있었겠지만 저자가 언급한 16명의 왕후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배우고 오늘날에도 되풀이 되고 있는지 반추하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 생각된다. 조선의 역사이자 왕후의 삶의 이야기 이지만, 정치적인 상황과 결부되어 있지 않은 바가 아니기 때문에.... |